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17화 (517/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17화>

    본청의 경찰청장실.

    서울남부지검의 차장검사와 통화를 하는 박종명 청장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져 있다.

    -벌써 한 명을 찾았더군요.

    “예. 저도 방금 전 소식을 들었습니다.”

    검찰이 2개월 동안 삽질을 했어도 찾지 못했던 용의자 중 한 명을 고작 3일 만에 찾아냈다.

    ‘대체 어떻게?’

    차라리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찾았다면 억지로라도 이해를 했을 거다.

    그런데 강원도에서 찾았다. 그것도 고성에서.

    아직 부검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사인은 퇴직 후 삶의 의미를 잃은 와중에 가족 부양에 대한 부담을 못 이겨 자살한 걸로 추정된다.

    유서가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능력이 좋다더니 정말 좋군요. 이러다 다른 용의자도 찾겠습니다. 허허.

    “아마 이번엔 운이 따라 줘서 그런 거겠지요.”

    -레이더는 계속 돌리고 계시는 것 맞지요?

    “걱정 마십시오. 해결될 기미가 보이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하하. 거참 그런 걸 말한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믿겠습니다. 그럼 이만.

    통화가 종료된 핸드폰을 빤히 바라보던 박종명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재밌군.”

    이렇게 빨리 용의자를 찾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자신이 허락해 준 그 시스템 덕분일 터.

    박종명은 자신이 종혁에게 대체 뭘 쥐여 준 건가 작은 자책을 하면서도 이것의 효용성이 무척이나 탐이 나기 시작했다.

    “이러면 정말 특별범죄수사대를 가져와야 할 것 같은데…….”

    지이잉! 지이잉!

    “예, 박종명입니다. 차장 검사님, 더 하실 말이라도 있으십…….”

    -최종혁, 청장님이 컨트롤할 수 있는 거 맞습니까?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무슨 일이요?! 최종혁이 삼전전자에 들렀다고 하는데 무슨 일이요? 이건 왜 보고하지 않은 겁니까!

    박종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희가 보고란 단어를 주고받을 사이였습니까?”

    -……미안합니다. 내가 흥분하다 보니 말이 헛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게 무슨 말입니까? 최 대장이 삼전전자에 들렀다니요?”

    그런 보고는 들은 적이 없다. 아니, 삼전전자에서 항의조차 안 해 왔다.

    ‘잠깐, 설마?’

    -방금 전 박 청장님과 통화를 끝내자마자 김용재 상무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훌륭한 경찰에게 사건을 맡겨 줘서 고맙다고! 회장님께서도 고맙다 하신다고! 이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 사건이 김희건 회장까지 주목하고 있는 사건이며, 앞으로 검찰의 개입은 불허하겠다는 뜻이었다.

    “……제가 알아보고 다시 연락을 드리죠.”

    다급히 통화를 종료한 그는 종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 대장, 지금 어디야?”

    *   *   *

    인천 남구 숭의동의 6층 빌딩 꼭대기에 위치한 사무실.

    창식이라 불린 사십대 거한이 종혁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본청 형사님들께서 남의 번듯한 업장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것도 선량한 직원들을 폭행해 가시면서 말입니다.”

    “아, 쟤들? 로비에서 네 이름 대니까 막아 세우더라고. 그래서 한 대 쥐어박았더니 우르르 몰려들데?”

    그래서 설명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힘으로 뚫고 올라왔다.

    기선 제압도 할 겸.

    “그런데 네 입에서 폭행이란 단어가 나오니까 좀 어색하다, 야.”

    종혁은 창식의 맞은편 소파에 털썩 앉았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오택수와 최재수가 그 옆에 앉았다.

    “최재수, 괜찮아?”

    “괘, 괜찮습니다.”

    “너 대가리에서 피 나.”

    “어…… 약간 찢어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괜찮을 거예요.”

    “오택수 경감님은요?”

