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39화>
어둠이 내려앉은 밤, 가평의 한 모텔 앞.
오택수가 순철과 통화를 하고 있다.
“뭐 좀 나왔어?”
지난 이틀간 순철이 알려 준 장소들로 가서 그 근방 CCTV를 확보할 수 있을 만큼 확보해 보낸 오택수.
-아직 이렇다 할 게 나오지 않았습네다.
“응? 날짜가 특정됐잖아?”
피해자들의 사진이 업데이트가 된 날짜.
-일단 업데이트가 된 날짜 사흘 전까지 뒤져 보고 있습네다만…….
그나마 공영 CCTV는 낫다.
문제는 개인용 CCTV다. 영상 보존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많이 누실이 된 개인용 CCTV 영상들.
“그래? 흠. 알았어. 계속 수고해 줘.”
-오 경감님도 수고해 주십쇼.
“어야.”
통화를 종료한 그는 미간을 좁혔다.
“오늘 찍은 게 방금 전에 올라왔다고 하지 않았나?”
꼴에 성실한 타입인 것 같았던 유명진.
의아해하던 오택수는 최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재수야. 뭐 좀 나왔냐?”
-눈이 빠질 것 같아요.
“지금 어딘데?”
-목동이요.
“에휴. 여기저기 빨빨거리며 돌아다닌 새끼 때문에 네가 고생한다. 퇴근은 어떻게 할 거야?”
벌써 저녁 10시다. 경찰도 사람인지라 쉴 땐 쉬어 줘야 했다.
-근처 모텔에서 잠깐 눈 좀 붙이고 내일 새벽에 다음 112센터로 넘어가야죠. 오 경감님은요?
“나도 여기서 쉬려고. 알았어, 수고해.”
-수고하십쇼.
전화를 끊은 오택수는 한숨을 내쉬며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선 뭐라도 좀 건졌으면 하는데 말이야…….”
카운터로 걸어간 오택수는 들고 온 비타민 박스와 경찰공무원증을 내밀었다.
“경찰입니다. 뭐 좀 확인하고 싶은데요.”
“불륜?”
오택수는 심드렁한 모텔 주인의 모습에 눈을 빛냈다.
“그런 사람들이 많나 봅니다.”
“어휴. 한둘이라면 이런 말도 안하죠.”
맨날 쳐들어와서 영상을, 증거를 내놓으라고 난리를 치니 하루하루가 골치 아프다.
“뭔 놈의 좆대가리를 그리도 놀려 대는지……. 며칠 영상을 원하시는데요?”
“일단 7월 한 달 영상을 확인했으면 하는데 혹시 있을까요?”
오택수는 부디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물었다.
“예, 있어요. 우리 모텔은 2년 치까지 보관하고 있어서요.”
“어휴. 그렇게나요?”
“예전에 한번 누가 너희도 한편 아니냐고 방화를 할 뻔한 적이 있어서…….”
“뭐라고요? 아니, 어떤 미친 새끼가…….”
“몰라요. 엄한데 화풀이하던 놈이 있습니다. 아주 그때만 생각하면…… 어휴! 그래서 영상을 이렇게 오래 보관하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됐는데요? 그걸 가만 놔두셨습니까? 경찰은요?”
“다행히 일찍 출동해 주셔서 지금 깜빵에 있어요.”
“천만다행입니다.”
“진짜 다행이죠. 복사해 드려요?”
“감사하죠. 아, 그리고 방도 하나 주십쇼. 특실로.”
오택수는 그냥 오늘 이쯤에서 쉬면서 순철을 도울 생각을 했다.
“어이구.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604호로 가 계시면 제가 복사본이랑 노트북 들고 갈게요. 제가 아주 니미랄 거 불륜들 때문에 CCTV 확인하는 데 도삽니다, 도사!”
“아하하.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노트북은 제게 있으니 괜찮습니다.”
키를 받아 들고 방으로 향한 오택수는 대충 씻고 나왔고, 모텔 주인도 준비를 모두 마쳐서 들고 왔다.
“이것 좀 드시면서 하세요. 형사님을 위한 룸서비스입니다.”
“하핫! 감사히 먹겠습니다.”
