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28화 (528/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28화>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5시, 근처에 새벽장이 열리는 시장이 있는지라 새벽부터 문을 여는 고물상.

    “오늘은 킬로당 20원씩 더 쳐줬으니까 가는 길에 뒷다리살이라도 사 가. 운동하는 사람인데 영양분을 잘 섭취해야지.”

    손에 쥐어지는 2800원에 소녀 김누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린다.

    오늘처럼 득템을 한 날에만 조금이라도 겨우 살 수 있는 뒷다리살을 간장과 고추장에 조물조물 비벼 볶아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감사합니다!”

    “그래. 어서 가 봐. 아침 운동 늦겠다. 순임 씨한테 안부 전해 주고.”

    “네! 내일 뵐게요!”

    김누리는 이번에도 끌차를 마치 열쇠고리처럼 매달며 골목을 내달렸고, 고물상 주인은 그런 누리를 보며 혀를 찼다.

    “어쩌자고 저 어린 것에게……. 하늘도 무심하시지. 쯧쯧쯧.”

    혀를 찬 노인은 막 고물상 안으로 들어오는 한 노인을 반갑게 맞이했고, 새벽장이 열리는 시장에 도착한 누리는 얼른 정육점으로 달려갔다.

    “오늘도 장 보러 온 거야?”

    “네! 안녕하세요!”

    “어이구 참하다, 참해.”

    “안녕히 주무셨어요!”

    시끌벅적한 시장에 더 활기를 불어 넣는 누리.

    시장 상인들은 벌써 5년째 이 꼭두새벽마다 시장에 와서 장을 보는 누리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큰 키에 맞지 않은 귀여운 외모에 싹싹한 성격.

    그 누구라도 싫어할 수 없는 누리다.

    그건 시장 한구석에서 붉은 조명을 비추는 정육점 주인도 마찬가지다.

    “쌉니다, 싸요! 삼겹살 한 근에 만 원! 호주산 불고기 한 근에 7천 원! 어이고, 누리 왔어?”

    “네…….”

    평소라면 밝게 대답해야 됐을 누리는 고기냉장고에 붙은 가격표와 방금 전 사장의 외침에 눈과 귀가 팔려 버린다.

    “아, 아저씨. 저, 정말 불고기용 고기가 한 근에 7천 원이에요?”

    불고기라지만 무려 소다.

    소의 부위 중 가장 싸다고는 하지만, 호주산이라고는 하지만 평소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소고기.

    평상시엔 삼겹살과 그렇게 가격 차이가 크지 않던 놈이 오늘은 상당히 저렴하게 나온 것이다.

    “많이 들여놨었는데 추석도 끝나서 어쩔 수 없이 떨이하는 거야. 왜? 오늘은 좋은 걸 주웠나 봐? 살 거면 얼른 사. 이제 다섯 근밖에 안 남았어.”

    흠칬!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에 누리의 마음이 다급해진다.

    “조, 조금만 더 생각해 봐도 돼요?”

    “그럼.”

    사장은 다행이라고 웃는다.

    맨날 폐지 팔아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가장 싼 뒷다리살만 사 갔던 누리.

    그 모습이 너무 짠해 조금씩 덤을 얹어 주곤 했는데, 오늘은 좋은 것들을 많이 주운 것 같아서 사장의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장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발 물러선 누리의 머릿속에 온갖 갈등이 부딪친다.

    ‘살까? 사지 말까? 여전히 비싸지만 그래도 7천 원인데…….’

    단 한 번도 마음껏 먹어 본 적이 없는 소불고기.

    또 언제 있을지 모를 기회다.

    ‘하지만 오늘 번 건 고작해야…….’

    2800원.

    새벽 3시부터 일어나 5시까지 꼬박 걸어 모은 돈이지만, 소불고기 한 근을 사기도 힘들다.

    남은 건 내일 드린다고 하며 살까 고민하며 주머니 속을 매만지던 누리는 뭉텅이로 만져지는 지폐에 깜짝 놀랐다.