    “죽을 것 같아. 씨발, 외국 애들 상대하면서 긴장을 벼려 놓길 다행이지 아니면 황천 몇 번 갔을 거다.”

    ‘오택수?’

    어디서 들어 본 이름.

    창식은 눈을 가늘게 뜨며 종혁을 봤다.

    “혹시 젊은 형사님 성함이……?”

    “응? 나? 최종혁.”

    ‘씨발. 불도저!’

    본청의 미친 또라이.

    자산 규모만 천억 원대라는 재벌 형사 최종혁.

    “……소문으로만 듣던 최 팀장님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군요.”

    “아, 나 팀장 아니야. 이번에 승진해서 대장. 여기 명함.”

    움찔!

    “특별…… 범죄수사대?”

    “오, 한글 정도는 뗐나 보다? 역시 조폭 대가리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이를 악문 창식은 문 앞에 서서 씩씩거리는 부하들을 향해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문이 닫히자 창식은 다리를 꼬았다.

    “그래서 본청의 대장님께서 저처럼 선량한 사업가는 왜 찾아오신 겁니까?”

    “아, 사람 하나 찾아 달라고. 이 양반이 아무래도 너희 업장 중 하나를 스쳐 지나간 것 같거든?”

    종혁이 던지는 서대우의 사진을 힐끔 본 창식은 종혁을 보며 나른하게 웃었다.

    “제가 왜 협조를 해야 되는 겁니까?”

    “그러는 편이 좋을 테니까?”

    “지금 경찰이 시민을 협박하시는 겁니까?”

    종혁은 전혀 협조할 마음이 없어 보이는 그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종혁의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졌다.

    “야. 내가 부탁하는 것 같냐?”

    “나는 장난으로 말하는 것 같습니까? 이게 언론에 알려지면 당신 모가지도 무사하진 못할 텐데?”

    “나참. 내 소문을 들었다면서도 계산이 안 되나 보지?”

    창식이 미간을 좁히며 쳐다본다.

    그러나 여전히 감정이 없는 종혁의 눈.

    “언론? 알리고 싶으면 알려 봐. 나야 징계 좀 받고 끝날 테고, 난 징계가 끝나자마자 네 나와바리에 있는 유흥업소부터 쑤시고 들어갈 거니까.”

    창식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단란주점, 노래방, 안마방, 오락실, 사채 사무실 다 쑤실 거고, 안에 있는 건 싹 다 부숴 버릴 거야. 네 새끼들까지 전부. 네가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고 이 바닥 뜰 때까지 털어 버릴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니?”

    아마 그때까지 그가 잃을 손해는 족히 수십억에 달할 것이다.

    “너 이 새끼…….”

    지이잉! 지이잉!

    “아, 잠시만? 흠.”

    발신자를 확인한 종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양반이 왜 전화를 하셨을까?”

    “누군데?”

    “청장님이요. 예, 청장님. 아, 잠시 밥을 좀 먹으러 나왔습니다. 복귀요? 음,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여기가 파주라서요. 예, 예. 알겠습니다. 충성.”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다시 창식을 봤다.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아아, 혹시 너한테 뽀찌 처먹은 견찰 새끼들이 도와줄 거란 기대는 하지 마. 나 본청 수사대 대장이다? 나 적으로 돌릴 자신 있어? 정말 마음먹고 쑤셔 줄 건데?”

    빠드드득!

    창식의 얼굴이 도깨비보다 더 흉악하게 일그러진다.

    그러나 그는 곧 표정을 풀 수밖에 없었다.

    ‘경찰청장.’

    경찰청장과 통화를 하는 경찰이다.

    게다가 이 경찰이 해체한 조직이 몇 개던가. 인천에서도 종혁에게 걸려 해체된 조직이 있을 정도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안 드는 놈이 있으면 그냥 건물째로 밀어 버리는 미친 또라이 불도저.

    “내가…… 뭘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이 양반 찾아. 3일 준다.”

    종혁은 몸을 일으켰고, 창식은 아까 종혁이 준 명함을 조심스럽게 갈무리했다.

