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98화>
쿵쿵쿵쿵!
대낮부터 강렬한 비트가 울리는 뉴욕 롱아일랜드의 한 저택.
“꺄아아!”
“하하하하하!”
비명 같은 웃음을 터트리는 비키니 미녀들.
상체를 드러낸 채 그런 미녀들 곁에서 웃음을 터트리는 남성들.
그리고 술과 온갖 음식들.
“휘유.”
지상낙원이 이럴까.
“아침 댓바람부터 지랄이네.”
“지랄?”
“한국 욕이에요.”
“아. 지랄, 지랄…… 입에 붙는데?”
고개를 끄덕인 보니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종혁을 본다.
“최는 별로 감흥 없나 봐? 솔직히 저기 풀에 들어가서 미녀들과 놀고 싶지 않아?”
남자라면 누구나 눈이 돌아갈 풍경이다.
그러나 종혁은 아무런 감흥도 없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별로? 이런 건 딱히 취향이 아니라서.”
별미도 가끔씩 먹어야 맛있는 법. 매일 먹으면 금방 질려 버릴 뿐이다. 이런 이벤트는 일 년에 한 두 번이면 족했다.
“하긴. 최, 너 운동중독자였지.”
“거, 멀쩡한 사람 중독자 만들지 맙시다. 난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운동을 좋아하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몇 킬로그램을 들 수 있다고?”
“…….”
“큭큭.”
웃음을 흘리던 보니가 돌연 낯빛을 굳힌다.
“그런데 정말 협조를 얻을 수 있겠어?”
종혁이라면 다를까 싶어 데려온 보니.
종혁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음. 아, 저 자식이야.”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대머리 혼혈 흑인.
운동을 제법 열심히 한 듯 근육질의 몸을 드러낸 삼십대 중반의 남성이 미녀들의 가슴과 엉덩이를 주무르며 비릿하게 웃는다.
“오! 정말 놀러 오신 겁니까? 그런데 드레스코드가 영 아닌데? 뭐, 괜찮습니다. 수영복은 내 집에 많으니까요.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보디가드?”
“이봐요, 가일스톤 씨.”
핸드릭 가일스톤.
종혁은 발끈하는 보니를 말리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보니의 동료인 최종혁입니다. 반갑습니다, 가일스톤 씨.”
“오, 동양인 이름. 얍! 아뵤! 당신도 쿵푸 마스터?”
“꺄아! 날 죽여 줘요, 마스터!”
“호호호호!”
‘지랄 났네, 씨발.’
종혁은 싱긋 웃었다.
“저희 FBI의 정중한 협조를 거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가일스톤은 시가를 길게 빨아 연기를 내뱉었다.
그런 그의 입가에 맺히는 조롱.
“그런 놈들도 내 고객이기 때문이죠.”
“아직 봉우리조차 피지 못한 여린 여자아이들이 끌려다니며 강간을 당하다 못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가일스톤 씨.”
순간 낯빛이 굳은 가일스톤과 비키니 미녀들.
그런 기색을 눈치챈 가일스톤은 그녀들을 엉덩이를 후려쳐 떠나보내곤 종혁을 못마땅하다는 듯 노려봤다.
“너 한국인이지? 맞을 거야. 유독 한국인만 이렇게 눈치가 없거든. 성실하고, 노는 거 모르고. 그리고 사업도 모르고.”
지독한 인종 차별.
발끈하는 보니를 다시 한번 말린 종혁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내가 사업을 모른다고요?”
“이봐, 한국인. 사업이 뭔지 알아? 타인으로 하여금 내 것을 이용하게 만드는 거야. 정확히는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내 하트온 닷컴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요점은 이거야.”
자신이 만든 공간 안에서 가슴속에 숨기고 있는 욕망을 마음껏 표출하는 것.
“그런데 그 드러낸 욕망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어?”
“강간살해범의 사냥터가 당신의 사이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잖아? 명백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저 내 고객일 뿐이지. 나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고객.”
하트온 닷컴이 무료로 제공하는 건 상대를 랜덤으로 매칭해 주는 것뿐, 그 외에 모든 시스템을 사용할 때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매칭되는 상대의 범위를 좁혀 주는 필터를 사용하는 것부터 시작해 다양한 기능들이 전부 돈을 쓰지 않고는 사용할 수 없었다.
“이게 알려진다면 사이트에 큰 타격이 갈 텐데요?”
“글쎄…… 난 접속자가 더 늘어날 거라고 보는데?”
강간살해범까지 보호하는 랜덤채팅 사이트.
가슴속에 추악한 욕망을 숨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사이트에 접근을 할 테고, 돈을 쓸 거다.
종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그러니까 범죄자를 옹호하겠다는 거군요?”
“이봐, 한국인. 세상은 돈이야. 사업은 이 돈만 바라보면 되는 거라고. 그러니 밑바닥 하류 인생이었던 내가 이렇게까지 성공한 거 아니겠어? 너 같은 엘리트는 꿈도 못 꾸는 이런 비싼 시가를 마음껏 피우고, 아무 미녀나 침대로 데려갈 수 있는 성공. 큭큭큭. 자, 선물이야. 받아 둬.”
