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04화>
FBI 뉴욕지국의 취조실.
수갑이 채워진 채 의자에 앉혀진 로건이 손톱을 깨문다.
‘왜 잡힌 거지?’
FBI가 자신을 범인으로 특정할 단서는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고 자부했다.
CCTV는 무조건 피했고, 처음 두 번을 제외하면 먹잇감을 고르는 사냥터인 하트온 닷컴을 할 때도 집이 아니라 허름한 인터넷 카페를 이용했다.
자신과 연인 관계로 착각하는 사냥감들과의 연락도 추적이 어려운 선불폰이나 대포폰으로 했다.
그가 교도소에 갔을 때, 자신들이 저지른 죄는 훨씬 많은데 이런 대처들 때문에 누락된 증거들이 많다고 떠들어 대던 죄수들에게 배운 것들. 로건은 거기서 나름의 개선을 거쳐 절대 잡히지 않을 방법을 짜냈다.
그런데도 잡힌 거다.
‘빌어먹을! 다시 교도소에 갈 순 없는데!’
“대체 어떻게…… 어떻게 해야…….”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돌아본 로건의 눈에 서류 뭉치를 든 보니가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인다.
로건의 맞은편에 앉으며 사건 기록을 내려놓은 보니는 책상 위에 피해자들의 시신 사진을 뿌렸다.
촤락!
“보여?”
파랗게 질려 하얀 천을 덮고 있는, 물에 퉁퉁 부운 시신들.
로건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보니는 그런 그를 차갑게 노려봤다.
“똑바로 봐. 익숙한 사람들이지 않아, 알렉산더?”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아니면 리퍼라 불러 줘야 하나?”
너무도 유명한 영국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
‘어떻게?’
특별한 인증 절차 없이 가입을 할 수 있는 하트온 닷컴. 그런데 FBI가 자신이 그곳에서 쓴 닉네임을 알고 있다.
“…….”
“보라고! 네가 죽인 소녀들이잖아!”
쾅! 움찔!
책상을 내려치는 보니의 행동에 사진을 쳐다봤던 로건이 입술을 깨문다.
역시 아름답지가 않다.
죽어 버리니 아름답지 않게 된 사냥감들.
물에 퉁퉁 부은 추레한 모습을 보니 토악질마저 솟는다.
보니는 그런 로건의 추악한 생각을 생각지도 못한 채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볼 수 없겠지. 너도 인간이라면 볼 수 없겠지! 그래도 보라고, 이 자식아! 네가 저지른 짓이잖아!”
“변…… 호사. 변호사를 불러 주세요.”
“이런 개……! 후우.”
겨우 화를 누른 보니는 로건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이봐. 알렉산더 킹. 버텨 봐야 소용없어. 왠지 알아? 네 DNA와 피해자들의 몸에서 나온 DNA가 일치했거든.”
‘뭐?’
눈을 부릅뜬 로건이 보니를 본다.
“그뿐인 줄 알아? 피해자들이 실종된 날에 네가 피해자들과 만나는 모습도 모두 확보했어. 열심히 CCTV를 피해 다니던데?”
쿠웅!
“그럴 리가…… 흡?!”
다급히 입을 막는 로건의 모습에 보니의 미소가 더 짙어진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고?”
‘빌어먹을!’
실수를 한 로건의 눈이 태풍을 만난 배처럼 흔들린다.
빠져나갈 곳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벗어날 수가 없다.
로건이 절망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거기까지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노인 오웬 필의 모습에 로건이 입을 떡 벌린다.
아버지, 리암 오데아의 전속 변호사 오웬 필.
“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로건을 일견한 오웬 필이 테이블 위에 뿌려져 있는 사진들을 힐끔 보곤 보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FBI는 아직도 이런 방식의 취조를 하나 보군요. 아, 로건 오데아 씨의 변호를 맡은 오웬 필입니다.”
그러며 내민 명함에 보니의 눈이 흔들린다.
하머&필. 뉴욕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초대형 로펌이다.
‘제기랄!’
