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95화 (495/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95화>

108. 사라지다

“곧 뉴욕을 포함한 동부 전체에 실종 신고가 내려질 테고, 저도 따로 탐정사무소에 의뢰를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곧 이민 관련 전문 변호사가 찾아갈 테니 이야기 잘 들으시고요.”

-감사합니다…… 흑!

씁쓸히 웃으며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기지개를 쭉 켰다.

파악!

“윽?”

“잘했어.”

웃음을 흘리며 사무실로 들어가는 캘리 그레이스.

피식 웃은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버락 던햄 루터를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 * *

버락 루터 던햄과 해군부가 어떤 거래를 했는지 모르지만, 라비 일병에 관한 사건은 공론화되지 않은 채 빠르게 판결이 났다.

고작 3일 만에 열린 재판의 결과는 징역 3년 형.

정당방위로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12번이나 칼로 찌른 것은 더 이상 방위하기 위함이었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또한 사망자가 무력화되어 도망치던 중에 등을 찔렀다는 정황까지 명백하여 더더욱 그랬다.

그래도 흉기로 사용되었던 부서진 맥주병으로 먼저 위협을 받았던 것이 라비 일병이었다는 점.

그리고 라비 일병이 오래전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일을 당했다는 점이 인정되어 무죄까진 아니더라도 상당히 감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은 라비 일병은 뉴욕에 있는 군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리자춘 부부가 언제든 면회를 갈 수 있도록 종혁이 힘을 쓴 거다.

그리고 라비 일병을 괴롭혔던 소대원들은 걸릴 수 있는 모든 죄목이 걸려 재판에 회부됐는데, 한 명당 최소 14년 형 이상의 처벌을 받을 거라는 연락이 왔다.

이왕이면 라비가 무죄를 받았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다.

“와하하하하!”

“꺄아아아!”

어른들이 웃음을 터트리고,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벤의 집.

드롭 가족과 함께 하우스파티에 초대받은 종혁도 함께 껴서 웃고 있다.

오늘은 라비가 좋은 판결을 받고, 가해자들이 죗값을 받는 것을 축하는 자리. 종혁과 벤, 드롭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정말? 정말 최가 차이나타운에 3천 대가 넘는 CCTV를 지원한 거야?”

“장담하건대 이 뉴욕에서 차이나타운이 제일 안전할걸?”

“와우.”

“아하하.”

종혁은 대단하다는 눈빛을 보내오는 벤과 드롭의 와이프들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었다.

“최, 진짜 아줌마는 어때?”

“진짜 나 죽어요, 헬렌. 거기도 입 다물어요. 드롭이 지금 소매 걷었어요.”

“와, 최는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거야?”

“이렇게 살기가 풀풀 풍기는데 모를 리가 없잖아요. 아아, 그렇다고 애정 행각은 하지 마시고! 거 솔로 속 뒤집지 맙시다!”

“풋!”

다시 터지는 웃음.

종혁은 비어 버린 맥주에 부엌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뚜뚜루 뚜뚜뚜 키싱 유 베이베!

“아, 잠시만요?”

종혁은 돌아서며 전화를 받았다.

“예, 최종혁입니다.”

-최종혁, 이 나쁜 놈아-!

“……최재수?”

잠시 귀에서 핸드폰을 뗀 종혁은 전화를 건 사람이 정말 최재수가 맞는지 확인했다.

‘맞는데?’

종혁은 눈을 껌뻑였다.

* * *

다음 날 아침, 햇볕이 내리쬐는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을 손에 든 종혁이 권아영과 통화를 나누고 있다.

-반발이 심상치 않아요. 아무래도 M&A가 무산되지 않을까 싶어요.

“역시 그렇게 되는군요.”

정치권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산업은행의 리먼 브라더스 M&A를 반대하고 있다.

거의 매일같이 감사가 벌어지고 있고, 정치인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상황.

그리고 그 선두에는 현몽준 당대표가 있었다.

“그럼 결국 무너지겠네요.”

미국이, 세계 패권 1위의 이 거대한 나라가 그로기 상태로 몰리게 될 거다.

-네. 앞으로…….

“길어야 한 달 반.”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그때가 되면 자신들도 약속이란 족쇄를 벗고 사냥에 나서게 될 거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라는 거대한 먹잇감을 물어뜯고 씹고 맛보기 위해. 누구보다 빨리 맛보기 위해.

“그날이 될 때까지 점검하고 또 점검하세요.”

-네, 보스!

“이외에 더 제가 알아야 할 정보가 있습니까?”

-당연히 많죠!

“하하.”

-웃지 마세요! 맨날 일만 시키고 말이야!

“아하하.”

종혁은 질책과 함께 다른 보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미국이 삐걱거리니 전 세계가 비명을 지르는구만.’

