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26화>
“미안, 미안. 갑자기 일이 생겨서.”
“사건?”
누가 경찰 아니랄까 봐 다들 그쪽으로만 생각한다.
“아, 그건 아니고.”
“뭐야. 사건도 아닌데 늦은 거야?”
“야, 이……! 나 오늘 엄청 눈치 받으면서 퇴근했다고!”
“맞아! 막내가 개념 없이 선배들보다 먼저 퇴근한다고 얼마나 욕먹었는 줄 알아?!”
갑작스런 호출에 부랴부랴 모인 경찰대 48기.
멀리 부산이나 제주도에서 근무하는 탓에 오지 못한 동기들을 제외한 모든 동기가 모였다.
“크큭. 선배들 시다 노릇 하느라 고생이 많지? 선배들 속옷 빨래하고, 양말 빨래하고. 어휴. 토 나와.”
“……야, 이 새끼 잡아.”
“오케이.”
수십 명이 일어나 다가오자 종혁은 다급히 항복을 했다.
“미안, 미안. 아, 거 미안하다니까. 대신 벌주 마실게!”
“준호야!”
“어!”
동기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며 1000cc잔에 담긴 맥주를 원샷한 남자 동기가 그 안에 소주를 콸콸 때려 박기 시작한다.
소주를 거의 3병이나 때려 박고, 그 위에 맥주를 병아리 오줌만큼 떨어트린 그.
쿠웅!
“너 오기 전에 딱 이 정도 마셨다.”
“……썩을 놈의 시키들.”
키우라는 간부로서의 함양은 안 키우고 주량만 키운 것 같다.
“어? 뭐라고? 거기에 양말을 말고 싶다고? 누구 세수하고 싶은 사람!”
“나! 나, 나! 나 3일째 못 씻었어!”
“사랑한다.”
“아, 왜!”
“사랑한다고.”
다급히 말린 종혁은 떨리는 눈으로 맥주잔을 응시하다가 이내 눈을 질끈 감으며 폭탄주를 들이켰다.
꿀꺽꿀꺽꿀꺽! 터엉!
“크어어!”
재빨리 안주를 입안에 집어넣으며 킬킬 웃는 동기들을 째려본 종혁은 글라스에 소주를 따랐다.
“다들 잔들 채워 봐! 오랜만에 만났는데 건배는 해야지!”
“오오!”
“역시 최종혁!”
그제야 표정이 풀린 동기들이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각자의 잔을 채운다.
“경찰대 48기!”
“만나서 반갑다!”
“읏샤아!”
채재쟁!
그들의 술자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너 파출소 갔다며? 파출소는 어때?”
“어우, 말도 마. 내가 진짜 민원인만 아니라면……!”
“강력계는 좀 어때?”
“어떻긴. 일 배우느라 대가리 터지지.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여기 땜빵 보이냐?”
“누가 상황 센터 갔다고 했더라?”
부어라, 마셔라.
오늘 이 술집 안에 있는 술을 모두 작살내겠다는 듯 끝도 없이 들이켜는 그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술기운이 알딸딸하게 올라오자 다들 잔을 내려놓고 종혁을 본다.
그에 어리둥절해하다 이내 피식 웃은 종혁도 술잔을 내려놓는다.
“하여튼 눈치는 귀신같이 빠르지.”
“네가 그렇게 만들었어, 새꺄.”
출동을 하면 주변부터 살펴라.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긴장의 끈을 놓지 마라.
언제든 생각하고 또 생각해라.
어떤 사건을 맡든 겉이 아니라 그 속내를 들여다봐라.
피해자가 말을 해도 일단 의심부터 해라.
종혁은 20년이 넘는 형사 생활 동안 겪고 배우며 체득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했었다.
“무슨 일인데? 먹다가 체하기 전에 불어.”
무슨 일이기에 동기들을 전부 모은 걸까.
그들의 눈에 걱정이 서리기 시작한다.
“다들 일은 좀 어때? 할 만해?”
그 질문에 모두 울적해진다.
