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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19화 (519/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19화>

커다란 창문을 통해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집.

파스텔톤과 하얀색이 가득한 거실, 커다란 TV 앞에 선 김학일과 미즈하라 키코가 둥근 막대 같은 것을 쥔 채 격렬하게 몸을 흔든다.

“얍! 얍얍!”

“차압!”

그들이 손을 흔들 때마다 똑같이 손을 흔드는 TV 속 커다란 3D 캐릭터, 라켓을 쥔 둘 캐릭터 사이에서 테니스공이 빠르게 오간다.

“얏챠!”

“아으으!”

머리를 쥐어뜯던 김학일은 이내 곧 털썩 주저앉으며 거친 숨을 몰아쉰다.

“에에. 김 상, 벌써 힘들어요? 체력이 너무 약한 거 아니에요?”

“키코도 내 나이 돼 봐. 병을 걸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야.”

“부우. 늙은이.”

“그래도 침대 위에선 누구보다 체력이 좋지?”

“그거 반칙.”

“응? 뭐가?”

“아무튼 반칙!”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삐죽 내민 미즈하라 키코는 게임기를 정리하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그 순간 갑자기 울리는 그녀의 핸드폰.

지이잉!

“…….”

문자의 내용과 발신자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하지만 그녀는 곧 문자를 지워 버린 후 표정을 애써 밝게 하며 차를 타 김학일에게 다가갔다.

한 잔씩 나눠 들고 1층의 테라스로 향하는 둘.

살랑 불어오는 가을의 찬바람이 둘의 몸을 뜨겁게 달군 땀을 천천히 식힌다.

햇빛이 보다 덜 드는 자리에 앉은 미즈하라 키코가 냉큼 김학일의 생강꿀차를 강탈해 오듯 가져와 입에 가져갔다가 얼굴을 구긴다.

“으웨. 진짜 이건 무슨 맛으로 마시는 거…… 왜 그래요?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싶어서.”

매일매일이 꿈만 같다.

그래서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게 무섭고, 눈을 떴을 때 미즈하라 키코가 옆에 없으면 불안해진다.

부엌에서 식사를 차리는 그녀를 보고서야 안심을 하는 하루하루.

세상에 신이 있다면, 이것이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라면 부디 깨지 않기를 김학일은 간절히 바래본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잖아요. 이젠 행복해도 돼요. 당신은 그럴 자격 있어요.”

“응. 키코 덕분에 행복할 수 있어서 감사해.”

“아이, 참. 그런 말은 아닌데…….”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애정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던 김학일은 결국 치솟는 애정을 참지 못하고 그녀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에 눈을 감고 입술을 내미는 그녀.

보드랍게 뭉개지는 입술.

코끝을 간질이는 복숭아 향기.

모든 게 참 좋았다.

둘은 잠시 짧은 행복의 시간을 가졌다.

“김 상은 정말 입맞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하. 남자라면 어쩔 수 없는 거야.”

김학일은 그런 변명을 하며 방금 전 입맞춤을 할 때 거슬렸던, 허리에 채워진 열쇠고리를 풀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응? 이거 김 상이 계속 몸에 지니고 다니던 거 아니에요? 딸이 준 선물이라고.”

엄지손가락 크기의 작고 귀여운 호랑이 인형이 달린 열쇠고리.

“글쎄…… 이젠 몸에서 떼어 놔도 될 것 같아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김학일이 열쇠고리를 그녀에게 내민다.

“한번 만져 볼래?”

“그래도 돼요? 와아. 부드러워.”

매끈한 플라스틱을 어루만지며 신기해하는 미즈하라 키코.

“마음에 들면 가져.”

“네?”

“너라면 내 모든 걸 줄 수 있으니까.”

“김 상…….”

둘의 눈에 다시 사랑이 싹튼다.

그 순간이었다.

“흐음. 그겁니까?”

흠칫!

기겁하며 고개를 돌린 김학일과 미즈하라 키코는 울타리 밖에 서 있는 덩치 큰 사내, 종혁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누, 누구?”

“밀항을 하셨을 거라 생각했는데, 거제도에 숨어 계실 줄은 몰랐군요. 그것도 이렇게 좋은 집에서 말입니다.”

그랬다. 김학일이 현재 있는 곳은 부산 바로 옆의 섬, 거제도였다.

훌쩍 울타리를 뛰어넘은 종혁이 그에게 다가간다.

“뭐, 뭡니까! 누구신데 지금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십니까!”

미즈하라 키코를 보호하며 종혁을 막아서는 김학일.

종혁은 그에게 경찰신분증을 보여 주었다.

“많이 찾았습니다, 김학일 씨. 경찰입니다.”

쿵!

김학일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테라스, 김학일은 맞은편에 앉은 종혁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경찰이 왜 저를 찾아온 겁니까?”

