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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10화 (510/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10화>

    -오늘 새벽 네 시, 다운타운의 한 건물에서…….

    삑!

    -CIA는 이를 미국을 향한 테러 행위로 발표하며…….

    커다랗고 넓은 병실. 침대에 누워 채널을 바꾸던 종혁이 이내 TV를 끄며 헨리에게 전화를 건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제 실책입니다.

    열감지 카메라로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특공대를 투입해 사무실로 진입한 그들. 그런데 컴퓨터를 분리하던 순간 폭탄의 타이머가 작동했다.

    -미안합니다, 최. 당신이 경고를 했는데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강원도 연수원 때의 일을 참고한 건가.’

    당시 폭발을 했던 원장의 사무실.

    그로 인해 건진 건 거의 없었고, 애써 확보했던 놈들의 조직원들도 국정원에 있던 끄나풀에 의해 모두 사망했다.

    아무래도 놈들이 그때의 그 아찔했던 일을 참고해 보안에 더 신중을 기한 것 같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D.C.를 봉쇄했으니 곧 놈들을 잡아낼 수 있을 겁니다.

    ‘아뇨. 헨리가 발견할 수 있는 건 시체뿐일 겁니다.’

    여차하면 자살을 택하는 놈들. 지금 바랄 수 있는 건 삶에 미련이 많아 상부의 지령을 무시하는 놈이 생기는 것뿐이다.

    “다친 사람은요? 몇 명이나 다쳤습니까?”

    -……요원 두 명이 사망했고, 세 명이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콰앙!

    침대를 후려친 종혁은 씁쓸히 웃었다.

    “미안합니다, 헨리. 제가 더 확실히 경고를 했더라면…….”

    -아닙니다, 최. 그들의 죽음은 명예로웠습니다.

    “명예로운 죽음 따윈 없습니다, 헨리.”

    그딴 건 없다. 죽음은 그냥 죽음일 뿐이다.

    -…….

    “후우.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격해졌나 보네요.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명예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하여도 아쉬워하지 말라. 이 한 목숨 바쳐 국가와 국민을 지킬 수 있다면 기꺼이 내놓으리니. 조국이여,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것만 잊지 말아 주소서.

    이것이 CIA 같은 정보부 요원들이 가슴과 영혼에 새긴 각오다.

    하지만 죽지 말아야 할 젊은 피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걸 해냈을지 모를 아까운 목숨이 허무하게 스러졌다.

    그게 자신의 탓인 것 같아 종혁은 괴로워 미칠 지경이었다.

    -사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헨리의 목소리.

    -그리고…… 보상은 거절하겠습니다.

    “헨리!”

    -최, 저희는 절대 드러나선 안 되는 그림자입니다.

    그것이 설혹 죽은 이후라도.

    CIA 요원은 언제나 그림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보부 요원의 삶입니다.

    그런 각오와 맹세를 하여야만 될 수 있는 것이 CIA 요원.

    죽은 요원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보상은 랭리 본부에 새겨지는 별 하나뿐이다.

    “……그럼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리고 사경을 헤매는 세 분에 대한 모든 치료비도요.”

    -그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요원들이 좋아하겠군요.

    그 말에 한시름 놓은 종혁은 몸에 힘을 뺐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생긴 종혁은 얼른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승합차는 대체 어떻게 쫓은 겁니까? CCTV를 실시간으로 살피고 있었다고 해도 찾기 힘들었을 텐데요?”

    -후후. 이 미국에서 CIA는 참 많은 걸 할 수 있습니다, 최.

    “설마 해킹을 한 겁니까? 아니면 드론?”

    -이런 국장을 만나러 갈 시간이군요. 워싱턴 봉쇄 때문에 절 잡아 죽이려고 들거든요. 그럼 다음에 연락하겠습니다.

    뚝 끊긴 전화기를 멍하니 보던 종혁은 피식 웃었다.

    “두 개 다 했네, 이 양반.”

    상용화가 되려면 한참 먼 드론.

    그러나 군이나 정보기관들이 확보 개발한 이 드론 기술은 상상을 초월하며, 그들이 이 드론을 이용해 정보를 입수한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이다.

    “흠. 내 수사팀에도 드론을 도입해 볼까?”

    종혁은 꽤 심도 있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다시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

    “뭘 깜빡한 건…… 나탈리아?”

    종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응시했다.

    “받기 싫은데…… 쯧. 예, 나탈리아.”

    -제 허락도 없이 다쳤더군요, 최.

    “아하하…….”

    -최의 모친에게 말하려다 말았답니다.

    “죄송합니다. 살려 주세요.”

