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45화 (545/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45화>

“아빠! 아빠는 후크 선장이지? 그치?”

어느 날, 유치원을 다녀온 아들이 눈물을 그렁거리며 묻는다.

대체 유치원에서 무슨 말을 들은 걸까.

잘려 나간 왼손이, 그리고 평생을 바쳤던 꿈이 그날따라 후회된 적은 없었다.

“어이, 김 씨! 이것 좀 마시면서 해!”

“감사합니다!”

쿵덕쿵덕 온갖 소음이 울리는 공사장.

시멘트와 먼지투성이인 삼십대 중반의 남성이 콜라를 받아 들어 왼쪽 겨드랑이에 낀 후 뚜껑을 딴다.

꿀꺽꿀꺽!

“꺼흑!”

“오늘 월급날이지?”

“하하. 그러는 형님도 월급날이시잖아요.”

“됐고. 아무튼 이번엔 어쩔 거야? 모여야지?”

“죄송해요. 아내랑 아들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또? 하, 진짜 이러면 김 씨만 힘들다니까? 사람이 나누는 정도 있어야지.”

“죄송해요. 손 병신인 남편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가 눈에 밟히는 걸 어쩌겠습니까.”

그 말에 형님이란 사람의 눈이 김 씨의 목장갑 낀 왼손으로 향한다. 손가락들이 부자연스럽게 굽어져 있는 김 씨의 왼손.

“에휴. 진짜 지극정성이다, 지극정성이야.”

“잘 마셨습니다.”

옅게 웃은 그는 다시 공사가 한창 이뤄지고 있는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철아, 여기 월급 명세서.”

“감사합니다!”

“내일, 토요일은 안 나올 거지?”

“하하.”

“그래. 수고했고, 다음 주에 보자.”

“옙!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세 가족 한 달 생활비가 입금됐다는 월급 명세서를 마치 보물처럼 소중하게 품은 그는 공사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룰루.”

바스락, 바스락.

고소한 향기가 풍기는 검은 봉지를 든 김주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치킨을 보고 기뻐할 아들을 떠올리니 지난 한 달 동안 쌓인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다.

“윽!”

집에 키를 꽂아 넣으려는 순간 김주철이 다급히 왼손을 붙잡는다.

있을 리 없는 왼손에서 느껴지는 아득한 고통, 환상통.

“크으윽!”

혹여 집에 있을 아들이 들을까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아 내던 그는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후우.”

땀이 한가득 흐른 몸을 일으킨 그는 애써 웃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아빠 왔다!”

“아빠-!”

“여보!”

김주철은 뛰어나오는 아내와 아들를 향해 더 활짝 웃어 주었다.

“얌냠냠냠!”

사람 세 명이 누우면 가득 차는 좁은 거실에 둘러앉아 치킨을 뜯는 세 가족.

김주철은 브랜드 치킨이 아닌, 값싼 시장 통닭임에도 불평 없이 맛있게 먹어 주는 아들의 모습에 고마우면서도 씁쓸함을 느꼈다.

“맛있어?”

“응!”

“……그래. 많이 먹어.”

“응! 아빠도 많이 먹어!”

“자요.”

“아, 땡큐. 맞아. 자. 이번 달 월급 명세서야.”

맥주를 따른 컵을 넘겨주며 월급 명세서를 받아 든 아내가 적힌 액수를 보곤 살짝 놀란다.

“저번 달보다 20만 원이 많잖아요. 너무 무리한 거 아니에요?”

“무리는 무슨. 당신 오빠는 이 정도로 끄떡없어.”

“그래도…….”

울 것 같은 아내의 입에 치킨을 물려 준 김주철은 컵을 들었고, 아내는 이내 못살겠다며 고개를 젓고는 제 몫의 맥주가 담긴 컵을 들었다.

챙!

월급날을 축하하는 조촐한 건배였다.

그때였다.

“윽!”

