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14화>
110. 산업 스파이
축하를 해 준 사람들이 돌아간 사무실.
다시 머리를 맞댄 4명이 미간을 좁힌다.
“기술 유출이라…….”
삼전전자 안에서 기술이 유출됐다.
“어…… 정전식 방식을 채용한 풀 터치스크린…… 뭐라는 거야?”
“스마트폰입니다.”
“응?”
모두가 의아해하며 종혁을 본다.
“작년에 미국에서 출시된 신형 휴대폰인데, 자그마한 휴대용 컴퓨터라고 생각하셔도 될 겁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에 종혁은 그냥 실물로 보여 줬고, 눈이 동그래진 사람들은 종혁이 미국에서 구입해 썼던 스마트폰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기판이 왜 없어?”
“어떻게 켜는 겁네까?”
결국 종혁은 핸드폰 켜서 다시 넘겨주었고, 잠시 후 구경을 모두 끝낸 오택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흠. 잘 봤어.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꽤 신기하게 생겼네.”
“그쵸?”
‘그게 앞으로 사람들의 생활상을 바꾼답니다.’
“그런데 이런 기술이 유출된 사건이면 검찰이 맡아야 하는 거 아니야?”
“처음에는 검찰에서 수사를 진행했었죠.”
삼전전자 측에서 기술이 유출됐다는 걸 알아차린 게 2개월 전.
그때부터 검찰에서 수사를 맡았으나, 무려 2개월이 지났음에도 범인을 잡지 못한 거다.
그나마 세 명까지 용의선상을 압축시킨 게 성과라면 성과.
문제는 그렇게 간신히 추려낸 용의자들의 행방이 전부 묘연해서, 그 이상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씨발, 역시 쥐약 맞잖아.”
누가 봐도 더 이상 수사를 하기가 힘든 상황.
삼전에서 맡긴 사건이라 어떻게든 해결해야 되는데, 방법이 없으니 경찰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걸로 회피를 하려는 거다.
여차하면 경찰의 잘못으로 몰아갈 수 있도록.
부실한 사건 자료들을 보면 그러한 생각에 더욱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 큰 사건에 용의자가 3명임에도 몇 페이지 채워져 있지 않은 사건 자료.
대충 훑어봐도 많은 부분이 빠져 있다.
이대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특별범죄수사대의 능력 부족이 될 테고, 해결을 한다고 해도 검찰이 다 해 놓은 걸 주워먹기만 한 게 될 더러운 사건.
그런데 경찰청장이 직접 준 사건이라 맡지 않을 수도 없다.
참 거지 같았다.
“야, 너 솔직히 말해. 너 박 청장 턱주가리 돌린 적 있냐?”
“차라리 그랬다면 억울하지라도 않겠네요.”
‘이건 뭐, 거의 먹고 뒤지라는 뜻인데…….’
이렇게까지 노골적이니 웃음만 나온다.
“후. 회의는 일단 여기까지만 하고, 개업 떡이나 돌리러 가죠.”
“……씨벌. 물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겠네.”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요.”
정말 그런다면 그땐 전쟁인 거다.
당하고 아무 말 못하는 호구로 비춰지는 것보다는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물어뜯는 미친개로 비춰지는 게 백배, 천배 나으니 말이다.
그들은 오늘 아침 배달된 선물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 * *
“내가 그때 팍! 어?”
“이모 여기 모둠 3개요!”
서울 모처의 한우집.
예전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의 팀원들이 단체로 종혁에게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대장님. 가르쳐 주셨던 걸 잊었던 건 아니고…….”
경찰은 광대가 되면 안 된다.
그것이 이들에게 종혁이 누누이 강조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걸그룹의 댄스를, 그것도 종혁의 조카나 다름없는 최윤아가 소속된 그룹과 라이벌 관계인 걸그룹의 댄스를 따라 했기에 그들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건 홍보단 1기, 2기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에 종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냐. 잘했던데, 뭘.”
