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23화 (523/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23화>

    부우우웅!

    상하이의 외곽도로 위.

    결박이 된 쉬로우 첸이 꿈틀거리며 열변을 토한다.

    “한국 기업에서 보낸 놈들이지? 이런 짓 하면서 얼마를 받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 다섯 배, 아니 열 배를 주지!”

    ‘분명 서대우에 대해 언급했어!’

    게다가 어설펐던 중국어까지.

    혀가 길었던 게 아니다. 한국인이다.

    삼전그룹, 명실상부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라는 삼전그룹이 고용한 해결사들이 분명했다.

    얼마의 돈이 든다고 할지라도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야 했다.

    그래야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다.

    이대로 끌려가면 한 줌의 거름이 되거나 재가 될 터.

    그는 필사적이었다.

    ‘얼씨구? 이젠 열 배네?’

    두 배에서 시작된 베팅이 어느새 열 배가 됐다.

    “아, 거 새끼 더럽게 쫑알거리네. 야! 그거 입 다물게 할 수 없어? 운전하는 데 거슬리잖아!”

    “뭐가 그렇게 급해요? 천천히 해요.”

    “지금 천천히 하게 생겼냐?”

    중국 공안이 개입하기 전에 이 나라를 떠야 했다.

    어쩌면 중국 군대까지 동원될 수 있는 상황. 제대로 된 취조는 그 이후에나 할 수 있었다.

    “그래요! 대장님은 일단 조용히 하세요! 이쪽에 끈도 없으면서!”

    ‘있는데…….’

    웨이 홍이라고 중국 공안의 미친개 한 마리를 알고 있다.

    오직 중국을 위해 일을 하는 형사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종혁 자신의 편을 들어 줄 사람이기도 했다. 아니면 상하이에 있는 국정원 지부나 CIA, SVR 지부를 이용해도 됐다.

    물론 패는 아낄 수 있으면 아끼는 것이 좋기에 종혁은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상황이 어그러지면 바로 써 버릴 테지만 말이다.

    ‘대체 나 없는 동안 외사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얼마나 험하게 지냈기에 최재수마저도 저렇게 귀염성이 사라진 걸까. 종혁은 입맛을 다셨다.

    “밟아요, 밟아!”

    “재수 너도 조용히 해!”

    오택수는 액셀을 더 강하게 밟았고, 차는 상하이 푸둥국제공항을 향해 쏜살처럼 달려갔다.

    부아아아앙!

    빠르게 달려 도착한 상하이 푸둥국제공항.

    “차는 여기다 세워 두면 된다고 했지?!”

    “네. 그쪽에서 알아서 가져갈 거예요. 읏챠!”

    쉬로우 첸을 끌어내린 종혁은 그를 어깨에 짐짝처럼 둘러멨다.

    “큭! 이봐! 마지막이야! 스무 배! 네가 받는 액수의 …… 아니, 네 재산의 열 배를 줄게! 네 통장에 가장 돈이 많을 시기의 열 배!”

    멈칫!

    ‘아, 이건 좀 끌리는데?’

    오택수와 최재수도 순간 혹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젓는다.

    거의 2천억 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아니 그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솔직히 감이 잡히지 않는 종혁.

    아마 이번 금융 위기를 이용하여 더욱더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을 거다.

    ‘그거의 열 배? 에이, 삼전 회장이라도 그건 못 주지.’

    “야. 장난치지 말고 가자.”

    “그럴까요?”

    히죽 웃은 종혁은 공항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을 둘러메고 가서 그런지 집중되는 시선.

    웅성웅성.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발생하는 소음이 쉬로우 첸의 눈과 귀를 때린다.

    ‘뭐야, 여긴? 설마 공항? 그래, 공항이다! 이 멍청한 놈들!’

    “살려 줘! 사람 살려-! 한국인이 중국인을 납치한다! 한국인이 중국인을 납치한다-!”

