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36화 (536/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36화>

종혁이 떠나고 난 후의 진명고 여자유도부.

“오늘은 좋은 분께 아주 좋은 조언을 들은 기념으로 오후 훈련을 빼 주는 거니까 다들 어디로 새지 말고 집에 갈 수 있도록! 알았어?!”

“예!”

“수고하셨습니다!”

우렁차게 인사를 하며 돌아서는 여자유도부원들.

그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기쁨이 한가득이다.

“정말 운동기구들을 기증해 주시는 거 맞겠지?”

“지금 운동기구가 문제야? 이번 겨울 합숙 때 동해로 간다잖아!”

“와, 진짜 레전드는 달라도 다르구나.”

운동기구들을 비롯한 비품들과 여자유도부 발전 기금을 통 크게 기부하고 떠난 종혁.

앞으로 보다 나은 훈련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들의 얼굴에선 흥분이 떠날 줄 모른다.

물론 오후 훈련을 안 한다는 것에 대한 기쁨도 있다. 곧바로 옷을 갈아입은 그녀들은 여자유도부 건물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녀들 사이엔 누리도 껴 있었다.

“누리야.”

“아, 주장.”

주장 이수지뿐만 아니라 몇몇 선배와 동기들도 함께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음에 누리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네? 네…….”

누리는 갸우뚱하며 그들을 따라 학교 근처에 사는 이수지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내 곧 그들이 꺼낸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안해, 누리야. 그 개자식에게서 널 보호해 주지 못해서.”

“……네에?!”

“흐어어엉!”

울음바다가 된 이수지의 방.

똑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소녀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고생했다고 다독였다.

왜 보호해 주지 않았냐, 말해 주지 않았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니까.

종혁에게 구해졌으니까.

“훌쩍! 그래서 아까 우신 거예요?”

감독실을 뚫고 나와 건물을 울렸던 이수지의 울음소리. 그녀뿐만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선수들 모두 크게 울음을 터트렸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종혁과 임세라의 진심 어린 조언과 잔인한 현실에 감정이 요동쳐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응. 그냥 울음이 나오더라고.”

“나두.”

“저도요.”

살았다는 안도감이,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저절로 울음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다시금 그때가 떠오른 그녀들의 눈가에 습기가 차오른다.

“아차. 그런데 누리야.”

“네?”

“최종혁 선수님, 아니 형사님과…… 아는 사이 맞지?”

“으음. 네.”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더 이상 숨길 게 뭐 있겠는가. 누리는 당시의 상황을 모두 말해 줬고, 그녀들은 그제야 모든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

그녀들은 다시 눈물을 글썽이며 누리의 손을 잡았다.

고마웠다. 너무 고마웠다.

우연이라도 누리 덕분에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음에.

미안하고도 또 미안하며, 고마웠다.

소녀들은 한참 동안 말없이 누리의 손을 쓸어내리고 쓸어내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러면……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한 부원의 말에 그녀들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 악마 같은 인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가 뭐던가. 바로 추천 때문이다.

비록 좋은 대학은 아니라도 계속 운동을 이어 갈 수 있는 추천. 그녀들에게는 박상영 그의 평가가 필요했었다.

그런데 그게 사라져 버렸다.

“난…….”

모두의 시선이 이수지에게로 향한다.

“지도자 과정 밟으려고.”

“네?! 왜요?!”

“맞아! 지금 그만두기엔 너무 아깝지 않아?”

부원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수지는 씁쓸하게 웃었다.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해서.”

“아…….”

“솔직히 이런 꼴을 겪으면서까지 운동을 계속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그럴 실력이 되나 싶기도 한데, 그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비슷한 고통을 받고 있을 후배들을 보호하고 싶어.”

박상영이 유독 악마였던 게 아니다.

도 대회, 시 대회에 출전하면 자신들과 같은 피해를 입었다는 소문이 가끔씩 귀에 들려온다.