회귀 전 경찰이, 특히 여성 경찰들이 홍보 활동을 하며 욕을 먹은 이유가 뭐였던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단순히 걸그룹 춤을 따라 출 뿐인, 아무런 의미도 내포되지 않은 눈요기에 불과한 홍보 영상들만 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걸그룹 댄스에 기발하고 재치 있는 스토리텔링을 더하여 뜻깊은 의미가 담긴 영상을 만들었다.
“솔직히 내가 기획했어도 이보단 잘할 수 없었을 거야.”
“가, 감사합니다!”
그러니 그만 사과하라며 어깨를 두드린 종혁은 함경필 국장에게로 향했다.
외사국 과장들만 있는, 근처에만 와도 숨이 턱턱 막히는 테이블.
“오, 최 대장! 어서 와, 어서 와. 자, 한 잔 받으시고. 받으시오-!”
함경필 국장의 간드러지는 옛 개그맨의 성대모사에 피식 웃은 종혁이 그의 빈 잔에도 술을 따른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원래는 외사국 소속만 모아 하려고 했던 이번 회식.
그런데 함경필이 강력하게 건의해서 특수범죄수사대와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팀, 광수대, 마약대 등 종혁과 인연이 있는 모든 부서의 대원들을 모았다.
덕분에 3층짜리 한우집이 꽉 찬 상태다.
“알잖아, 최 대장. 내가 왜 다 같이 가자고 했는지.”
종혁에게 지지를 보내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걸 부하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다. 종혁이 잘된 건 축하해 줄 일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상했을 그들을 위해.
종혁의 특별범죄수사대와 수사 영역이 겹치는 수사과 전체가 지지를 보내고 있다. 화를 내는 게 옹졸해질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했다. 이렇게 지지를 보내 준다는 게.
“감사하면 건배사나 찐하게 해!”
백이도 과장이 언제 챙긴 건지 모를 마이크를 내민다.
피식 웃은 종혁은 마이크를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순간 조용해지며 종혁을 집중하는 사람들.
3층에서 술을 마시던 경찰들도 귀를 쫑긋 세운다.
“노래 부르려는 거 아니니까 기대하지들 마시고.”
피식!
“함경필 국장님께서 건배사를 하시라기에 없는 말주변이지만 한마디 해 보겠습니다. 일단 모두에게 감사하는 말을 올리고 싶습니다.”
계속 좋아해 줘서 감사하고, 지지를 보내 줘서 감사했다.
회귀 후 약 11년의 삶, 그리고 5년간의 경찰 인생에서 이들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했다.
“아니, 감사하다는 말이 전부겠네요.”
본청의 모두가 싫어하고 있을 텐데도 이렇게 찾아와 준 사람들에게 이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할까.
“앞으로 잘, 그리고 열심히 할 테니 모두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우! 길다!”
“그럴 거면 차라리 노래 불러!”
“에라이.”
“하하하하!”
웃으며 혀를 찬 종혁이 잔을 든다.
“자, 모두 잔을 들어 주세요. 제가 모두의 ‘무궁한 발전을’이라고 선창하면 ‘위하여’라고 후창하시는 겁니다! 모두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채재재재쟁!
“크아!”
“좋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도 잘 부탁해-!”
순간 더 밝아지는 회식 분위기.
종혁은 흐뭇하게 웃으며 한마디 더 꺼냈다.
“아, 그리고 드릴 게 있으니 각 과의 과장님들께선 이쪽으로 모여 주시길 바랍니다. 철이는 내 가방 들고 오고.”
그 말에 눈을 빛낸 과장들이 몸을 일으켜 종혁이 있는 테이블로 몰려들고, 순철이 종혁의 가방을 가져온다.
“여기 있습네다.”
“땡큐.”
순철의 이북 사투리에 다시 눈을 빛내는 그들.
종혁은 그런 그들에게 서류를 한 부씩 꺼내어 넘겨줬다.
“어?”
깜짝 놀라 종혁을 보는 과장들.
“제 나름대로 자료를 보강한 것들입니다.”