    “이런 썅!”

    다급히 쉬로우 첸의 입을 막는 최재수.

    하지만 늦었다.

    삐익! 삑!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오는 공항경찰들.

    “멈춰! 움직이지 마!”

    그들을 포위한 공항경찰들이 긴장한 얼굴로 무기에 손을 가져가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펼쳐진다.

    “무슨 일이냐!”

    “당신들 공안이죠!? 나 좀 살려 주세요! 이 한국 놈들이 날 납치하려고 합니다! 난 중국인이란 말입니다!”

    술렁!

    “미친! 타격대에 연락해!”

    “움직이지 마! 손가락만 까딱해도 몸에 구멍을 뚫어 버릴 줄 알아!”

    이젠 총까지 꺼내 든 강력한 위협.

    오택수와 최재수의 입안이 바짝 마른다.

    “대장님, 어떡해요? 뚫어요?”

    “야, 일단 비행기로만 가면 되는 거지? 우리가 막을 테니까 넌 전용기 게이트로 뛰어.”

    길을 열기 위해 앞에 서는 둘의 모습에 피식 웃은 종혁은 쉬로우 첸을 땅바닥에 내려놨다.

    “됐으니까 이놈이나 데리고 있어요.”

    “뭐? 어떻게 하려고!”

    “있어 봐요.”

    “움직이지 마!”

    끼릭!

    당겨지는 격철.

    멈춰 선 종혁은 공항경찰들을 무심히 쳐다봤다.

    “난 러시아 내무부 소속 경찰, 미하일 최 대위다! 현재 러시아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친 범죄자를 비밀리에 검거해 돌아가는 길이니 협조해 주길 부탁한다! 내 말이 의심스럽다면 러시아 내무부에 연락을 해 보도록!”

    공항을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

    종혁의 능숙한 광둥어에 공항경찰과 쉬로우 첸이 경악한다.

    종혁이 중국어를 할 줄은 몰라서 놀랐던 쉬로우 첸은 이내 환하게 웃었다.

    ‘병신 같은 놈!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다니!’

    중국을 얼마나 얕잡아 봤으면 이런 거짓말을 하는 걸까.

    쉬로우 첸은 느긋이 기다리기로 했다.

    “좋다! 정말 그렇다면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알았다! 총을 거둬라!”

    “총 내려. 따라와라!”

    종혁은 이제 어쩔 거냐는 듯 다급한 눈빛을 보내는 오택수와 최재수의 모습에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공항경찰을 따라갔다.

    공항 안쪽의 사무실 같은 공간.

    방금 전 종혁을 포위했던 공항경찰 대장이 종혁에게 담배를 권한다.

    “아, 감사합니다.”

    종혁도 자신의 담배를 꺼내어 대장에게 권했다.

    “후우. 우리나라 말이 능숙하군요. 중국인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들렸다니 다행이군요. 엄청 노력했거든요.”

    “그런데 범죄자라고요?”

    “읍! 으읍!”

    어느새 재갈이 물린 쉬로우 첸이 종혁을 보며 비웃음을 터트린다.

    “우리 러시아의 기술자들을 빼내 중국에 알선하는 놈입니다.”

    “으음.”

    순간 낯빛이 굳는 대장. 눈알이 불길하게 돌아가자 종혁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 이놈, 중국인이 아니라 연변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란 놈입니다.”

    중국인에게 있어 연변인이나 홍콩인은 같은 중국인이 아니다. 그저 중국 외곽에, 중국에 빌붙어 사는 소수민족일 뿐이다.

    “아, 저런. 산업스파이, 아니 브로커군요. 감히 저딴 벌레 놈이 우리 중화의 얼굴에 먹칠을 하다니…… 거기다 우리 한족을 사칭하기까지…….”

    쉬로우 첸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를 하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온 한 경찰이 대장의 귀에 귓속말을 한다.