가일스톤은 종혁의 손에 시가를 쥐여 줬고, 종혁은 그걸 빤히 바라보다 테이블에 올려진 커터를 가져와 시가를 자르고 입에 가져갔다.
“오오! 피울 줄 알아?”
“쓰으읍. 후우우. 퉤! 싸구려네.”
종혁은 시가를 새하얀 대리석 테이블에 비며 끄며 품 안에 손을 넣어 담배를 꺼냈다.
종혁의 무례한 행동에 낯빛을 굳히던 가일스톤은 담배 케이스에 적힌 글자에 눈을 부릅뜬다.
20개비가 들어 있는 시가 한 박스를 십만 달러나 하는 가격에 파는, 최상류층들만 아는 프리미엄 시가 브랜드.
‘저, 저기서 일반 담배를 판다고?’
“후우우. 역시 내 입에는 담배가 맞다니까. 아, 마지막으로 물을게. 이렇게 사정을 했는데도 기어코 범죄자를 옹호한다는 거지? 영장을 가져와도 절대 협조는 안 할 거고?”
“……그건 이미 끝난 말 아니었나?”
“아아, 들었어. 돈 많이 벌어서 미련 없다며?”
가일스톤의 저택과 수영장에서 뛰어노는 미녀들을 둘러본 종혁은 피식 웃었다.
“흐응. 겨우 이 정도로 만족한다라……. 욕망이 작으면 거시기도 작다고 하던데…….”
“이봐!”
“야.”
종혁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나른하게 웃는다.
“왜 범죄자 새끼들이 FBI한테 반항할 때 목숨을 거는지 알아? 내로라하는 사업가들이 왜 웬만하면 FBI를 건드리지 않는지 알아?”
“지금 FBI가 뉴욕에 막대한 세금을 내는 사업가를 협박하는 거야?”
“난 협박 같은 거 안 하는데…….”
“뭐?”
“아무튼 가일스톤 씨의 입장은 잘 들었습니다. 다음에 뵙죠. 뭐……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세요. 그럼.”
“이봐!”
“가죠, 보니.”
“어? 어어…….”
가일스톤을 종혁을 죽일 듯 노려봤고, 얼떨떨해하며 종혁을 따라 나온 보니는 걱정스런 눈빛을 지었다.
“어쩌려고?”
“뭐, 공금 횡령과 배임부터 알아봐야죠.”
원래 스타일이었다면 하트온 닷컴을 사 버렸을 테지만, 지금은 그렇게 낭비할 돈도 없고 저딴 놈에게 돈을 안겨 주는 것도 싫다.
아무래도 약간 돌아가야 할 듯싶었다.
“뭐?”
종혁은 가일스톤의 저택을 가리켰다.
“제아무리 사업이 성공했다지만, 저런 집을 쉽게 구할 수 있을까요?”
롱아일랜드에서 부자들만 산다는 동네의 저택이다.
뉴욕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이 사는 장소.
그런데 핸드릭 가일스톤은 저택뿐만 아니라 뉴욕 맨하탄에도 몇 개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하트온 닷컴이 만들어진 지 고작해야 4년 만에 말이다.
“그리고 매일 저런 파티를 벌일 수 있을까요?”
마치 자신의 집처럼 편하게 지냈던 비키니 미녀들. 그런 그녀들과 향락을 즐기면서도 묘하게 권태로운 눈빛을 짓던 사내들.
질려 버릴 만큼 이런 이벤트를 많이 한 거다.
“그건…… 좀 이상하네.”
그 돈은 대체 어디서 난 걸까.
보니의 입술이 뒤틀린다.
“그렇죠?”
돈을 위해서라면 강간살해범을 옹호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놈이다. 재산을 모으는 과정에서 온갖 더러운 짓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종혁도 입술을 비틀며 FBI 뉴욕지국으로 돌아갔다.
“소득은 있어?”
벤의 말에 고개를 젓는 종혁.
“역시 그런가. 아, 소포 왔어.”
“저한테요?”
의아해하며 책상 위에 놓인 소포를 뜯은 종혁은 미간을 좁혔다.
‘이건?’
회계 자료다. 그것도 하트온 닷컴의 회계 자료.
그뿐만 아니라 핸드릭 가일스톤이 지난 3년간 개인적으로 지출한 지출 내역도 모두 담겨 있다.
‘대체 누가?!’
다급히 발신자를 확인한 종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헨리?’
“보니!”
“왜?!”
“혹시 IRS에 아는 사람이 있어요?”
미 연방 국세청, IRS(Internal Revenue Service).
영화 대부의 주인공 알카포네를 비롯한 거물 범죄자들과 수많은 기업들, 심지어 NASA마저 털어 버린 미국 최고이자, 최악의 정부기관.
체납된 세금을 받아 내기 위해선 세계 어느 곳이든, 그곳이 혹여 멕시코 마약 카르텔 보스의 집이든 쳐들어가서 체납자에게 총구를 들이미는 최강의 집단.
종혁은 자료를 흔들며 사악하게 웃었다.
* * *
“꺄아아아!”
“하하하하!”