다시 예고도 없이 찾아온 고통에 김주철의 얼굴이 구겨졌다가 펴진다.

“후우.”

“아직도 그래요?”

“의사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말하긴 했지만…….”

손을 자른 지 벌써 3년째임에도 여전히 찾아오는 환상통.

“난 없다고 생각하는데, 내 머리는 아직도 있다고 생각하나 봐. 이놈 진짜 멍청하지 않아?”

“하아.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그때 어떻게든 치료를 할 걸 그랬나 봐요.”

“아니야. 그땐 그게 최선이었잖아.”

사람들에겐 생소한 직업인 트레저 헌터.

옛날 인디아나 존스라는 영화를 보며 고고학자를 꿈꿨던 김주철은 그쪽 세상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걸 알아차리곤 곧바로 그와 비슷한 트레저 헌터가 되기로 결심했다.

관련 지식을 쌓고, 다이빙 자격증까지 따며 해외 트레저 헌팅 현장에도 참여했던 그.

그러나 실력이 썩 좋지 않은 탓에 결국 꿈을 포기한 채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는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다이빙 강사로 일하고, 시간이 날 땐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바닷속을 청소했었다.

아내를 그때 만나 결혼을 하게 됐다.

그러다 어느 날, 통발을 잡아채다가 손등을 찔리게 됐다. 바다를 청소하다 보면 흔히 있는 사소한 사고였고, 그는 그냥 대충 소독만 하고 신경을 껐다.

하지만 결국 왼손은 퉁퉁 붓다 못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에 황급히 병원에 달려갔지만 그땐 이미 늦어 버린 후였다.

자칫하면 왼팔 전체를 잘라 내야 했을 상황.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고, 손 병신이 된 그를 써 줄 사람도 없었다.

“난 후회 없어. 덕분에 우리 세 가족 풍족하진 않지만 이렇게 치킨에 맥주 마실 정도는 벌게 됐잖아. 강사였다면 어림도 없을 일이지.”

한 달에 80만 원 겨우 받았던 다이빙 강사. 지금은 그보다 몇 배는 더 벌고 있으니 후회는 없었다.

“정말요? 정말 후회 없어요?”

“……우리 마나님께서 갑자기 왜 이러실까?”

그 말에 아내가 주머니에서 접은 신문지를 꺼내 내민다.

보물에 관심 없으신가요?

영화 속의 일만이 아닌 트레저 헌팅!

선유컴퍼니가 러시아에서 함께 보물을 발굴한 다이버를 모집합니다.

월 400 보장! 자격증 우대!

016-……

“서희야.”

“물어보니까 신체에 장애가 있다고 해도 괜찮대요.”

“서희야!”

“맨날 인디아나 존스만 보잖아! 그거 볼 때마다 오빠 얼굴이 어떤지 알아?!”

“…….”

“엄마, 아빠 싸워?”

“아, 아니야. 안 싸워. 싸우는 거 아니야.”

“해요. 가서 미련 다 털어 내고 와요. 그리고 돈 모아서 다이빙 전문 학원을 차리는 거예요. 이제부턴 나도 벌 테니까 우리 그렇게 해요. 네?”

김주철은 간절한 아내의 모습에 얼굴을 구겼다.

정말 그랬던 걸까. 정말 미련이 남았던 걸까.

그랬던 것 같다. 신문 광고에 적힌 트레저 헌팅이란 단어에 심장이 떨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김주철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수한아, 아빠가 다시 후크 선장이 되면 어떨 것 같아?”

보물선이 가득 실린 배의 선장, 후크 선장.

“후크 선장?! 아빠 정말 다시 후크 선장 되는 거야?! 피터팬이 쫓아오는 거 무섭지 않아?”

“으응. 이제 안 무서워. 우리 수한이랑 엄마가 있으니까 피터팬도 이길 수 있어.”