    “아, 그리고 이건 깽값. 네 애들이 날붙이 꺼내 들기에 뼈 좀 꺾어 놨거든? 이거면 걔들 퇴직금은 충분히 될 거다. 그럼 간다. 연락해.”

    “대장님.”

    “왜?”

    “저희가 무섭지는 않으십니까?”

    “너희가? 왜?”

    “…….”

    피식 웃은 종혁이 벌컥 문을 열자 문 밖에서 주춤 거리는 시꺼먼 덩치들. 쇠파이프에 사시미칼을 들고 있으면서도 물러나는 꼴을 보니 한심함에 한숨만 나온다.

    “비켜.”

    부하들에게 손을 저은 창식은 자신의 앞에 놓인 수표 다섯 장을 보곤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오백만 원…….”

    끝까지 놀리는 거다.

    정말로 자신들을, 어둠에 숨은 칼을 무서워하지 않는 거다.

    이제야 명확하게 이해가 된다.

    저건 상종조차 하면 안 될 재앙이었다.

    “큰형님!”

    “괜찮으십니까, 큰형님!”

    창식은 그제야 몰려 들어오는 간부들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 일 없었으니까 진정하고 이 새끼나 찾아.”

    “예? 누굽니까?”

    “저 저승사자 세 마리를 여기로 불러들인 새끼.”

    사진을 보는 덩치들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   *   *

    -상황 종료.

    “후우. 수고하셨습네다. 다치지는 않았습네까?”

    -재수 대가리에 빵꾸가 좀 나긴 했는데, 지금 병원에 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형님은, 아니 대장님은요?”

    -나야 멀쩡하지. 사료나 처먹은 새끼들이 어딜.

    “……알갔습네다. 현재 인천 전체 CCTV를 뒤져 보고 있고, 서대우가 갈 만한 곳도 다 뒤져 보고 있으니 곧 놈을 포착할 수 있을 겁네다.”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가 인연을 맺어 왔던 모든 이들과 서대우의 지난 10년간의 금융거래 내역을 모두 뒤지면서 그가 갈 만한 곳을 압축하고 있다.

    박승철처럼 그 자신과 전혀 무관한 곳에서 죽은 게 아닌 이상 찾을 수 있을 거다. 아니, 찾아내야 했다.

    -그래. 수고.

    통화를 종료한 순철은 핸드폰을 가만히 응시하다 돌연 입술을 깨문다.

    “분하네.”

    종혁과 오택수, 최재수가 최전방에서 칼을 맞아 가며 싸우고 있는데, 자신은 이곳에서 컴퓨터만 만지고 있다는 것에.

    ‘하디만 이럴수록 더 냉정해져야디.’

    종혁들과 자신은 전문 분야가 다르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서기 전 목숨을 부탁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전력으로 서포트를 해야 됐다.

    9대의 모니터를 응시하는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은 순철의 손이 세 대의 키보드를 누비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두드렸을까.

    삐빅!

    “어? 이치는?”

    무언가 잡혔다는 신호에 눈을 빛낸 순철이 4번째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조작을 하려고 할 때였다.

    벌컥!

    “흠. 사무실 인테리어가 특이하군.”

    “헉?!”

    종혁의 적, 박종명 경찰청장.

    당황해 손을 집고 일어나는 척 세 대의 키보드를 모두 누르며 일어난 순철이 거수경례를 하자, 박종명 청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불이 꺼지는 컴퓨터를 응시했다.

    “흠. 자네가 최 대장이 무리해서 데려온…… 아니지. 무리해서 중경에 입사시켰던 이북 친구인가 보군.”

    “……?!”

    순철의 눈이 부릅떠졌고, 박종명 청장은 왜 그러냐는 듯 의아해했다.

    “저런. 몰랐던 일인가? 이거 미안하구만. 그나저나 컴퓨터가 아주 좋아 보이는데 잠시 구경 좀 할 수 있겠나?”