누군 몸을 팔아서 레귤러 자리를 땄네, 누군 돈을 줘서 주전 자리를 얻었네, 누군 감독에게 당해서 선수생활을 접었네 등 다들 쉬쉬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스포츠계에선 온갖 거지 같고 더러운 일이 만연했다.

“내 몸은 한 개뿐이니까 많이는 보호할 수 없겠지만, 내 손이 닿는 범위만이라도 보호하고 싶어.”

“주장…….”

안타깝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해서 그녀들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음, 저도 주장과 같은 생각이에요.”

“넌 또 왜!”

“겨우 예비 멤버로 발탁되는데 계속 운동해서 뭐해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냥 지금부터 공부해서 교육자 코스 밟으려고요.”

“어느 쪽으로 가게?”

“스포츠 의학이나 피지컬 트레이닝이요. 태릉 피트니스에서 그쪽 관련 자격증 있는 사람들을 수시로 모집한다니까 평생직장을 얻는 거잖아요?”

그녀들 같은 운동선수들에게 있어서 평생직장이라 불릴 만큼 복지가 뛰어난 태릉 피트니스센터.

“유도는 그만두지 않는다는 거지?”

“네, 그래야죠. 여차하면 도장이라도 차리게. 여자유도 전문 도장!”

“그럼 됐어. 지희 넌?”

“저는…….”

큰일을 겪으며 생각이 많아져서일까. 저마다 진지하게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누리의 차례가 됐다.

“전 계속 운동을 할까 해요.”

“응. 네가 운동을 그만둔다고 했으면 정말 아까웠을 거야.”

남들보다 유도를 늦게 시작했음에도 가시적인 성과를 냈던 누리.

아직은 그 재능이 완벽히 꽃피지 않았지만, 분명 머지않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터.

그녀는 진명고 여자유도부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였다.

“그럼 다음 주장은 네가 하면 되겠다.”

“네에?!”

“강요는 아니니까 한번 생각은 해 봐.”

“네에…….”

당황과 생각에 잠기는 누리를 일견한 유도부원들은 잠시 입을 다물며 마음을 가득 채운 감정에 집중을 한다.

개운했다. 박상영의 마수에 사로잡힌 이후부터 언제나 우중충하고 죽고 싶었던 마음이,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개운했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이런 날은 기념을 해야 하는데…….’

결코 잊지 않기 위해.

다신 이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고민하던 이수지는 어떻게 하면 강렬한 추억을 남길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아이들의 옷차림을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운동부라는 것을 광고라도 하듯 운동복만 입은 아이들.

그 모습을 본 이수지는 손뼉을 치며 입꼬리를 올렸다.

“애들아, 우리 옷 사러 갈까?”

*   *   *

웅성웅성!

“와아! 사람 많다.”

토요일 오전, 버스에서 내린 누리와 소녀들이 사람들로 가득한 동대문을 보며 눈을 빛낸다.

“와! 여기가 동대문!”

“저 이런 곳 처음 와 봐요!”

“야, 다들 나만 믿어.”

“꺄! 언니!”

“자, 그럼 다들 저곳으로 돌격!”

“돌격!”

마치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모두 풀어 버리겠다는 듯 쇼핑몰을 헤집고 다니는 소녀들.

“너무 비싸요! 깎아 주세요!”

“어휴, 언니. 그렇게 깎으면 우리도 남는 거 없어요.”

“그래도 깎아 주세요!”

‘우와.’

상인과 당당하게 흥정을 하는 동기의 모습에 누리의 입이 벌어진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가난해진 것도 있지만, 그 전에도 엄마가 사 주셨던 옷만 입어서 이런 쇼핑몰을 와 보지 못했던 그녀.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누리야, 너도 뭐 좀 골라 봐. 아니, 이것 좀 입어 볼래?”

“네? 저요?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옷 같은 걸 살 돈 따윈 없다. 종혁이 준 합의금은 곧 다가올 겨울을 위해 써야 했다.

그런 누리의 모습에 아차 했던 이수지는 이내 엄한 표정을 지었다.