    다급히 머리를 박은 종혁은 용서를 빌었고, 나탈리아는 침묵을 하다가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

    “하하. 미안해요. 다음부턴 조심할게요.”

    -이번에도 말로만 그러겠죠.

    “미안하다니까요. 그보다 어쩐 일이세요?”

    종혁은 얼른 화제를 돌리기 위해 말을 꺼냈지만, 돌아온 답은 그의 정신을 번뜩 깨우게 했다.

    -조희구가 중국으로 출장을 갔어요. 위조 여권을 들고.

    쿵!

    “그런가요…….”

    ‘너 이 새끼, 이제 튀려는 거구나?’

    종혁의 눈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   *   *

    웅성웅성.

    하얀 비닐옷을 입은 감식반이 돌아다니는 다르네스 타운의 폐병원, 아니 폐병원으로 위장한 장기 공장.

    깁스를 한 왼손 때문에 병원복 위에 FBI 재킷을 걸친 종혁이 폴리스 라인을 넘어 한구석에 주차된 FBI 이동본부 차량을 향해 걸어간다.

    때마침 그곳에서 걸어나오다 경악을 하는 벤과 드롭.

    “이 미친 자식! 그 몸으로 여길 왜 와!”

    종혁은 정말 한 대 치려는 듯한 벤과 드롭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몸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그보다 뭐 좀 나왔어요?”

    장기 공장에 있는 놈들의 조직원들을 완전히 제압한 이후에서야 긴장을 푼 종혁. 그는 그대로 병원으로 이송 됐기에 이후의 일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나왔지. 아주 많은 게.”

    벤과 드롭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들어와.”

    그들은 이동 본부 안으로 종혁을 안내했다.

    “친구들? 이쪽이 우리가 말한 최. 최, 이쪽은 FBI 워싱턴지국 요원들.”

    “아. 이 사건의 냄새를 맡았다던…… 후, 반갑습니다. 마일입니다.”

    “최종혁입니다.”

    다른 요원들과도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인사를 나눈 종혁은 장기 공장에서 발견 된 컴퓨터 앞에 섰다.

    그리고 낯빛을 딱딱하게 굳혔다.

    “미친…….”

    벤이 왜 많은 게 나왔다고 말했는지 너무도 절실히 알게 되는 게 컴퓨터 안에 있었다.

    총 42명. 42명의 나이, 성별, 혈액형 등의 프로필이 컴퓨터 안에 있다.

    그뿐이었다면 이렇게 화가 나지는 않을 거다.

    그 프로필에는 각막이 누구에게로 갔는지, 신장이 누구에게로 갔는지, 간이 누구에게로 갈 건지까지 모두 적혀져 있었다.

    이 명단 안에는 로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빠드드득!

    “이 개새끼들이…….”

    종혁은 FBI 워싱턴지국의 요원들을 찢어발길 듯 노려봤다.

    “이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는데도 몰랐단 말입니까?”

    “후…… 이놈들, 전부 수배되어서 도망다니는 범죄자들입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 미친 새끼들이 작정했구나.’

    정말 머리를 잘 썼다.

    누구도 찾지 않을, 사라지면 오히려 좋아할 놈들만 골라 납치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요원이 다른 화면을 띄우자 종혁은 입을 떡 벌렸다.

    “총 184명. 당신들 뉴욕지국이 로건 오데아를 끝까지 쫓지 않았다면 발생했을 피해자들입니다. 이놈들을 피해자라고 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이게 문제가 아니다.

    씁쓸히 웃던 요원이 다른 화면을 띄운다. 그건 바로 장기 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이었다.

    종혁은 그중 아는 얼굴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저 사람은?”

    종혁도 얼굴을 아는 영화배우다.

    그뿐만 아니라 운동선수, 검사, 판사, 재력가, 기업가, 교수, 정치인, 정치인의 손녀 등 이 미국의 상류층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워싱턴 D.C.뿐만 아니라 미 전역의 상류층들이.

    오싹!

    “와. 진짜 칭찬한다, 칭찬해.”

    이 정도면 제아무리 놈들이라고 해도 칭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명단을 굳이 남긴 속내가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건드리는 건 이 사람들을 건드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배경. 놈들은 이 미국에서 활개를 치기 위해 배경을 만든 것이다.

    아마 이것이 놈들이 장기 공장을 만든 진짜 이유일 터.

    종혁은 다시 한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워싱턴지국 요원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좆된 걸 축하합니다.”

    “빌어먹을.”

    이건 거대한 폭탄의 스위치다.

    터지는 순간 미국을 뒤집어 버릴 스위치.

    심지어 버락 던햄 루터와 대선을 치르고 있는 공화당 대선 후보의 캠프에 소속된 정치인도 있다.