    그의 입가가 미묘하게 뒤틀렸다.

    *   *   *

    정신이 멍한 듯 흐릿한 시야, 삼전전자의 어느 탕비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장년인, 김학일이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미진 씨, 과장님 몸에서 이상한 냄새나지 않아? 나만 느끼나?”

    “기러기 아빠가 다 그렇죠, 뭐. 전 그보다…….”

    “왜? 뭔데?”

    “왠지 제 다리를 쳐다보시는 것 같아서…… 힘내라면서 어깨도 막 주무르시고…….”

    “뭐? 아, 진짜. 다 늙어서 왜 그런다니?”

    억울하다. 억울했다.

    그저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어깨를 주물러 줬을 뿐인데…….

    이를 악물며 부들부들 떤 김학일이 몸을 돌린다.

    그 순간 걸려온 전화.

    김학일이 치미는 토기에 눈을 질끈 감는다.

    “……여보세요?”

    -여보! 왜 돈을 부치지 않는 거예요! 애가 지금 사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까랑까랑하게 울리는 목소리.

    그 순간 흐릿한 시야가 크게 출렁인다.

    “까, 깜빡했어. 내가 퇴근하고 붙일게.”

    -깜빡할 게 따로 있지!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요?!

    “지금 회사야. 이따가 통화해.”

    전화를 끊은 김학일은 때마침 탕비실을 힐끔 보곤 한숨을 내쉬며 옥상으로 향했다.

    그 순간 다시 걸려오는 전화.

    “아, 상무님!”

    -내 방으로.

    왜인지 갑자기 철렁하고 심장이 내려앉는다.

    그러며 가슴속에서 ‘안 돼’라는 외침이 울려 퍼진다.

    의아해하며 상무를 찾아간 김학철.

    “그래, 왔나? 앉지.”

    평소와 다르게 소파를 권하는 상무.

    “저,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어흠. 김 팀장이 우리 삼전에서 일한 지 한 30년 정도 됐나?”

    “조금 모자랍니다. 제가 있던 한국전자통신이 삼전에 합병된 게 80년쯤이니까요.”

    “오래됐군. 그 정도면 우리 삼전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겠어.”

    “아, 아닙니다. 제가 무슨…….”

    “아니야! 자네라면 충분히 그런 말을 들을 자격 있지!”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야…….”

    철렁 다시 심장이 내려앉는다.

    “요새 경제가 어려워진 거 알고 있지? 환율도 치솟고.”

    “……자, 잠깐만요, 상무님, 저 기러기 아빱니다! 제가 돈을 못 벌면 제 딸과 아내는 굶어 죽습니다!”

    “내 퇴직금은 부족하지 않게 넣어 주지. 그동안 수고했네.”

    상무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와장창 깨져 버리는 세계.

    “허어억?!”

    숨을 급하게 삼키며 꿈에서 깨어난 김학일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이를 악문다.

    “개 같은 년놈들…… 후우우.”

    끓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힌 김학일은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쏴아아아!

    파도 소리가 밀려오는 푸르른 바다.

    “김 상!”

    김학일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삼십대 미녀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   *   *

    박종명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냐, 박승철은 어떻게 찾았냐 등 상사로서 궁금한 점을 물었을 뿐이다.

    그리고 수사 진행 사항은 주기적으로 보고하라는 말을 들으며 경찰청장실을 나선 종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 방해를 해 보시겠다는 건가?’

    아니면 김용재 상무가 움직여 한발 물러난 것일 수도 있다.

    뭐든 마음에 들지 않는 작태.

    “보고는 개뿔.”

    종혁은 코웃음을 치며 사무실로 향했다.

    “아, 대장님.”

    “그냥 형이라고 불러.”

    “……일터에서는 대장님이라고 부르겠습네다.”

    “뭐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그런데 누가 왔다 갔나 보다?”

    사무실에 비치된 물품들 중 몇 개가 미묘하게 틀어져 있다.

    움찔!

