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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99화 (499/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99화>

미 북동부 최상위 사립대들을 일컫는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컬럼비아 대학교의 교정.

요새 한참 뉴욕에서 인기가 있는 톰브라운 셔츠를 걸친 이십대 후반의 미남이 붉은 벽돌길 위를 걷는다.

-켁! 케에엑!

보드라운 목, 그 피부 아래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질긴 근육.

눈물과 콧물, 공포와 절망으로 일그러지던 얼굴.

사내는 팔뚝에 남은 발악의 흔적을 쓰다듬으며 황홀하게 웃는다.

“아아.”

여름 학기라 평소보다 지나는 사람이 별로 없는 조용한 컬럼비아 대학교에 달뜬 신음이 울려 퍼지고, 어딘가로 향하던 이십대 초반의 여성 두 명이 그를 발견하곤 배시시 웃으며 다가선다.

“안녕, 로건?”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향기에 알렉스, 아니 로건이 옅게 웃는다.

“안녕, 벤지. 티파니도 안녕?”

“어디 가는 중이야? 수업은 끝났어?”

“식사하러 가는 중이야. 너흰?”

“아쉽다! 우린 이미 먹었는데!”

“그래? 의리 없게 둘만 먹은 거야?”

“꺄르르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웃음을 터트리는 둘.

“로건, 오늘 수업 끝나고 뭐해? 약속 있어? 우리 조금 있다가 롱비치 갈 건데, 약속 없으면 너도 가자!”

롱아일랜드의 롱비치.

로건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그래서 운전기사가 필요하시다?”

그 말에 다시 터지는 웃음.

“에이, 아니야. 설마 우리가 그러겠어?”

“솔직히 말해, 아가씨들. 그러면 정상참작해 주겠어.”

“저, 정말 아닌데?”

“호오? 눈은 왜 피하지? 자, 벤지. 내 눈을 봐.”

“미안! 내, 내가 사람 눈을 잘 못 봐!”

“자아! 내 눈을 봅시다?”

“으아앗!”

벤지의 턱 끝을 잡은 로건이 눈을 마주치려는 순간이었다.

“로건!”

저 멀리서 후끈한 땀 냄새를 풍기며 달려오는 백인 사내.

갑자기 방해를 받은 두 여성은 ‘연락할게’라고 외치며 사라졌고, 옆구리에 농구공을 낀 채 달려온 사내는 그런 여성들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 내가 방해한 거야?”

“아니, 별로.”

냉소에 가까운 코웃음을 친 로건이 담배를 문다.

방금 전 여성들을 대할 때와 완전히 다른 모습.

그러나 백인 사내는 놀랍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너 동양인 취향이지?”

안 그래도 어려 보이는 동양인 가운데서도 더 어려 보이는 여성을 좋아하는 친구, 하이스쿨 때부터 친구였던 로건.

취향이 독특하다 못해 그 때문에 군에 입대해 한국과 일본으로 파견을 갔을 정도로 열정적인 친구였다.

참고로 로건이 군에 입대를 한다고 하자, 그는 어렵사리 들어온 대학을 휴학했다.

로건이 없는 학교생활은 별로 재미없어서 말이다.

“정말 독특해. 난 저런 애들이 훨씬 좋은데.”

“그렇게 좋으면 말이라도 건네 보지?”

“안 돼. 여자친구한테 죽어.”

“그래, 이 바퀴벌레 커플아.”

“흐흐. 밥 안 먹었지? 피자 먹으러 가자.”

“피자 말고, 중국 음식 먹으러 가자. 추천을…… 받은 차이나 레스토랑이 있거든.”

곱게 호선을 그리는 로건의 의미심장한 눈.

“뭐든. 일단 뭐든.”

입에 넣어야 했다.

둘은 차이나타운의 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웅성웅성.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넘쳐 나는 차이나 레스토랑.

“와, 사람 많다.”

사람이 많다는 건 결국 음식이 맛있다는 뜻.

빛나는 친구의 눈을 무시한 로건이 가게 안을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는다.

“저기 빈자리 있다!”

로건을 끌다시피 데려가 빈자리에 앉은 사내가 재빨리 메뉴판을 뽑아 든다.

“추천받은 메뉴가 뭐야? 여긴 뭐가 맛있고, 양 많아?”

“잠깐만?”

자리에 앉았음에도 계속 둘러보던 로건이 누군가를 발견하곤 눈을 빛낸다.

“여기요!”

그의 부름에 가게에 멍하니 서 있던 주안이 화들짝 놀라 다가온다.

“주문하시겠어요?”

“예. 여기 청경채 볶음이랑 칠리크랩, 스위트 포크 주세요. 볶음밥과 모듬 딤섬 2개, 멜론 소다도 2개요.”

