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97화>
FBI 뉴욕지국.
종혁이 살짝 미간을 좁힌다.
“원래부터 피해자들 간의 공통점 중 하나라고요?”
“맞아, 최.”
하트온 닷컴은 피해자들 사이에 있는 공통점 중 하나였다.
하지만 확실한 게 아니라 의심 수준이었다.
“이것 좀 보겠어?”
보니가 다시금 수거한 피해자들의 컴퓨터 화면을 보여 준다.
“……채팅 사이트와 게임 사이트가 많군요.”
메신저에다가 페이탈북, 블루버드 등 SNS도 있다.
피해자 중 한 명은 하루에 무려 10개가 넘는 사이트에 접속한 기록이 있다. 다른 피해자들도 못해도 4개씩은 접속했다.
“모두 요새 십대들에게 핫한 곳이야. 이 중 두 개 이상 이용하지 않으면 거의 너드로 취급될 정도라고 해.”
컴퓨터를 집중하고 있던 요원들이 혀를 내두르고, 종혁은 미간을 좁힌다.
“그럼 기를 쓰고 할 수밖에 없겠네요.”
‘이러니 이 부분이 부각되지 않은 거군.’
이 역시 인터넷 세상에 발전하면서 대두되는 문제점.
하루에 받아들이고 이용하는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럴수록 수사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맞아. 하지만 이 마지막 피해자의 노트북은 달라.”
최근 두 달 사이에 페이탈북과 블루버드, 그리고 하트온 닷컴에 접속한 기록만 있는 린의 노트북.
후보군이 확 줄어든 거다.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상당히 치밀한 놈인 거 같아.”
보니가 첫 번째 피해자의 인터넷 검색 기록을 보여준다.
“마지막 접속 기록이 사흘 전이야.”
살해당하기 사흘 전에 마지막으로 하트온 닷컴에 접속을 했던 첫 번째 피해자.
두 번째 피해자는 닷새 전에 접속한 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그 기간이 점점 늘어 갔다.
그리고 린은 보름 전이 마지막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야.”
보니는 피해자들의 통화 기록을 보여 줬다.
“피해자들이 한창 하트온 닷컴을 이용할 당시 통화량과 시간이 급증한 번호가 있군요.”
번호는 모두 달랐고, 마지막 발신지도 모두 달랐다.
“모두 추적이 불가능한 놈들이야.”
선불폰도 있고, 대포폰도 있다.
선불폰도 모두 명의자가 달랐는데, 조사해 보니 선불폰을 대리 구매해 주는 업체였다. 대포폰은 아예 업체조차 찾지 못했다.
그들은 대리로 구매해 어느 장소로 택배를 보냈다.
“이 주소도 모두 달라.”
공교롭게도 모두 그 주소 주위에 CCTV가 없어서 범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
“문제는 셋 중 어느 곳이 놈의 사냥터냐는 건데…….”
페이탈북과 블루버드, 그리고 하트온 닷컴.
이 중 놈의 사냥터가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이나, 여기서 더 좁힐 수 있는 단서가 부족했다.
종혁은 턱을 긁었다.
“이 새끼 봐라?”
“뭐 좀 알겠어?”
프로파일링의 대가인 종혁.
보니와 요원들이 종혁을 기대 어린 눈으로 본다.
“일단 놈은 부유한 20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의 남성일 겁니다.”
“20대 중반에서 후반? 어째서?”
“범인과 피해자는 몇 차례씩 만남을 이어 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사이에 피해자들의 소비가 커지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십대 소녀들이 삽심대 이상의 남성을 만날 이유는 일반적으로 돈을 목적으로 한 조건 만남밖에 없었다.
만약 이번 사건이 조건 만남에서 이어진 강간살인이었다면, 사망하기 전 피해자들의 소비가 늘어난 모습이 포착되어야만 했다.
즉, 이번 사건의 범인이 삼십대 이상일 확률은 낮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10대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치밀해요.”
놈은 살인을 저지르기 전 마약과 근육이완제를 동시에 썼고, 추적인 불가능한 폰을 사용했다.
그리고 피해자가 발견된 장소 인근의 CCTV를 모두 뒤져 보아도 피해자와 함께 있는 놈의 모습은 찍혀 있질 않았다.
무심코 넘어가는 실수가 없는 것이다.
제아무리 똑똑하다 하더라도 이 정도로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르는 십대는 흔치 않았다.
“거기다 사망 추정 시각이 모두 늦은 밤 아니면 새벽 시간대입니다. 3번째 피해자부터는 며칠씩 끌고 다니면서 강간을 저질렀죠.”
“아!”
“예. 아무래도 십대라면 며칠씩 집에 들어가지 않는 건 무리가 있겠죠. 그리고 아마 전과가 있는 놈일 확률이 높습니다.”
범행 수법이 치밀하다는 건, 그만큼 수사기관이 어떤 식으로 자신을 쫓을지 잘 알고 있는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피해자가 범인을 만나기 바로 직전에 채팅 사이트를 이용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FBI는 곧바로 이곳들을 의심하고 수사에 나섰을 터였다.