    그에 놀라 얼굴을 구기며 벌떡 일어나는 대장.

    그 심상치 않은 모습에 쉬로우 첸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지고, 오택수와 최재수가 다급히 덤빌 준비를 한다.

    그 순간 종혁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는 대장.

    “충성. 확인됐습니다. 미하일 최 대위.”

    “……?!”

    경악하는 쉬로우 첸을 비웃은 종혁은 몸을 일으켜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흰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저희가 탑승구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시죠.”

    “밖에 누구 있으면 손수레 가져와!”

    그렇게 종혁들은 공항경찰, 즉 중국 공안의 호위를 받으며 전용기 탑승구로 향했다.

    “……러시아는 대우가 좋군요.”

    “하하. 귀향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아, 그리고 이건…….”

    “읍! 으으읍!”

    손수레에 실려 발버둥을 치는 쉬로우 첸을 힐끔 본 종혁은 피식 웃으며 지갑에 있는 현금 전부와 담배를 대장에게 넘겨줬다.

    “약소하지만 다른 대원들과 저녁에 술 한잔하시면서 나눠 피십시오.”

    담배와 술은 처음 보는 중국인에게 훌륭한 선물.

    “어휴. 뭘 이런 걸 다. 그럼 편안한 여행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죠.”

    도르르르륵!

    출국 게이트를 넘어 복도에 들어서자 오택수의 얼굴이 씁쓸함으로 물든다.

    “원만하게 잘 풀려서 다행이지만 좀 그렇네.”

    만약 자신들이 진실을, 한국 경찰임을 밝혔더라도 이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었을까.

    아마 온갖 핑계로 자신들을 구금했을 테고, 결국 쉬로우 첸을 뺏기고 말았을 거다.

    “어쩔 수 있겠습니까. 이게 현실인걸요.”

    “에이, 씨부럴. 아, 그런데 야. 너 대체 언제 러시아 경찰이 된 거냐?”

    “맞아요! 대장님, 설마 이직하시려고요?! 안 돼요!”

    “이직은 무슨.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미리 부탁해 놨던 거야.”

    아니다. 아까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SVR 요원에게 들으라고 크게 외쳤던 거다.

    “오오오!”

    종혁은 과하게 반응하는 최재수를 무시하며 전용기에 올랐다.

    “이번엔 빠르군요, 최.”

    한 번 전용기를 이용했다 하면 최소 일주일은 지나야 다시 전용기를 이용했던 종혁. 그것도 모자라 그렇게 왕복을 한 뒤엔 거의 몇 달씩 전용기를 묵혀 두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고작 사흘 만에 다시 전용기를 이용하고 있다.

    이제야 연봉값을 하는 것 같아서 기장은 기분이 참 좋았다.

    “하하. 혹시 모르니까 바로 출발해 주세요. 자칫 공안이나 군대가 쫓아올 수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조종실로 들어가는 기장을 일견한 종혁은 쉬로우 첸을 빈자리에 던져 버리곤 재갈을 풀어 줬다.

    “너희…… 대체 정체가 뭐야.”

    대체 뭐하는 놈들이기에 러시아 경찰을 사칭하고도 무사한 걸까.

    정말 러시아 경찰인 걸까?

    아니, 그건 아니었다. 브로커로서 전 세계를 누벼 왔던 쉬로우 첸은 종혁이 러시아인이 아니라는 것에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고려인과 한국인은 그 생김새가 미묘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전용기까지.

    평범한 경찰에게 이런 전용기가 주어질 리가 없었다.

    “너희 해결사 아니지?”

    종혁은 혼란스러워하는 그를 보며 놀라워했다.

    “오오, 그걸 이제 알았어?”

    “너희 뭐야! 정체가 뭐냐고!”

    “우리? 한국 경찰.”

    “……뭐?”