    FBI 워싱턴지국으로서는 절대 쥐고 싶지 않은 스위치일 수밖에 없었다.

    “그냥 가져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에이. FBI가 아무리 거리와 성역에 상관없이 수사를 한다지만, 동료의 동네에서 벌어진 일까지 욕심내선 안 되죠. 그리고…….”

    종혁은 워싱턴지국 요원을 보며 내숭 떨지 말라는 듯 웃어 주었다.

    “어차피 안 줄 거잖습니까?”

    당연하다. 장기밀매조직이야 종혁들이 소탕했다지만, 워싱턴지국의 영역에서 벌어진 일이다. 먹으면 죽을 수 있는 쥐약이라지만, 어떻게든 사수해야 됐다.

    그들이 양보할 수 있는 선은 워싱턴지국과 뉴욕지국의 공조 수사 정도뿐, 뉴욕지국이 사건을 가져가는 꼴은 볼 수 없었다.

    “……왜 이딴 걸 발견했냐고 화를 낼 수도 없고!”

    키득키득 웃은 종혁은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럼 전 이만 갑니다. 수고하십쇼.”

    남의 동네에 똥을 투척했다.

    이럴 땐 얼른 도망치는 게 상책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곧 떠날 사람이 욕심내서 뭐하게?’

    이 사건에 매달려 봤자 떠나는 시간만 늦어질 뿐이다.

    이젠 돌아가야 할 한국.

    콧노래를 부르며 이동본부를 나선 종혁은 코지 나카모토가 입원해 있는 병원이 있는 방향을 보며 눈빛을 서늘히 가라앉혔다.

    “그럼 이야기를 나누러 가 보실까?”

    *   *   *

    마취에서 깨어난 눈을 뜬 코지 나카모토가 천장을 멍하니 응시한다. 아직 정신이 몽롱하지만 이곳이 어딘지 알 것 같다.

    ‘……잡혔군.’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종혁에게 잡혔다.

    목숨으로 회사의 비밀을 지켜야 할 터. 그는 어금니에 힘을 꽉 주었다.

    ‘응?’

    있어야 할 것이 없다 당황한 그.

    “에이, 어금니에 있는 건 뺐지. 너뿐만 아니라 너랑 같이 있던 두 놈들 것까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려던 코지 나카모토는 다시 당황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혁은 그를 보며 히죽 웃었다.

    “턱뼈가 으스러지면서 목뼈까지 충격이 갔어. 아마 꽤 오랫동안 움직일 수 없을 거야.”

    “으읍! 으으읍!”

    “어휴, 난리치지 마. 그러다 겨우 고정해 놓은 턱뼈가 어긋나면 재수술해야 되니까.”

    코지 나카모토는 종혁을 죽일 듯 노려보기 위해 애를 썼지만, 고개가 돌아가지 않아서 실패했다.

    종혁은 그런 그를 서늘하게 응시했다.

    “그래서 안가가 어디냐?”

    “…….”

    “노스웨스트 워싱턴? 팰리세이즈? 애킹턴? 노마?”

    코지 나카모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눈 떠, 이 개새끼야.”

    그의 눈꺼풀을 강제로 열어젖히는 종혁.

    귀신보다 더 흉악하게 얼굴이 일그러진 종혁이 그를 찢어발길 듯 노려보며 워싱턴 D.C.의 지명을 읊는다.

    그러나 결코 흔들리지 않는 그. 오히려 종혁을 죽일 듯 노려볼 뿐이었다.

    싱긋 웃은 종혁은 그의 귀를 잡아 비틀었다.

    콰드득!

    괴상한 소리를 내며 찢어지기 시작한 귀.

    “읍! 으으읍!”

    “내가 오랜 악연으로서 충고 하나 하는데, 그냥 나한테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워싱턴이 봉쇄된 것도 있지만, 곧 CIA라는 무서운 친구들이 너희를 데리러 올 거거든.”

    ‘뭣?!’

    “너희 사무실에서 폭탄이 발견됐어.”

    워싱턴 D.C. 미국의 심장부에서 대량의 폭탄이 발견된 거다.

    이는 중대한 테러 행위.

    “왜? 폭탄이 터지길 기대했어? 미안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당한 게 워낙 많아야지.”

    거짓말이다. 그러나 방금 전에 깨어났는지라 루한 컨설턴트가 어떻게 됐는지 모를 코지 나카모토에게는 충분히 통할 거짓말이다.

    “곧 CIA 요원들이 한국으로 급파될 거고, 너희가 회사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IP 주소와 전화번호를 토대로 본사를 추적하겠지.”

    ‘네놈-!’