    ‘맞아. 합의금! 하, 하지만…….’

    종혁을 만나면 다시 돌려줘야 할 돈이다.

    많아도 너무 많아 부담이 되는 것도 있지만, 자신의 잘못도 크고 차에 치이지도 않았으니 받을 수가 없었다.

    누리의 고민이 깊어지는 순간이었다.

    “어머. 이건 또 왜 이렇게 싸? 사장님, 불고기용 고기 두 근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쿵!

    안타까워하며 고기를 꺼내는 사장의 시선에 누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따, 딱 만 원만 쓸까? ……그래, 딱 만원만 쓰자.’

    이렇게 쓴 것은 이번 주에 폐지를 판 걸로 보충해서 주면 된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누리는 크게 외쳤다.

    “사장님! 불고기용 고기 한 근 주세요!”

    아직도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의 허름한 원룸 건물.

    드르르르르!

    소불고기에 대파, 양파 등을 실은 끌차를 굴리며 원룸 건물 앞에 도착한 누리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하로 향한다.

    능숙하게 끌차를 세우고 문을 열고 들어간 누리를 곰팡이와 먼지, 습기 냄새가 반긴다.

    그러나 그녀에겐 그 어떤 곳보다 소중한 집이었다.

    “아이구, 누리 왔누?”

    “할머니!”

    거실에 누워 있다가 힘겹게 일어나는 할머니의 모습에 누리는 얼른 달려가 다시 눕힌다.

    “왜 일어나려고 해요. 누워 계세요.”

    “오늘도 폐지 줍고 온 겨?”

    “응! 짜잔! 이것 봐요! 오늘은 할머니가 좋아하는 소불고기 사 왔어요!”

    누리는 결국 쟁취한 소불고기와 그것을 버무릴 양념을 자랑스럽게 보여 줬지만, 할머니의 얼굴은 더 어두워진다.

    “미안하다. 미안해. 이 할미가 못나서 네가 이 새벽부터…….”

    “에이, 괜찮아요. 새벽 운동도 하고 좋은걸요, 뭐. 그럼 누워 계세요. 전 우리 깨우고 밥 차릴게요.”

    작은 방으로 들어간 누리는 이불을 모두 걷어찬 채 누워 있는 8살 작은 소년을 흔들어 깨웠다.

    “우리야, 일어나야지?”

    “히이잉.”

    일어나기보다 칭얼거림이 먼저 튀어나오는 우리. 이 나잇대 아이들이면 모두 한참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깨워야 했다. 자신이 아니면 우리를 씻기고 밥을 먹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늦게까지 재우고 싶지만, 곧 운동부 아침 운동을 가야 하는 그녀.

    “이래도 안 일어날 거야? 이래도?”

    “키키킥! 누나…….”

    간지럽힘에 몸을 비틀다가 누리에게 양팔을 뻗는 우리.

    “그래, 우리 우리. 어이쿠. 일어나서 씻자.”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우리를 안아서 일어선 누리는 화장실로 가 일단 얼굴부터 씻겼다.

    그렇게 그들 세 가족의 아침이 시작됐다.

    *   *   *

    “다녀오겠습니다!”

    “누나, 잘 다녀와!”

    “우리도 학교 잘 다녀와!”

    “응!”

    교복을 입은 채 집을 나서는 누리의 입가에 미소가 한가득이다. 오늘 따라 많이 칭얼거리지 않고 일어난 우리와 아침밥 때문이다.

    한 뭉텅이로 씹혔던 소불고기의 감동.

    당분간 더 절약해야만 했지만 누리는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소불고기를 먹으며 기뻐하던 우리의 미소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앗! 잠시만요!”

    때마침 도착한 버스에 올라탄 누리는 냉큼 빈자리에 앉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와아. 오늘 운이 너무 좋은 거 아냐?”

    타이밍 좋게 도착한 버스부터 합의금까지. 아니, 소불고기부터 버스까지.