로건의 부친이 하원의원 리암 오데아이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했는데, 하필 하머&필의 설립자 오웬 필이라니.
보니의 얼굴이 구겨졌다.
“보니 맥마흔입니다.”
“예, 맥마흔 요원님. 제 의뢰인께서…….”
“잠깐. 정말 저자가 의뢰를 한 게 맞습니까?”
“흠. 지금 물어보면 되겠군요. 로건 오데아 씨, 제가 당신의 대리인이 되는 걸 인정하시겠습니까?”
“……예.”
끝났다. 아버지 리암 오데아가 알아 버렸다.
‘fuck! fuck! fuck-!’
방금 전과 다른 절망이 눈앞을 가리지만,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게 먼저.
로건은 오웬 필의 변호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시다는군요. 이제 제가 로건 오데아 씨의 변호를 맡게 됐으니 제가 참석하지 않은 방금 전까지의 취조는 없던 걸로 하죠.”
“그게 가능하다 생각됩니까!”
“제 의뢰인에게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고 고지했습니까?”
“했습니다!”
“그럼에도 변호사를 부르지 않으셨군요. 전 이게 제 의뢰인을 향한 압박이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오웬 필의 눈빛에 보니는 이를 악물었다.
압박, 폭력이 동반된 취조로 획득한 자백은 법적인 효력을 잃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재판 결과가 뒤바뀐 일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보니는 어쩔 수 없이 뿌려 뒀던 사진을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오웬 필은 푸근히 웃었다.
“감사합니다, 맥마흔 요원님.”
로건은 옆에 앉는 오웬 필을 놀란 눈으로 봤다.
겨우 말 몇 마디에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FBI 요원. 방금 전 자신을 나락으로 밀었던 그가 패배를 하자 오웬 필을 향한 신뢰가 무럭무럭 솟는다.
“앞으로 하실 말이 있다면 제게 먼저 귓속말로 하시면 됩니다, 로건 씨.”
“네.”
오웬 필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FBI 요원을 쳐다봤다.
“그럼 시작하시죠. 왜 제 의뢰인이 이번 연쇄강간살인에 연루됐다고 말하시는 겁니까?”
“연루된 게 아니라 당신의 의뢰인이 범인입니다. 로건 오데아의 몸에서 나온 타액과 피해자들의 몸에서 나온 DNA가 일치했습니다.”
오웬 필은 미간을 좁히며 로건을 봤다.
“DNA를 넘긴 겁니까?”
“네, 네. 방금…….”
“방금이요? 방금이라…….”
뭔가를 깨달은 오웬 필은 의아해하며 보니를 봤다.
“희한하군요. 벌써 DNA 대조 결과가 나온 겁니까? 흠. 지금 이 시각이면 검사팀에 도착하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요.”
흠칫!
“……익명의 투서가 있었습니다.”
“그래요?”
순간 오웬 필의 미소가 번지자 보니의 가슴을 짙은 불안감이 때린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악의적일 수 있는 일에 제 의뢰인을 체포한 거군요? 그것도 폭력적인 방법으로요. 의뢰인, 얼굴에 그 상처는 저들 때문에 생긴게 맞습니까?”
로건의 눈이 또르르 돌아간다.
뭔가 좋은 분위기.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쭉 펴졌다.
“예, 맞습니다. 다짜고짜 제 얼굴을 때리더군요.”
“그건 범인인 네가 위험한 짓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잖아!”
“범인이 아니라 용의자. 단어 선별을 똑바로 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요원님.”
“……용의자 로건 오데아가 미성년 소녀에게 위험한 행동을 하려고 해서 강제적인 방법을 쓴 겁니다.”
“위험한 행동?”
로건은 우물쭈물하며 오웬 필에게 귓속말을 했다.
“키스를 하려고 했어요.”
“쯧.”
오웬 필은 보니를 봤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군요. 이건 문제 삼지 않도록 하죠.”
“감사하다고 해야 합니까?”