    “그동안 SVR 하나만으로도 골치 아팠지? 그런데 이제 CIA도 참전한다?”

    “으으으으!”

    “도망치느라, 꼬리를 자르느라 바쁜 회사가 너희를 구할 수나 있을까?”

    어쩌면 이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기 위해 처리조를 보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CIA는 그 처리조를 잡기 위해 함정을 팔 거야, 과장님아. 이 말이 뭔지 알아? 네가 살아 있는 파리지옥이 되는 거라고.”

    달콤한 냄새로 벌레를 꼬득여 잡아먹는 파리지옥.

    움찔!

    코지 나카모토의 눈이 드디어 흔들린다.

    ‘역시 과장이네?’

    한 번 넘겨짚어 봤는데 제대로 통했다.

    종혁은 차갑게 입술을 비틀었다.

    “그렇게 인력을 낭비하게 된 회사가 어떤 결정을 할까? 나라면 네가 끊어 낸 가족을, 연인을, 친구, 지인 네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화풀이를 할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여, 연인?’

    그에게도 정말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회사에 투신하느라 버리게 됐던 연인.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자 코지 나카모토의 눈이 더욱 크게 흔들린다.

    종혁은 그런 그의 볼을 다정하게 쓸어내렸다.

    “내가 보호해 줄게. 누군지만 말해 주면 우리가 보호해 줄게. 그러니…….”

    알고 있는 걸 전부 말해라.

    그것은 너무도 지독한 악마의 유혹이었다.

    드륵! 탁!

    문을 닫고 나온 종혁은 혀를 찼다.

    “독한 새끼.”

    “어떻게 됐습니까?”

    헨리가 다가오며 묻자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흔들리기는 하는데 끝내 불지는 않네요. 그래도 흔들리는 포인트는 알아냈으니 이쪽을 공략하면 될 겁니다. 다른 병실에 누워 있는 놈들도요.”

    박 대리와 서 대리, 그리고 장기 공장에서의 총탄 세례 속에서도 살아남은 놈들까지.

    CIA와 FBI가 철통같이 지키는 이 병원에 무려 다섯 명이나 누워 있다. 이 정도면 제법 큰 성과다.

    “아마 곧바로 본사로 치고 갈 순 없을 겁니다.”

    놈들이 외국 지사와 연락을 할 때엔 본사에서 다이렉트로 메시지를 보내는 게 아니라 몇 단계, 몇 십 단계를 거쳐 보낸다고 했다.

    “그래도 그 중계 지점 모두에 놈들이 있을 테니 그것만으로도 타격을 입힐 순 있겠죠.”

    “……저 멕시코의 카르텔도 이 정도는 아닐 겁니다.”

    그러나 그 범위를 전 세계로 넓혀 보면 이 정도로 치밀한 범죄 조직들이 몇 곳 있기는 하다. CIA도 겨우 이름만 아는 조직들이. 심지어 이름조차 모르는 조직도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어나니머스.

    CIA는 이들의 본부가 어딘지, 구성원이 누군지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한 상태다.

    “그러니 아직도 애를 먹고 있는 거죠.”

    아마 이 미국에 있는 게 저들뿐만이 아닐 수 있다.

    “모두 어딘가에 결핍이 있는 놈들입니다. 무작정 고문을 하기보다는 지켜야 할 것을 만들어 주는 게 나을 겁니다.”

    “지켜야 할 것이라…….”

    눈빛이 심유하게 가라앉은 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아차 하며 함께 온 노인을 가리켰다.

    “최, 인사하시죠. 이쪽은 CIA 부국장이신 데이비드 프라이스입니다.”

    “미국의 친구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고, 이 미국에서 자라나던 암 덩어리를 제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데이비드 프라이스입니다.”

    종혁은 눈을 빛냈다.

    ‘헨리의 동료, 혹은 지지자라는 건가…….’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 사람을 데려올 이유가 없었을 터.

    게다가 헨리는 그를 공손하게 소개했다.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최종혁입니다.”

    종혁의 공손한 말에 흡족한 미소를 짓던 프라이스 부국장은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가 입맛을 다셨다.

    “이런. 아무래도 대화는 나중에 나눠야 할 것 같군요.”

    “……같이 있어 주시면 안 될까요?”

    “하하하.”

    종혁의 어깨를 두드린 프라이스 부국장은 헨리와 함께 멀어졌고, 종혁은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캘리 그레이스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오셨습니까, 보스?”

    “불어. 이 거지 같은 자식들이 누군지.”

    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먹으면 죽는 독약을 몸에 숨기고 있고, 종혁은 어떻게 그걸 아는 걸까.

    또 CIA 부국장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걸까.

    그녀의 눈이 불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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