종혁은 담담히 가라앉은 그의 눈을 보곤 피식 웃었다.

“연기에 소질이 있으시군요. 깜빡 속을 뻔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그거야 그 인형, 아니 USB를 보면 알겠죠.”

흠칫!

다급히 호랑이 인형을 잡아채는 김학일.

그러나 종혁의 손이 빨랐다.

호랑이 인형의 목을 뽑은 종혁은 그 안에 있는 USB포트에 입술을 비틀었다.

“순순히 따라나서시겠습니까, 아니면 끌려가시겠습니까?”

“그건 내 충성의 대가입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충성했는데! 고작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불을 토해 내는 김학일.

그러나 코웃음을 친 종혁은 수갑을 꺼내 들었다.

“김학일 씨, 당신을 산업기술 유출방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불리한 진술을 번복할 수 있고, 체포구속적부심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철컥!

김학일의 양손에 수갑을 채운 종혁은 그 모습을 보곤 파르르 떠는 미즈하라 키코를 향해 다가갔다.

김학일이 일본으로 여행을 갔을 때 1년에 한두 번은 꼭 만남을 가져왔던 미즈하라 키코.

혹시나 하여 그녀의 행적을 추적하자, 최근 거제도에 집을 빌렸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그녀를 찾지 못했다면 김학일을 찾는 데 정말 오래 걸렸을 것이다.

“자, 잠깐! 그녀는 이 일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녀는 제 친구의 조카…….”

“미즈하라 키코 씨, 당신 역시 체포합니다. 한국에 오시기 전 정체불명의 계좌에서 거액의 돈을 받은 기록이 있더군요.”

한화로 약 8천만 원.

종혁은 그 돈이 브로커가 미즈하라 키코에게 김학일을 회유하는 대가로 지불한 것이 아닐까 짐작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했다.

미즈하라 키코는 수갑을 빼 드는 종혁의 모습에 다급히 김학일을 봤다.

자책, 슬픔, 아픔으로 일그러진 눈으로 김학일을 봤던 그녀는 깜짝 놀랐다.

김학일은 그녀를 바라보며 씁쓸히 웃고 있었다. 마치 전부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아, 아니에요! 난 진심이었요! 정말 당신을 사랑했다고요! 아니, 지금도 사랑해요!”

“알고 있어.”

“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키코, 너는 고등학생이었잖아.”

오래전 일본으로 여행을 갔던 그날.

그날도 이렇게 햇살이 쏟아지는 가을이었다.

일본에 여행을 갔다가 친구와 만나려고 카페 들렀던 김학일은 자신의 친구를 따라왔던 어린 소녀, 미즈하라 키코와 처음 만나게 됐다.

그때는 서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을 만한 관계도 아니었고, 고등학생이 자신에게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접근했으리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아마 어떤 인간이 순진한 널 꼬드긴 거지? 난 믿어, 키코.”

“김 상…….”

‘지랄을 한다.’

“형사님! 키코는 정말 이 일과 상관이 없습니다!”

김학일이 한심해하는 종혁을 쳐다보며 울부짖는다.

“예, 예. 자세한 사정은 취조실이라는 조용한 곳에서 알아보도록 하죠. 그러니 순순히 손 내미세요, 미즈하라씨.”

“이익! 내가 개발한 기술을 가져왔을 뿐인데 이게 무슨 죄란 말입니까!”

김학일 스스로가 생각하는 정당한 퇴직금, 충성의 대가. 그것은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내와 회사 때문에 눈이 돌아갔던 김학일이 생각한 미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자, 최고의 복수였다.

“서 과장, 아니 서대우 그 인간처럼 다른 기술을 빼돌린 것도 아니잖습니까!”

쿵!

“……뭐요?”

종혁은 입을 떡 벌렸다.

‘어…… 그러니까 스파이가 둘이라고?’

*   *   *

김학일이 잡혔다.

범인 중 한 명으로.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댄 박종명 경찰청장이 관자놀이를 꾹 누른다.

-일본이…… CCTV 기록을 넘겼단 말입니까? 그 일본이?

자신들 검찰이 그렇게 요청했을 때는 콧방귀도 뀌지 않던, 일본인의 개인신상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김학일이 일본에서 쓴 금융거래 기록만 겨우 보냈던 일본이 말이다.

-……최종혁. 컨트롤되는 거 아니군요. 됐습니다. 그냥 사건 내놓으세요. 지금부터는 검찰이 맡겠습니다.

“흐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뭐요?! 박 청장! 정말 이럴 겁니까!

“사건은 이미 저희 경찰에 넘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다시 달라, 말라…… 좀 이상하군요.”

-박 청장! 이러면 당신한테도 안 좋아! 알아?! 나를 적으로 돌리고도 당신이 발 뻗고 잘 수…….