이맘때 이들이 맡았던 사건들. 그러나 단서가 부족해 훗날에나 해결되는 사건들.
현재 마약대를 골머리 썩게 만드는 연예인 마약 사건은 마약을 유통하는 조직의 위치를, 광수대가 어떻게든 찍어 버리기 위해 벼르고 있는 조폭 조직은 자금 세탁 방법과 연결고리를.
그리고 회귀 전에는 서울청 광수대 사건이었지만 이번엔 특수범죄수사과가 맡게 된, 범인을 추정할 수 없어 미제로 돌아선 사건은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를.
모두 회귀 전 종혁이 더 높은 곳으로 가고자 공부했던 사건들이다.
자료를 살핀 과장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너 이 자식…….”
“대체 왜…….”
이건 종혁의 보물이다. 후에 큰 것과 거래를 해도 될 보물.
그걸 아무런 대가 없이 나눠 주는 거다.
“다 같이 잘살아야죠.”
“……하. 이 착한 자식.”
“고맙다. 잘 쓸게.”
“외사국은 뉴욕, 워싱턴, 마이애미와 이야기 끝내 놨으니까 앞으로 범죄자가 그쪽 방향으로 도주하면 협조를 잘해 줄 겁니다.”
‘버락 루터, 그 양반이 대통령이 되면 미국 어딜 가든 협조해 줄 겁니다.’
“크으! 믿고 있었다고, 최 대장! 젠장!”
감동에 떠는 외사국 경찰들의 모습에 함경필이 흐뭇하게 웃는다.
“자자, 이러면 다들 불만 없는 거지?”
한참 어린 후배가 초고속 승진을 한 것에 대해.
수사 영역이 겹치는 라이벌이 생긴 것에 대해.
“에이, 그런 생각은 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 못된 생각을 한 놈이 있습니까? 있어도 이런 거 받았으면 아가리를 다물어야죠!”
“그럼 다들 잔들 들어! 우리 최 대장 승진을 축하해 줘야지!”
“옙!”
다급히 잔을 채우는 그들.
“최종혁 대장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채재쟁!
“크아아!”
오늘따라 더욱더 단 술을 비운 그들은 눈빛을 가라앉혔다.
‘지킨다.’
종혁을 어떻게 해 보려는 듯한 박종명에게서.
원래도 보물이었고, 이렇게 커다란 걸 내놓음에도 다 같이 잘살자는 착해 빠진 말을 하는 종혁을.
그들은 그렇게 다짐했다.
* * *
서울 남부지검의 차장검사실.
중년인이 전화를 하면서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 사건을 받아 줘서 감사합니다, 박 청장님. 정말 난처했지 뭡니까?”
-걱정 마십시오. 최 대장이라면 잘 해낼 겁니다.
“아, 최종혁. 저도 이름은 몇 번 들어 봤습니다. 중앙지검 특수부의 강 부장과 인연이 깊다지요?”
-예. 참 여러모로 대단한 친구죠.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친구랄까요?
그렇게 말했지만 박종명의 속내는 반대였다.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는 용의자들을 어떻게 찾아낸다고 한들, 그들은 용의자일 뿐이다.
그들 중에 범인이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
겨우 네 명에 불과한 인원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차장검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 친구가 도움을 바란다면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종혁이 제아무리 막 나간다고 한들 삼전전자의 본사까지 쳐들어갈까. 물론 그럴 확률도 있긴 하지만, 그땐 따끔하게 혼을 내면 되는 거다.
“하하. 청장님의 부탁이니 당연히 그래야지요,”
둘은 잠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게 해 주시고……. 그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무려 삼전이 맡긴 사건이다.
“괜찮습니다. 사건을 맡긴 사람이 김 회장님 아드님 라인이기는 한데…….”
삼전의 김희건 회장에게서 별다른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뭐 그리 중요한 기술은 아니겠지요. 어쩌면 시범적으로 개발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하하. 그렇지요. 김 회장님의 아드님께서 젊어서 그런지 실험 정신이 투철하신 것 같습니다.