놈이 의도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피해자들이 채팅 사이트를 이용하지 않게끔 유도한 것이 분명했다.
“……맞아. 실제로 대부분 사건이 발생하기 한 달 전부터 통화량이 급증했어.”
전과가 있는 놈이 아니고서야 여기까지 발상을 하고 움직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언변도 유창할 테고요.”
“외모도 빼어나고?”
“아무래도?”
성인의 성숙함을 풍기는 잘생긴 이성.
여성이든 남성이든 십대라면 껌뻑 죽을 수밖에 없다. 동경의 대상이니 말이다.
“희유. 이 정도 정보로 거기까지 읽어 낸 거야?”
“이 정도까지밖에 못 읽은 거죠.”
“고마워, 최.”
종혁이 지원을 와 주지 않았다면, 그래서 하트온 닷컴이라는 정보를 얻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외부의 자극에 반응을 하지 않은 채 오늘도 눈물만 흘리는 주안. 린의 노트북을 확보하지 못해서 지금까지도 헛발질을 하고 있었을 거다.
그러다 보니의 낯빛이 굳는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이 세 곳 모두 협조를 하지 않는다는 거야.”
“이용자의 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인터넷에 왜 변태들이,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익명성과 비밀 유지. 사이트 안에서 나누는 대화가, 그리고 그런 말을 지껄인 자신의 신상정보가 밖으로 유출되지 않을 거라는 심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고, 사이트는 그런 유저들의 심리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맞아. 그런 이유로 거부하고 있어.”
보니와 그의 파트너, 벤과 드롭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하지만 종혁은 달랐다.
“흐으음. 페이탈북과 블루버드는 협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응?”
“제가 아는 분이 거기 주주거든요. 지분이 꽤 될걸요?”
정확히는 종혁 자신이 주주다.
성공이 확실한 사이트들. 지분 확보는 당연한 일이었다.
보니와 요원들은 종혁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 * *
“마크입니다.”
큰 키, 호리호리한 체격에 선한 인상을 지닌 백인 남성.
페이탈북의 창시자이자 주인인 마크 글래스가 손을 내밀자 종혁이 맞잡는다.
“FBI의 최종혁입니다.”
“……역시 한국계군요.”
마크 글래스의 이마에 땀이 삐질 흐른다.
처음 페이탈북을 만들어 하버드에 뿌린 후 사업성을 확신하고 전국 대학에 배포하려고 했지만 자본이라는 암초를 만났을 때 접근해 막대한 돈을 투자했던, 다른 투자는 받을 필요가 없을 만큼 화끈하게 투자했던 한국 기업, 권&박 홀딩스.
이후 지금까지도 마크 글래스 본인의 든든한 우군이었던 그들이, 두 번째로 많은 주식을 보유한 그들이 무리한 부탁을 해 왔다. 그것도 FBI라는 최악의 존재에게 대리인 자격을 부여해서.
‘어째서!’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그저 피해자들, 그리고 그 피해자들과 얽힌 분들의 정보를 원하는 것뿐이니까요.”
“하지만 그 익명성과 비밀 유지가 저희의 근본입니다, 미스터 최.”
“그런 것치고는 너무 오픈되어 있던데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타인의 삶을 지켜볼 수 있게.”
이게 바로 페이탈북 같은 SNS의 정체성.
내 삶의 공유가 이들의 정체성이다.
“그러면서도 비공개, 비밀스런 대화를 지켜 주었기에 저희가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겁니다. 정말 사적인 일까지 오픈되어 버린다면 누가 제 사이트를 이용을 하겠습니까.”
“앞으로도 계속 비밀로 하면 됩니다.”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건 미스터 최가 더 잘 알지 않습니까!”
FBI가 그 정보를 얻어 피해자들과 얽힌 용의자들을 족치고 다닌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페이탈북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게 될 테고, 그건 곧 기업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글쎄요. 잘 모르겠군요.”
“이보세요, 미스터 최!”
“제가 아는 건 당신이 협조를 해 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페이탈북 창립에 투자한 2대 주주의 부탁이다.
그는 들어줄 수밖에 없다.
빠득!
종혁은 마크 글래스가 이를 악물자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친구분께서 동양인이시더군요.”
“여보세요!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그녀는 엄연한 미국 시민…….”
“피해자들도 동양인입니다. 그리고 미성년이죠. 가장 어린 피해자의 나이가 13살입니다.”
마크 글래스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종혁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이 새끼는 아주 개새끼입니다, 글래스 씨. 당신도 미성년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범죄자를 옹호하고 싶진 않을 거 아닙니까. 또 그건 절대 기업 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페이탈북을 이용하는 사람의 절대 다수는 바로 평범한 생각을 가진 일반인이고, 페이탈북은 자신의 일상을 남과 공유하는 사이트다.