“그럼 끊겠습니다.”

전화를 끊다 못해 전화선을 뽑아 버리고 핸드폰도 멀리 던져 버린 박종명은 코웃음을 쳤다.

삼전의 장남인 김용재 상무가 얽힌, 그것도 김희건 회장이 지켜보는 사건에 수작을 부렸다.

물론 그러고도 범인을 잡았다면 상관없었겠지만, 삽질만 하다가 끝난 수준. 아니, 그러다 못해 겉으로는 감히 삼전이 맡긴 일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여졌다.

이제 차장검사는 더 이상 위로 올라가기는커녕 옷을 벗어야 할 처지에 처한 거다.

이럴 땐 바로 관계를 끊어야 했다.

“그보다…….”

종혁과 특별범죄수사대의 능력이 상상 이상이다. 꼭 굳이 쳐내야 할까 하는 생각이 슬쩍 고개를 들 정도로.

“일단은…… 유화적인 모습을 보여야겠지.”

쁘락지를 붙이려고 했는데, 그를 따돌리고 끝내 김학일을 검거한 종혁.

자신이 쁘락지를 붙이려 했던 걸 눈치챈 거다.

차장검사는 모를 핸드폰을 꺼내 든 그는 종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최 대장. 필요한 건 없나?

이 상황도 종혁도 모두 마음에 들진 않지만, 종혁이 사건을 해결한다면 경찰청장인 자신에겐 좋은 일.

삼전 김희건 회장이, 못해도 김용재 상무가 박종명 자신을 지켜봐 줄 거다.

박종명의 목소리가 너그러워졌다.

*   *   *

2008년 6월의 어느 날, 삼전전자의 복도.

온갖 물품이 담긴 작은 박스 하나를 든 장년인, 서대우가 안 그래도 왜소한 어깨를 더욱 움츠린 채 복도를 걷고 있다.

162cm, 남자치곤 굉장히 작은 체구에 염소의 그것처럼 난 수염. 복도를 지나는 사람들이 그런 그를 애써 외면한다. 또 누군가는 그런 그를 비웃는다.

패배의 상징. 퇴사자.

전염병에 걸린 사람 곁에는 있는 게 아닌 듯, 괜히 친한 척이라도 했다가는 인사 고과에 안 좋은 영향이 끼칠 수 있다.

그에 서대우는 발끈했지만 이내 신경을 껐다. 아니,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천천히…… 천천히…….’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도록.

그는 평소처럼 피로에 다크써클을 늘어트리며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띵! 스르릉!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기 시작하자 작게 쉬어지는 한숨.

그 순간이었다.

터억!

엘리베이터의 문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다시 엘리베이터 문을 여는 손.

“서 과장님.”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던 서대우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다.

“홍 실장님…….”

키가 큰 사십 후반의 사내와 그 옆에 서 있는 삼십대 사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삼십대 사내의 모습에 서대우가 씁쓸히 웃는다.

“뭐가 그렇게 급해서 이 후배들이 작별 인사를 할 틈도 안 주고 가 버리십니까. 섭섭합니다.”

잘생긴 외모처럼 사람 좋은 미소가 가득한 홍 실장의 말에 서대우는 다시 발끈했다.

‘내 인사를 피한 건 너희잖아!’

거기다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게 바로 눈앞의 홍 실장이다.

자신이 있는 부서의 장, 홍 실장.

예전엔 서대우 자신이 있던 부서의 신입사원이었던 그.

서대우의 이가 악물어진다.

“……홍 실장님, 아니 이제 관계없지. 홍 실장이 그렇게 말하니 웃기네. 날 내보내고 싶었던 게 홍 실장 아니었나?”

홍 실장과 그 옆의 삼십대 사내가 깜짝 놀란다.

만년 과장으로 그동안 무어라 다그치고 혼을 내고 무시해도 반항 한 번 못했던 서대우가 날카롭게 반항을 하자 홍 실장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왠지 속이 후련해진 서대우. 움츠렸던 그의 어깨가 펴진다.

홍 실장은 패배자답지 않은 서대우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모두 회사를 위해서였습니다. 사심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 알았으니까 탈 거면 타고, 말 거면 말지?”

“……배웅해 드리죠.”

“그럴 필요 없는데?”

“저흴 경우 없는 놈들로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받은 셈 칠 테니까 가.”

홍 실장은 서대우의 말을 무시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결국 문이 닫혔다.

스으으응!

밑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이런 일로 회사에 앙심은 품지 마십시오. 회사가 자선 단체는 아니잖습니까.”

“속 긁으러 온 거라면 잘하고 있어.”

“뭐 앙심을 품는다고 해도 우리 같은 일개미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알았다고.”

알고 있다. 일개미 따위가 공룡에게 덤벼 봤자 짓밟혀 죽는다는 것쯤은.

