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37화>
“허허. 그래요, 조 회장. 최종혁 그 친구는 사건에 정신없을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오늘 아침에도 확인을 했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검사장님. 시간 괜찮으실 때 한번 놀러 오십시오. 이쪽에 좋은 필드 하나 알아봐 뒀습니다.
“오. 도주 중일 텐데도 취미를 즐기시나 봅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정신 수양은 해야지 않습니까.
“하하. 그건 맞는 말이죠. 알겠습니다. 그럼 날을 잡아봅시다.”
이후로 이야기를 좀 더 하다 전화를 끊은 장년인, 부산지방검찰청의 검사장이 열기가 남아 있는 전화기를 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최종혁이라……. 그쪽 친구들과 참 악연으로 얽혀 있나 보구만.”
피식 웃은 그는 이내 신경을 끄며 눈앞의 서류에 집중했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조희구.
그 누구도 잡을 수 없으리라.
* * *
-사건 가져왔데이.
“수고하셨습니다.”
-음? 뭔 일 있나? 와 이리 시큰둥하노? 지금이라도 무를까?
이제부터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다. 바라던 일이니 종혁이라면 지금쯤 기뻐해야 됐다.
“봐주세요. 지금 보고 있는 게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래요.”
-뭔데?
“일단 와 보시면 알 겁니다.”
한 번 로그아웃이 되면 다음 날 다시 비밀번호를 받아야만 입장이 가능한 사이트. 아직 김대현의 비밀번호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강철선이 접속을 하게 만들 수가 없다.
“아니, 잠시만요. 철아, 스크린샷 찍어서 강 검사님께 보내 드려.”
타다닥!
“보냈습네다.”
“확인해 보세요.”
-잠깐만 기다리…… 뭐꼬, 이건?
종혁이 보낸 건 일종의 명단이다.
이번 주 초이스! 업데이트는 차후 공지하겠습니다!
-이기 뭐냐고!
거의 숨겨진 듯 메뉴 맨 아래에 적혀 있어 뒤늦게 발견한 것.
“뭐긴 뭡니까. 이놈들의 사냥 목록이지.”
앞으로 사냥할 대상들.
종혁은 해맑게 웃으며 브이를 그리고 있는 이십대 여성의 모습에, 이제 막 스무살이 됐을 법한 앳된 여성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검사님, 몇 명이 여기를 거쳐 갔는지 모릅니다.”
이 사이트는 등급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김대현의 계급은 고작해야 실버. 위로 골드, 다이아, 황제 무려 세 등급이 더 남아 있다.
즉, 지금 김대현의 계정으로 확인한 것 이상으로 피해자가 많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등급별로 수위가 높아진다는 겁니다.”
쿵!
술에 취해 강제로 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상보다 더 강한 영상과 사진.
이보다 더한 짓을 태연히 했을 찍었을 개새끼와 그걸 보고 낄낄거리며 웃고 있을 모니터 밖의 동조자들을 떠올리니 피가 거꾸로 솟다 못해 몸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듯하다.
-이 개……! 찾을 수 있겠나? 아니, 찾아라! 알긋나!
“예. 찾아야죠. 끊겠습니다.”
-아, 잠깐! 잠깐만 기다리레이!
“……?”
-후우. 후우. 후우. 됐다.
끓어올랐던 열을 애써 가라앉힌 강철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니 부산지검이랑 뭔 일 있나?
“부산지검이요? 아뇨?”
‘아, 설마?’
뭔가를 떠올린 종혁의 표정이 굳는다.
“남부지검 차장검사가 아니었던 겁니까?”
-니도 그렇게 생각한 거제? 뭐 생각나는 거 없나? 니 기억력 좋잖아!
“뭐가 있어야 있다고 말하죠.”
부산지검과 얽힐 일이 뭐가 있을까. 아무리 기억을 뒤져 봐도 없다.
“그래서 부산지검의 누구인 겁니까?”
-부산지검장.
“……꽤 큰 분께서 절 찍으셨네요.”
-흠. 알았다. 이건 내가 좀 더 알아볼게.
순간 종혁의 입이 달싹인다.
말할까, 말까.
고민을 하던 종혁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인데, 어쩌면 조희구 사건과 얽힌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던진다.’
오픈을 하되, 아주 약간만 오픈한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아직 강철선의 힘이 공고하지 못하다.
그의 힘은 전 검찰총장을 비롯해 현 서울중앙지검장이라는 라인에서 오는 것. 특수부라는 부서가 세긴 하지만 아직 권력의 한자리를 차지했다고, 오롯이 섰다고 볼 순 없다.
아직은 모든 걸 오픈할 때가 아니었다.
-뭐? 누구?
“제가 거기에 투자를 꽤 많이 했거든요.”
-……종혁아. 누가 경찰 욕하면 좆같제? 나는 어떨 거 같노?
