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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31화 (531/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31화>

치이이익!

구름이 달을 가려 버린 새벽, 서울 어느 골목의 연탄 고깃집.

고기가 익어 가며 피어오른 연기가 향긋한 샴푸 향을 덮는다.

채재쟁!

“카아!”

“크! 역시 사우나 후에 소맥이 진리라니까!”

방금 전까지 사우나를 하고 온 종혁과 김종두 과장, 정용진 과장이 목구멍을 차갑게 적신 술 한 잔에 나른하게 웃는다.

“그래서…….”

빈 잔에 술을 따르는 정용진 과장의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이제 확인이 좀 되셨습니까?”

무엇을 확인한 건지 모르지만, 굳이 사우나에 간 이유가 있을 터.

그러나 종혁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혀를 찬 정용진 과장은 글라스에 가득 따른 소주를 단숨에 들이켜곤 종혁을 차갑게 노려본다.

“그래서 그 벌레들이 누굽니까?”

움찔!

크게 반응하는 김종두 과장을 일견한 종혁이 입술을 비튼다.

“벌레? 무슨 벌레요?”

“철량리.”

이번엔 종혁의 몸도 멈춘다.

찰칵! 치이익!

“두 분께서 담당했던 철량리 사건. 살펴보니 꽤 재밌더군요.”

종혁이 받은 누나를 찾아 달라는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된 철량리 사건.

철량리라는 강원도 산골 마을은 어떤 종교 재단이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다. 그러다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당시에도 능력이 좋았던 종혁과 미친개 도사견으로 악명이 높았던 김종두 과장이 달려들었는데도 단서 하나 찾지 못했다.

이외에도 의심이 가는 사건은 몇 개 더 있다. 그중 하나는 세진은행 해킹 사건. 인간을 벗어난 피지컬을 지닌 종혁이 병원에 입원한 사건이자, 당시 현장에서 구속했던 살인청부업자가 증발해 버린 사건.

정보국 과장이었던 그가 조사를 해도 어디로 갔는지 나오지가 않았다.

“그리고 최 대장이 중앙경찰학교에서 복귀하던 때 픽업한 순경들도 갑자기 사라졌죠.”

분명 서울에 올라온 것까지 확인이 됐는데 이후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들의 부모들까지 모두. 그 근방에 CCTV가 거미줄처럼 깔려 있었는데도 말이다.

“더 말해 드립니까?”

“역시…… 과장님은 능력이 좋으시네요.”

정용진의 표정이 굳는다.

“예, 맞습니다. 과장님의 생각처럼 이 나라에는 거대한 벌레가 있습니다.”

“……들어 보죠.”

“1996년 서울시 3선 시의원 박태성 자살 사건. 1999년 서울시 2선 시의원 김성령 자살 사건.”

종혁이 한상원을 잡은 공로를 인정받아 중앙지검의 인턴, 명예 사무관으로 들어갔을 당시 해결한 유흥업소 사건.

그 사건에서 발견된 이중 장부에서 연결점이 드러난 김성령 의원은 서울의 어느 재개발에도 연관되어 있음이 드러나자 돌연 자살을 했다.

통칭 김 의원 사건으로 불린다.

박태성 의원은 종혁이 대검 자료실에서 발견한 사건으로, 김성령 의원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살로 위장되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다.

움찔!

김종두의 눈이 크게 떠진다.

“2001년 러시아 투자사기 사건. 저와 과장님이 맡았던 철량리 사건과 세진은행 사건, 중앙경찰학교.”

그리고 미국에서 검거한 놈들까지.

“현재까지 놈들의 소행이라고 확인된 사건들입니다. 아, 조희구 역시 놈들일 확률이 100퍼센트입니다.”

김종두와 정용진의 입이 벌어진다.

“자, 잠깐. 박태성 의원과 김성령 의원 자살 사건도 이놈들의 소행이라고?”

“전 거의 확신하고 있습니다.”

말하지 않은 사건도 있고, 이외에 놈들이 저지른 걸로 추정되는 사건들도 한가득이다.

“이 새끼들 뭐야…….”

쾅!

“뭐냐고, 이 새끼들!”