“범죄자 잡느라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분들인데 이 정도는 해 드려야죠.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오택수는 슬그머니 엉덩이를 붙이는 모텔 주인의 모습에 그럼 그렇지 입맛을 다셨다가 이내 혹시나 하고 입을 열었다.
“혹시 7월 중에 큰 카메라를 든 커플을 보신 적 있으실까요?”
“큰 카메라요? 디카 말고요?”
“예. 남자는 이렇게 생겼는데…….”
“흐음…….”
벌써 몇 달 전 일이라 기억을 뒤지던 모텔 주인은 이내 갸웃했다.
“이렇게 생긴 사람 말고 다른 사람들이 오긴 했습니다. 가평에 사진 찍으러 오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봄, 가을, 겨울엔 풍경 사진을 찍으러, 여름엔 연인이나 친구, 가족들끼리 사진 찍으러 많이 온다.
“아, 그래요…….”
“그런데 그중에 큰 카메라를 든 커플이 하나 있긴 했는데, 이 얼굴은 아니었어서……. 일단 카드 결제 내역을 확인해 볼까요?”
오택수는 혀를 차며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혹시 며칠인지 기억 하십니까?”
“아마 7월 3째 주였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그럼 수고하세요. 필요한 거 있으시면 연락하시고요.”
“하하. 예, 사장님도 수고하십시오.”
그렇게 사장이 나가자 오택수는 곧바로 순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영상 넘길 테니까 확인 좀 해 줘. 얼마나 걸리겠어?”
-내일 새벽이나 확인이 가능할 것 같습네다.
오택수가 보낸 영상들이 많아서 어쩔 수가 없다.
“알았어. 나도 여기서 함께 확인할 테니까 천천히 해. 수고.”
전화를 끊고 영상을 보낸 오택수는 모텔 주인이 가져 온 커피를 한 손에 든 채 7월 3째 주 영상을 찾아 확인하기 시작했다.
사람 눈보다는 그래도 기계가 낫긴 할 테지만, 아무것도 안 한 채 쉬려니 좀이 쑤셔 견딜 수 없는 그.
‘철이는 첫째 주부터 확인할 테니까…….’
후룩! 달칵!
커피 마시는 소리와 키보드를 누르는 소리만이 조용한 방을 울렸다.
그렇게 얼마나 영상을 살폈을까.
눈이 뻐근하게 아파 오자 잠시 모니터에서 시선을 뗐던 그는 시간을 확인하곤 씁쓸히 웃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이것 조금 확인했다고 벌써 눈이 아프네.”
세월이 무상함에 혀를 찬 오택수는 다시 영상을 살피기 시작했다.
“여기도 유명진의 명의로 된 카드가 이용된 기록은 없고…….”
추적을 피하려는 듯 카드가 아닌 현금을 이용한 것 같은 유명진.
“하여튼 범죄를 저지르는 놈들은 왜 이렇게 조심성이 많은지 모르겠네. 개새끼.”
그 순간이었다.
“음?”
막 모텔로 들어서는 한 커플에 왠지 눈이 간다.
“아, 사장님이 말한 그 커플인가 보네.”
저녁 8시,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든 채 모텔 안으로 들어오는 커플. 남자가 유명진이 아니라서 대충 넘기려 했던 오택수는 미간을 좁히며 모자를 눌러쓴 여성을 봤다.
“뭐지?”
왠지 거슬린다.
의아해하며 영상을 천친히 재생시킨 오택수는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이 사람이 여기서 왜 나와?”
피해자다.
웬 남성의 팔짱을 낀 피해자가 모텔 방 앞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마치 모텔이 처음인 듯 약간 겁먹은 듯한 모습으로 두리번거리는 피해자.
우당탕!
다급히 모텔 방에 비치된 전화기로 달려간 그는 카운터로 전화를 걸었다.
“예, 사장님! 7월 21일 오후 8시 30분 204호. 누가 계산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7월 21일이요? 잠시만요? 아, 이거 현금으로 계산했네요. 아, 이 커플! 기억나요! 아까 제가 말한 그 커플! 여자친구가 꽤 어려 보여서 주민등록증 번호를 기록한 게 있거든요? 예. 주민번호가…….
사장이 말한 주민번호를 기록한 오택수는 다시 순철에게 전화를 걸어 신원 조회를 부탁했다.