‘실험 정신은 무슨. 경영 감각이 떨어지는 거지.’
차장검사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호텔 신화의 부장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상무, 그리고 곧 전무로 오를 것이 확실시되며 능력을 인정받는 장녀와는 달리, 사업을 실패하여 100억이 넘는 적자를 보며 마이너스의 손이라 불리는 장남.
혹여 훗날 장남이 삼전을 이어받는다고 해도 검찰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기선을 제압해 둘 필요는 있었다.
물론 김희건 회장이 나서면 납작 엎드려야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사건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면 알아서 토스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언제 한번 필드 도셔야죠? 아니 이참에 날짜를 잡으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럴까요?
둘은 웃음을 터트렸다.
* * *
다음 날, 삼전전자의 본사 앞.
“어구구. 죽겠다.”
안색이 파리한 오택수의 모습에 종혁이 고개를 젓는다.
“그러게 누가 이기지도 못할 술을 마시랬나.”
“시끄러워. 네 얼굴 매일 봤어 봐, 내가 그렇게 마셨나.”
“난 전화 자주 했습니다. 됐고, 이거나 마셔요.”
“땡큐.”
종혁은 숙취해소제를 마시는 오택수를 일견하곤 삼전전자 건물을 빤히 쳐다봤다.
‘진짜 매일이 새롭다, 새로워.’
회귀 전에는 단 한 번도 문턱을 넘어 본 적 없는 삼전전자.
감회가 새로웠다.
“들어가죠.”
로비를 가로지른 그들은 로비 데스크로 다가가 신분증을 보여 주었다.
“경찰입니다. 박정진 상무님과 약속을 하고 찾아왔습니다.”
“아! 잠시만요? 로비 데스크입니다. 지금 경찰에서 찾아오셨는데…… 아, 네. 알겠습니다. 저쪽으로 가셔서 3번 엘리베이터를 타시고 10층으로 가시면 되세요.”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간 그들.
미리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의 안내를 받아 박정진 상무의 사무실로 들어가니 중후한 인상의 장년인이 그들을 반긴다.
“박정진 상무입니다.”
“본청 특별범죄수사대의 최종혁입니다.”
“오택수입니다.”
그렇게 인사한 종혁은 박정진 상무 옆에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키는 중년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상무님. 최종혁입니다.”
“……저를 아시고 계실지는 몰랐군요.”
‘몰라볼 리가 있나.’
삼전그룹의 황태자, 김용재.
훗날 삼전그룹의 주인이 되는 존재다.
‘그런 양반이 이렇게 행차하셨다라…….’
어지간히 몸이 달은 것 같다.
‘하긴 이 시기 이 양반은 마이너스의 손이라 불릴 때였으니.’
이 시기 경영 능력에 대해 의심을 받고 있는 그.
그런 상황에서 기술 유출까지 일어났으니 가만있지 못했을 거다.
‘뭐야. 그럼 검찰은 김용재의 부탁을 까 버린 거야? 누군지 몰라도 깡이 좋은데?’
“동생에겐 말씀 들었습니다. 김용재입니다.”
“김부현 상무님께요? 이거 제 흉이나 보지 않았으면 다행이겠네요.”
“아주 훌륭한 분이라고, 사촌동생들 가운데 착한 아이가 있다면 바로 소개팅을 주선했을 거라고 하더군요.”
“어휴.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앉으시죠.”
소파에 앉은 김용재 상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데 저흰 이번 사건을 남부지검에 맡겼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급하네.’
종혁은 싱긋 웃었다.
“그 검사님께서 못하겠다고 저희 경찰에 넘기셔서 말입니다. 다시 인사드리죠. 이번 사건을 검.찰.에게서 인계받은 본청 특별범죄수사대 대장 최종혁 경정입니다.”
쿵!
‘잘되면 네 탓이고, 안 되면 내 탓? 지랄.’
종혁은 일단 그 거지 같은 생각부터 뒤집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