    종혁은 어리벙벙해하는 그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줬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넌 일단 인터폴에 넘겨질 거거든? 그게 그쪽과의 거래라서 말이야. 그럼 이제 남은 건 네가 어느 나라에서 처벌을 받냐는 건데……. 야, 너 한국에서 10년 썩을래? 그냥 중국에서 사형당할래?”

    사형이란 단어에 쉬로우 첸의 낯빛이 검게 죽는다.

    “무, 무슨……!”

    “에이, 왜 이러실까. 너도 위정자들의 습성은 잘 알잖아.”

    중국 정부의 비호를 받으며, 아니 중국 정부의 의뢰를 받아 브로커 일을 한 걸로 추정되는 쉬로우 첸.

    이놈의 입이 열리는 걸 꺼려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거다.

    정치인, 기업가, 중국 공안까지 놈의 뒤를 봐준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거다.

    움찔!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흐음. 뭐, 알았어. 입 다물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내가 죽냐? 네가 죽지? 뭐해요, 앉아요. 비행기 출발하잖아요.”

    “어우, 난 사우나 좀 해야겠다. 아까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지 땀을 많이 흘렸어. 야, 갈아입을 옷 있냐?”

    “전 뭐 좀 먹고요.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아까 먹은 점심 다 소화된 것 같아요.”

    쉬로우 첸의 가방을 꼭 끌어안은 종혁은 안전벨트를 착용하며 눈을 감았고, 쉬로우 첸은 그런 종혁을 떨리는 눈으로 응시했다.

    그리고 결국 떠오르는 비행기.

    기이잉!

    “아, 참고로 너 인천공항에서 인계될 거다. 일단 인터폴에 넘어가면 진술이고 나발이고 모두 끝인 거 알지?”

    인터폴에 넘겨지는 그 순간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면 그는 백 퍼센트 중국으로 송환될 거다.

    “잘 생각해.”

    쉬로우 첸의 가방, 그 안에 있는 노트북과 핸드폰을 두드린 종혁은 그제야 정말 잠을 청했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도 꽤 긴장을 했던 탓이다.

    이윽고 전용기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약 1시간 30분 뒤, 높이 떴던 비행기가 가라앉으며 인천의 정경이 점점 커지자 쉬로우 첸의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한다.

    “어우! 잘 잤다.”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종혁은 승무원에게 부탁해 차가운 커피를 가져다 달라고 말했고, 부스스 일어난 오택수와 최재수도 같은 걸 주문한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정말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눈을 감은 채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쉬로우 첸은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그, 그럴 리가 없어. 서대우가 어디 있는지 찾아야 하잖아!’

    노트북에 강력한 락을 걸어 놨다. 설정한 암호가 아니면 절대 풀리지 않을 락을.

    저건 분명 허세여야 했다.

    쉬로우 첸은 눈을 더 질끈 감으며 애써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려 했고, 일견 잠을 자는 듯한 그의 모습을 본 오택수는 피식 웃으며 종혁을 봤다.

    “야, 그거 포렌식 할 수 있는 거 맞지?”

    “그럼요. 철이가 어떤 놈인지 알잖아요. 해킹으로 펜타곤도 뚫는 놈이에요.”

    “맞아, 맞아. 그것 때문에 형량 거래하면서 영입했었지? 하긴 펜타곤도 뚫는 놈이 그깟 노트북 하나 못 뚫겠냐. 오케이. 알았어. 그럼 난 안심하고 커피 즐긴다.”

    “옙!”

    철렁!

    심장이 내려앉은 쉬로우 첸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감겨진 눈꺼풀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가며 갈등을 하는 눈.

    그사이 착륙한 비행기가 점점 속도를 줄이더니 결국 멈춰 선다.

    “야, 야. 일어나. 다 왔어.”

    느릿하게 떠지는 눈.

    아직 갈등이 채 끝나지 않은 복잡한 눈.

    종혁은 가볍게 무시하며 그의 팔을 잡아 일으켜 열리는 비행기 문을 향해 끌고 갔다.

