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20화>
경찰 본청의 취조실.
거울유리 너머에 도착한 김용재 상무가 취조실 안에 있는 김학일을 죽일 듯 노려본다.
“아, 오셨습니까.”
방금 전 씻은 건지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며 들어오는 종혁의 모습에 김용재 상무의 눈이 흔들린다.
“……정말 감사합니다, 최 대장님.”
검찰에서는 두 달이나 쫓았음에도 찾아내지 못했던 범인, 아니 범인 중 한명을 찾아냈다.
고작 일주일도 안 돼서.
“최 대장님께서 이렇게 대단하신 분인지 미리 알았더라면…….”
“하하. 전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모두 제 우수한 팀원들이 노력해 준 덕분이죠. 그리고 미리 아셨다고 해도 제가 미국 연수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건을 맡을 순 없었을 겁니다.”
“아, 신문으로 봤습니다. 뉴욕에서 맹활약을 하셨다고요.”
뉴욕에서 손꼽히는 마피아 조직을 일망타진하고, 뉴욕시의 시장까지 끌어내렸다는 기사를 발견했을 땐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다.
“활약은 무슨. 아하하.”
어색하게 웃는 종혁의 모습에 더 신뢰 어린 표정을 지은 김용재 상무가 눈빛을 가라앉혔다.
“그런데 정말로 일본 기업에서 접근을 한 거라고요.”
몇몇 핸드폰 제조 기업의 이름들이 김용재 상무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일단 정황상 그렇기는 합니다.”
어느 기업인지는 곧 밝혀지게 될 거다.
“그럼 감상하고 계십…….”
벌컥!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의 모습에 종혁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펴진다.
‘아주 몸이 달았구만, 달았어.’
“충성.”
“반갑습니다, 상무님. 경찰청장인 박종명입니다.”
“대단한 분을 부하 직원으로 두셨습니다. 김용재입니다.”
김용재 상무의 목소리에 서린 온기에 박종명의 입술이 꿈틀거린다. 그는 종혁을 봤다.
“저놈이야? 저놈부터 하려고?”
“그렇습니다.”
“흠. 미인계를 쓴 그 여성부터 취조하는 게 낫지 않겠어?”
“그쪽은 국적이 일본이라서 말입니다.”
“……하긴 그렇군. 그럼 그쪽은 포기해야 되는 건가?”
“그게 무슨 말입니까? 포기하다니요?”
김용재 상무가 불쾌해하자 박종명은 얼른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보다 종혁의 말이 빨랐다.
“아, 그건 걱정 마십시오. 곧 일본 경시청에 있는 지인이 도착할 테니, 그때 함께 참관 조사를 하면 됩니다.”
“설마 그 여자를 인계받으러 온다는 경시정이?”
“예, 그렇습니다.”
순간 박종명의 눈이 흔들린다.
무로이 코헤이 경시정. 사상 최연소의 경시정이자, 후에 경시총감으로 꼽히는 엘리트 중 엘리트.
대대로 경시청 높은 자리를, 몇 명의 경시총감을 배출 한 경찰 가문의 장남.
종혁은 김용재 상무를 봤다.
“아마 기업 이름까진 밝힐 수 없을 겁니다.”
무로이 코헤이의 입장도 있기에 공식적으로 밝혀낼 순 없을 거다.
아니, 그 전에 미즈하라 키코에게 접근한 걸로 추정되는 브로커가 누구의 의뢰를 받았다는 등의 말을 그녀에게 했을 정도로 멍청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브로커가 누군지는 밝혀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무로이 코헤이가 그 브로커를 확보해 의뢰를 한 기업이 누군지 밝혀낼 거다.
그리고 은밀히 그곳이 누군지 알려 줄 거다. 혹여 공식적으로 말해 버리면 무로이 코헤이의 커리어에 금이 가니 말이다.
이 말은 즉, 이번 사건의 배후가 누군지 알아낸다고 해도 당장 별다른 조치를 할 수 없다는 말과 같았다.