예상보다 역사가 깊다. 1996년에도 사건이 벌어졌다면, 어쩌면 그 이전에도 이놈들이 대한민국에서 암약하고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치지직!

필터까지 타들어 간 담배가 정용진의 손가락을 태운다.

“……크군요.”

이 정도로 클 줄 몰랐던 듯 정용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린다.

종혁은 그런 그의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어떡하시겠습니까. 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스톱 하시겠습니까?”

고를 할 거면 마셔라.

술잔을 빤히 바라보던 정용진은 입술을 달싹였다.

“난…….”

*   *   *

스르륵! 탁!

연탄 고깃집을 빠져나온 종혁과 김종두가 담배 연기를 흩날리며 어두운 골목길 안쪽으로 향한다.

말 한 마디 없이 굳은 얼굴로 그저 담배만 피우는 그들.

이윽고 가로등 불빛마저 침범하지 못하는 어둠에 둘러싸이게 되자 한 음성이 그들의 발을 멈춰 세운다.

“믿어도 되는 인물인가?”

움찔!

어둠 속에서 종혁의 입술이 비틀린다.

“믿는다? 그딴 단어는 제 사전에 없습니다, 청장님.”

저벅!

구둣발이 시멘트 바닥을 밟는 소리가 나며 이택문 전 경찰청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뿐만 아니다. 오택수와 최재수, 리순철도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어둠 속에서도 시린 안광을 내뿜는 오택수와 이택문 전 청장.

종혁의 눈에서도 붉은 기운이 넘실거린다.

결국 고를 하겠다며 술을 들이켠 정용진 과장.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지?”

어쩌자고 다 말한 걸까.

종혁은 그에 대한 대답 대신 핸드폰을 들었다.

“예, 헨리. 부탁드리겠습니다.”

쿵.

뒤통수를 때리는 충격에 오택수와 이택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정용진 과장을 믿는다? 절대 안 믿는다.

그가 유능한 경찰이고, 또 믿음을 주었다지만 이건 별개의 문제다.

설령 정용진이 혹여 놈들의 하수인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고맙다. 그를 통해 새로운 끄나풀들을 알아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정용진 과장은 정보국 출신입니다.”

-최, 우린 CIA입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종혁은 됐냐는 듯 이택문을 봤고, 그는 담배를 물었다.

“CIA도 끼어들었군.”

“미국에도 있더군요. 놈들이.”

까득!

“……크군.”

너무 크고 거대하다.

“박종명도 놈들인가?”

“정황상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그 말에 이택문이 눈을 감는다.

이 거대한 벌레와 경찰이 연관되어 있다.

일평생 이 나라 국민들을 위해 목숨과 영혼을 바쳐 왔던 이택문으로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 그의 가슴에서 분노의 겁화가 피어오른다.

“……이게 끝인가?

“아뇨.”

그럴 리가.

종혁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예, 차장님. 그때 말한 그 벌레, 잡으실 생각 있으십니까?”

이 판에 국정원도 끼워 넣는다.

종혁은 됐냐는 듯 사납게 웃었다.

“다음에 보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택문이 앞으로 할 일이 중요하다.

경찰청장직을 내려놓았음에도 여전히 경찰 내부에 따르는 이들이 많은 이택문.

박종명이 정말로 놈들이라면, 그를 잡기 위해선 박종명과 대척하는 파벌을 움직일 수 있는 그가 움직여 주어야만 했다.

“같이 가시죠, 청장님. 아, 그런데 앞으로 어떡할 거야? 박 청장이 경고했잖아?”

“뭐, 사건을 찾아봐야죠.”

박종명뿐만 아니라 놈들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서라도 이번 일과 완전 별개의 사건을 맡아야 할 것 같다.

“야, 우리 애들 건 뺏지 마라.”

“설마 제가 그러겠어요?”

“그럼 다행이고. 알았어. 적당히 마시고 내일 보자.”

“옙. 들어가십쇼. 충성.”

종혁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둘을 보며 담배를 물었다.

“대, 대장님.”

하얗게 질려 있는 최재수의 모습에 종혁은 담배로 가져가던 라이터를 내렸다.