군 제대 후 호기롭게 시작했던 경찰 생활.
경찰이라는 사명감과 경찰 간부라는 자긍심과 넘치는 열정은 그 어떤 시련의 파도가 와도 이겨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짜 현장은 그들의 생각과 달랐다. 아주 많이.
사람은 그들의 생각보다 몇 십 배 더 영악하고 뻔뻔했으며 처절했다. 피해자인 줄 알았던 사람이 가해자였고, 악마는 곳곳에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싶을 정도로, 이게 정말 현실이냐고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처절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또 너무 쉽게 삶을 포기했다.
현장에 투입된 이후 지금까지 그들이 겪은 죽음만 수십 번.
종혁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씁쓸히 웃었다.
“힘들지?”
그 한 마디가 그들의 심장을 후려친다.
“……씨발! 내 관할에 있는 어떤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폐지 주우며 살고 있어! 하루 온종일 걸어 봐야 고작 이천 원, 삼천 원으로 산다고! 그 거지 같은 냉골 쪽방에서! 자식 새끼들은 30평, 40평 아파트에 떵떵거리며 사는데!”
“평생 모은 전세금을 사기를 당했단다! 막일하고, 식당일 해서 한 푼, 두 푼 힘들게 평생 모은 돈을! 그런데 며칠 후 자살했단다! 일가족 전부!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었는데!”
“8살, 그 어린 것이 집에 먹을 게 없어 도둑질을 했어! 걔가 처음 우리 보고 한 말이 뭔지 알아? 배고파요, 경찰 아저씨였어! 씨발, 이게 말이 돼냐! 부모가 버젓이 있는데 왜 배가 고파!”
“야. 정말 남자는 성추행을 당할 수 없는 거냐? 남자니까 즐겨야 하는 거야?! 어?! 그런 거냐고! 그 어린 것이…… 그 어린 게!”
여기가 정녕 한국이 맞는 걸까.
이들이 정녕 사람이 맞는 걸까.
“그런데 더 좆같은 게 뭔지 알아? 그 어떤 수사도 내 맘처럼 할 수 없다는 거야!”
“이건 이래서 안 된다. 저건 저래서 안 된다.”
“이 사람은 누구의 지인이니 안 되고, 이 사람은 이렇게 잘났으니까 안 되고, 이 사람은 좆도 없으니까 그냥 집어넣고. 씨발, 그럴 거면 수사는 왜 하는데!”
하루에도 수십 번 내가 왜 경찰이 된 건가 하는 후회가 그들의 마음을 흔든다.
“야, 너도 그러냐? 너도 이랬어?”
눈시울이 빨개진 동기들이 종혁을 노려본다.
경찰대 졸업 후 고작 5년여 동안 수많은 사건을 해결한 종혁. 아마 자신들보다 더한 지옥을 보고 겪었을 거다.
“나도 그랬냐라…….”
종혁은 씁쓸히 술을 마시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동기들의 얼굴이 더 일그러진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그들.
“어떻게…… 버텼냐?”
종혁은 어떻게 이 좆같은 상황을 버텼을까.
자신들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한 종혁이기에 다른 수단이 있는 걸까, 그들은 그것이 궁금했다.
있다면 배우기 위해서.
돈이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으니 배우기 위해서.
“너희는 어떻게 버티고 있는데?”
“…….”
“그래, 나도 너희랑 똑같아. 사명감. 개좆같은 사명감.”
마약보다 더 지독한 놈.
“그런데 어쩌겠냐. 이게 내 천직인데, 씨발.”
“……아, 거지 같네.”
그들은 결국 눈물을 흘렸다.
같은 처지, 같은 신세. 친구가 불쌍하고, 내가 불쌍해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든 거다. 특별범죄수사대.”
“응?”
동기들이 담배를 무는 종혁을 본다.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 어떤 범죄자라도 눈치 안 보고 족치기 위해서 만든 거라고.”
“……그거야?”
예전 종혁이 중앙경찰학교에 파견을 나갔을 당시 찾아와 함께 어울려 줬던 여자 동기, 임세라.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몰렸다.