다만 아직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사는 서민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것뿐, 붕괴의 균열은 계속해서 크기를 키워 가고 있었다.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그 말에 시간을 확인한 종혁 역시 아차 하며 테이블에 올려놓은 노트북을 켜 어떤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와 동시에 4등분으로 분할된 화면, 그중 두 개의 화면에 종혁과 권아영의 얼굴이 비춰지고, 곧이어 나탈리아와 헨리 역시 얼굴을 드러낸다.

-오랜만이에요, 최.

-전 며칠 만이군요, 최.

종혁을 향한 애정을 듬뿍 드러내는 둘.

그러다 돌연 나탈리아가 입술을 비튼다.

-흐응. 당신이 조국을 배신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배신이 아니지. 내 조국을 더 단단하고 대단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내용은 이미 끝난 이야기가 아니었나?

미국의 추락에 베팅을 하기로 한 헨리.

-쯧.

-심보 좀 곱게 쓰지그래?

-우리가 그럴 사이였나?

“하하. 자자, 진정들 하시죠.”

‘이 양반들은 왜 만나기만 하면 싸워?’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모르는 게 아니기에 종혁은 입맛만 다실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종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진다.

“그럼 조율을 시작하죠.”

그동안에 변동된 사항들을 바탕으로 어디까지 먹어 치우고, 어느 정도까지 놔둬야 하는지 등을 조정하기 위한 조율.

“일단 저부터 말하죠. 산업은행의 리먼 브라더스 인수가 무산될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거의 확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쿵!

-……카운트다운이 시작됐군요.

미국의 추락에 베팅을 하기로 했지만, 그럼에도 가슴이 쓰린 헨리 스미스.

나탈리아도 잠시 안타까워하는 시선을 보내지만, 곧 낯빛을 굳힌다. 지금부턴 그러는 시간도 아깝기 때문이다.

그들 네 명의 입이 동시에 열리기 시작했다.

“후우. 그럼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씁쓸히 웃은 헨리는 먼저 접속을 종료했고, 나탈리아는 종혁을 봤다.

-바이칼호에 있는 놈이 얼마 전 중국을 다녀왔어요.

바이칼호 보물선 인양 사기 사건.

“곧 철수한다는 뜻이군요. 조희구는 어떻습니까?”

-그쪽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요.

종혁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린다.

‘흠. 이놈도 곧 튈 때가 됐는데…….’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 부탁드리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최.

피해자를 위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단 종혁이 본인을 더 위하길 바라는 그녀.

‘이런. 걱정을 끼쳤군.’

생각해 보니 이렇게 걱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조희구에게 조 단위의 돈이 들어가 있는 상태고, 보물선 발굴 쪽에도 천문학적인 액수가 투입된 상황이다.

거기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종혁이 수사를 위해 사용하는 돈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그녀가 걱정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종혁은 그걸 후회하진 않았다.

이 모두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나탈리아.”

-아니에요. 제가 괜한 말을 한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제가 나탈리아의 마음을 모를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뵙죠.”

-네. 다음에 봐요.

한결 표정이 가벼워진 그녀는 접속을 종료했고, 종혁은 권아영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접속을 종료했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권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금 사정이 안 좋습니까?”

수사를 위해 따로 빼놓은 현금들.

-솔직히…… 위험해요. 어쩌면 보스가 맡긴 부동산이나 주식 중 일부를 매각해야 할지도 몰라요.

“그 정도라고요…….”

‘확실히 많이 쓰긴 썼나 보네.’

종혁은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매각할까요?

“흠. 일단 그건 두고 보도록 하죠.”

궁핍하다고 해도 한 달 정도만 참으면 된다.

잠시만 허리를 졸라매면 되는 일이었다.

‘뭐, 그 안에 별일이야 있겠어?’

이후 조금 더 통화를 하다 종료한 종혁은 머리를 긁었다.

자신 때문에 항상 이리저리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권아영.

그 노고와 배려가 고맙고, 또 미안했다.

‘권 이사에게도 보답을 해야 할 텐데…….’

어떤 게 좋을까 가만히 생각하던 종혁은 잠시 하늘을 봤다.

장마가 가시며 드러난 푸르른 하늘.

종혁의 입가에 푸근한 미소가 맺혔다.

“아…… 우라지게 덥네.”

어느덧 8월. 햇볕이 많이 뜨거웠다.

종혁은 얼른 몸을 일으켜 에어컨이 빵빵 틀어지는 방 안으로 향했다.

* * *

“좋은…… 아침은 아니네.”

이놈의 아침은 언제나 모두에게 좋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우울한 면상을 한 채 퀴퀴한 냄새를 뿌리며 좌절해 있는 몇몇 요원들을 슬그머니 외면한 종혁은 탕비실에서 커피를 따른 뒤 자리에 앉았다.