“받아들이죠. 그럼 제 의뢰인을 용의선상에 올린 다른 이유가 뭡니까?”
보니는 방금 전과 다른 사진을 테이블 위에 늘어놨다.
“보입니까? 피해자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그날, 피해자들이 당신의 의뢰인과 만나는 모습들입니다.”
오웬 필의 눈에 미세한 흔들림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또 이건 당신의 의뢰인이 피해자들과 채팅을 나눈 기록입니다. 보이십니까?”
오웬 필은 로건을 봤고, 로건은 고개를 푹 숙였다.
‘쯧.’
“로건 씨. 날 보세요, 로건 씨. 저 소녀들과 정말 연관이 있는 거 맞습니까?”
“네…….”
“관계는?”
“…….”
오웬 필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속으로 얼굴을 구겼고, 보니는 그제야 실실 웃었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들.
여기에 방금 채취한 DNA 증거까지 합해진다면 로건은 무조건 구속이다.
그렇게 분위기가 바뀌자 오웬 필은 한숨을 내쉬었다.
‘골치 아프게 됐군.’
피해자들과 마지막으로 만난 것도 모자라 채팅까지 했다.
이건 무조건 로건이 범인이다.
“잠시 담배 좀 피울 수 있겠습니까?”
“얼마든지. 여기 재떨이입니다.”
실실 웃는 보니의 모습에 혀를 찬 오웬 필은 담배를 물며 채팅 내역을 봤다가 눈을 빛냈다.
‘호오? 이것 봐라?’
마치 연인끼리 대화를 나눈 듯한 내용들.
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로건 씨, 이것만 대답하세요. 저들과 연인 관계였습니까?”
“네? 네.”
“알겠습니다.”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수습한 오웬 필은 콧대를 슬그머니 세웠다.
“그래서요?”
“뭐라고요?”
“연인끼리 서로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물론 제 의뢰인이 미성년을 만난 건 지탄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겨우 그런 걸 가지고 제 의뢰인을 범인으로 몰다니…… 좀 불쾌하군요.”
보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피해자들과 마지막으로 만나 그들과 함께 멀리 이동한 정황들도 있습니다! 그것도 피해자 셋의 시신이 떠내려왔던 허드슨강을 따라서!”
보니는 로건의 차, 머스탱 GT가 뉴욕을 빠져나가 허드슨강을 따라 올라가는 사진들을 보여 주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뉴욕시의 곳곳에서 발견된 다른 세 명의 피해자.
보니는 피해자들의 시신이 발견되기 몇 시간 전, 또는 전날에 그 인근에서 찍힌 로건의 차량 사진들도 보여 줬다.
이래도 범인이 아니냐는 표정에 오웬 필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어떻다는 거죠? 만나고 헤어졌을 겁니다. 그렇죠, 로건 씨?”
“……네? 아, 네! 그날 만나고 헤어졌어요!”
“이봐! 그럼 피해자들의 손톱에 남은 네 혈흔은 어쩔 건데!”
오웬 필은 푸근히 웃으며 로건을 봤다.
“싸웠습니다. 그렇죠, 로건 씨?”
“네? 네! 싸웠어요! 그,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제게 귓속말을 하라니까요.”
“아.”
오웬은 다급히 귓속말을 했다.
“싸, 싸웠어요.”
“그리고요?”
“그, 그러다 보니…… 그러다 보니…….”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모습에 다시 혀를 찬 오웬 필은 미소를 지으며 보니를 봤다.
“연인끼리 싸우다보면 피를 볼 수도 있는 법이죠. 제 의뢰인은 드라이브를 가셨다가 싸우시고 피를 보신 후 홧김에 피해자들을 두고 오셨다는군요. 거기다 뉴욕 곳곳에서 발견된 피해자들이 유기된 장소 근처에 제 의뢰인이 가신 건 우연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가셨는지도 기억을 못하시는군요.”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피해자들의 손톱에 남은 혈액은 한 번 할퀴어져서 남은 게 아니라 며칠에 걸쳐 남은 겁니다! 혈액과 이물질이 겹겹이 쌓였어요!”