“네가 말하고 싶은 거. 오늘 우리를 불러 모은 이유.”
“어. 지금 좆같지? 근데 내 팀은 안 그래.”
특별범죄수사대는 실적에 대한 압박도 크고, 여러 간부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경찰청장까지 견제를 하는 팀이다.
그러나 이를 모두 감내할 만큼의 권한을, 이들이 바라 마지않는 권한을 지니고 있는 팀이기도 했다.
“수사 영역도 경제, 강력, 외사, 하다못해 경범죄 사건까지 모두 맡을 수 있어. 협조 공문을 보내 봤자 함흥차사인 기관 협조? 좆까라 그래.”
특별범죄수사대는 그걸 무시하고 다 들여볼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 그 정도라고?”
“응. 어때, 끌리지 않아?”
그러니 원하는 사람은 와라.
동기 밑에서 구르는 게 거지 같겠지만, 실력과 실적은 확실히 늘려 준다.
종혁의 미소는 마치 악마의 그것과 같았다.
* * *
신화호텔의 한식당 라온.
VIP룸에 앉은 김용재 상무가 맞은편에 앉은 김부현 상무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건 김부현 상무도 마찬가지다.
바깥에선 대단하다 칭송을 받는다지만, 김용재 상무나 김부현 상무 서로에겐 그냥 하찮은 오빠, 동생일 뿐이었다.
“맛있는 식당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여기야?”
“입가에 묻은 거나 닦고 말하세요.”
“큼……. 누가 맛없대? 너무 많이 먹어서 그렇잖아. 어디 묻었는데?”
“왼쪽, 응. 거기. 그리고 그렇게 말할 거면 외상값이나 갚고 말해. 안 쪽팔려?”
“너나 학창 시절에 빌려 간 거나 갚아.”
“아빠한테 이른다. 오빠가 나랑 밥 안 먹는다고 했다고.”
“얼마라고?”
아무리 차기 회장직을 놓고 싸우는 사이라고 해도 너흰 형제다. 형제끼리 서로의 등에 칼을 꽂지 마라. 한 달에 한 번은 함께 밥을 먹으며 형제간의 우애를 쌓아라.
두 사람의 아버지이자, 삼전그룹의 회장인 김희건 회장의 엄명이다.
김부현 상무는 냉큼 외상금액을 말했고, 김용재 상무는 폰뱅킹을 이용해 곧바로 돈을 부쳤다.
“네 용돈이랑 조카 옷 살 돈도 함께 부쳤으니까 확인해 봐.”
“땡큐!”
“조카는 좀 어때. 이젠 좀 안 울어?”
“안 울긴…… 하.”
순간 김부현의 다크서클이 진해진다.
막 태어났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시시때때로 우는 아들.
“도우미를 쓰는데도 그래?”
“이 엄마가 얼마나 좋은 건지 내 품이 아니면 울음을 멈추지 않아서 그래. 오늘 아침에도 전쟁이었어.”
출근하지 말라는 듯 서럽게 울던 아들.
정말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오빠는? 오빠도 이랬어?”
“우리 애들? 어후, 말도 마. 너 지금은 그냥 우는 것뿐이지? 그때가 천국이다. 걔가 조금만 더 커 봐. 엄마, 이게 뭐야? 왜? 이러는데 사람 미친다, 진짜.”
“한참 뭐든지 궁금할 나이라잖아. 애가 궁금할 수도 있는 거지.”
“네, 네. 나중에 아, 오빠 말을 귀담아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나 마세요.”
“흐응.”
아직 와닿는 게 없는 김부현 상무는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눈을 빛냈다.
“최 팀장님, 아니 최 대장님이 전자 쪽 일을 해결해 줬다며?”
“맞아. 그 친구 뭐야? 왜 이렇게 능력이 좋아?”
고작 그 나이에 본청 과장급.
종혁이 해결한 사건들을 조사해 봤던 김용재 상무는 다시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괜히 최 팀장님과 연계했겠어?”