“씁. 주장으로서 명령이야. 얼른 입어.”

“아니, 네에…….”

누리는 이건 아닌데 하며 탈의실로 들어갔고, 이수지는 그런 누리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동안 목이 다 늘어나다 못해 헤진 티셔츠와 교복도 작아져 학교 운동복만 입고 다녔던 누리.

“주장, 누리 옷 사 주시게요?”

이수지는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본 후배를 봤다.

“응. 누리가 아니었다면 형사님께서 우릴 구해 주실 수 없었을 거잖아.”

그에 대한 보답이었다.

“아…… 그, 그럼 저도 보탤게요!”

“저도요!”

“안 돼! 내가 사 줄 거야!”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우우. 독재자다, 독재자.”

“이것들이?!”

촤락!

탈의실 커튼이 열리는 소리에 다급히 입을 다물며 고개를 돌린 소녀들은 잠시 멍해졌다.

블링블링한 페인팅이 된 하얀색 긴팔 셔츠에 아이보리색 조끼, 그리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주름치마를 입은 누리.

“괘, 괜찮아요?”

치마가 어색한지 자꾸 끌어 내리는 누리의 모습에 소녀들은 절로 감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이렇게 꾸미고 다니지!”

“와, 같은 사람 맞아?”

“네, 네?”

요새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었을 뿐인데 마치 사람이 달라진 것 같다.

“음. 그런데…….”

무슨 일인지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이수지는 아 하며 손을 까딱였다.

“누리야, 잠깐 머리 좀 숙여 볼래?”

“네? 네.”

누리가 머리를 숙이자 이수지는 자신이 쓰고 있던 머리띠로 수지의 치렁치렁한 앞머리를 넘겨 이마를 드러냈고, 그 모습에 소녀들은 다시 멍해졌다.

“헐?”

“와, 이게 누구야? 진짜 누리 맞아?”

“누리야, 너 앞으로 머리 올리고 다녀라. 인물이 확 사네!”

“씨이! 이쁜 얼굴 그렇게 쓸 거면 나나 주지!”

“네, 네?”

소녀들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기만하는 누리를 보며 잘됐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오케이. 그럼 이걸로 당첨! 언니, 이거 계산해 주세요!”

“헉! 괜찮아요! 전…….”

“쉿. 명령이라고 했지? 고마워서 사 주는 거니까 조용. 정 미안하면 이따가 음료수나 사든가.”

“아니…….”

이수지는 누리가 다른 말 못하게 얼른 계산을 한 후 가게를 빠져나갔고, 누리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당황하다 결국 울상을 지으며 뒤쫓았다.

하지만 이내 누리의 입술이 꿈틀거린다.

부담이 되지만 그래도 새 옷. 가슴에 진 작은 응어리가 사르르 풀린다.

누리가 산 음료수를 든 소녀들은 쇼핑몰을 다시 헤집고 다니다 배에서 점심을 달라는 알람이 울리자 쇼핑몰을 빠져나갔다.

푸드 코트에서 먹을까 했지만, 절로 돌아 나오게 만든 가격표.

물론 다른 곳과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들의 먹성이었다.

또래의 소녀들보다 거의 3배는 먹는 그녀들. 일반 음식점에서 배불리 먹었다가는 파산이었다.

“앗! 고기뷔페 발견!”

“뭐? 어디!”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으면서도 값도 저렴한 곳 고기뷔페. 언제 먹어도 진리인 고기가 가득한 고기뷔페.

눈이 돌아간 그들이 그곳으로 달려가려는 순간이었다.

찰칵! 찰칵!

“누, 누구세요?!”

“아, 웃는 모습들이 너무 예뻐서 저도 모르게 사진을 찍고 말았네요. 맞아, 전 이런 사람이거든요?”

스트릿패션 전문 포토그래퍼 유명진.

남성은 명함을 보고 놀라는 소녀들을 보며 속으로 입술을 비틀다 누리를 보곤 눈을 빛냈다.

‘어라? 얘 봐라?’

그의 눈이 누리를 응시했다.