“그래, 너도 이젠 알 때가 된 것 같네. 그동안 따돌려서 서러웠지? 그런데 재수야.”

순간 종혁의 눈동자에서 감정이 사라진다.

“너 이거 알면 목숨 걸어야 해. 그럴 수 있겠냐?”

철렁 내려앉는 최재수의 심장.

“저, 전…… 후우.”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고른 최재수의 눈이 살벌해진다.

“대체 어떤 새끼들입니까?”

종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   *

한편 종혁과 김종두가 떠나고 홀로 남겨진 정용진 과장.

주인마저 꾸벅꾸벅 조는 조용한 술집에 앉아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 무심한 얼굴로 술잔을 기울이던 정용진이 술잔을 내려놓는다.

‘벌레라……. 벌레…….’

“이 나라에 참 큰 벌레가 살고 있었네.”

종혁의 사건들을 보며 어림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큰 벌레다.

너무 커서 그 윤곽조차 보이지 않은 거대한 괴물. 자칫 털끝이라도 잘못 건드렸다가는 그대로 잡아먹히고 말 터.

호기심에 너무 위험한 일을 알아 버리고 말았다.

꼴꼴꼴!

다시 술을 따르는 그의 손이 떨린다.

분명 승낙은 했지만, 정용진 과장은 후회에 휩싸인다.

술잔을 가만히 응시하던 정용진은 눈을 질끈 감으며 술을 들이켰다.

벌컥벌컥!

목구멍과 배 속을 뜨겁게 데우는, 마치 그 옛날 경찰 선서를 할 때처럼 뜨거움이 가득한 술.

타아악!

“그래, 난 경찰이지.”

민중의 지팡이. 국민을 수호하고, 범죄자를 때려잡으며 억울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는 경찰.

이 몸과 영혼은 국민에게 바쳤노니, 국민에게 해가 될 놈이라면 제아무리 무서운 괴물이라도 단칼에 베어 버려야 했다.

어느새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은 정용진은 핸드폰을 들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쌓아 왔던 모든 걸 이용해야 될 것 같다.

“강 과장. 나야, 용진이. 우리 술 한잔할까?”

정용진의 오랜 친구이자 동기인 정보국 과장인 강 과장.

‘일단은 이놈부터.’

모든 걸 이용하기 전에 인간관계부터 재정립해야 됐다.

그래야 느닷없이 칼을 맞지 않는다.

그의 눈이 시리게 빛나기 시작했다.

*   *   *

경찰청장실.

박종명이 인사과에서 올라온 서류를 빤히 응시한다.

임세라. 나이 28세. 계급 경위.

종혁이 요청한 특별인사이동 대상자의 서류다.

“재밌군.”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일개 경위, 임세라.

종혁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실망이 들면서도 임세라에게 어떤 특이한 점이 있나 생각을 하게 된다.

토옥! 톡!

검지로 소파의 팔걸이를 두드리던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최 대장은 지금 뭐하고 있지?”

-이번에 검거한 여자유도부 코치의 핸드폰과 컴퓨터 포렌식, 금융거래 내역 조회를 의뢰했고, 오택수 경감과 최재수 경장은 인천의 동명여중으로 향했습니다. 동명여중은 범인이 이전에 근무했던 학교입니다.

“다른 건?”

-그 외에 별다른 건 없습니다. 최 대장도 현재 사무실에 있는 걸로 파악됩니다.

“어젯밤 늦게 퇴근했다던데?”

-몇몇 지방청과 관할 서에 미제 사건들에 대해 문의를 했답니다. 아무래도 청장님께서 하신 경고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흠.”

‘그놈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이 아닐 텐데 말이야…….’

“퇴근은 혼자 했나?”

-특수범죄수사과의 김종두 과장과 간편신고관리과의 정용진 과장과 함께 퇴근을 했습니다. 강남의 사우나에서 목욕을 하는 것까지 파악했습니다만 그 이상은……. 아무래도 저희가 회의가 끝난 후 한 소리를 했더니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종혁의 전 상사인 김종두 과장과 정용진 과장.

“쯧. 알았어.”

-청장님, 정말 최 대장을 쳐 내시려는…….

“끊어.”