“……그래도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적이 누군지 아는 것만으로 충분한 성과였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흠.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박종명 경찰청장에게 거수경례를 한 종혁은 서류를 들고 취조실로 향했다.
끼익!
문이 열리자 흠칫 놀라 쳐다보는 김학일.
종혁은 그 맞은편에 앉으며 캠코더를 켜고, 노트북을 폈다.
“김학일 씨, 당신은 현재 삼전전자의 기밀 기술을 타국 기업에 유출한 혐의로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인정하시죠?”
“아직…… 유출하진 않았습니다.”
“그건 차차 조사해 보면 알겠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름?”
“김학일입니다.”
나이, 성별, 그딴 기초적인 프로필을 작성한 종혁이 김학일을 본다.
“본격적인 취조 전에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정말 변호사는 필요 없으십니까?”
김학일이 씁쓸히 웃는다.
“절 변호해 줄 사람이 있긴 합니까?”
다른 곳도 아닌 삼전그룹의 일이다. 승소할 자신이 있다고 해도 웬만한 변호사는 맡으려고 하지 않을 거다.
“알겠습니다. 그럼 사건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죠.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천천히 말해 주시겠습니까?”
“그때가 아마…… 5월 중순쯤이었을 겁니다.”
퇴직 통보를 받은 게 말이다.
갑작스런 퇴직 통보에 혼이 나간 김학일은 마치 홀린 듯 월차를 내고 미국에 있는 아내를 찾아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더 이상 생활비를 부칠 수 없으니 딸의 유학을 관두게 해야 할 터. 미안하고 괴로운 마음을 품고 미국으로 간 김학일은 웬 흑인 남자와 외도를 하는,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이 부쳐 주는 생활비로 마련한 집에서 외간 남자와.
충격과 배신.
그뿐만이 아니다.
열심히 음악 공부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딸도 몸 여기저기에 문신을 한 채 거의 빨개 벗은 옷차림으로 웬 남자에게 안겨 있었다. 분명 대학에 있을 시간일 텐데도 말이다.
혼이 나간 그는 근처 호텔에서 하루 지내고는 그냥 돌아와 버렸다.
“무려 8년입니다! 8년! 내가 그년들에게 개처럼 헌신한 세월이! 그런데……!”
“저런. 그냥 그 남자 새끼를 총으로 쏴 죽이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랬다면 정당방위를 받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누군가 집에 침입해 아내를 겁탈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한다면 무조건 정당방위다. 한국은 아니지만 미국에선 그랬다.
김학일의 아내도 외도에 대한 혐의를 벗기 위해 바람을 피운 상대를 강도강간범으로 몰아갔을 테니 김학일은 약간 고생만 했다면 모든 걸 원만하게 마무리 지었을 거다.
미국의 일은 그렇게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와 간통죄로 신고하면 됐다.
아직은 한국에 간통죄가 살아 있는 시기. 그동안 붙인 생활비뿐만 아니라 위자료까지 청구할 수 있었을 거다.
“그, 그런…….”
“그래서요? 그래서 이성을 잃고 기술을 훔치려고 하신 겁니까?”
움찔!
정신을 차린 김학일이 눈을 붉힌다.
“아닙니다! 그,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그동안 헤드헌터나 브로커들의 접근이 있었을 때 이미 일을 저질렀을 겁니다!”
20년을 근속했음에도 여전히 과장에 머물러 있는 만년 과장. 그들에게 김학일은 참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었을 거다.
아내와 딸이 미국으로 떠난 뒤에 생활이 궁핍해져 여행지를 대마도로 바꾸게 되었을 때도 쫓아와 매달리던 브로커도 있었다.
“그 사람들 얼굴 기억하십니까?”
“……기억합니다.”
“이따가 몽타주를 그리도록 하죠. 그래서요?”
“아, 알겠습니다. 그, 그런 와중에…… 아무튼 집에 돌아갈 의미도 없고, 현재 개발하고 있는 기술은 마무리하자는 심정으로 야근을 하던 중 실장실에서 나오는 서 과장을 발견한 겁니다.”