“그럼 난 찬성! 와아! 이제 친구들한테 아빠가 후크 선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주철은 닭다리를 든 채 집 안을 달리는 아들을 일견하며 아내를 봤다.

“고마워. 해 볼게.”

“사랑해요.”

“나도.”

둘은 잠시 입을 맞추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   *   *

반대쪽 끝이 잘 보이지 않는 바이칼호 위.

둥둥둥둥!

공회전하는 엔진 소리만 가득한 배에 올라탄 선유컴퍼니의, 보물선 인양 사기의 현장 총괄 책임자인 도경수 차장이 담배를 문 채 바람 한 점 없는 푸른 호수와 하늘을 한눈에 담는다.

그런 그에게 부하 직원이 다가선다.

“한국에서 3차 팀이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도경수의 눈이 빛난다.

“차장님을 대신할 책임자는 김주철. 35세 남성으로 해외 트레저 헌팅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괜찮네.”

도경수는 다시 하늘과 바이칼호를 보며 기지개를 켰다.

“끄으으. 그럼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때인가?”

“1년은 해외에 있어야 하는데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도주 루트가 어떻게 된다고 했지?”

“또 까먹으셨습니까?”

“씁.”

“일단 한국으로 갔다가 일본으로 밀항, 위조된 여권으로 베트남을 경유해…….”

“아아, 됐어. 기억났어. 그보다 최종혁은?”

“엄청 바쁘다던데요? 뭔 성인 사이트 하나 검거해서 거기 이용자랑 피해자들 찾아다닌다고 정신없답니다.”

“뭐야, 그 새끼 좌천당했어? 언제? 내년에 총경 된다고 하지 않았어?”

“어쩌다 보니 걸려들었답니다.”

“에고. 그 새끼들도 운이 없구만. 하필 걸려도…….”

동병상련의 기분으로 명복을 빌던 도경수는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점, 아니 배를 응시하며 입을 악문다.

아진 소코로비쉬. 자신들의 이번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꼬아 놓은 개새끼들.

“저쪽에서 유물은 더 나왔대?”

“지난 한 달 동안 열 점이나 더 나왔답니다.”

“씨부랄. 포인트로 저길 찍었어야 했나.”

그러면 보다 확실하고 완벽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짭짤한 부수입도 올렸을 거다.

“한국 분위기는 좀 어때?”

“부산 지부 때문에 난리죠. 매일같이 떠들어 대고 있답니다.”

“잘하고 있나 보구만. 아, 겁나 부럽네.”

무려 9조 원이다.

말단 사원까지도 억대의 인센티브를 받을 역대 최고의 실적. 당연히 배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이 도주할 타이밍이 만들어졌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막대한 투자를 받은 그들.

대한민국의 모든 관심이 부산 지부에 쏠려 있을 때 연기처럼 사라져야 하는 게 이번 프로젝트의 피날레였다.

“차장님도 50억 넘게 챙기잖습니까. 전 고작해야 10억입니다.”

“그래도…… 에휴. 통장은?”

“잘 챙겼고, 컴퓨터도 다 챙겼습니다.”

“오케이. 모스크바 흔들라고 해. 철수하자.”

“예!”

부하 직원은 선장을 보며 손을 크게 저었고, 그들을 태운 배는 곧 머리를 돌려 육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있어 투자자의 피해 따윈, 그들의 절망과 절규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한편 커다란 망원경으로 도경수 차장이 탄 배를 지켜보던 김경후가 입을 연다.

“저쪽 놈들이 많이 바뀌었다고요?”

“그렇습니다, 사장님. 절반 정도가 모르는 얼굴들로 바뀌었고, 이번에 한국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의 숫자도 20명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선유컴퍼니 직원, 아니 놈들과 얼추 일치하는 숫자.

백발 거구의 육십대 러시아인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자 김경후는 담배를 물었다.

“전에 말한 것처럼 곧 러시아에 진통이 있을 겁니다.”

“대규모 마약이나 테러라고요.”

