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13화>
호록!
차를 마시는 박종명 경찰청장이 옅게 웃는다.
“올라오는 길에 새 사무실은 둘러봤나?”
“아니요. 청장님께 복귀 신고를 하는 게 먼저라 바로 올라왔습니다만…… 음…….”
‘당황스럽겠지.’
종혁이 요구한 팀급 규모의 부서가 아니라 과급 규모의 부서. 게다가 종혁이 요구한, 일시적으로는 외사국 소속으로 해 달라는 것과 달리 단독 부서다.
“왜 놀랬나?”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왜 이런 결정을…….”
“FBI에서 너무 잘해 줘서. 고삐가 풀리니 정말 날아다니더군. 이 정도로 잘해 줄 거라곤 생각 못했어, 최 팀장. 아니, 최 대장.”
종혁이 큰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날아온 FBI와 뉴욕시장, 주지사의 감사패.
그리고 그럴 때마다 종혁의 업적을 노출시킨 한국의 언론들.
잘해 줘도 너무 잘해 줬다.
비슷한 시기에 연수를 갔거나 가게 될 박종명 자신 휘하의 간부들에게 큰 악영향이 갈 정도로.
처음에는 자신에게 큰 이익을 안겨다 주는 조희구의 부탁으로 미국에 보내 버렸던 것인데, 이제는 자신의 눈에 밟혀서라도 치워 버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예 판을 키워 버린 거다.
박종명은 그런 속내를 감춘 채 말을 이어 나갔으나, 종혁은 그의 표정과 몸짓만으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냥 쳐내기엔 명분이 없으니, 다른 간부들 견제에 치여 죽으라는 거구만?’
지금부터 같은 경정은 물론이고, 총경과 경무관까지 종혁 자신을 견제하기 시작할 거다.
튀어나온 못은 망치로 때리고, 모난 돌은 정으로 깨야 하듯 저 하늘 위에 있는 치안감과 치안정감을 제외한 간부들의 이목이 집중될 터.
사소한 실수 하나만 저질러도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내부 단속부터 해야겠네.’
생각을 정리한 종혁은 숨을 고르는 모습을 보이며 미지근해진 커피를 들이켰다.
“왜 이런 결정을 하신 겁니까?”
“그래서 싫나?”
“아니요. 싫은 건 아니…… 예, 솔직히 부담스럽습니다.”
그 말에 박종명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오른다.
“그래도 해 봐. 그래야 간부로서의 역량이 늘지.”
“아니…….”
“아니면 지방청의 과장으로 가든가.”
박종명의 목소리에 불편함이 서리자 종혁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나가 봐.”
은혜를 갚는다는 말에 풀어진 목소리.
종혁은 몸을 일으켜 거수경례를 하곤 돌아섰고, 박종명은 아차 싶었다.
“아, 최 대장. 이거 받아.”
“예?”
“부서 신설 선물.”
그렇게 말했지만, 선물이 사건 파일이다.
종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최 대장.”
“예, 청장님.”
“힘들면 언제든 말해. 최 대장을 위한 자리는 많으니까.”
“옙! 충성!”
종혁이 문을 닫고 나가자 박종명은 나른히 웃었다.
“어디 한번 해 볼 수 있을 때까지 해 봐.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찰칵! 치이익!
“후우. 달군.”
담배가 참 달았다.
쿵!
문을 닫고 나온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그러니까 여차하면 내가 만든 시스템을 꿀꺽하시겠다?’
종혁이 설계한 특별범죄수사대는 수사에 영역을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사를 진행하는 데 있어 모든 절차를 생략할 수 있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지니고 있다.
다만 문제는 그만한 권한이 주어지는 만큼 그에 걸맞은 실적을 달성해야만 한다는 것.
“실적이 미흡하면 날 쳐낼 테고, 실적을 달성하면 그 치적은 자신의 것이라는 거겠지.”
심지어 팀이 아닌 과가 되면서, 채워야 하는 실적이 더 늘어나게 되었다.
수사팀이 수사대로 격상된 것 하나만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 셈이다.
“그래도 땡큐. 감사합니다, 씨발. 내가 잘 운영해 드릴게.”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종혁에게 있어선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오히려 그런 문제들만 걷어낸다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간부 코스를 본청 과장급으로 시작한다?
막힘 없이 뚫려 있는 고속도로 위에 오른 셈이나 다름없었다.
키득키득 웃은 종혁은 박종명이 첫 사건으로 넘긴 사건 파일을 살피곤 얼굴을 구겼다.
“씨발?”
그는 다급히 자신의 새 사무실이 아니라 외사국으로 향했다.
* * *
“흠.”
외사국의 국장 함경필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담배를 펴고 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서 본 공고문에 심란한 그.
“특별범죄수사대라…….”
아끼던 후배에게 출셋길이 트였다고 해서 질투할 생각은 없었다.
문제는 새로이 신설되는 특별범죄수사대가 수사 영역이 외사국의 영역까지 넘본다는 것이 문제였다.
