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46화 (546/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46화>

    서울의 한 건물 3층.

    도경수 차장이 선유컴퍼니라는 편액이 걸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예. 발굴은 순조롭게 되고 있고요!”

    “여긴 투자자에게 커피도 안 주나?”

    왜인지 시끌벅적한 사무실의 풍경.

    30평 그리 크지 않은 사무실에 사원들과 일반인들이 뒤섞인 모습이 도경수를 반긴다.

    그러다 사무실에 있던 일반인들, 아니 투자자들이 도경수를 발견하곤 몰려든다.

    “도 부장?! 도 부장! 발굴은 어떻게 됐나!”

    마치 먹이를 발견한 아귀들처럼 모여든 사람들.

    서울 강남의 건물주, 중소기업 사장, 어느 부자의 아내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이 눈을 붉히며 성과가 있냐 묻는다.

    “모두 기뻐해 주십시오! 저희가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이번에 아주 큰 성과를 올렸습니다!”

    도경수는 손가락을 까딱였고, 곧 그의 부하 직원이 얼른 사진을 가져왔다.

    “오오오!”

    “모두 총 30점입니다! 이 모두 일주일 사이에 출토됐으니 곧 본체를 발견하지 않을까 합니다!”

    “와아아!”

    “난데! 거봐! 보물선 있다고 했지!”

    “흑! 다행이다.”

    도경수는 광란에 빠진 사람들을 뒤로하며 흐뭇이 웃고 있는 사장에게 다가갔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 부장님.”

    “모두 사장님 염려 덕분입니다.”

    “러시아를 빠져나오는 건 괜찮았습니까? 책임자가 귀국하는 거라 소요가 있었을 법한데요.”

    “때마침 어떤 미친놈이 붉은 광장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장난전화를 거는 바람에 쉽게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저런. 우리에겐 행운이었군요.”

    악수를 하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나누는 둘. 다른 직원들도 그들을 보며 눈을 빛낸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한턱 크게 쏘겠다는 투자자들의 권유를 물리친 그들이 퇴근을 하기 위해 선유컴퍼니를 나선다.

    근처 무료 주차장에 세워 둔 차에 오르는 그들.

    “먼저 타시죠, 도 차장님.”

    “어흠. 그럴까요?”

    차에 오르던 도경수는 잠시 선유컴퍼니가 있는 건물을 응시한다.

    내일 저곳에 어떤 지옥이 펼쳐질까.

    ‘못 봐서 아쉽네.’

    그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차에 올랐다.

    타악!

    이틀 후, 서울의 한 아파트.

    통통통통! 보글보글!

    남편과 자식들의 아침밥을 차리던 삼십대 중반의 여성 유지민이 잠시 칼질을 멈추며 몽롱한 표정을 짓는다.

    ‘일주일 만에 30점이 발견됐으니까…….’

    보물 한 점당 최소 가격이 3천만 원이 넘을 거라고 했다. 당초 선유컴퍼니가 말하던 20배 수익. 아무래도 그 이상이 될 것 같았다.

    “안 되겠어.”

    선유컴퍼니의 직원들에게 보약이라도 지어 먹여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을 먹는 순간이었다.

    “야아-!”

    안방에서 터져 나오는 살기등등한 외침.

    그와 동시에 문이 거칠게 열리며 오십대 초반의 중년인이 튀어나온다.

    “너 이거 뭐야!”

    “뭐, 뭐가요?”

    “여기 5억 뭐야! 이 5억 송금 뭐냐고-!”

    ‘헉! 그걸 어떻게?’

    무신경한 남편이었기에 모를 줄 알았던 그녀.

    “너 나 몰래 도박하냐? 아니면 장모님 집이라도 사 드린 거야?”

    “아, 그 그게…….”

    “뭐가 됐든 그걸 왜 병원 건물이랑 아파트를 담보 잡아서까지 한 거냐고-!”

    아직 대출의 40퍼센트도 갚지 못한 개인병원 건물과 아파트.

    “너 나한테 시집 올 때 내가 뭐라고 했어? 이 집에서 네 재산은 하나도 없으니까 콩나물 하나 살 때도 내 허락받으라고 했지!”

    “자, 잠깐만요. 내가 다 설명할게요!”

    “그 돈이 어떤 돈인 줄 알아?!”

    자신들 가족의 미래고, 한창 자라고 있는 자식들에게 물려줄 유산이다.