-이름이 이미혜. 22살로 뜹네다. 그리고…… 어? 이건 또 뭐이가!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라요!
“뭐야! 뭔데!”
-이, 이거이 이미혜가 아니라 그 여동생 갔습네다.
“뭐? 확실해?!”
-확실합네다! 이미혜의 미니홈피에 있는 이미혜 여동생 얼굴과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이 99퍼센트 일치한단 말입네다! 이름 이지혜! 17살!
쿠웅!
뒤통수에 큰 충격을 받은 오택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찍새가…… 한 놈이 아니다? 씨발! 그렇지! 이렇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놈들인데 한 놈일 리가 없지!”
그는 다급히 종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 대장, 나야. 우리 얼른 그 사이트 회원이 돼야 할 것 같다. 이 새끼들 찍새가 한 명이 아니야.”
* * *
만신창이가 된 얼굴을 한 유명진이 팬티만 입은 채 무릎 꿇고 바들바들 떠는 지하 스튜디오.
의자를 끌어다 그 앞에 앉은 종혁이 담배를 핀다.
“그러니까 모델을 시켜 주겠다라고 꼬드겨서 반노출 사진을 찍게 만든 후에…….”
그날 술이나 밥을 먹으며 연인 관계가 되고, 이후 본격적으로 노출 및 관계를 맺는 사진과 영상을 찍는다.
“만약 거부하면?”
“혀, 협박을 합니다. 학교와 지인들에게 뿌리겠다고……. 그, 그런데 대체 왜 이러세요! 누구신데 이러는 건데요!”
“알잖아.”
“씨발! 경찰이…….”
퍼억!
“큽!”
종혁의 발에 걷어차인 유명진이 뒤로 두 바퀴 구른다.
“원위치. 나 일어나면 너 진짜 죽는다.”
“크흐윽.”
울상이 된 유명진은 어기적거리며 종혁의 앞에 무릎을 꿇었고, 종혁은 다시 그를 걷어찼다.
“원위치.”
“큭!”
퍼억!
“빨랑 안 오지? 원위치.”
“흐윽!”
퍼억!
“원위치.”
후다닥! 쿵!
다급히 달려와 무릎을 꿇는 그.
결국 유명진이 눈에서 닭똥처럼 굵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눈깔 어떻게 안 하면 그냥 파 버린다.”
“흐으윽!”
유명진은 눈물을 멈추려 애썼고, 종혁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임세라를 봤다.
“어때?”
“이거…… 좀 이상한데? 야, 좆대가리! 너 여기에 있는 게 다야?”
움찔!
“네, 네!”
임세라가 수갑을 들자 질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
“작업 영상은 거기 저장 된 게 전부입니다!”
“지랄! 이 새끼가 어디서 거짓말을!”
“지, 진짜예요!”
“왜 그래?”
“부족해.”
“뭐?”
단숨에 임세라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아들은 종혁이 유명진을 죽일 듯 노려본다.
그 순간이었다.
-뚜뚜루 뚜뚜뚜 키싱 유 베이베!
“……외로워? 키스해 줘?”
“닥쳐. 예, 오 경감님. 무슨 일…… 아, 그래요?”
“힉!”
순간 끔찍한 살의가 덮쳐오자 다급히 물러나는 유명진과 임세라. 임세라를 일견한 종혁은 몸을 일으켜 유명진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오, 오지 마! 오지 마세…….”
콰악!
“끅?!”
머리채를 잡아 뒤로 꺾은 종혁은 감정이 사라진 눈으로 공포에 질린 유명진을 응시했다.
이놈이 아니다.
이놈은 대가리가 아니었다.
짜증이 종혁의 뒷목을 타고 솟구치기 시작했다.
뿌득! 뿌드득!
“야. 내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딱 한 번만 준다. 아니면 넌 평생 남 수발 받으며 살게 될 거야. 알아들어?”
“네, 네!”
“네 대가리 누구야?”
이 모든 개짓거리를 지시한 대가리.
지금쯤 모니터 뒤에서 피해자들의 고통스런 모습과 결제된 내역들을 보며 키득 키득 웃고 있을 씹새끼.
종혁의 눈에서 살의가 폭발했다.
* * *
“나는 신데렐라. 일낼라.”