거의 자정을 넘긴 시각, 메모리사업부 기술개발실의 홍 실장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서대우 과장을.
놀라 경악하는 찰나에 서대우 과장이 다급히 제안을 해 왔다. 감언이설로 꼬드겼다.
“그때 그냥 무시했어야 했는데…… 회사에 알렸어야 했는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하지 마시죠. 그런 분께서 자신이 개발한, 그러나 회사에 귀속된 기술을 빼내신 겁니까?”
아무리 회사에 앙심이 있다고 한들 그에게 지급될 퇴직금이 무려 3년 치 연봉이었다. 거기에 연금에 사는 집까지 있으니 충분히 죽을 때까지 풍족하진 않아도 적당히 쓸 수 있었다.
거기다 5년 후면 다른 기업 취직에 대한 제한도 풀린다. 핸드폰 후발 주자들이라면 어떻게든 모시고 가고 싶은 게 바로 김학일 같은 인재였다.
“…….”
종혁은 입을 다무는 그를 보며 담배를 물었다.
“후우. 그래서요? 그렇게 기술을 탈취한 이후 아내를 피해 부산까지 간 것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미즈하라 키코와는 어떻게 만난 겁니까?”
“……제가 퇴사하기 사흘 전에 키코가 절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안 것인지 몰라도 힘들 때 때마침 찾아온 키코는 자신을 위로해 주었고, 거제도에 집을 빌려서 자신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키코가 먼저 고백을 해 왔다.
“이후에는…… 형사님도 아시는 대로입니다.”
“부산 기장군에는 왜 가신 겁니까?”
“……아내와 연애를 할 적 갔던 곳입니다.”
서울을 벗어나 처음으로 간 여행지. 그곳에서 불타는 사랑을 나눴고, 김학일은 그때 결혼에 대한 결심을 했었다.
“형사님, 키코는 정말 이 일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그건 조사하면 나올 일이죠. 그보다 기술은 대체 어떻게 빼낸 겁니까? 알고는 있지만, 조서를 써야 하니 한번 들어 보기로 하죠.”
아니다. 검찰이 넘긴 자료에는 이 부분이 나와 있지 않았다.
“제가 묻고 싶군요. 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서 과장이 말하길 백도어로 빼낸 거라서 절대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서대우가 범행을 저지르는 모습을 발견했던 김학일.
그는 그것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기술을 흔적 없이 빼낼 수 있는 방법을 공유 받았었다.
‘역시 백도어였나.’
그래서 유출 기록이 늦게 발견된 것 같다.
“삼전에서 일하셨었으면서 삼전의 기술력을 무시하시는군요. 아무튼 알겠습니다.”
이제 조사할 건 다 조사한 것 같다.
마지막 하나만 남기고 말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서대우씨가 어딜 간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까?”
“아니요……. 후, 그보다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모든 걸 포기한 듯한 말투.
종혁은 죄를 짓고도 사죄는커녕 그냥 포기해 버리는 모습에 눈빛을 차갑게 굳혔다.
“명백한 증거가 나온 이상 산업기밀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미 기술이 넘어갔다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억 이하의 벌금.
미수에 그친 것이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것이다.
‘너무 약하단 말이야.’
수백, 수천억을 들여 만든 기술을 훔쳤음에도 최대가 고작 10년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국의 법은 너무 약했다.
“그, 그런……!”
그러나 김학일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형량이 셌는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종혁은 그 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설마 이 정도도 각오하지 않았던 겁니까? 난 또 술술 불기에 다 알고 그러시는 줄 알았습니다.”
“…….”
“뭐, 협조를 잘해 준다면 형량이 좀 낮아질 수도…….”
“혀, 협조요?”
“1차 조사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몽타주를 그려 보도록 하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몽타주, 김학일에게 집요하게 접근한 브로커에 대한 모든 걸 말해 줄 협조.