    “대학도 제대로 나오지 못해 빌빌거리던 애 딸린 여자를 어른들에게 싹싹하다는 이유 하나로 거둬 줬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때려?!”

    “내가 다 설명한다고요-!”

    고막을 꿰뚫는 아내의 발악에 남편은 잠시 화를 가라앉혔다.

    “설명해 봐.”

    “그게 좋은 투자처가 있다고 해서…….”

    “투자처?! 이 미친년이 결국……! 네가 동네 하릴없이 남편 돈이나 까먹는 년들한테 물들었구나! 미친년아! 그년들 남편은 진짜 부자들이고, 우린 부자인 척하는 놈들이잖아! 내가 이 돈을 어떻게 아등바등 모았는데!”

    “여보!”

    “……후. 계속해 봐.”

    유지민은 더 표정이 안 좋아진 남편의 모습에 빠르게 설명을 했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멍하니 쳐다봤다.

    “이제 알겠어요? 당신이 멍청하다고 말하는 내가 얼마나 엄청난 대박 정보를 잡은 건지?! 1억? 2억? 개인병원장 사모님이면 뭐해! 10원짜리 한 장 제대로 못 쓰는데!”

    지독히도 구두쇠인 남편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끝이다. 보물선만 발견하면 5억의 20배, 최소 100억이다.

    “이젠 누가 이 집안의 가장이죠? 말해 봐요. 하! 말 못하겠지! 그렇게 무시하던 아내가 이렇게 큰돈을 벌어 왔는데!”

    “……일단. 내가 널 무시하던 이유는 하나였어. 네 전남편 애나 우리가 낳은 유진이나 두 아이들이 자라는 데 그리 좋은 영향을 못 주니까.”

    엄마란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하는 존재다. 엄마가 멍청하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일부러 더 독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악물고 공부할 줄 알고.

    “내가 그랬으니까. 내가 전에 말했지? 나 중학교 때까지 지지리도 공부 안 했다고?”

    형이 옆에서 계속 멍청하다, 멍청한 놈이라며 쪼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공부를 안 했을 거다.

    “여, 여보?”

    유지민은 갑자기 차분하게 설명하는 남편의 모습에 당황했다.

    “그리고 내가 밖에서 널 무시했어? 아이들 앞에서도 안 했지?”

    아내가 있어서, 엄마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언제나 아내를 치켜세웠다.

    “아이들 차별도 안 했고, 내가 어떤 걸 살 때도 너한테 양해를 구했지. 비록 내가 말하는 말투가 나빴어도 네가 동의할 때까진 안 샀어. 그랬지?”

    “……네.”

    생각해 보면 그랬다. 말이 거칠긴 했지만, 구두 하나를 살 때도 자신과 상의를 했었다.

    “그런데 넌 왜 나랑 상의도 없이 대출을 받아 다 날려 버리냐? 왜 우리 가족 인생을 날려 버리냐?”

    “……네?”

    “선유컴퍼니라고 했지?”

    안방으로 들어간 남편은 신문을 들고 나와 유지민에게 뿌렸다.

    촤락!

    바닥에 흩날리듯 떨어지는 신문.

    그중 1면 가장 상단에 걸린 제목이 유지민의 눈 속으로 파고든다.

    표토르 대제의 보물선은 거짓말?

    “어? 아……. 자, 잠깐. 아, 안 돼. 안 돼-!”

    남편은 무너지는 아내 유지민을 싸늘하게 쳐다봤다.

    “우리 이혼하자.”

    *   *   *

    선유컴퍼니에 의해 한국이 다시 뒤집혀진 지 5일 후, 일본의 나리타 국제공항.

    웅성웅성.

    잠을 제대로 못 잔 건지 목을 붙잡은 종혁이 불퉁한 얼굴로 입국 게이트를 나선다.

    “아오, 씨. 그냥 전세기를 빌릴 걸 그랬나.”

    “종혁!”

    종혁은 바리케이드 너머에 서 있는 무로이 코헤이를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곧 만날 건데 왜 나왔어요?”

    다급히 그에게 걸음을 옮기는 종혁.

    “네가 일본에 온다는데 가만있을 수 없잖아.”

    “아니, 그래도 한 과의 장을 맡은 사람이……. 아, 그래서 시간을 낼 수 있었나?”

    “나 그런 무능한 상사 아니야.”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이. 자요, 선물. 이건 아버님이랑 어머님 거. 이건 쿄 형 거. 이건 형수님 거.”

    “혀, 형수?”