“죄송합니다.”
-끊는다.
전화를 끊은 종혁의 눈에 살의가 들어찬다.
‘부산지검장.’
조희구가 사기를 치던 부산, 그리고 부산지검의 검사장. 누가 봐도 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살생부에 기록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생각을 정리한 종혁은 핏발 선 눈으로 모니터를 쳐다보는 대원들을 일견하며 순철을 봤다.
“사이트 열어 볼 수 있겠어?”
“서버가 해외에 있어서 불가능합네다.”
영장을 받아도 불가능한 일.
“일단 인터폴에 협조 요청부터 해야겠네…….”
‘흠. 아무래도 내가 한국에 붙어 있는 걸 원하는 것 같은데 말이야.’
이번 사건을 맡으면서 들어온 방해, 이게 놈들의 소행이라고 가정하니 그런 생각이 든다.
그동안 수없이 방해를 받아 종혁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을 놈들 회사.
‘그럼 그렇게 해 줘야지.’
종혁은 생각을 빠르게 정리했다.
“최재수.”
“예, 대장님.”
“간편신고관리과와 112센터에 협조 요청을 해서 성범죄 신고 사례들 쭉 긁어 와. 그중에 여기 피해자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아마 귀찮고 힘들다고 손을 저을 수도 있을 거야. 그러니 112센터들은 직접 돌면서 기름칠 좀 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예!”
“오 경감님.”
“영상과 사진에 나온 장소를 둘러보란 말이지?”
“일단 영상 제목과 대화, 배경을 바탕으로 추려 본 것입네다.”
“크. 역시 전문직이 있으니 다르네!”
아니었다면 전국을 뒤지며 영상에 나온 장소들을 찾아야 했을 거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 저곳 중 한 곳을 찾는 데만도 거의 한 달은 걸렸을 거다.
“진짜 사랑한다, 철아.”
“겨, 겹치는 곳들 위주로 교차 검증을 한 것뿐이니 확인된 곳은 몇 곳 안 됩니다.”
“그래도 땡큐! 임 경위는 나랑 가자.”
“예!”
짜악!
손뼉을 쳐서 외투를 챙겨 들며 뛰쳐나가려는 둘과 최재수를 불러 세운 종혁은 낯빛을 굳혔다.
“딱 봐도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놈들입니다. 몇 명인지, 또 얼마나 위험한 놈들인지 모릅니다. 각별히 주의해 주시고, 여차하면 발포 허락합니다.”
쿵!
“현장에 의심가는 새끼 있다면 일단 조지세요. 제가 다 커버 칩니다.”
“……오케이. 가자.”
“앞으로 시간 싸움이니까 준비 단단히 하시고요. 본청 근처 빌라에 업무용 차량들 세워 놨으니까 관리실에 말해서 차키 받아 가세요.”
“알았다니까!”
그렇게 셋이 다 나가자 종혁은 다시 순철을 봤다.
“철이는 미니홈피랑 에이버 블로그, 넥스트 카페도 얼굴 대조 들어가. 관리자 아이디 줄 테니까. 그리고 시간 나면 커뮤니티 확인도 좀 해 주고.”
“혀, 형님은 기런 것도 있습네까?!”
“투자를 해 놓은 게 좀 있어서.”
주식과 지분을 꽤 많이 확보해 놓은 상태지만, 이 권한을 얻어 내는 과정이 꽤 힘들었다.
수첩을 뒤져 관리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준 종혁은 다시 모니터를 응시했다.
‘후우. 이놈들을 어디서 찾는다…….’
회귀 전 대한민국을 뒤집어 놨던 사건과 비슷한 사건.
‘거의 1년이 걸렸다지.’
한 모바일 메신저에 놈들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모든 증거를 확보해 검거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물론 그쪽 상황이랑 내 쪽 상황이 많이 다르긴 한데…….’
종혁이 기억하기로 그 사건을 처음으로 인식한 곳은 서울청 소속 수사팀의 형사였다.
일개 형사가 가질 수 있는 권한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인 데다, 처음엔 상부에서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이라서 별다른 지원이 없었음에도 끝까지 추적해 겨우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던 그들.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그들과 종혁 자신의 특별범죄수사대는 많은 부분이 달랐다.
“후. 이 돈을 받는 놈이, 자금 관리책이 누군지 확인만 할 수 있어도 좋을 텐데…….”
회귀 전처럼 가상화폐를 이용한 게 아니라 계좌이체로 돈을 받는 놈들. 종혁은 곧바로 해당 계좌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관련 기관에 협조를 요청해 두었다.
하지만 대포 통장일 것이 뻔했기에 현재로서는 놈들에게 닿을 방법이 없는 상황.
그에 종혁이 한숨을 내쉬던 그때였다.
“그건 가능할 것 같습네다.”
“어? 뭐?”