통화를 종료한 그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정말 내 뜻처럼 순순히 다른 사건을 맡는다는 건가…….’

“그럼 다행이긴 하겠지만…… 쯧. 조 회장과 얽혀서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군.”

러시아에서도 이런 사업, 아니 사기를 저지르고 있다는 조희구.

텅!

임세라의 특별인사이동 서류에 도장을 찍은 박종명은 다른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래, 조 회장. 중국 공기는 맡을 만하나? 뭐? 골프? 하하하!”

경찰청장실에서 추악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   *   *

부산의 JH메디컬! 사기로 판명?

추정 피해액 3조 원! 제2의 JU인가!

부산지방검찰청, 특별수사대책본부 수립!

부산으로 모이는 엘리트 검사들, 조희구 딱 기다려!

카메라 앞에 선 검찰총장, 조희구 잡겠다! 믿어 달라!

경찰청장, 총력을 다해 검찰을 지원하겠다.

전국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촤락!

“난리구만?”

대한민국 모든 신문 1면이 조희구 사건을 다루고 있다.

“커뮤니티에서도 난리가 아닙네다.”

“그래?”

순철의 자리로 간 종혁은 모니터를 보며 혀를 찼다.

-이렇게만 하면 3조 원 벌 수 있다?

-이딴 사기에 속는 새끼들은 진짜 병신이냐?

-ㅋㅋㅋ 사기당한 새끼 집 앞 인증 간다.

-사기를 당했습니다. 죽고 싶습니다 ㅜㅜ

-조희구 회장님 10억만!

“여긴 언제 봐도 지랄 염병이네.”

어느새 모여든 오택수와 최재수도 혀를 찬다.

“아니 어떻게 전 재산을 사기당한 사람에게…….”

“원래 이런 놈들이니까 신경 꺼. 아니다. 이 새끼들한테 그냥 소장 날릴까?”

“부산청에서 지랄합니다. 찢어 죽이고 싶더라도 일단 놔둘 수밖에 없어요.”

“염병.”

“영 뭣 같으면 자료 취합해서 부산청에 넘기든가요.”

바빠 죽겠는데 이런 것까지 해야 하냐는 소리를 듣겠지만 말이다.

그 말에 혀를 찬 오택수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 철아. 일단 경찰 욕하는 건 모아 놔.”

“이치들이 사고를 치길 바라는 겁네까?”

“사람이 살면서 범죄 한 번 안 저지르겠냐.”

단순히 무단횡단을 하다 걸려도 이렇게 악질이라는 걸 증명할 자료로 쓸 수 있다. 그럼 단돈 천 원이라도 많은 벌금을 받게 될 터.

함부로 입을 놀렸으면 그 죗값을 받아야 했다.

“홍보부에도 말해 놓을 테니까 그쪽과 연계해서…….”

띠리링! 띠리링!

갑자기 종혁 자신의 자리에서 울리는 내선 전화.

종혁은 순철의 자리에 놓인 전화기로 전화를 끌어와 받았다.

“특별범죄수사대 대장 최종혁…… 아, 박상영 포렌식 결과 나왔다고요?”

-예, 대장님. 그런데 이게…….

“응? 왜 그래요?”

-후. 지금 결과 보냈으니까 확인해 보세요. 그러면 제가 왜 이러는지 아실 겁니다. 수고하십쇼.

미간을 좁힌 종혁은 순철을 봤다.

“포렌식 결과 넘어왔다니까 확인해 봐.”

“예. 알겠습네다.”

타라락!

순간 9개의 모니터에 쫙 펼쳐지는 박상영 코치의 핸드폰과 컴퓨터 포렌식 및 금융거래 기록.

그 순간 종혁을 비롯한 4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이건 또 뭐야…….”

한 모니터에서 나타난 어린 살색의 향연.

그들의 뒷목에 난 솜털이 쭈뼛 솟기 시작한다.

그때였다.

쿵쿵쿵! 벌컥!

“충성! 경위 임세라! 금일부로 본청 특별범죄수사대로 특별인사이동을 명…… 응?”

세라는 사무실을 가득 채운 숨 막힐 듯한 침묵에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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