    “이야기 다 들었습니다. 참하시다면서요?”

    “큼. 맞선을 본 것뿐이야.”

    “그런 양반이 그렇게 다정하게 신주쿠 거리를 걸으시나?”

    그건 어떻게 알았냐는 듯 무로이 코헤이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TV에 나왔습니다.”

    “크흠.”

    순간 귀가 빨개진 무로이 코헤이는 휙 몸을 돌렸고, 종혁은 피식 웃으며 그의 옆에 섰다.

    “일본은 좀 어때요? 요새 이래저래 사건이 많던데 괜찮아요?”

    “뭐 언제나 그렇지. 변하는 건 범죄 수법 정도일까.”

    버블 붕괴 이후 멈춰 버린 일본. 그러나 범죄 수법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었다.

    “한국은 좀 괜찮아?”

    “안 괜찮죠. 현재 추산된 피해자만 3만 명이 넘는데.”

    조희구의 JH메디컬에 이어 선유컴퍼니까지.

    연달아 터진 초대형 사기에 박종명 경찰청장과 검찰총장의 경질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마저도 축소된 것에 불과했다.

    ‘현재 사기를 당했다는 걸 주위에 알리기 싫고 무서워 숨죽이고 있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최소 7만 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회귀 전 조희구에게 당한 피해자의 수가 약 12만여 명.

    그때보다 사기 액수가 더 많아졌지만, 종혁 자신의 개입으로 인해 피해자 수는 꽤 줄었을 거다. 조희구가 들고 나른 돈 중 절반 이상이 종혁의 돈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이상 피해자가 있다는 게 밝혀진다? 그땐 그냥 사퇴를 해야 되는 거다.

    ‘문제는 박종명이 이걸 모를 리 없다는 건데…….’

    이럴수록 박종명은 하수인이 아니라 놈들의 소속이라는 생각에 무게가 쏠린다. 아니면 어차피 경찰청장의 임기가 2년밖에 안 되니 한탕 크게 해 먹으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뭐든 이가 갈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안 좋았어?”

    “말해 뭐해요. 제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되잖아요? 그러면 위로 올라가기 위해 뭐 빠지게 구르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응?”

    “저 그 사람 싫어하거든요.”

    즉, 박종명과 그 파벌이 나가리가 되면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각축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하하핫! 아, 미안. 웃을 일이 아니지.”

    “괜찮아요. 이미 새는 바가지란 게 다 들통났는걸요, 뭘. 저 차예요?”

    “아, 응. 타.”

    도로 가에 세워진 검은 색의 중후한 세단에 종혁은 혀를 내둘렀다.

    “캬. 경시정이 세단이라……. 역시 경찰 명문가의 자식답구만?”

    “헛소리 말고 타기나 해.”

    “예이, 예이.”

    탁탁 차에 오르자 순간 종혁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난다.

    그러나 무로이 코헤이의 낯빛은 굳어진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종혁은 왜 공항까지 나왔냐 말했지만, 사실 이는 종혁의 부탁에 의한 것이었다.

    무슨 일이길래 이런 부탁을, 연기를 부탁해 온 것일까.

    종혁은 운전석에 앉은 사람을 봤고, 무로이 코헤이는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말한 그 새끼들 잡으려고요. 그런데 놈들이 잡히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렇군.”

    이제야 알겠다.

    종혁은 현재 경찰 인생과 목숨을 걸려 하고 있었다.

    “잘리면 언제든 일본으로 와. 너 같은 인재는 환영이니까.”

    “절 노리는 사람이 많아서 순번이 되려나 모르겠네요.”

    “내가 도와줄 건?”

    “이 정도면 충분해요.”

    무로이 코헤이가 나와 준 걸로 충분하다.

    “……쯧. 출발하지.”

    “예!”

    부르릉!

    차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공항을 빠져나갔고, 오늘도 들어오고 나가느라 몰린 인파들 사이에서 그런 그들을 지켜보던 한 남성이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최종혁 출발합니다. 미행하겠습니다.”

    그는 때마침 앞에 서는 차에 올라타 종혁의 뒤를 쫒았고, 인파들 사이에 숨어 있던 몇 명의 외국인이 귀에 손을 가져갔다.

    “타깃 이동. 신원 확인은?”

    -확인 중.

    그렇게 말하며 서로를 쳐다보는 외국인들.

    서로를 향해 웃어 준 그들은 때마침 앞에 서는 차에 올라타거나 택시에 올라타며 공항을 빠져나갔다.