영역을 침범당한 외사국의 국장으로서 기분이 좋을 리가 만무했다.
똑똑똑!
“들어와.”
“충성.”
“무슨 일이야?”
어제와 달리 차가운 함경필 국장의 목소리에 종혁은 속으로 혀를 찼다.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제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용건은? 미안하지만 바빠.”
종혁은 그에게 걸어가 사건 파일을 내밀었다.
“청장님이 부서 신설 선물이라고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도 선물을 달라는 거야?”
“읽어 보시죠.”
“…….”
가만히 종혁을 응시하던 함경필이 혀를 찬다.
자신이 옹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한숨을 내쉬며 사건 파일을 살핀 함경필은 이내 고개를 번쩍 들어 종혁을 봤다.
“이걸 왜?”
“보조하겠습니다.”
“……뭐?”
“외사국 사건입니다. 아무리 강제로 이산가족이 됐다지만, 외사국에서 떨어져 나간 놈이 맡을 사건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하…….”
표정이 더 복잡해진 함경필은 내선전화기를 들었다.
“국장실로 와.”
수화기를 내려놓은 함경필은 종혁이 한 말의 진의를 가늠하기 위해 종혁을 빤히 응시했고, 종혁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백이도 과장이 문을 열고 들어오다 종혁을 보곤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너…… 하아. 이따가 이야기하자. 부르셨습니까?”
투욱!
“살펴봐. 최 팀장, 아니 최 대장이 보조하겠다고 가져 온 거야. 청장님이 주신 부서 신설 선물인데.”
미간을 좁히며 사건 파일을 살핀 백이도가 더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보조하겠다고? 신설 부서 첫 사건인데?”
“전 이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만 묻자. 너 알았어?”
“제가 아는 건 두 분께 말씀드렸던 것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본래는 외사국에 속한 팀으로 신설해 줄 것을 요청했던 종혁. 당연히 외사국의 국장과 과장에게는 양해를 구하며 언질을 해 두었었다.
“미안하다. 젠장.”
종혁을 믿지 못한 건 아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되니 온갖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저도 당황스러운 상황이니 이해하겠습니다. 솔직히 서운하지만요.”
“미안하다니까……. 아니지? 야, 너 이제야 과장이 된 놈이 말이야, 베테랑 과장한테 따지겠다고?”
“누가 과장님한테 따진답니까? 사모님한테 따져야지?”
“잘못했다! 살려 줘!”
“에라이. 어떻게 진중한 모습이 10초를 못 넘기냐.”
“사돈 남 말하지 마세요. 안 봐도 딱 보이네. 방금 전까지 우리 최 대장 막 구박하고 그랬죠?”
움찔!
“누, 누가! 언제!”
종혁은 서로 악악거리는 그들을 보곤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를 갈았다.
‘박종명.’
종혁을 비호해 주는 외사국을 떼어 내고, 현재 본청에서 종혁을 가장 예뻐하는 함경필 국장에게 의심의 암귀를 심어 주려는 수작.
그것도 모자라 사무실의 위치가 바로 외사국이 있는 층이다.
고립무원 상태로 만들어 박종명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들려는 수작까지 부렸다.
정말 머리를 잘 쓴 거다.
“그럼 보조하는 걸로 알고 가겠습니다. 아직 사무실도 살펴보지 않아서.”
“아냐. 우리가 보조해 줄 테니까 최 대장이 해.”
백이도가 종혁에게 사건 파일을 넘긴다.
“그래도 명색이 청장님이 주신 개업 기념 선물인데, 우리가 낚아채면 모양새가 안 좋지.”
“그냥 솔직하게 말 하세요. 사이즈가 커서 그런 거라고.”
“그래! 커서 그렇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1위 기업, 삼전그룹이 얽힌 일이다. 아무리 본청 외사국이라고 해도 삼키기가 겁난다.
“꼭 속내를 끄집어내야 후련하냐!”
“사랑합니다. 그럼 전 사무실에 가 보겠습니다!”
“그래. 우리도 곧 넘어갈게!”
손을 흔든 백이도는 고개를 꾸벅 숙인 종혁이 나가자 낯빛을 싸늘하게 굳혔다.
“박 청장 그 양반, 대가리 잘 썼네요.”
“경찰청장한테 대가리가 뭐냐?”
“몰라요. 난 그 사람 마음에 안 듭니다.”
“……그쪽에서 나온 말은 없어?”
“없습니다. 출근하자마자 살펴보니까 조용하던데요?”
“사전에 다 상의됐단 소리군.”
함경필 국장 본인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과의 협의 없이.
찰칵! 치이익!
‘고위 간부들의 반발을 감내할 정도로 최 대장이 마음에 든다는 건가…….’
어쩌면 마음에 들지 않아 찍어 누르려는 것일 수도 있다.
연수까지 다녀온 간부를 명분 없이 지방으로 좌천시키기에는 모양새가 안 나오니 말이다.