그런데 소아성애자, 그것도 강간살해범이 자신의 계정을 들여다본다? 다음 타깃을 물색하기 위해서?
그 누구도, 주주들까지도 바라지 않을 일이다.
“제 말이 틀리다면 틀리다고…….”
“잠깐! 잠깐, 잠깐만요! 뭐라고요?”
마크 글래스가 당황한다.
“동양인 미성년자? 강간살해? 지금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습니까?”
“……아무래도 정보 전달에 착오가 생겼나 보군요.”
“그런 것…… 같군요. 맙소사…….”
미국인이 제일 싫어하는 범죄 중 하나가 아동성폭행이다.
그간 마크 글래스도 똑같다. 어디 건드릴 이성이 없어서 보호받고 사랑만 받아도 모자랄 아동을, 미성년자를 건드린단 말인가.
거기다 자신의 여자친구와 같은 동양인이라니.
치솟은 혈압이 뒷목을 뻣뻣하게 만든다.
“알겠습니다! 협조를 해 드리죠! 하지만 대신…….”
“언론에는 이번 사건에 분노하며 적극 협조해 주셨다고 말하겠습니다. 아, 권&박 홀딩스에도요.”
“……제 입장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사업가로서 당연한 일을 하시는 것뿐인데요.”
도덕성. 사업체를 번듯하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키우고 싶다면 어쩔 수 없이 이 도덕성을 신경 써야 한다. 기업의 이미지를 위해서 말이다.
“그럼 협조를 해 주시는 걸로 받아들이면 될까요?”
“얼마든지요.”
마크 글래스는 먼저 손을 내밀었고, 종혁은 그 손을 잡았다.
그렇게 페이탈북과 블루버드에서 피해자들의 계정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다.
* * *
“…….”
“왜요? 뭐요?”
종혁은 빤히 쳐다보는 벤과 드롭의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대체 뭐가 불만인데요?”
“……하아. 진짜 최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앞으로 어떻게 하지?”
종혁이 아니었다면 유저의 숫자가 수백만, 수천만이 되는 이런 거대 기업의 협조를 이렇게 쉽게 끌어낼 수 있었을까.
영장이 있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최, 정말 한국으로 돌아가야겠어?”
흠칫!
안 그래도 이 때문에 할 말이 있었던 종혁은 혀를 찼다.
“돌아가야죠. 내 기반이 거기 다 있는데.”
“기반은 다시 쌓을 수 있잖아.”
“엄마가 한국이 좋대요.”
“……그럼 어쩔 수 없지.”
“맞아. 엄마 말은 잘 들어야지.”
둘이 마마보이라서가 아니다. 엄마는 현명하다, 틀린 말을 하지 않는다고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화이트보드를 본 벤과 드롭이 한숨을 내쉰다.
그건 종혁도 마찬가지다.
“많네……. 저걸 팔로워라고 했던가?”
“팔로워뿐만 아니라 팔로잉 숫자도 많아요.”
3천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피해자도 있다.
이들 중 피해자와 긴밀하게 연락을 한 이십대 중반 이상의 남성을 찾아야 한다.
그들 중 겹치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
“일단 팔로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비밀글 위주로 뒤지는 게 맞을 텐데…… 몰리?”
“지금 추리는 중이야! 자료가 많아서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벤과 드롭을 툭 치며 탕비실을 가리켰다.
할 일이 없을 땐 열심히 일하는 사람 주위에 얼씬 거리면 안 되는 법이었다.
그때였다.
콰앙!
“빌어먹을!”
“Fuck-!”
린을 발견했을 때와는 결이 다른 분노를 터트리며 들어오는 보니와 그의 파트너.
도넛을 물다 말고 나간 종혁과 벤, 드롭이 눈을 껌뻑이다가 그들의 표정을 보곤 한숨을 내쉰다.
종혁과 벤, 드롭이 페이탈북과 블루버드의 대표를 만나러 간다고 하자 무리해서 하트온 닷컴의 대표를 만나러 간 그들.
그런데 아무래도 퇴짜를 맞은 것 같다.
“왜요? 이번에도 협조를 안 해 주겠대요?”
창업주이자 대표를 만나 제대로 말한 것이 맞냐, 기업의 도덕성을 자극해 봤냐는 듯한 종혁의 눈빛.
하트온 닷컴이 협조를 안 해 준 건 페이탈북과 블루버드처럼 아래 직원이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보니와 그의 파트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하! 자기는 이미 벌 만큼 벌었다고 하더라!”
“……에라이.”
골치 아프게 됐다.
“너희는? 너희는 소득이…… 있네. Damn.”
“몰리가 열심히 노력 중이에요. 그보다 영장은 거론해 봤어요?”
“가져올 테면 가져와 보란다! 자기가 아는 변호사 많다고!”
“……와, 이 아름다운 씹새끼 보소?”
일그러지는 종혁의 얼굴.
“이 새끼 지금 어딨습니까?”
아무래도 얼굴 좀 봐야 할 것 같다.
종혁의 두 눈이 흉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