    *   *   *

    해가 진 저녁, 도쿄의 한 호텔 앞.

    술을 한잔해서 그런지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오른 종혁과 무로이 코헤이가 아쉬움의 악수를 나눈다.

    “부모님이 널 참 보고 싶어 했는데 말이야.”

    “에이. 그건 나중에 날 잡아서 정식으로 뵙도록 해요.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몰골이 말이 아니잖아요.”

    “네가 여자친구냐…….”

    “큭큭.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인 걸 부하 직원들은 알려나 몰라.”

    “큼.”

    “푸하핫!”

    “간다. 피해자 조사 끝나면 연락하고. 그땐 오늘처럼 마시다 마는 게 아니라 끝까지 가 보는 거야.”

    “예! 그렇게 해요.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도 있으니까.”

    종혁은 로비를 서성이다 다가오는 오택수를 가리켰고, 무로이 코헤이는 그런 오택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럼 갈게. 연락해.”

    “조심히 가세요!”

    손을 흔들며 그가 택시를 타고 멀어지는 것까지 확인한 종혁은 몸을 돌렸다.

    “언제 왔어요?”

    “방금. 그보다 저 사람 그 참사관 아냐?”

    “제 일본 지인이라고 했잖아요.”

    “아아.”

    “피해자들은요?”

    조주영에 의해 더 이상 한국에 있기 힘들어 싱가포르와 태국으로 떠났던 피해자들.

    “……하나같이 우시더라.”

    “쯧. 고소는 하시겠대요?”

    제아무리 피해 사실이 확인됐다고 해도 피해자 본인이 고소를 하지 않겠다 하면 상황은 좀 골치 아파진다. 물론 중범죄라 처벌은 내려질 테지만 말이다.

    “어. 하시겠대. 넌?”

    “저도요. 후우. 다행이네요.”

    피의자가 온당한 법의 심판을 받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들은 약간의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거다. 참 다행이었다.

    “그런데 여긴 뭐하는 곳인데 이렇게 화려하냐?”

    앤티크한 고풍스러운 느낌과 모던한 세련미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로비.

    종혁을 따라 여러 최고급 호텔에 묵어 본 경험이 있는 오택수이건만 기가 죽을 정도다.

    “60년대에 지어진 건데, 정치인들이나 최고 관료, 기업 회장들이 자주 묵던 곳이에요. 지금도 자주 이용할걸요? 음식이랑 술도 죽여준다니까 그걸로 한잔하죠.”

    “내일 오후에 만난다고 했지?”

    “그때밖에 시간이 안 된대요.”

    “오케이. 얼른 짐 풀자.”

    그들은 빠르게 체크인을 하곤 위로 올라갔다.

    몇 시간 후, 호텔 복도.

    술을 잔뜩 사든 종혁과 오택수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방으로 향한다.

    “3차 가자, 3차! 이건 씨, 내일 마셔!”

    “그래요! 긴자 가자아!”

    띠리링! 띠리링!

    “누구야, 이씨……. 네, 여보님. 아뇨. 술 안 마셨어요. 네. 이제 씻고 자야죠. 네, 네. 네, 들어가세요.”

    달칵!

    전화를 끊은 오택수가 물기를 머금은 눈으로 종혁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쉰다.

    “이거나 마시다 자자.”

    “에이 씨.”

    그들은 우울해하며 스위트룸으로 들어갔고, 등 뒤로 문이 닫히자 둘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는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언제 취했냐는 듯 멀쩡한 목소리.

    지금이 새벽 2시, 피해자와 만나는 게 내일 오후 2시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조희구와 선유컴퍼니를 모두 검거하고 돌아올 수 있을까.

    어차피 놈들을 검거한다고 해도 몸뚱이까지 더듬어 올라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전에 종혁이 그들을 검거했다는 게 알려지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너 어차피 널 드러내지 않을 거잖아.”

    그래야 숨겨진 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여태까지 종혁이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다.

    “네 성격상 네 친구들이 다 하도록 놔두진 않을 테고…….”

    방금 전 아내로 위장해 전화를 준 종혁의 외국 친구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갔다가 제시간에 돌아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찰칵! 치이익!

    담배에 불을 붙인 종혁이 나른하게 웃는다.

    “만약 그 피해자가 더미라면요?”

    “……미친.”

    오택수는 종혁의 치밀함에 치를 떨었다.

    “그래, 좋아. 다 좋은데, 여긴 어떻게 빠져나갈래?”