아침 8시, 상쾌하게 눈을 뜬 여성 조주영이 콧노래를 부르며 치장을 한다.
일명 유효리 화장법으로 아이라인을 짙게 그리고, 새빨간 립스틱으로 포인트를 준 그녀.
“오늘은…… 너희다!”
구찌 하이웨스트 청바지에 검은색 셀린느 목폴라 니트, 그리고 버버리 코트를 꺼내 드는 그녀.
“주영아! 학교 늦어!”
“다했어!”
혀를 찬 그녀는 샤넬 향수를 칙칙 뿌리곤, 루이비통 가방을 챙겨 방을 나섰다.
“오늘 늦어!”
“얼마나 늦는데? 일단 이거 마셔.”
현관 앞에서 기다리다 한약을 든 컵을 건네는 조주영의 어머니.
“윽! 써.”
“여기 사탕 먹어. 그래서 얼마나 늦는데? 또 야근이야? 회사는 좀 어때?”
“몰라. 이번에 신입들 채용했어.”
“또? 어휴. 일이 너무 바쁜 거 아니야? 엄마가 음식이라도 싸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번거로우니까 절대 올 생각 마. 절대, 절대. 알았어?”
“으응. 그, 그럴게.”
갑자기 살벌해진 딸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조주영은 그런 엄마를 빤히 바라보다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긴 어딜 와!’
있지도 않은 쇼핑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연락할게!”
신발장에서 새빨간 하이힐을 꺼내 든 그녀는 냉기를 흩날리며 집을 나섰고, 조주영의 모친은 그런 딸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많이 늦지 않으면 좋을 텐데……. 혹시…… 아냐, 아니야. 주영이는 정신 차렸잖아.”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부모 속을 그렇게나 썩게 만들더니 이젠 맘 잡고 대학에 간 딸, 조주영.
그러다 못해 인터넷 쇼핑몰 사업으로 대박까지 쳐서 집안을 일으킨 자랑스러운 딸.
조주영의 어머니는 그런 딸이 돈을 벌자마자 가장 먼저 산 집을, 무려 30평대 한강뷰 아파트를 아련한 눈으로 둘러봤다.
평생토록 월셋집만 살다가 난생처음으로 가져 본 집.
12년 전 남편이 사고로 간 이후 더 지지리 궁상으로 살아오다 이제야 가지게 된 그들 가족만의 보금자리.
그게 얼마나 한이 됐으면 돈을 벌자마자 집을 샀을까.
딸이 이걸 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흘렸을 땀과 눈물, 그 수고를 떠올리니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조주영의 모친은 TV 옆에 걸어 놓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으며 양손을 모았다.
“하나님 아버지. 부디 우리 딸이 아프지 않게 해 주옵시고, 하는 사업이 번창하게 해 주시고…….”
딸의 행복을 바라는 어머니는 오늘도 하늘에 계신 주님께 기도를 올렸다.
한편 BMW를 몰고 숭신고구려대학이라는 서울 외곽의 대학교에 도착한 조주영이 차에서 내리자 같은 학과 학생들이 몰려든다.
“와, 언니! 또 차 바꿨어요?”
“응. 전에 타던 건 질려서.”
“힉?! 그, 그거 이번 봄에 나온 샤넬 한정판 백 아니에요?”
“어머? 진짜? 이거 한정판이었어? 난 그냥 백화점에 있길래 산 것뿐인데…….”
“미쳤다, 미쳤어. 이거 버버리도 찐이죠?
“누가 요새 짜가를 입니? 격 떨어지게.”
“와. 언니 진짜 멋져요!”
몰려든 학생들의 칭찬에 콧대가 하늘로 솟는 그녀.
“주영아, 요새 쇼핑몰이 붐이긴 붐인가 봐. 그치?”
뭔가 이상한 말투.
미간이 살짝 구겨진 조주영은 가까이 다가온 여성을 보곤 속으로 피식 웃었다.
며칠 전 자신의 패션을 그대로 따라 한 또래의 여성. 듣기로 강남 건물주 딸이라고 했다.
‘다 찐이네. 2년 전이었으면 미치도록 부러웠을 텐데…….’
아니, 2년 전의 자신이라면 그냥 훔치거나 빼앗았을 거다.