종혁은 사건 자료와 노트북을 챙기며 몸을 일으켰다.
경찰 본청 로비.
종혁은 로비 안으로 들어오는 검은 정장의 무리와 그 선두에 선 일본 경찰 제복을 입은 무로이 코헤이를 발견하곤 미소를 지었다.
“쿄 형.”
“종혁.”
뜨겁게 악수를 하는 둘.
“그 팔자주름은 더 깊어졌네요.”
“쯧. 인사해. 이쪽은 이번 출장에 함께하게 된 경시청 형사들.”
“아는 얼굴이 몇 보이네요.”
예전 경찰대 시절 일본에 교류를 갔을 때 탈옥 사건을 해결하며 마주쳤던 형사들 중 몇 명이 보인다.
그들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일본의 자존심을 뭉갰던 악적, 최종혁.
덕분에 사건을 해결하긴 했지만, 그때 일본 유도의 자존심이 뭉개졌기에 좋게 볼 수가 없었다.
“올라가시죠. 청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음.”
경찰청장실에서 간단히 다과와 대화를 나눈 둘은 다시 취조실로 내려왔다.
따로 무로이 코헤이를 불러낸 종혁은 담배를 권하며 물었다.
“어딥니까?”
“너도 알 만한 곳이지.”
종혁은 순순히 말할 생각이 없는 무로이 코헤이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벌써 외압이 들어간 겁니까?”
“…….”
‘맞네.’
차라리 입을 다물지언정 거짓말은 하지 않는 무로이의 성정을 보면 맞는 것 같다.
“참사관, 범인을 인계받을 준비가 됐습니다.”
참사관. 일본 공무원 고유의 직책으로, 과장과 부장 사이의 직책이지만 꽤 중요한 직책이다. 위로 향하기 위해서라면 꼭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직책.
종혁은 대화에 난입하는 형사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하? 기본 조사도 안 끝났는데 누구 맘대로?”
“일본인이다, 한국 경찰.”
“그 일본인이 한국인과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지. 어휴, 같은 일본인으로서 아주 자랑스러우시겠어.”
“뭐야!?”
“그만.”
관자놀이를 누른 무로이 코헤이는 형사를 지그시 쳐다봤다.
“간단한 조사는 이곳에서 한다.”
“참사관!”
“그게 예의다. 경시청 형사로서 본을 보이도록.”
“……핫!”
‘지랄.’
코웃음을 친 종혁은 무로이 코헤이에게 김학일을 통해 만든 몽타주를 보여 줬다.
“얩니다. 김학일을 자주 쫓아다닌 놈이. 이름은 다나카 타로.”
일본인이라면 누가 들어도 가명 같은 이름이다.
움찔!
혀를 찬 무로이 코헤이도 사진을 한 장 내민다.
“이놈이야. 미즈하라 키코에게 돈을 입금한 걸로 추정되는 놈이.”
“……같은 놈이네요.”
CCTV에서 딴 사진인 듯 화질은 구리지만, 형사의 눈으로 보니 똑같이 생겼다.
‘능력 좋네, 씨불놈.’
즉, 놈은 김학일의 어려운 사정을 알아차린 것도 모자라 인간 관계까지 파고들고, 김학일에게 애정을 품고 있는 미즈하라 키코에게 접근해 한편으로 끌어들인 거다.
“들어가시죠.”
“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갑을 찬 채 앉아 있던 미즈하라 키코가 일어서려다 무로이 코헤이의 소개에 하얗게 질린다.
“경시청 참사관인 무로이 코헤이 경시정이다. 미즈하라 키코, 널 데리러 왔다.”
“겨, 경시청!”
일본 국민들에겐 악명이 더 높은 경시청.
그럴 수밖에 없다.
경시청이 형사 사건을 담당했을 때 유죄를 받을 확률 90퍼센트 이상. 경시청에게 걸렸다가는 억울한 사람도 유죄를 받는다는 말이 상식으로 통용될 정도로 악명이 높다.