“뭐든.”

뭐든 러시아 언론과 국민들의 이목을 끌어모을 사건을 터트릴 거다. 어쩌면 크렘린궁이 있는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장난전화를 걸 수도 있다.

뭐든 러시아 경찰의 정신을 쏙 빼놓을 거다.

놈들은 그렇게 정신없는 사이 공항을 통해 유유히 빠져나가 종적을 감출 거다.

“그럼 우리도 준비하죠.”

철수할 준비를.

어차피 이 모든 것은 한편의 연극이자, 사기. 자신들도 감쪽같이 사라져야 했다.

몸을 돌린 김경후는 핸드폰을 들어 종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놈들이 움직였습니다, 형사님.”

*   *   *

“이모, 여기 소주 한 병이요!”

“그러니까…….”

오늘 하루, 또 일주일.

잔뜩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술을 마시는 횟집.

철푸덕 순철이 동그란 철제 테이블 위에 머리를 박는다.

“죽갔다야, 진짜.”

오늘 하루, 아니 지난 일주일 동안 만난 사이트 이용자가 몇 명이던가. 이젠 입에서 단내가 나는 걸 넘어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다.

“거 좋은 횟집들도 많은데 왜 이런 곳을 와?”

“형님은 괜찮습네까?”

“……아니, 나도 죽을 것 같아.”

얼마나 입을 놀렸는지 목과 입술이 퉁퉁 부은 것 같다.

종혁도 테이블 위에 머리를 박았고, 오택수와 최재수, 임세라도 모두 머리를 박으며 차가운 물수건을 목에 가져다 댄다.

하루에 6시간 겨우 자면서 움직인 강행군.

20여 일 만에 겨우 만든 휴식 겸 중간 브리핑이었지만, 그들은 이대로 곯아떨어져 자고 싶었다.

“몇 명 남았지?”

“지금까지 만 명 정도 쳐냈으니…… 5만 6천 명 정도 남았습네다.”

“왜 늘었는데…….”

이유는 그들 모두 알고 있다.

2만여 명의 사이트 이용자들 가운데 P2P 사이트들을 이용해 사진과 영상을 업로드한 사람이 약 3천여 명.

그들이 올린 사진과 영상을 다운받은 사람들의 숫자가 4만 명이 넘는다. 이 중 또 P2P 사이트에 업로드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볼 수 있기에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른다.

-다음 소식입니다. 검찰이 성인 사이트 일제 단속을 선포한 가운데…….

모두 고개를 돌려 TV를 응시한다.

검찰과 경찰이 단속을 위한 전담 부서 만들고, 각 지청과 지방청에 협력하에 불법 성인 사이트를 쓸어버리겠다는 내용의 뉴스가 흘러나오자 그들의 상체가 슬금슬금 들려진다.

“야, 최 대장. 저거 가이드라인이 우리지?”

“네. 무조건 컴퓨터 확인.”

컴퓨터뿐만 아니라 다른 저장 매체도 모두 확인하는 게 수사의 가이드라인이었다.

“……그럼 살았네?”

“살았죠.”

원래 사이트 회원을 제외한 다른 범법자들을 합법적으로 토스할 수 있다.

“그래. 살았네, 살았어……. 살았구나!”

“으아아아! 건배!”

채재쟁!

“매운탕 나왔습니다!”

“네, 네! 어서 주세요!”

“크아! 좋구나!”

“아, 이제야 술이 다네.”

표정이 확 밝아진 그들은 잠시 동안 술과 안주를 즐겼고, 어느 정도 취할 때가 되자 오늘 모인 목적을 꺼내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맡은 곳은 웬만하면 다 순순히 삭제해 줬어. USB나 외장하드 등을 살펴봐도 별거 없었고.”

“웬만하지 않은 건 또 뭐야?”

“당신들은 그럴 권리 없다고 지랄하는 거. 깔끔하게 조서 정리해서 검찰에 넘겼지.”