“후우. 최 대장도 이제 정치판에 들어온 거구만.”
지긋지긋한 사내 정치.
하지만 높은 곳으로 가려면 어쩔 수 없이 견뎌야 되는 괴물들의 세상.
“뭐, 최 대장이면 잘 해낼 수 있겠죠.”
“그렇겠지.”
아니, 어쩌면 되려 박종명이 잡아먹힐 수도 있다.
곁에서 지켜본 종혁은 그런 능구렁이를 품고 있는 미친 괴물이었으니까.
“선물 챙겨 와. 최 대장 사무실 구경 가야지.”
“어우. 그래야죠. 다른 애들한테 설명도 해 줘야 하고요.”
“이따가 최 대장이랑 상의해서 회식 잡아.”
“옙!”
함경필은 난을 들고 일어섰다.
역시 선물은 뭐니 뭐니 해도 난이 최고였다.
“하아. 사무실 오기 힘드네.”
자신의 사무실인데, 그동안 흘린 땀방울의 결실인데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모른다.
‘그래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모든 것이.
입술을 비튼 종혁은 문을 거칠게 밀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거의 80평 정도 되어 보이는 거대한 사무실.
경찰 수사팀 사무실이 아니라 유럽 부자들의 응접실을 연상시키는 모던함과 고급스러움이 가득한 정경에 종혁이 눈을 빛낸다.
유일한 오점은 한구석에 있는 유치장일 것이다.
“총원 차렷!”
척!
오택수의 외침에 최재수와 순철이 몸을 일으키며 히죽 웃는다.
“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충성. 철이, 보고.”
“컴퓨터, 프로그램, 기관들과의 연결 모두 완벽합네다!”
슈퍼컴퓨터 바로 아래 사양의 컴퓨터만 무려 세 대다.
허락만 떨어진다면 미국의 NASA도 해킹할 수 있었다.
“최재수.”
“어제부로 전국에 있는 학교들 모두 다 돌았습니다!”
여차하면 공문도 필요 없이 바로 학교 행정망에 접속할 수 있는 게 바로 자신의 수사팀, 특별범죄수사대다. 그렇다 보니 기름칠은 필수였다.
“오택수 경감.”
“맡을 만한 사건들 모두 정리해 놨습니다.”
앞으로 특별범죄수사대의 실적이 되어 줄 사건들. 종혁이 허락만 하면 바로 낚아챌 수 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눈빛을 가라앉혔다.
“내가 뉴욕에 가기 전 말했던 수사팀이 드디어 만들어졌다.”
오택수와 최재수, 순철이 주먹을 불끈 쥔다.
경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 역사가 새로이 쓰이는 자리에 자신들이 함께하는 거다.
“하지만 앞으로 수많은 견제가 들어올 거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넘어트리려 하겠지.”
전국의 모든 경정급 이상의 간부들이 협조를 제대로 하지 않을 거다. 파출소장부터 시작해 경찰서 과장, 서장, 지방청의 청장까지.
그들 모두 협력 대상자에서 제외하는 게 속이 편해질 거다.
“어린놈의 새끼가 이런 자리를 맡았으니 배알이 꼴릴 터. 그러니 당분간 인력 충원도 못할 거다.”
말라 죽어도 자신들 4명이서 해 나가야 한다.
“그걸 명심하고 수사에 임할 수 있도록. 이상.”
“충성!”
경례 구호가 다시 한번 우렁차게 울리자 종혁은 어깨에서 힘을 빼며 오택수에게 사건 파일을 넘겼다.
“이건 뭐야?”
“청장님이 주시는 개업 축하 선물이요.”
“쥐약?”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할 겁니다.”
“아놔, 삼전? 아주 지랄 염병 났네.”
“사, 삼전이요? 삼전생명, 삼전카드, 삼전전자의 그 삼전?”
“어, 그 삼전.”
“씨발? 그럼 쥐약이 아니라 독약이잖아요!”
최재수와 순철이 하얗게 질리며 오택수에게 몰려들자 종혁은 답답한 정복부터 벗기 시작했다.
‘일단 오늘 처음 할 일은 외사국과의 회식이겠네.’
이후 본청에서 자신의 편이 되어 줄, 편을 들어 주진 않아도 깽판을 치진 않게끔 기름칠을 해야 됐다.
‘돈 좀 깨지겠구만?’
그 순간이었다.
벌컥!
“야, 최종혁! 너 이씨. 내가 연수 끝나면 특수로 돌아오라고 했지! 내가 자리까지 다 만들어 놨는데!”
“여어, 최 팀장. 아니, 최 대장. 오랜만이여? 흐미, 이게 사무실이여, 부잣집 응접실이여?”
종혁은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김종두 과장과 광수대, 마약대 대장들, 경무기획과장,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특별수사팀 식구들과 현재 홍보부에 있는 옛 부하들, 그리고 뒤늦게 달려들어오는 함경필과 백이도 등의 모습에 풀썩 웃었다.
‘내 편 많네.’
그나마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