무로이 코헤이는 미즈하라 키코와 다나카 타로가 카페 같은 곳에서 함께 있는 사진을 내려놓았다.
“미즈하라, 이놈이 뭐라고 했지?”
미즈하라 키코는 무로이 코헤이의 강압적인 말투에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었다.
터엉!
“말해! 나라 망신을 시킨 죄로 더 심한 처벌을 받기 전에!”
“히익! 그, 그게……!”
종혁과 무로이 코헤이는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기, 김 상이 심리적으로 몰려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가서 위로해 주라고. 그러는 김에 이제 이혼을 하며 돈을 모두 뺏길 김학일이 큰돈을 벌 수 있게 해 주라고.
다나카 타로라는 브로커는 그렇게 그녀를 꼬드기며 김학일이 퇴사하기 사흘 전 그녀를 김학일에게 보냈다.
거제도에 집을 빌린 것 역시도 다나카 타로의 설계.
“흠. 이 브로커는 김학일이 기밀 기술을 탈취했다는 걸 몰랐던 것 같지?”
만약 알았다면 이미 김학일을 일본으로 빼돌렸을 거다.
“아마 김학일의 머릿속에 있는 기술 지식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죠. 개발한 모든 걸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얼개는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러면 기술 개발에 조언을 해 줄 수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김학일은 엄청난 대우를 해서라도 모셔야 할 인재였다.
“쯧. 미안하군. 일본인으로서 사과하지.”
“뭘요. 됐습니다.”
어쩌다 보니 일본 기업이 얽혔을 뿐, 지금도 전 세계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 일어난다.
그것이 산업 스파이의 세상. 딱히 일본이라고 욕할 마음은 없었다.
“……고맙군.”
“그보다 미즈하라 키코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이 많은 아저씨를 사랑해 버린 미즈하라 키코.
일본에선 제법 흔한 일이다.
“산업기밀 유출을 도운 공범으로 처벌되겠지.”
안타까우면서도 안타깝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어도 범죄는 범죄.
종혁과 무로이 코헤이는 그걸 옹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럼 가 보지.”
“벌써요?”
“비행기표를 예약해 놔서.”
“애초부터 그냥 데려갈 생각이었구만? 쩝. 그래서 어느 기업인지는 끝까지 말 안 해 줄 거죠?”
“……다음에 봐. 의견을 묻고 싶은 사건들도 있으니까.”
“에휴.”
무로이 코헤이가 내미는 손을 잡은 종혁은 손바닥에 닿는 감촉에 살짝 놀랐다가 이내 혀를 툴툴 찼다.
“거 만날 나만 빨아먹으려 들고. 그러다 진짜 삐집니다.”
“하하. 다음엔 좋은 일로 보자고.”
“그래요, 그래. 다음에 일본에 가면 마스터에게나 들르죠.”
무로이 코헤이와 처음 만나 탈옥 사건을 해결했을 때, 갔던 시부야의 작은 바(BAR) 시라사기.
예전엔 사기꾼들에게 사기를 설계해 주거나 브로커 짓을 하던 인물로, 현재는 개과천선한 상태다.
“그렇지 않아도 마스터가 언제 들르냐고 은근히 묻더군. 꼭 가자.”
옅게 웃은 무로이 코헤이는 웃음을 터트린 자신 때문에 놀라는 형사들의 모습에 낯빛을 굳히며 경찰 본청 건물을 빠져나갔고, 로비까지 배웅한 종혁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끌려가는 미즈하라 키코와 무로이 코헤이를 응시하다 손에 쥐고 있는 쪽지를 펼쳤다.
“흐응. 이 기업이었어?”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상무님. 어디십니까? 아직 본청 안에 계시면 저 좀 보시죠?”
싱긋 웃으며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갑자기 울리기 시작한 전화에 눈을 빛냈다.
“예. 저예요. 오 경감님.”
-최 대장, 찾았어! 서대우 행방!
“……어딥니까?”
종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