*   *   *

한편 그 시각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여성아동범죄조사부의 안동호 검사실.

1시간 전 김대현의 변호사에게 전화를 받고 상황을 파악한 안동호 검사의 꼭지가 돌아 버린다.

“야, 이 개새끼야! 네가 감히 내 말을 무시해?!”

-검사님께서 영장을 발급해 주실 수 없다고 하시기에 제 나름대로 학교에 협조를 얻어 단서를 찾았습니다만? 힘든 상황에서 단서를 찾았는데 이렇게 화를 내시니 좀 당황스럽군요.

“다, 당황? 너 단어 선택이 좀 거만하다? 너 그거 불법인 거 알아, 몰라!”

-전 그동안 그런 나쁜 짓을 저지르는 학생이 있는 줄 몰랐다, 일을 조용히 해결하고 싶다고 하는 진명고 교장선생님의 부탁을 받아 포렌식을 해 드린 것밖에 없습니다.

학교의 일은 가급적 학교 내에서 해결한다.

이런 기치 아래 선생들은 제법 큰 권한을 가지게 된다. 학생의 핸드폰을 스스럼없이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아아, 그래. 지금 해보자는 거지? 너 거기서 딱 기다려. 내가 아주 죽여 버릴 테니까!”

쾅!

거칠게 전화를 끊은 안동호는 외투를 챙겨 들며 계장을 봤다.

“공 계장님, 최종혁에 대해 싹 다 조사해요. 최종혁의 재산부터 그 부모의 재산, 뇌물을 받은 정황이 있는지 없는지, 사소한 거라도 불법을 저지른 게 있는지 없는지 싹 다! 알았어요?!”

“예, 예!”

“이 개새끼…….”

감히 검사의 말을 무시했다. 지금부터 전쟁이었다.

“검사가 왜 검사인지 알게 해 주지.”

“아따, 마. 어딜 가는데 그리 살벌한 말을 하면서 갑니꺼?”

“……안녕하십니까, 부장검사님.”

“오! 내 알아요?”

“이 중앙지검에서 특수부장님 얼굴을 모르면 간첩이죠.”

“이야아. 강철선 출세했네! 하하, 알아봐 줘서 고마워요?”

“하하. 아닙니다. 그럼 전 일이 있어서 이만.”

“아이고, 이걸 우짜지? 나도 그쪽한테 볼일 있어서 왔거든요? 급한 일 아이면 내부터 이야기합시다.”

“……저와 말입니까?”

“그쪽 부장인 강 프로도 용무가 있어서. 아, 잘됐네. 이대로 강 프로 만나러 갑시다!”

“예? 아, 아니…….”

“뺄 거 없으요. 자자, 갑시다.”

여성아동범죄조사부의 부장검사실로 향한 강철선은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 강 프로! 바쁘나!”

“……안녕하십니까, 검사님.”

“에이. 같은 부장끼리 님님이 뭔 소리고? 서로 거리감 느껴지게.”

“전 이게 편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말한 강두희는 안동호를 보며 어째서 같이 들어오냐는 눈빛을 보냈고, 안동호는 고개를 저었다.

“큼.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아, 이번에 너희 부서에서 맡는 사건 하나만 인계해 줄 수 있냐고 물으러 왔데이. 되긋나?”

순간 강두희의 가슴이 술렁인다.

‘설마 알아차린 건가? 최종혁 이놈이 꼰지른 건가?’

그는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모른 척 얼굴을 구겼다.

“좀 당황스럽군요. 곧 특수부는 부산 JH메디컬 특수본에 지원을 간다고 들었습니다만.”

조희구 사건이 터지며 전국이 뒤집히자 대검은 곧바로 특별수사대책본부 설치를 천명했고, 현재 각 지검에서 잘난 놈들을 선별하고 있었다. 그리고 특수부도 거기에 포함될 예정이었고.

지금 다른 사건을 가져가 맡을 여유는 없을 터였다.