오늘도 웃음이 터지는 핸드릭 가일스톤의 저택.
“후우.”
두툼한 시가 연기를 뿜어내는 핸드릭 가일스톤의 입가에 미소가 맴돌고, 새빨간 비키니를 입은 몸매 좋은 여성이 그의 가슴을 매만진다.
“가일, 괜찮겠어?”
“뭐가?”
“FBI 말이야. 그렇게 협조하지 않아도 괜찮겠어?”
“야, 너 이름이 뭐지?”
“또 내 이름 까먹은 거야? 제시카잖아, 제시카!”
“그래, Fucking 제시카. 가서 샌드위치나 만들어 와.”
“뭐?”
“싫으면 내 집에서 꺼져.”
“……치즈는 몇 장?”
“그딴 거까지 알려 줘야 해? 닥치고 만들어 와!”
입술을 깨문 여성은 저택 안으로 들어갔고, 핸드릭 가일스톤은 그런 여성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멍청한 년.”
자신의 집에서 놀고 먹으며 자신의 돈을 쓰는 여자가 왜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단 말인가.
“FBI? 그놈들이 뭘 할 수 있는데?”
종혁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돌아간 이후 핸드릭 가일스톤도 좀 불안해져 변호사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변호사는 괜찮다고 했다.
현재 FBI가 뚜렷한 증거가 없는 것 같으니, 강간살해범이 하트옷 닷컴을 사냥터로 삼았다는 증거가 없는 것 같으니 협조할 필요가 없다고.
만약 증거가 있다면 바로 영장을 집행했을 거라고.
“마음 같아선 영장도 막아서고 싶지만…….”
그건 미 정부에 반기를 드는 행위라 징역을 살아야 되니 절대 막아서지 말라고 했다.
그건 좀 아쉬운 그는 혀를 차다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풋. 병신 같은 FBI. 너희는 열심히 강간살해범을 찾으세요. 난…….”
“읏챠!”
“꺄악!”
풍덩!
“가일! 어서 들어와!”
인세에 펼쳐진 지상낙원. 뉴욕 최고의 클럽 파라다이스가 부럽지 않은 풍경을 보며 핸드릭 가일스톤은 입술을 비틀었다.
“난 너희 따위는 감히 엄두도 못 낼 향락을 즐기며 살 테니까.”
그가 킬킬킬 웃는 그 순간이었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콰아앙!
저택 정문 쪽에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와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굉음.
그리고…….
파바바바바바!
“IRS다! 엎드려!”
“꺄악!”
“으아악!”
갑자기 수영장에 난입한 무장한 특공대원들이 사람들과 핸드릭 가일스톤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I…… RS……?”
뚜벅! 뚜벅!
양팔을 번쩍 든 채 굳어 버린 핸드릭 가일스톤을 향해 사십대의 남성이 다가선다.
“핸드릭 가일스톤? 널 탈세 혐의로 체포한다.”
“미친…….”
핸드릭은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
아직 터질 뒤통수가 있다는 걸 모른 채 말이다.
한편 그 시각 하트온 닷컴의 본사.
“다 쓸어 담아!”
“예!”
마치 들판을 휩쓰는 메뚜기 떼처럼 컴퓨터와 종이로 된 자료 등 1센트라도 액수가 적힌 모든 자료들을 쓸어 담는 IRS의 직원들.
맨날 놀기 바쁜 핸드릭 가일스톤을 대신해 하트온 닷컴을 운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부사장이 핸드폰을 붙든 채 안절부절못한다.
“왜, 왜 이렇게 전화를 받지 않는 거야!”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이럴 줄 알았어!’
그동안 엄청난 액수의 공금을 빼돌려 본인의 향락에 사용한 핸드릭 가일스톤.
결국 터질 일이 터져 버린 거다.
그렇게 부사장이 안절부절못하는 순간이었다.
“응? FBI?”
난데없이 안으로 들어오는 FBI에 의아해하던 부사장은 그중 한 명이 국세청 직원, 아니 이번 급습의 책임자와 악수를 나누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헉! F, FBI까지 동원됐다고?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가일!’
그는 FBI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주춤 물러섰다.
“이든 고스 씨?”
“그, 그렇습니다만?”
종혁은 겁을 먹는 그에게 걱정 말라는 듯 푸근히 웃어 주었다.
“FBI입니다. 저번에 연락을 드렸죠? 강간살해범 조사에 대한 협조를 구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뭐요?! 이봐요, 지금 회사 꼴이 안 보입니까! 지금 IRS가…….”
부사장, 이든 고스가 말끝을 흐린다.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한 현재 상황.
얼마 전 찾아온 FBI 협조를 거부한 이후 급습을 해 온 IRS.
이게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그의 생각이 맞다는 듯 종혁의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고스 씨, 우리가 정말 영장을 받을 수 없어서 이렇게 협조를 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회사의 안위를 생각하셔야죠. 가일스톤 씨는 당분간 회사 일을 신경 쓰지 못하실 테니까요. 아니면…….”
종혁은 이든 고스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당신도 털어 볼까? 가일스톤이 회사 공금을 횡령하는 데 당신도 개입했을 것 같은데?”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