가짜라도 명품을 입고 싶었던 그녀.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명품을 들고 다니는 세상 모든 여자들이 증오스러웠던 그녀.
“그래서 나도 쇼핑몰 창업이나 할까 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살살 웃지만 그 눈 속에 든 뱀의 혀에 조주영은 푸근히 웃었다.
“그렇지. 붐이지. 그런데 개나 소나 다 성공은 못하지.”
“뭐? 자, 잠깐. 너 그거 무슨 말이야?”
“일단 난 창업하는 거 찬성.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해 봐야지.”
“무슨 말이냐니까?”
“난 수업 있어서 먼저 가 볼게. 다음에 봐.”
손을 흔든 그녀는 상큼하게 웃으며, 어렸을 적 꿈이었던 패션과가 있는 건물로 향했고, 둘의 눈치를 보던 여성들은 이내 조주영의 뒤를 따랐다.
남겨진 건물주 딸은 그런 그녀를 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개 같은 년.”
그런 그녀의 말이 들린 듯한 조주영의 입술이 뒤틀렸다.
‘이거지! 이런 거지!’
그녀가 바라 왔던 삶.
그 지옥 속에서 바랐던 삶.
조주영의 얼굴이 오늘도 희열에 물들었다.
‘부디 매일 오늘만 같기를!’
그녀는 간절히 바라 보았다.
* * *
침묵이 내려앉은 특별범죄수사대.
모든 팀원이 모인 사무실, 화이트보드의 맨 위에 하나의 이름이 새겨진다.
“이름 박주성. 나이, 78세. 현재 교도소에 수감된 인물로, 메신저에서 쓰는 아이디는 행복한 나날. 접속 장소가 해외인 걸 보니 아무래도 아이피 우회 프로그램을 쓰는 것 같습네다.”
“수감된 이유는?”
“이번엔 어느 옷가게 유리창에 벽돌을 던졌답네다. 이런 기물파손 전과가 무려 56범입네다. 형량은 6개월. 가중처벌 받아서 6개월입네다.”
“……노숙자네.”
날이 추워지자 노숙자가 교도소에 들어가려고 수를 쓴 것 같다. 78살이 이 가을에 노숙을 했다가는 영영 눈을 뜰 수 없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전부 담배를 문다.
누가 봐도 주민번호를 도용한 상황이었다.
‘기껏 찾았는데 오리무중이라…….’
유명진이 말하길 이런 일이 있으니 해 보지 않겠냐고 제의가 올 때부터 모두 메일과 메신저로만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행복한 나날이 유명진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철두철미한 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철아, 저거 추적 못하냐?”
“우회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회사의 서버를 뒤져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아직 인터폴에서 연락이 안 왔습네다.”
이게 아니라면 결국 실시간으로 해킹을 해야 된다.
그 말에 질문을 던졌던 오택수가 머리를 벅벅 긁는다.
“아오. 야, 최 대장. 이거 어쩌지?”
아무래도 행복한 나날을 찾는 데 시간이 길어질 것 같다.
그렇게 해서라도 검거를 하면 다행이겠지만, 지금 그들에게는 당면한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중국으로 튄 조희구.
놈을, 그리고 놈과 연결된 개새끼들을 모두 잡아야 하는 거다.
이 사건을 얼른 해결해야 놈을 잡을 수 있을 터.
“방법이 없겠어?”
너라면 무슨 방법이 있지 않냐는 듯한 시선에 종혁은 코웃음을 쳤다. 안 그래도 방법이 하나 생각났기 때문이다.
“없긴 왜 없어요. 일단 최재수.”
“예!”
“계속 112센터 돌고, 오 경감님은 계속 하던 일 해 주세요. 세라는 이지혜 양 만나서 피해 사실 확인하고.”
“최 대장 너는?”
“저요?”
오택수의 질문에 종혁은 눈빛을 서늘하게 가라앉혔다.
“철아.”
“예?”
“행복한 나날한테 메일 보내. 100억 줄 테니까 사이트 팔라고.”
“……?!”
모두가 경악해 종혁을 봤다.
‘암막 뒤에 숨어서 지휘하시겠다? 그럼 암막 밖으로 끌어내야지!’
거부할 수 없는 돈을 안겨서라도 말이다.
종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