    ‘미친!’

    계단 아래에 몰려 있는 몇 명의 서양인을 보곤 헛숨을 삼킨 쉬로우 첸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자, 잠깐! 잠깐!”

    “응? 왜?”

    “……정말 내가 다 말하면 나 한국에서 처벌 맞는 거 맞습니까?”

    종혁은 애처로운 그의 표정에 씩 웃었다.

    *   *   *

    웅성웅성.

    “Call!”

    “Stay.”

    “上! 上! 上!”

    “레드…… 레드…… 아아!”

    띠리리리링!

    “워우우우우우!”

    온갖 인종들이 모여 탐욕을 토해 내는 카지노.

    누군가는 따고, 누군가는 잃고.

    또 누군가는 인생역전을, 누군가는 나락을.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인세의 지옥을 만든다.

    그곳엔 염소수염의 서대우도 있었다.

    핏발이 선 두 눈으로 테이블 위를 구르는 주사위를 응시하는 서대우. 그의 옆에 선 여자친구도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이, 이러면 안 되는데?’

    도박을 지지리도 못한다는 서대우. 그래서 카지노에 데려왔건만 무슨 일인지 따고 있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 그녀는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첸은 왜 연락이 안 되는 거야!’

    그러는 사이 붉은 장판을 가로지르며 이리저리 튕겨지던 세 개의 주사위가 결국 멈춰 선다.

    또르르르륵! 투욱!

    “와아아아아……!”

    “그렇지-!”

    승리의 포효를 터트리는 서대우. 구경꾼들도 환호를 터트린다.

    서대우는 여자친구를 와락 끌어안았다.

    “으아악! 또 땄어! 또 땄다고!”

    “꺄아아아악!”

    서로 끌어안은 둘은 방방 뛰며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다.

    “내가 말했지! 도박은 운칠기삼이라고!

    도박은 운칠기삼. 도박은 파도.

    여자친구의 부탁에 못이기는 척 온 사설 카지노.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한화로 약 3천만 원을 잃었는데, 저녁이 되자 따기 시작하더니 벌써 20배 가까운 돈을 벌었다.

    도박 인생 15년 만에 자신에게도 드디어 파도가, 아니 해일이 휘몰아쳐 오고 있었다.

    “딜러! 어서 주사위를!”

    서대우가 흥분해 외치는 순간이었다.

    “대운이 밀려 오셨군요, 손님. 이 기세를 몰아 더 큰 판에서 게임을 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느새 그에게 다가온 두 명의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

    그들의 입에서 나온 영어에 서대우는 순간 혹했다.

    ‘더 큰 판?’

    운이 밀물의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서대우의 눈이 돌아가는 순간 여자친구도 눈을 빛냈다. 그녀는 다급히 서대우의 그의 귀에 대고 입을 열었다.

    “여, 여기서 그만하는 게 좋겠어요. 저들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서려는 여자친구의 말에 짜증을 부리려던 서대우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의 손등에 새겨진 문신을 발견하곤 조용히 침묵했다.

    마음속에선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으라고 외친다.

    “마, 많이 땄잖아요. 여기서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끄응. 이제 파도가 밀려오는데…….”

    “저런 아쉽군요. 부디 즐거운 게임이 되셨길 바랍니다. 환전소까지 저희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니요. 됐습니다. 가자.”

    딜러에게 100달러짜리 칩을 던진 서대우는 칩을 모두 챙겨 환전소로 향했고, 검은 정장의 사내들은 그런 서대우를 뒤따르다 그가 정말 환전을 하자 돌아섰다.

    그러자 그의 여자친구가 한숨을 내쉰다.

    “잘했어요. 정말 잘했어요. 저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게 좋아요.”

    “쯧. 손님이 돈을 딴다고 저렇게 훼방을 놓다니. 벨라, 저런 놈들이 없는 카지노는 없어?”