    누리는 맨날 이랬으면 싶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학교에 도착한 누리는 작은 체육관 앞에서 죽도를 짚은 채 서 있는 코치를 발견하곤 살짝 굳었다가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왜 이렇게 늦게 와! 얼른 들어가!”

    “예!”

    ‘오늘은 빨리 왔는데…….’

    입술을 삐죽 내민 누리는 얼른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곧 후끈한 열기가 그녀를 반겼다.

    “안녕하십니까!”

    유도복을 입은 채 대걸레로 바닥을 밀다가 그녀를 향해 인사를 하는 몇 명의 1학년들.

    2학년 이상의 선수들은 아무도 없었다.

    ‘봐, 아무도 없잖아.’

    다시 입술을 삐죽 내밀었던 누리는 1학년들에게 인사를 하곤 탈의실로 향했다.

    아침 운동 시작이었다.

    “하악! 학!”

    아침 일과가 끝나자 매트 위에 십여 명의 여자 선수들이 널브러져 거친 숨을 몰아쉰다.

    “자자, 주목!”

    모두의 시선이 코치에게로 향한다.

    “오늘 태릉선수촌 견학이 있는 거 알지?”

    순간 모든 선수들의 눈이 반짝인다.

    전국 모든 스포츠 선수들에게 있어 꿈의 장소이자 최종 목적지인 태릉선수촌.

    “네-!”

    “가서 선배들에게 민폐 끼치지 말고, 하나라도 배운다는 생각으로 견학할 수 있도록. 점심은 태릉에서 먹는다니까 씻고 10시까지 운동장에 집합해. 이상.”

    “수고하셨습니다!”

    “김누리는 잠깐 나 좀 보고.”

    “네? 네!”

    의아해하며 몸을 일으키는 누리에게 무슨 일이냐는 시선이 쏟아진다.

    누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몸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누리야.”

    “네? 무슨 일이세요, 주장님?”

    빼어난 실력으로 태릉 입성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주장. 게다가 외모까지 예뻐서 전교에서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누리를 불러 세운 주장은 뭐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야.”

    주장은 씁쓸히 웃으며 돌아섰고, 누리를 의아해하며 코치실로 향했다.

    그런 그녀는 보지 못했다. 주장 말고도 두 명의 선수가 낯빛이 어두워졌다는 걸 말이다.

    똑똑!

    “들어와.”

    “네…….”

    “왔어? 거기에 앉아.”

    그녀에겐 어려운 사람일 수밖에 없는 코치.

    누리는 어깨를 움츠린 채 코치가 가리키는 소파에 앉았다.

    “오늘 기분이 좋나 보네? 아까부터 계속 웃던데?”

    “아하하.”

    “그래. 그렇게 웃고 다녀. 얼굴도 예쁜 애가 왜 그렇게 우중충하게 다니니? 커피? 음료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래.”

    털썩!

    누리는 코치가 자신의 옆에 앉자 살짝 옆으로 엉덩이를 뺐고, 그걸 본 코치는 눈살을 찌푸렸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후. 누리야.”

    “네, 코치님.”

    “네 이번 시즌 성적이 어떻게 되지?”

    누리는 의아해 했다.

    “시 대회 16위요.”

    “그래, 16위야. 전국에서도 아니고 고작 서울에서 16위. 메달은 근처에도 못 갔네?”

    “네?”

    누리는 당황했다.

    말이 16위지만, 그녀가 다니는 학교인 진명고 여자유도부에선 상위에 드는 성적이다. 여자유도부 역사를 모두 따져도 말이다.

    그래서 그때 눈앞의 코치도 칭찬을 해 주지 않았던가.

    물론 더 높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건 아쉽긴 하지만, 온전히 훈련에 매진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어쩔 수가 없었다.

    “하아. 누리야, 너 계속 이러면 나나 감독님도 널 계속 지원해 줄 수가 없어.”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순간 철렁하고 내려앉는 심장.