    아마 지금쯤 감시를 당하고 있을 거다. 신원 조회조차 되지 않는 누군가가 말이다.

    그토록 치밀한 놈들이라면 종혁이 호텔에서 사라지고, 중국에서 조직원이 검거되는 순간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러면 종혁은 더 이상 숨겨진 칼이 될 수가 없게 된다.

    “제가 아까 말했죠? 여긴 일본 정치인들과 기업 회장들이 자주 이용하던 곳이라고.”

    “……뭐?”

    쿵쿵!

    “뭐, 뭐야!”

    아무도 없는데 갑자기 두들겨지는 벽에 깜짝 놀란 오택수는 다급히 물러섰고, 종혁은 소리가 난 벽 앞에 섰다.

    “그런 부류들의 습성이 뭔지 알아요? 속이 아주 까맣다는 거예요.”

    키득키득 웃은 종혁은 벽을 잡고 옆으로 밀었다.

    스르륵!

    오택수는 문이 열리며 드러난 두 남성의 모습에 경악을 했다. 아니, 온몸에 소름이 돋아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물러났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내. 심지어 키까지 똑같다.

    종혁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게…….”

    “요새 기술력이 많이 좋아졌더라고요.”

    종혁은 비켜서는 그들이 올라온 계단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안 가요?”

    “어, 어!”

    둘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고, 벽은 그들의 등 뒤에서 닫혔다.

    그리고 남겨진 종혁과 오택수의 대역은 서로를 보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술들을 챙겨 창가로 걸어갔다.

    촤악!

    커튼을 활짝 걷은 둘은 씩 웃으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똑같이 생긴 대역이 너무 충격이었을까.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오택수가 다시 입을 연 건 거의 1시간이 지나서였다.

    “씨발. 존나 진정 안 되네.”

    “큭큭큭. 어때요? 진짜들을 본 기분이?”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보일 만큼 대단한 할리우드의 변장 기술. 그러나 스파이 세계의 변장 기술은 그보다도 더 진보해 있었다.

    “내 감상이 필요하냐?”

    “아뇨.”

    종혁은 키득키득 다시 웃었고, 오택수는 고개를 저었다.

    평생 놀랄 걸 오늘 다 놀란 것 같은 느낌.

    선팅이 짙어 안이 보이지 않는 검은색 세단 안, 뒷자리에 앉은 오택수가 운전석에 앉은 동양인 남성을 힐끔 보곤 입을 열었다.

    “좋아. 빠져나온 건 됐다 쳐. 그런데 중국으로는 어떻게 이동할 건데? 공항을 이용할 거면 얼른 여권부터 줘. 외워야 하니까.”

    “글쎄요. 여권을 굳이?”

    “전용기든 전세기든 일단 타려면 비행기가 필요하잖아.”

    “그렇죠. 비행기 타야죠.”

    “응?”

    오택수는 종혁의 얼굴에 그려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자 짙은 불안감을 느꼈다.

    “아, 다 왔네요.”

    바깥을 본 오택수는 아까 호텔에서 대역을 마주했던 것만큼 경악하며 종혁을 봤다.

    “야, 너 잠깐……!”

    종혁은 씩 웃으며 의자에 등을 묻었고, 그들을 태운 차는 곧 바리케이드를 지나 안쪽으로 또 안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활주로 근처에 멈춰 선 차.

    “내리죠.”

    문을 열고 내린 종혁은 자신이 내리자마자 와락 끌어안는 한 남성에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세요, 나의 친구 최.”

    헨리 스미스. 미국에 있어야 할 그의 등장에 따라 내리던 오택수의 낯빛이 굳는다.

    헨리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영어를 쓴다는 것에 ‘CIA’의 이름이 오택수의 머릿속을 스친다.

    “여기가 헨리의 집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환대는 잘 받죠.”

    “하핫! 그 능청스러움은 여전하군요! 그보다 어떻습니까? 내가 준비한 선물은 마음에 듭니까?”

    헨리는 엄청 기대하는 얼굴로 준비한 선물을 가리켰고, 종혁은 그걸 보며 씩 웃었다.

    “무척. 생각보다 더.”

    부우우우우우웅!

    맹렬하게 프로펠러를 돌리고 있는 커다란 군용기.

    그랬다. 여기는 일본 도쿄도에 위치한 요코타 미군기지였다.

    “미쳤네, 씨발 진짜…….”

    오택수는 장담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것보다 더 놀랄 일은 없을 거라고 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