흠칫!

주안의 몸이 크게 떨린다.

모두 딸 린이 좋아하던 메뉴들.

특히 칠래크랩 양념을 볶음밥에 비벼 그 위에 스위트 포크를 올려 먹는 걸 참 좋아했었다.

이 음식들이 남아 집에 가져간 날에는 언제나 밥그릇을 모두 비웠던 린. 멜론 소다까지 한 입 마시면 ‘잘 먹었습니다’라며 인사도 했었다.

주안의 눈에 왈칵 눈물이 차오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로건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괜찮으세요?”

“죄, 죄송합니다. 청경채 볶음과 칠리크랩, 스위트 포크, 볶음밥, 모듬 딤섬 2개 멜론 소다 2개 맞으시죠?”

“네. 정말 괜찮으신 거 맞죠?”

“고,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주안은 도망치듯 주방으로 향했고, 로건은 그런 그녀를 보며 다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의 표정 변화를 보지 못한 사내가 주안을 보며 혀를 찬다.

“무슨 힘든 일이 있으신가 보네.”

“그런가 봐.”

있었을 것이다. 아주 힘든 일이.

“아, 그보다 이 나쁜 자식아.”

“갑자기?”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난처했는지 알아? 내 핑계를 대고 놀러 갈 거면 말은 하고 가야 할 거 아냐! 너희 부모님이 연락해 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대체 누구랑 놀러 간 거야?”

“과 친구들이랑. 여자들이 많아서 부모님께 말할 수 없었어.”

“……너희 부모님은 아직도 그러셔?”

“뭐, 그렇지.”

“하아. 군대까지 다녀왔는데 여전하시네. 너희 부모님은 다 큰 아들을 왜 이리 못하시는 건지……. 잠깐, 군대 하니까 또 열 받네?”

파병을 이유로 군 복무를 하는 동안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로건.

휴가를 받았을 때 정도는 친구에게 얼굴을 비출 법도 하건만, 한 번도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내 서운했다.

“그건 나도 어쩔 수 없었다니까.”

아니다. 당시엔 강간 미수로 교도소에 들어갔을 때라 만나지 못한 거다.

그래서 로건의 부모님은 로건이 외박을 한다고 하면 불안해서 계속 연락을 하는 거다.

이에 로건은 사냥을 즐길 때마다 친구의 이름을 팔았고,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로건과 말을 맞춰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말도 없이 찾아와서는!’

컬럼비아 대학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로건.

이번엔 린과 한창 즐길 때 자취방에 왔다고 갑자기 연락을 해 온 탓에 미처 말을 맞추지 못했다.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아무튼 조심해. 너 투 아웃이야.”

“오늘 내가 내면 아웃카운트가 하나 줄어드는 거지?”

“맛있으면 봐준…….”

“음식 나왔습니다.”

음식을 내려놓은 주안이 돌아서자 얼른 포크를 들어 입에 가져간 로건의 친구는 엄지를 치켜들었고, 피식 웃으며 한 입 먹은 로건은 입술을 비틀었다.

“그래. 맛있네.”

절망이 듬뿍 들어 있어서 그런지 유달리 맛있다.

소금이나 후추 등 별다른 양념을 추가하지 않아도 될 만큼.

* * *

“으아아!”

이젠 차도 잘 지나지 않는 늦은 밤, 세 개의 화이트보드 앞에 선 종혁이 기지개를 켠다.

보니와 이번 사건에 투입된 요원들도 마찬가지다.

“아우, 빌어먹을.”

“Fuck!”

페이탈북, 블루버드, 하트온 닷컴.

세 개의 사이트 이름 아래 주르륵 적힌 수많은 아이디와 닉네임, 그리고 이름과 성별, 나이.

드디어 용의자가 모두 추려진 것이다.

“커피 왔어요!”

“오!”

“고마워, 몰리!”

“고마워요.”

몰리가 타 온 커피로 졸음을 쫓은 사람들이 화이트보드들을 응시하며 이를 간다.

“이 자식들 중에 범인이 있단 말이지?”

보니가 이를 간다.

6명의 피해자가 이용한 3개의 사이트.

피해자와 두 번 이상 연락한 총 493명의 이십대 남성.

이 중에서 겹치는 인물을 추려내야 한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거시기를 뜯어 개 먹이로 줄 새끼들.”

직접 추린 놈들이기에 이들이 피해자들에게 어떤 말을 남겼는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다 알고 있는 그들.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서부와 중부, 남부는 빼죠.”

너무 멀다.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몇 개의 주를 넘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피해자가 사망하기 이틀 전 서부와 중부에서 접속을 한 아이디들을 모두 삭제해 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몰리는 제외되는 용의자들의 카드 사용 기록을 확인해 주세요.”