“에이, 그기야 내 똑똑한 얼라들이 가는 기제. 내가 가믄 급이 맞겄나? 괜히 갔다가는 된서리 맞는데이. 그기다 내가 부장이라꼬 상대도 안 해 주고. 심심해 돌아 삐기 전에 몸이나 좀 풀라고 한다. 순순히 넘겨주면 이 은혜 잊지 않을게.”

“……큼. 검사님께서 그렇게 말하시니 후배로선 거부할 방법이 없군요. 어떤 사건을 가져가시려는 겁니까?”

“알잖아.”

쿵!

‘최종혁…… 이 개 같은 놈이 결국!’

강두희는 싱글벙글 웃고 있는 강철선의 서늘한 눈빛에 낯빛을 굳혔다.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응. 협박한다.”

“강 검사님!”

터엉!

책상을 치며 일어난 강두희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일그러트리자 강철선은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부장검사실을 뿌옇게 물들이는 담배 연기.

강철선의 얼굴에서 미소마저 사라진다.

“강 프로야, 니 강원도로 갈래?”

쿵!

“무, 무슨…….”

“와? 종혁이 뚜까 패믄서 이런 것도 각오 안 했나?”

“……지금 경찰 따위를 위해 같은 식구 등에 칼을 꽂는 겁니까!”

“푸흐흐. 강 프로야, 여가 어데고?”

“…….”

“중앙지검이다, 빙시야. 저 대검 중수부도 여차하면 들이받는 중앙지검. 전국의 모든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만 모아 놓는 중앙지검. 중검.”

검사라면 누구나 욕심내기에 한 번만 삐끗해도 천 길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는 곳.

강철선은 들고 온 노트북을 열어 종혁이 찍어 보내온 사이트 메인 화면과 그곳에서 다운받은 사진, 영상들을 보여 줬다.

“보이나?”

“이, 이게…….”

“피해자들일 얼메나 많은지 보이냐고, 씨발 새끼야. 거 안동호 검사도 이리 와서 함 보이소. 니가 좆도 아닌 생각으로 어떤 개짓거리를 하려고 했는지 보라고-!”

“흐읍!”

“와? 내가 니 멱살 잡아 끌고 와서 보여 주까? 어?! 퍼뜩 안 오나!”

마치 누가 뒤에서 떠민 듯 헐레벌떡 다가온 안동호는 노트북을 보곤 그대로 굳어 버렸고, 강철선은 강두희 책상에 있는 내선전화기를 들어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검사장님. 저 강 프롭니더.”

-무슨 일이지?

“아무래도 2차장님과 식사를 한번 하셔야 할 것 같심더.”

“허억! 거, 검사님……!”

-……설명.

“저랑 성만 같은 강 부장이 검사장님 말을 무시하네요? 이거 아무래도 2차장 빽 믿고 설치는 것 같은데…….”

-2차장이 내게 유감이 많은가 보군. 알았어.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 강 프로 후임 좀 알아봐 주이소. 이쪽에서 맡고 있는 사건 몇 개는 저희가 가져갈 테니까.”

-곧 처리하지. 강 프로, 덕분에 여성아동범죄조사부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어. 그동안 수고했어.

“검사장님-!”

애달픈 외침에도 통화는 매정히 끊겼고, 강철선은 망연자실 쳐다보는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와? 내랑 검사장님 뒤통수 후렸는데 이 정도 각오조차 안 했나? 만나서 반가웠고, 다신 보지 말제이. 저번에 맡아 보니까 강원도 공기가 참 맛있드라. 내 취향은 아이지만.”

털썩!

“강 검사님! 아니, 부장검사님! 제 말 좀 들어 주십시오!”

무릎을 꿇으며 애처롭게 비는 그의 모습에도 강철선은 여전히 웃으며 몸을 돌렸다.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남부지검 차장. 종혁 덕분에 물을 제대로 먹은 인간이다.

“내 간데이. 수고하래이.”

“부산지검 검사장님께서 부탁을 하셔서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멈칫!

“……누구?”

강철선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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