“M컴퍼니?”
M모텔, M고깃간, M게임센터 등 오직 군인들을 위해 존재하는 M컴퍼니.
대한민국 군부대 위수 지역은 이들이 평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이들과의 연계는 신화호텔의 이미지와 품격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드바 로마노프도 그 친구가 연결시켜 준 거라며?”
M컴퍼니와 함께 위수 지역을, 아니 전 세계의 저가 패션계를 평정한 러시아 SPA 브랜드, 드바 로마노프.
저 일본을 평정하고 세계로 뻗어 나간 한 SPA 브랜드는 이들 드바 로마노프 때문에 매출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는다고 울상일 정도다.
“동아시아 총괄이 최 대장님과 아는 사이야.”
“에바 미진 킴?”
드바 로마노프의 천재, 에바 미진 킴. 김미진.
“애인인가…….”
‘맞을걸?’
김부현 자신의 직감은 그렇다고 말하고 있지만, 남녀사이의 일은 당사자들을 제외하면 모르는 거라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행복의 쉼터 재단 역시 최 대장님과 깊은 연관이 있어.”
움찔!
“권회수 이사장이?”
자신들의 할아버지인 고 김병철 전 삼전그룹 회장 역시 머리를 조아리며 돈을 빌렸던 밤의 황제, 권회수 이사장.
아버지 김희건 회장이 말하길 결코 건드려선 안 될 폭탄이라는 그. 러시아의 복지재단들과 미국의 초대형 복지재단 기빙과 연계를 하며 위세가 더 대단해진 그.
그런 그는 종혁의 오랜 후견인이었다.
“후견인? 언제부터?”
“최 대장님이 고등학생일 때부터.”
“그럼 최 대장이 그렇게 막대한 자산을 형성할 수 있었던 건…….”
“권회수 이사장이 정보를 준 것일 수도 있지. 하지만 최 대장님 본인의 능력도 대단해.”
아무리 누가 뭘 떠먹여 준다고 해도 받아먹는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면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건 맞는 말이지. 흠. 사업 수완까지 좋다라……. 진짜 욕심나네, 그 친구.”
김용재 상무의 입가에 미소가 어리자 김부현 상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내 거야. 안 줄 거야.”
“그 친구도 그렇게 생각하나 보자고. 예, 납니다. 최종혁 대장에 대해 다시 조사해 주세요. 누가 그에게 날을 세우나, 누구와 사이가 안 좋나…….”
“오빠!”
“인간관계까지 싹 다 조사해 주세요. 예. 잘 먹었다. 간다.”
스륵, 탁!
부리나케 사라지는 김용재 상무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김부현 상무는 문이 닫히자마자 돌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빚을 좀 갚은 거면 좋겠는데…….”
후계자에 한발 더 다가서게 만들어 준 M컴퍼니, 그리고 드바 로마노프와의 연계.
이걸로 그에 대한 빚을 조금은 갚을 수 있을 터였다.
호록!
따뜻한 매실차가 그녀의 입안을 향긋한 향으로 물들였다.
* * *
부우웅!
달리는 차 안, 운전대를 잡은 대리기사를 힐끔 본 종혁이 창밖을 보며 방금 전 걸려온 김용재 상무의 전화를 떠올린다.
‘구체적인 날짜를 잡자라……. 뭐지?’
아무리 자신을 좋게 봤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재촉을 할 이유가 없는 김용재 상무.
“뭐, 나야 잘된 일이지.”
무려 삼전그룹의 황태자다.
그렇지 않아도 할 말이 많아 약속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막막했는데, 이렇게 먼저 권해 주니 종혁으로선 땡큐일 수밖에 없었다.
찜찜한 기분을 털어 낸 종혁은 방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일단 말을 하긴 했는데…….”
‘얼마나 지원을 해 주려나.’
아무리 뿌려 놓은 씨앗이라고 해도 응하는 건 그들의 마음.
종혁의 미간이 좁혀지는 순간이었다.
“으악!”
끼이이익!
종혁은 비명과 함께 멈추는 차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