    종혁은 몸이 크게 흔들리는 순철을 보곤 이를 악물었다.

    “왜? 청장님이 찾아와서 널 흔들든?”

    동그랗게 떠지는 순철의 눈이 대답을 대신했다.

    ‘이 양반이 진짜!’

    회귀 전 질리도록 겪은 수작 중 하나.

    장수를 쓰러뜨리려면 먼저 그 말을 노려라.

    찔리는 게 많은 새끼들이 주로 쓰던 방법이다.

    사무실 문을 잠근 종혁의 표정이 구겨진다.

    “뭐라고 씨불이며 흔들든?”

    “……정말 저를 중경에 입교시키기 위해 무리를 하셨던 겁네까?”

    ‘아, 이걸로 흔드셨어?’

    종혁 자신에게 마음의 부채를 가진 순철에게는 참 딱 맞는 공격이었다.

    “어.”

    순철이 그냥 평범한 새터민이었다면 중경에 입교한다고 한들 별다른 문제는 없었을 테지만,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이었다는 점과 그의 누나인 리순영이 보위부의 소령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신분 보증을 하느라 무리를 좀 했지.”

    “저, 정말입네까?”

    “라고 하면 뭐가 달라지냐?”

    “혀, 형님!”

    “아이고, 그러다 울겠네. 야, 됐어. 국정원이 내게 진 수많은 빚 중 하나를 깐 거뿐이니까. 아니, 오히려 국정원이 더 좋아하던데?”

    이미 태국에서 순철의 해킹 실력을 본 국정원이다.

    시간과 여건만 갖춰진다면 못 뚫는 곳이 없을 능력자.

    그런 인재가 한국의 품에 안긴다니, 국정원의 입장으로선 쌍수 들고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순철이 언제 간첩으로 돌변할지는 모른다는 위험성이 있지만, 그 전까지는 그래도 대한민국에 이익이 되어 줄 인재.

    또 이걸 꼬아서 생각하면, 순철을 이용해 북한의 요직에 앉아 있는 순영까지 꼬드길 수도 있다.

    그래서 국정원이 순철이 한국에서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한 거다. 자유와 자본의 참맛을 알게 해 한국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그런 종혁의 말에 순철은 입을 떡 벌렸다.

    “기, 기랬던 겁네까?”

    “아니면 너처럼 위험한 놈이 수사기관에, 언제든 이 나라의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기관에 취직하는 걸 순순히 허락했겠냐? 국정원이?”

    해킹 대회에 나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을 거다.

    “기럼…….”

    “그래. 내가 무리한 건 별로 없다고. 그래도 실수하지 마라. 북한에서 지령 같은 거 내려오면 바로 말하고. 내가 러시아를 움직여서라도 순영 씨 빼내 올 테니까. 흠. 아니다. 순영 씨 같은 인재라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러시아가 먼저 움직이려나?”

    능력이 순철보다 뛰어난 순영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라고 해도 그녀를 욕심 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됐지? 그래서? 그러면서 뭐라고 하디? 수사 진행 상황을 알려 주라고 하지 않디?”

    “……그랬습네다.”

    종혁이 무리해서 취직시켜 줬는데, 종혁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 종혁에게 도움이 주려면 결국 박종명 자신이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야 된다고 했다.

    그래야 종혁이 선을 넘거나, 누군가 종혁을 위협하려고 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그걸 곧이곧대로 믿었어?”

    “믿었겠습네까? 저도 눈치라는 게 있습네다.”

    종혁이 박종명 청장을 싫어한다는 것쯤은 눈치채고 있었다.

    “얼씨구? 면상을 보니 조금 혹했네?”

    어느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순철.

    “그, 그게 그래도 청장이니까네…… 크흠. 그보다!”

    다급히 화제를 돌리는 순철의 표정이 차가워진다.

    “김학일 찾았습네다.”

    종혁의 눈이 번뜩였다.

    “어디서?”

    “부산입네다.”

    “부산?”

    종혁은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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