    “저, 저는…….”

    “그래, 알아. 감독님이 널 스카우트한 거.”

    유도부에 스카우트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학생이었던 누리.

    부모가 없다 못해 자신이 가장으로 부양해야 될 가족이 있기에 새벽에는 폐지를 줍고,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누리에게 운동을 하자며 삼고초려를 한 게 바로 이 여자유도부의 감독이다.

    “훈련에 드는 모든 비용뿐만 아니라 점심, 저녁을 제공하겠다고 스카우트하셨지.”

    맞다. 이런 조건이 아니었다면 누리는 절대 운동을 하지 않았을 거다.

    할머니, 남동생, 자신 세 가족이 한 달에 드는 식비만 해도 거의 30만 원. 그중 절반 가까이가 그녀의 입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입 하나만 덜어 낼 수 있어도 덜 배고프게 살 수 있기에 누리는 감독의 제안을 결국 받아들이게 됐다.

    “그래. 그래서 네 생활이 좀 나아졌잖아. 그런데 성적이 이게 뭐야. 훈련을 열심히 했다면 이런 말도 안 해. 하지만 너 맨날 저녁 훈련 빼먹잖아.”

    “그건 아르바이트 때문에……! 감독님도 허락을 하셨…….”

    “나나 감독님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이러면 우리도 널 계속 지원해 줄 수가 없어. 또 이번 겨울 합숙은 어떻게 할 건데? 또 공짜로 갈 거야? 다른 애들 다 돈 내고 가는 데 또 너 혼자만? 애들 사이에서 말이 나오는 걸 알긴 아니?”

    “코, 코치님…….”

    “누리야.”

    스윽!

    누리는 무릎 안쪽으로 파고드는 거칠고 큰 손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굳어 버린 누리의 모습에 코치의 입술이 뒤틀린다.

    “너 계속 이렇게 이기적으로 굴 거야? 운동 그만둘래?”

    다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운동 그만두면 뭐 할 건데? 네가 공부를 잘하길 하니, 아니면 수업 진도를 따라갈 수 있니.”

    없다. 여기서 운동을 그만두게 되면 코치의 말처럼 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다가 그냥 졸업을 하게 될 거고,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할 거다.

    할머니, 남동생, 자신 세 가족이 그래도 사람처럼 살려면 꼭 가야 하는 대학을, 체대는 꿈도 못 꿀 거다.

    “누리야, 그런 사람을 두고 낙오자라고 부르는 거 알지? 너 인생 낙오자 될 거야?”

    쿵!

    딱딱하게 굳은 누리.

    무릎 안쪽을 만지작거리던 손이 허벅지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왜, 왜 이러세요…….”

    “그런 낙오자 안 되려면 내 추천이 필요한 거 알지?”

    누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거구나.’

    이거였다. 방금 전 주장이 하려다 말았던 말이.

    어떡해야 될까. 뿌리쳐야 될까, 아니면 이대로 있어야 할까.

    누리의 눈에 공포의 눈물이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벌컥!

    “응? 뭐야, 누리도 있었네?”

    “아, 안녕하세요! 감독님!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누리는 다급히 코치실을 빠져나갔고, 문이 열리자마자 얼른 손을 뺐던 코치는 속으로 작은 원망을 담아 감독을 쳐다봤다.

    “누리랑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쳐다봐?”

    “아닙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박 코치. 그 말 들었어? 지금 태릉에 최종혁 선수가 있대!”

    “최종혁? 어? 그 괴물이요?”

    “그래에! 크으! 우리 애들한테 정말 큰 선물이 될 것 같지 않아? 으아아! 사인을 요구하면 실례겠지?”

    방방 뛰는 감독을 한심하단 눈초리로 일견한 코치는 열려 있는 문을 보며 속으로 비릿하게 웃었다.

    ‘오래 걸렸지.’

    참 오래 걸렸다.