종혁이 눈을 부릅뜨며 순철을 본다.
“하지만 그러려면 대장님의 허락이 있어야 합네다. 이게 메일을 통해 비밀번호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유료 회원가입도 하지 않습네까?”
“어? 잠깐 그거?”
“예. 해킹입네다. 메일을 보낼 때 악성코드만 심으면 됩네다.”
서버가 해외에 있는 사이트인 데다가 메일 확인을 위해 IP 우회를 할 수도 있는 상황. 이렇게 몇 단계에 걸쳐 회원을 받는 놈들이 그런 것도 안 할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메일을 여는 순간 악성코드가 전파되도록 해 접속 위치를 알아내는 거다.
“……그건 좀 더 생각해 보자.”
물론 해킹을 해서라도 잡고 싶은 놈들이지만, 현재 상황이 상황이다. 자칫 후폭풍이 크게 불지도 몰랐다.
‘나중에 가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피해자가 나타나면 견딜 수 있을까.
해킹은 최후의 보루다.
“예. 알겠습네다…… 응? 대장님, 놈들이 새로운 타깃을 고른 것 같습네다.”
“뭐? 어디…….”
다급히 모니터를 봤던 종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오늘 발견한 신인들! 기대해 주세요!
(맛보기 합성 사진 첨부!)
가슴과 소중한 부위를 가린 채 웃고 있는 두 여성.
얼마나 정교한지 실제와 구분이 가질 않는다.
까드득! 빠드득!
“이 개……!”
빠드드드드득!
얼굴이 도깨비처럼 일그러진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그래, 누리야. 혹시 오늘 수지랑 별일 없었니? 아니, 그냥 시간도 늦었는데 밥은 먹었을까 해서. 나야 아까 먹었지. 아, 동대문 쇼핑몰에 옷을 사러 갔어? 좋았겠네. 또? 아아.”
섬뜩!
갑자기 심장을 찌르는 살의에 순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웬 놈팡이, 아니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으면서 명함을 줬어?”
‘이 새끼구나?’
아닌지 맞는지 아직은 모르지만, 수십 년 형사 생활과 함께 갈려 오고 성장한 촉이 맹렬하게 외친다.
이놈이라고. 이놈이 놈들 중 한 명이라고.
“언제? 이름이 뭔데? 아니, 그런 곳에 이상한 놈들이 많다는 소리를 들어서 그래. 응응. 유명진?”
종혁은 얼른 검색해 보라고 신호를 줬고, 순철은 다급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스트릿패션 전문 포토그래퍼?”
종혁의 눈이 분노와 살의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 * *
타다다닥!
서울 어느 건물의 지하 스튜디오.
유명진이 컴퓨터로 누군가와 채팅을 하고 있다.
-오늘 올린 애들 취향 좀 타겠던데요?
“그럴수록 수요가 많다는 걸 모르네.”
타다다닥!
-하지만 운동선수들이라서 벗겨 놓으면 볼만할 겁니다.
일반인들과 달리 근육질의 탄탄한 몸.
또한 쉽게 마주칠 일 없는 운동선수라는 점이 새로운 자극, 정복감을 줄 것이다.
-신체 사이즈는요?
-뜸도 안 들였는데 누룽지를 찾으시나. 확인되면 바로 영상 보낼 테니까 넌 업로드나 잘해요.
-이번엔 확실한 거죠? 저번에 실패해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돈이나 보내요.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지금 보냈습니다. 확인해 보세요.
얼른 폰뱅킹으로 입금을 확인한 그는 씩 웃었다.
-확인했습니다.
-회원들이 신인들 업데이트가 늦다고 성화입니다. 빨리 부탁드릴게요.
“예이, 예이.”
코웃음을 친 유명진은 채팅을 종료했다.
“끄아!”
드디어 오늘 할 일이 모두 끝났다.
습관적으로 담배를 물던 그는 아차 하며 지하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년들이 많지.”
그럼 작업에 작은 애로 사항이 생긴다.
찰칵! 치이익!
“후우. 이수지, 김누리라…… 흐흐.”
그저 체중과 몸매를 관리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이들이 아닌, 전문적인 선수로서 운동을 하는 그녀들.
쉴 틈 없이 운동만 하던 이들에게 남자를 만날 시간이나 있었을까?
어쩌면 처녀를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년들은 무슨 맛일까?”
게다가 십대다. 그냥 손만 가져다 대도 짝 달라붙을 만큼 피부가 보들보들한 십대.
생각만 해도 사타구니가 뻐근해진다.
유명진은 사타구니를 주물럭거리며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고, 그런 유명진의 스튜디오 근처에 주차된 차.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킨 종혁이 무전기를 든다.
“임세라, 놈이 지금 이동한다. 따라붙어.”
-오케이.
종혁은 멀어지는 유명진을 보며 차를 빠져나왔다.
임세라를 지원하러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