    이 기세를 이어 가야 한다. 오늘 분명 일을 치러도 제대로 치를 운세였다.

    이미 마약에 절은 서대우의 눈이 흥분에 의해 더 핏줄이 서자 그의 여자친구, 벨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그리고 한꺼번에 너무 많이 따서 그러는 거예요. 왜 자기답지 않게 그렇게 흥분했던 거예요? 꾼이라면서 순 허풍 같아.”

    “크흠. 이게 갑자기 파도가 몰아치니까…….”

    지난 20여 년 도박 인생에 몇 없던 거대한 파도.

    한 번 금전운이 풀리기 시작하니 계속 풀리는 것 같아 흥분했나 보다.

    서대우가 우물쭈물하자 벨라는 고혹적으로 웃으며 서대우의 턱 끝을 검지로 훑었다.

    일단 이 거지 같은 카지노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도 오늘 멋졌어요. 기대해요. 오늘은 도박보다 더 짜릿한 걸 느끼게 해 줄 테니까.”

    “도, 도박보다?”

    콧김이 강하게 뿜어지자 벨라는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일단 올라가요.”

    꼴깍!

    서대우의 목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뜨거운 열락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침대 위.

    벨라가 서대우의 가슴에 안겨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정말 대단해. 자기, 왜 이렇게 정력이 좋아요?”

    “하하하!”

    “돈도 많고, 도박도 잘하고, 정력도 좋고. 너무 완벽한 거 아니에요? 한국 남자는 모두 이런가요?”

    “으하하하하하핫!”

    행복하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모든 게 완벽한 여자친구.

    모든 게 완벽한 삶.

    그리고 오늘 불어닥친 폭풍 같던 운빨까지.

    서대우는 매일이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좀 특별하긴 하지! 으하하하핫!”

    “그런데 어떡해요. 도박을 더 하지 못해서?”

    “괜찮아. 내가 행운의 여신을 품었는데, 이 운이 도망칠까. 이따가 내일 또 가면 돼!”

    ‘뭐라고? 안 돼!’

    내일도 오늘 같을 순 없을 테지만, 벨라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걸 겉으로 드러낼 만큼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꺄! 그럼 오늘은 나랑 함께 있는 거네요?”

    “흐흐. 각오해. 오늘 재우지 않을 거니까!”

    “정말요?!”

    다시 확인을 한 벨라가 비명을 지르며 서대우를 끌어안고, 서대우는 가슴에 닿는 그녀의 큰 가슴에 웃음을 터트렸다.

    서대우에게 안겨 싸늘하게 눈을 빛낸 그녀는 이내 곧 다시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서대우의 볼을 쓸어내렸다.

    “자기, 우리 조금 더 좋은 거 해 볼래요? 물론 자기 힘이 센 건 아는데, 그러면 나만 좋잖아요. 자기도 같이 즐길 수 있는 걸해요, 우리.”

    “나도? 조금 더 좋은 거?”

    “네. 아주 좋은 거. 한 번 해 버리면 맛이 들려 또 해 버리는 거.”

    결코 헤어날 수 없는 늪. 한 번 빠져 버리면 결국 죽고마는 천국 같은 지옥.

    침대 옆에 놓인 핸드백을 가져오는 그녀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제 이걸로 서대우는 정말 지옥에 빠지게 될 거다.

    ‘내일 도박도 제대로 못할 거야!’

    벨라는 서대우를 완전히 마약에 절이기로 마음먹었다.

    그 순간이었다.

    꽈아아앙!

    “뭐, 뭐야!”

    다급히 일어난 서대우는 방 안으로 들어오는 덩치 큰 사내, 종혁을 발견하곤 굳어 버렸다.

    “어이구. 좋은 시간 보내는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서대우 씨. 경찰입니다.”

    “뭐, 뭐?!”

    “거기 꽃뱀도 이리 오시고.”

    손을 까딱이는 종혁이 사납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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