    1학년 때 감독이 스카우트를 해 온 예쁜 아이, 김누리. 혹여 손을 대면 도망을 칠까 그동안 손을 대지 못했는데 이젠 아니다.

    ‘이젠 벗어날 수 없지.’

    1학년 때 그만뒀다면 모르되, 이제 곧 3학년이다.

    지금 운동부를 관두게 되면 그동안 노력한 모든 게 허사가 된다. 누리는 결코 자신을 벗어날 수 없었다.

    ‘나를 거쳐 간 다른 아이들처럼…….’

    코치는 음흉하게 웃기 시작했고, 감독은 그런 코치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   *   *

    “와아!”

    태릉선수촌의 입구가 가까워지자 여자유도부원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예, 예. 한 5분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선배님. 예,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통화를 하는 감독에게로 향하는 시선들.

    전화를 끊은 감독이 흐뭇하게 웃으며 입을 연다.

    “마침 쉬는 시간이라고 하니까 유도 센터에 들어가면 90도로 인사부터 하고. 민폐 끼치지 말고! 알았지?!”

    “네-!”

    이윽고 길에 멈추는 버스.

    버스에서 내리던 진명고 여자유도부는 앞 차에서 내리는 다른 학교 남학생들에 깜짝 놀랐다가 이내 수줍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순간 태릉에서 피어나는 풋풋한 사랑의 꽃.

    하지만 그걸 감독들이 지켜볼 리가 없다.

    “이 자식들이?!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놀러 왔어?!”

    “움직여, 이 새끼들아!”

    남학생들은 아쉬워하며 인솔자를 따라 움직였고, 여자유도부원들도 오와 열을 맞추며 이동을 한다.

    맨 뒤에 서 있던 누리도 그들을 따라 움직이려고 한다.

    그 순간 그녀의 어깨에 올려지는 코치의 팔.

    오싹!

    “누리야,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네, 네?”

    “아까 못다 한 이야기 좀 해야지?”

    “하, 하지만…….”

    “누리야, 정말 운동 관둘래?”

    난 상관없다는 듯 무심히 쳐다보는 시선.

    입술을 깨문 누리는 결국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고, 코치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럼 잠깐 저기로 가서 이야기할까?”

    코치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누리를 산책로로 이끌었고, 그걸 빤히 쳐다보던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어, 난데. 철아, 원격으로 사무실 컴퓨터 접속되지? 잠깐 신원 조회 좀 할 수 있을까? 응, 진명고 여자유도부. 코치인지 감독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고 일단 다 조사해 봐. 어, 그래. 이름 최순철. 49세. 감독.”

    순철이 감독과 코치에 대해 쭉 읊기 시작한다.

    “그래. 땡큐.”

    전화를 끊은 종혁은 이번엔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선배님. 저 종혁이요.”

    종혁이 유도국가대표 수석 코치였을 시절 그에게 코칭을 배운 코치 중 한 명. 발이 꽤 넓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태릉에 있죠. 아, 다름이 아니라 진명고 여자유도부 최순철 감독과 박상영 코치에 대해 좀 알아볼 수 있을까요? 소문 위주로요. 최순철 감독은 계속 진명고에서 감독 일을 하셨고, 박상영 코치는 전에 인천 동명여중에서 코치 일을 했다네요? 느낌이 좀 싸해서요. 부탁드릴게요.”

    전화를 끊은 종혁은 누리와 코치가 들어간 산책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그의 팔을 잡아당기는 손연아.

    “오, 오빠.”

    “위험하니까 잠깐만 여기 있어 줄래?”

    웃으며 손연아를 진정시킨 후 걸음을 옮긴 종혁은 산책로 입구에서 담배를 물었고, 그 순간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방금 전 소문을 알아봐 달라 부탁한 선배.

    ‘이렇게 빨리?’

    종혁은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네, 선배님. 아, 그래요? 선수를…… 성추행하다가 잘렸다고요? 아아.”

    빠드드드득!

    ‘개새끼네?’

    종혁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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