“피가 많이 나면 그럴 수도 있는 법이죠.”
“뭐라고요?!”
“전 제 의뢰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익! 이봐, 그럼 피해자들이 시신으로 발견됐을 때 왜 신고를 안 한 건데!”
“무서운 게 당연하잖습니까. 게다가 제 의뢰인은 전과도 있고요.”
“당신에게 물은 게 아닙니다!”
“네, 네. 무서워서…….”
쾅!
“야! 자꾸 이럴 거야?! 너 이렇게 협조를 안 해 주면 나도…….”
“거기까지. 지금 제 의뢰인을 협박하시는 겁니까?”
“…….”
“그리고 제 의뢰인이 피해자들을 죽였다는 확실한 증거는 어디 있습니까? 저도 이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압니다. 피해자들 모두 마약과 근육이완제에 의해 무력화됐다지요? 제 의뢰인이 그걸 매입했다는 증거는 있습니까?”
“빠득!”
오웬 필은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할 말이 더 없는 것 같군요. 일어나시죠, 의뢰인.”
“예? 아, 예. 그러죠.”
콧대가 살아난 로건의 모습에 보니는 이를 악물었다.
“로건 오데아, 뉴욕을 벗어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수고하세요.”
저벅저벅. 쿵!
“FUCK-!”
보니는 사건 파일을 집어 던지며 분통을 터트렸고, 거울 유리 밖에 서 있던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저 개새끼 봐라?”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네. 그레이스 탐정사무소입니다.
“납니다. 의뢰 좀 하나 합시다.”
종혁의 눈이 살의로 물들기 시작했다.
* * *
“감히 네가 또!”
쩌억!
얼굴을 얻어맞고 튕겨 나간 로건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아버지 리암 오데아를 본다.
몸이 그리즐리처럼 두꺼운 리암 오데아.
“똑바로 말해. 맞아?”
“아, 아니에요! 저 정말 아니에요, 아버지!”
“이 자식이 그래도!”
뻐억!
로건의 복부에 틀어박히는 리암의 발.
“컥! 커어억!”
“말하라고! 그래야 내가 뒤처리를 할 거 아니야!”
‘뒤처리?’
순간 흔들리는 로건의 눈.
리암 오데아는 그런 아들의 머리채를 잡아 젖혔다.
“악!”
“평소였다면 네가 그 미천한 것들을 죽였든 죽이지 않았든 상관하지 않았을 거야.”
그깟 동양인 몇 명 죽었다고 무슨 상관일까.
저번에 로건이 교도소에 수감이 된 것은 피해자가 버젓이 살아 있고, 그 배경도 남달랐기에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겨우 막았다. 그때 얼마나 큰 손해를 봤는지 모른다.
문제는 아들 로건의 범행이 리암 오데아 자신의 정치인생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거다.
다른 것도 아닌 살인. 그것도 미성년 연쇄강간살인.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 네가 구속되는 순간 내 정치 인생도 끝난다고! 하나뿐인 아들인 네가 하나뿐인 이 아버지의 앞길을 막는 거라고, 이 자식아! 그럼 내가 널 가만둘 것 같아?!”
“아, 아버지…….”
“맞아? 아니야?”
“……마, 맞아요.”
쩌억!
로건의 얼굴에 꽂히는 리암 오데아의 주먹.
이윽고 로건의 전신을 리암의 주먹과 발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악! 아악!”
로건은 몸을 둥글게 만 채 이 폭력이 어서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후욱! 후우. 어디야. 마약이랑 그 약 어디다 숨겼어? 그 동양인 년들을 죽인 곳은?”
“그, 그게…….”
로건은 재빨리 말했고, 리암 오데아는 어이없어했다.
“거길 대체 어떻게…….”
“그게 우연히…….”
헛웃음을 터트린 리암 오데아는 우물쭈물하는 아들의 턱을 발로 걷어찼다. 그 좋은 머리를 이따위로 쓰는 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악! 아아악!”