“잘했어.”

굳이 징역을 살겠다니 그대로 해 주는 게 경찰로서의 참된 도리가 아닐까.

“아, 그건 저도요. 저도 반항하는 놈들은 그냥 검찰에 넘겼습니다.”

“최재수도 잘했고, 오 경감님도 잘하셨어요.”

말 대신 손을 드는 오택수도 칭찬한 종혁은 순철을 봤다.

“피해자는 이제 몇 분 남았어?”

“국내는 22명 남았습네다.”

대가를 받고 촬영을 한 게 아닌, 유린을 당하고 짓밟힌 피해자가 아직도 이렇게나 남은 거다.

“해외로 떠난 분들이 8명인가?”

“그중 영국과 이탈리아로 가신 2명은 연락이 닿았습네다. 곧 한국으로 오신다고 합네다.”

이민이든 유학이든 한국을 등지는 선택을 한 피해자들.

가슴이 답답해진 종혁은 임세라를 봤다.

“너 거의 다 끝나 가지?”

“응. 이제 안산만 둘러보면 끝. 왜?”

“최재수는?”

“저도 거의?”

“그럼 세라와 재수가 나랑 오 경감님 동선 맡아.”

“넌 뭐하게?”

“해외에 계신 피해자들을 만나러 가야지. 언제까지 미룰 수 없잖아.”

지금도 하루하루 피가 말라 가는 괴로움 속에 살고 있을 피해자들. 멀리 있다고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물론 경검 합동 단속을 하는 것이기에 이렇게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한 일주일 정도 걸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오 경감님도 괜찮죠?”

“안 괜찮을 게 뭐야. 알았어. 그럼 찢어지는 건가?”

“예. 오 경감님께서 싱가포르와 태국 맡으시고, 제가 미국 맡을게요. 그리고 일본에서 보는 걸로 하죠.”

싱가포르와 태국, LA, 일본으로 떠난 피해자들.

“오케이.”

“자, 그럼 막잔 하고 일어서죠. 오랜만의 휴식이니 만큼 다들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충성하세요.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파이팅합시다.”

-해외 토픽입니다.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폭탄 테러 예고가 발생한 가운데…….

움찔!

순간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TV를 봤던 종혁은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잔을 들었다.

“자, 건배!”

“건배-!”

막잔을 단숨에 들이켠 그들은 몸을 일으켜 가게를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그런 그들의 뒷자리에 앉았던 정장을 입은 사람들 중 한 명이 힐끔 시선을 보낸다.

“아으! 집에서 쫓겨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그러게 평소에 잘하지.”

“뭐 인마?”

나가는 것도 시끌벅적한 종혁들을 응시하던 사람은 이내 곧 핸드폰을 들고 일어섰다.

“어! 나야! 나 갑자기 출장을 가게 됐거든? 한 나흘 정도. 뭐 사다 줄 거 있을까? 싱가포르? 태국? 미국? 아냐. 일본이야. 일본. 응. 응.”

한편 종혁의 차가 세워진 도로 위.

임세라와 최재수가 도로를 향해 사정없이 손을 흔들고, 종혁과 오택수가 담배를 나눠 피운다.

“야. 아까…….”

종혁의 얼굴을 본 오택수는 피식 웃었다.

하긴 자신이 느낀 걸 종혁이 못 느꼈을까.

“그 새끼들 같지?”

“박종명 쪽일 수도 있죠.”

어느 쪽이든 놈들 회사로 정보가 들어갈 것이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릴 건데? 이러다 속 뒤집어지겠다, 진짜.”

“제가 왜 일본에서 모이자고 했을 것 같습니까?”

“뭐?!”

“쉿.”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댄 종혁은 나른하게 웃었다.

“이제 배우들이 다 모인 것 같으니 슬슬 막을 열어 보죠.”

살육이라는 연극의 막을.

나른한 미소에 끔찍한 살의가 섞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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