“알았어.”

남은 건 동부에 사는 이십대 남성, 총 124명.

“최, 미남이 아닌 사람은 뺄까?”

몰리가 슬그머니 의견을 제시하자 종혁이 계속하라는 듯 쳐다본다.

“피해자들도 눈이 있는 이상 뚱뚱하고 냄새나는 사람을 좋아하겠어? 아무리 화술이 좋더라도? 최, 십대야. 이제 막 치장에 눈을 뜨고, 그걸로 서열을 나누는 십대 여자애들.”

몰리가 의견을 제시하기 전, 이미 종혁이 프로파일링을 했을 때에 나온 이야기지만 종혁은 그녀의 추론을 진지하게 들어 주며 약간의 반박을 했다.

“이러한 채팅을 통해서 이성을 찾았다는 점에서 피해자들에겐 어떤 종류든 결핍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금전적으로 부족을 겪었거나, 외모에 자신감이 없거나, 또는 성욕을 채우지 못했거나.

어떠한 이유로든 피해자들은 그 결핍을 충족시키려고 채팅을 시작한 것일 거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런 사이트를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몇 마디 말을 나누는 것만으로 넘어갈 정도라면 평균 이상의 외모라고 생각하는 게 맞겠죠.”

사람이 각기 지닌 매력은 다양하지만, 외모처럼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은 어느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해하고 호감을 품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고작 몇 번의 대화, 만남을 통해서 호감을 얻었다는 건 외모가 어느 정도 준수할 가능성이 높았다.

“흠. 이 사람들은 빼죠.”

첫눈에 끌리지 않을 법한 외모들.

제아무리 빼어난 화술로 꼬드겼다고 한들 썩 정감이 가지 않을 외모를 지닌 사람들은 목록에서 제했다.

그러자 다른 요원들도 자신의 기준에서 정이 안 가는 외모들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도 제하죠.”

“왜?”

“차가 없이 이동을 했는데 CCTV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최소 오토바이 이상을 이용했다고 봐야 합니다. 몰리?”

“네, 네. 차라리 날 죽여.”

한숨을 내쉰 몰리는 방금 말한 걸 수첩에 기록을 했고, 보니는 종혁을 봤다.

“택시나 렌트카를 이용했을 확률도 있겠네.”

“좋은 지적이에요. 내일은 택시회사와 렌트카 회사를 뒤져 보죠.”

“오케이.”

“그럼 제할 수 있는 건 다 제한 것 같은데…….”

그렇게 다 제하고 나니 용의자가 64명까지 줄어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하트온 닷컴만 48명이네.”

별도의 신분 인증도 없이 간단하게 회원가입을 할 수 있는 하트온 닷컴.

“벤과 드롭이 페이탈북과 블루버드의 16명을 맡아 줘요. 전 렌트카와 택시회사를 돌아볼게요.”

“그럼 우린 여기 하트온 닷컴을 이용한 사람들이 접속한 장소들을 둘러볼게.”

“빌어먹을. 이놈들을 언제 다 훑어봐.”

보니와 그의 파트너의 투덜거림에 종혁과 다른 요원들이 씁쓸히 웃는다.

하트온 닷컴을 이용한 얼굴 모를 48명의 유저.

이들의 신상을 알아내는 데만도 한 세월일 것이다.

혀를 찬 종혁은 보니를 쳐다봤다.

“그 장소에 놈이 있을 수 있으니까 조심히 알아봐 주세요. 괜히 FBI라고 광고하지 마시고.”

“걱정 마. 수사 하루 이틀 해?”

“후. 그럼…… 지금 더 할 거 있나요?”

“난 있어!”

몰리가 손을 번쩍 들자 종혁은 푸근히 웃었다.

“일단 집에 가서 간단히 씻고, 의무 방어전 치른 후에 속옷 챙겨서 새벽 2시까지 돌아오죠.”

“난 있다니까!”

“자, 해산!”

“최-!”

“오오오오오!”

“으랏샤! 집에 가 보실까?”

“아, 난 그냥 속옷 사면 안 돼? 의무방어전 무서운데…….”

그들이 킬킬 웃으며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띠리리링!

갑자기 울리기 시작한 전화기.

마침 근처에 있던 종혁이 전화를 받는다.

“예, FBI 뉴욕지국 수사…….”

-아, 안녕하세요. 전 택시기사를 하는 호세 카르난데스인데요.”

“아, 예. 카르난데스 씨,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제가 한 열흘 전에 웬 동양인 소녀와 백인을 택시에 태운 적이 있거든요?

“예?”

잠시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모로 기울이는 종혁.

그때였다.

띠리링! 띠리리리링!

갑자기 사무실의 모든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종혁과 요원들은 당황하며 전화기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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