그러나 개미도 개미 나름대로 충분히 반항을 할 수 있었다. 그것도 공룡에겐 치명적일 수 있는 반항을.

바로 지금의 자신처럼 말이다.

그런 자신감이 전해져서일까.

가늘게 떠진 홍 실장의 눈이 흔들린다.

“……변하셨군요.”

아니다. 홍 실장에겐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그는 잠시 아주 먼 과거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모른 채 우물쭈물하던 신입 연구원이었을 때로.

그때의 서대우가 이랬었다.

시니컬하고 패기 넘치고.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작은 체구임에도 이리저리 들이받으며 제 연구를 관철했었고, 홍 실장은 그런 그의 카리스마에 감동해 언제나 그의 등을 쫓았었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홍 실장은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춰지는 자신을 보며 흠칫 놀란다. 그리고 그런 그의 동요는 서대우에게 여실히 전해졌다.

띵! 스르릉!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알림과 함께 열리는 엘리베이터의 문에 홍 실장이 서대우를 죽일 듯 노려본다.

“당신이 도박만 안 했어도 아마 2년은 더 일할 수 있었을 겁니다.”

“2년 늦게 퇴직하나, 일찍 퇴직하나 달라지는 게 있을까? 그리고 너라고 다를 것 같냐?”

“난 당신과……! 후우. 주한 씨는 서 과장님 배웅해 드리고 와.”

홍 실장은 닫힘 버튼을 눌렀고, 둘의 눈은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평소에도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스르릉! 타악!

“……그러게.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왜 그리 무서워했는지 모르겠다.

“과, 과장님. 저, 저는…….”

서대우는 변명을 하려 애쓰는 직원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자신이 받은 마지막 부하 직원, 마지막 연구원.

‘참 이것저것 가르쳐 줬는데…….’

결국 홍 실장과 붙어먹고 뒤통수를 쳤다.

“내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지 않을 거란 건 알지? 정말 험한 말 나오기 전에 꺼져.”

“과, 과장님!”

콧방귀를 뀐 서대우는 밖을 향해 발을 뗐다.

바리케이드, 마지막 관문이 가까워지자 다시 움츠러드는 그의 어깨.

경비원의 부라리는 눈을 차마 마주치지 못하고 피한다.

‘제발! 제바알!’

“잠깐. 정지. 짐을 좀 검사하겠습니다.”

짐을 뺏듯 가져가 안을 뒤적이는 경비직원.

서대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심장이 터질 듯 뛴다.

“거기. 적당히 해.”

“예? 하지만…….”

“네가 누구 부탁받고 그러는지 알겠는데 적당히 하라고.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서대우 과장님.”

“……고, 고맙습니다.”

내미는 짐을 받아 든 서대우는 잰걸음으로 건물을 나서자마자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하아아.”

모두 끝났다. 걸리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 안도가 그를 잠시 휘청이게 했다.

“어이쿠.”

겨우 몸을 바로잡은 서대우는 방금 전 일을 떠올리곤 이를 악물었다.

‘개새끼.’

끝까지 망신을 주려 한 홍 실장을 떠올린 서대우는 이를 갈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늦은 저녁, 가방 하나만 둘러멘 그는 집을 가만히 둘러봤다.

더 이상 올 수 없는 곳. 삼전전자에 입사 후 25년 동안 그와 함께 했던 보금자리.

아쉬움과 섭섭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집을 둘러보던 그는 입술을 깨물며 집을 나섰고, 그가 도착한 곳은 인천의 어느 카페였다.

“오셨습니까.”

손님 한 명 없는 카페에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키는 사십대 초반의 사내.

서대우는 악수를 하는 척 연변 쪽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를 향해 USB 하나를 넘겨주었다.

“나머진 도착하면, 그리고 내가 그 회사에 자리를 잡으면 천천히 전수하겠소.”

“……좋은 태도십니다. 그보다 들키진 않았겠죠?”

움찔!

‘한 명에게 들키긴 했지만…….’

은밀히 기술을 복사하던 자신을 발견하고 경악하던 김학일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과 똑같이 회사에 배신을 당한 사람이었고, 입막음도 해 놔서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자신보다 더 회사에 유감이 많은 김학일. 그의 입이 열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괜찮소. 문제없소. 그보다 얼른.”

사내는 서대우에게 참 급하다며 신분증을 내밀었다.

쉬 다유(서대우).

서대우가 중국에서 쓸 새 신분이다.

“완벽한 게 아니라서 한국에선 쓸 수 없습니다. 밀항선이 6일 뒤에 있으니 그때까진 저희의 통제에 따라…….”

“아니? 일단 하우스부터 갑시다.”

이젠 회사, 자신이 기술을 탈취했는지도 모를 회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그의 눈이 추악한 욕구에 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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