피와 이를 뿜은 후 얼굴을 붙잡고 버둥거리는 로건.
리암 오데아는 소파에 앉아 있는 오웬 필을 봤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오웬.”
후룩! 여유롭게 커피를 마신 오웬 필이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왜지?”
“FBI가 저희를 감시할 테니까요.”
로건뿐만 아니라 리암 오데아, 그의 보좌관, 그리고 오웬 필 자신까지 감시를 할 거다.
전화, 문자, 메일 등 모든 연락 수단을 감청할 거다.
이쪽에서 어떤 제스처를 취하는 순간 FBI가 움직일 거다.
“그건 불법이야!”
“FBI가 합리적인 집단이던가요?”
아니다. 그들은 특별한 상황이 되면 법의 테두리 밖에서도 움직이는 집단이다.
이번 사건이 그런 특별한 경우다.
동양인 소녀가 연쇄 강간 살해를 당했다. 중국계, 일본계, 한국계, 동남아계까지.
동양인이 들고 일어날 거다.
물론 평소 같았으면 별문제 없겠지만, 현재 시기가 시기다.
“버락 던햄 루터의 당선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We Can do it. 파탄 나고 있는 경제에 괴로워하는 미국인들이 동요하고 있다.
정권 교체.
떨어지는 낙엽조차 피해야 할 시기다.
“……그래서 어떡하란 말인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자네가? 괜찮겠나?”
“특별한 상황이라고 해도 변호사인 절 건드리긴 힘들 겁니다.”
그것도 뉴욕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초대형 로펌의 주인인 자신을 말이다.
“대신…….”
“아, 그건 걱정 말게. 두둑이 챙겨 주지. 우리 쪽 일감도 다 하머&필로 몰아주지.”
고개를 끄덕인 오웬 필은 몸을 일으켰다.
“일주일만 기다려 주십시오.”
“……괜찮겠나? 들어 보니 전 시장을 날려 버린 요원이 그 수사팀에 있다더군.”
“아, 한국에서 왔다는 그 최라는 경찰을 말하시는 거군요.”
“그래. 최.”
뉴욕의 영웅, 최종혁.
그동안 해결한 사건들을 보면 마치 행운의 여신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 것처럼 운이 좋은 요원이다.
“흠.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겁니다.”
얼마 전, 소위 라비 일병 사건 때 NCIS와 대립을 한 것으로 징계를 받은 걸로 알고 있다.
“또한 FBI에 있는 제 지인에게 듣기로 그는 나서는 타입이지 누군가를 보조할 타입이 아니라더군요.”
나이도, 계급도 한참 낮으면서도 진두지휘를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타입.
여태까지 사건을 해결한 방식뿐만 아니라 베테랑 요원들을 마치 부하처럼 끌고 다닌다는 게 그 증거다.
“만약 그가 이번 사건에 끼어들었다면 아까 취조실에서 만나게 됐을 테죠.”
“……어린놈이 성공의 맛을 본 거군.”
“재산도 무척이나 많다고 합니다.”
“거만하겠군.”
리암 오데아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곧 언론을 움직일 겁니다. 그래야 제가 틈을 낼 수 있습니다.”
“부탁하지.”
“적당히 패십시오. 지금은 병원도 보내면 안 됩니다.”
“그러지.”
고개를 끄덕인 오웬 필은 몸을 돌렸고, 리암 오데아는 팔을 걷으며 로건에게 다가갔다.
“아, 아버지! 자, 잠…… 악! 아아악!”
등 뒤로 울리는 비명 소리를 들으며 리암 오데아의 저택을 나선 오웬 필은 담배를 물었다.
‘보니 맥마흔.’
방금 전 언급된 종혁과 다르게 평범하기 그지 없는 FBI 요원.
“인력을 동원해 봤자 저 두 부자를 감시하는 게 전부겠지.”
무리한다면 오웬 필 자신까지.
그렇다면 증거물을 없애는 데 큰 문제없다.
오웬 필은 미소를 지으며 차로 향했다.
멀리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