그러며 잠시 사무실의 풍경을 돌아봤다.

웅성웅성.

범인을 쫓고,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아침부터 정신없이 바쁜 요원들.

언제나 같은 풍경이면서도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풍경이다.

그렇다 보니 어제의 전화가 떠오른다.

어제 한국은 낮 시간대임에도 만취해 전화해서 다짜고짜 욕을 했던 최재수.

같이 술을 마시고 있었던 건지 함경필 국장이 식겁해서 핸드폰을 뺏었지만, 곧 백이도 과장과 함께 언제 돌아오냐고 하소연을 했다. 마치 술 마시고 아내에게 징징거리는 아빠처럼 매달렸다.

최재수가 욕을 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보고 싶다고. 언제 돌아오냐고.

그리움이 폭발한 것 같다.

그리고 그건 종혁도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여기에 오래 있었네…….”

어느새 1년.

원래는 반년 정도만 있다 가려고 했던 NYPD 연수가 FBI 연수로 바뀌더니 어느새 1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말았다.

‘돌아갈까?’

배울 건 모두 배웠으니 이제 슬슬 돌아가도 될 것 같다.

“그래. 돌아가자.”

어머니와 가족이 있는 한국으로, 팀원들이 있는 한국으로.

커피를 내려놓은 종혁은 캘리 그레이스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마음이 섰으면 후회하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통통통!

“들어와. 오, 최. 무슨 일이야?”

하던 일을 멈추고 종혁을 바라보는 캘리 그레이스.

무심하지만 반기는 그녀의 눈을 본 종혁이 씁쓸히 웃는다.

막상 마음은 먹었지만, 언제나 무조건적으로 지원해 주던 그녀를 보니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최?”

“10월이 되기 전에 돌아갈까 합니다.”

이곳을 떠나기 아쉽기에 10월.

그게 스스로와 타협할 수 있는 최대였다.

움찔!

“……아쉽네. 최, 너는 FBI가 딱인데 말이야.”

“어머니가 얼른 돌아오라고 성화시더라고요.”

피식!

“동료들에게는 말했고?”

“보스에게 가장 처음 말하는 겁니다.”

“……알았어. 나가 봐.”

고개를 숙인 종혁은 사무실을 나갔고, 캘리 그레이스는 담배를 물었다.

‘최를 FBI에 눌러앉히려면…….’

그녀의 눈이 매섭게 빛나기 시작했다.

한편 사무실을 나선 종혁은 갑자기 후다닥 뛰쳐나가는 동료들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허드슨강에서 시신이 발견됐대.”

“아, 벤.”

“미성년 동양인 여성이라고 하더라고.”

“결국 또…….”

또다시 벌어진 연쇄강간살인.

피해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음에도 수사에 진척은 없어, 가슴에 쇳덩이를 올려놓은 듯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동료들이 뛰쳐나간 문을 복잡한 눈으로 응시하던 종혁은 벤을 봤다.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요?”

“시간? 응. 뭐, 괜찮아. 왜?”

“할 말이 있어서요. 드롭은 어때요?”

“최, 유부남이 언제나 바라는 건 밖에서 놀 수 있는 명분이야. 특히 주말은 환상적이지.”

“하핫! 알았어요. 그때 보기로 해요.”

“알았어! 아, 그런데 심각한 일은 아니지?”

“심각하면 심각하달까…….”

“응?”

싱긋 웃은 종혁은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그러나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연쇄강간살인 때문에 뛰쳐나갔던 동료들이 돌아오며 책상을 걷어찬다.

“빌어먹을!”

“Fuck! Fuck-!”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일그러진 그들의 얼굴.

시신의 상태가 얼마나 처참했는지 직접 보지 않아도 절절히 전해진다. 그러자 사무실 안에 있던 모든 요원들의 손이 잠시 허공을 허우적거린다.

저런 절규를 들었는데 어찌 일이 손에 잡힐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책상을 걷어찬 요원이 몰리에게 다가간다.

“몰리, 이걸로 조회 좀 할 수 있을까?”

“신분증 같은 건 없었어?”

“없었어…….”

“후, 알았어. 잠시만.”

몰리는 그가 가져온 지문과 시신 사진으로 데이터베이스를 돌리기 시작했고,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실종 아동으로 나오네.”

그동안 연쇄강간살인 피해자들은 전부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고 했다가 그대로 실종된 아이들이었다.

그건 이번 피해자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하지만 아직 몰리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등록자가 최인데? 어제 등록했네.”

“응?”

“나?”

놀라 자신을 가리킨 종혁.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몰리에게 다가간 종혁은 이내 굳어 버렸다.

“어…… 걔가 거기 있으면 안 되는데?”

라비 일병의 마음을 돌리는 데 큰 공헌을 해 주었던 주안의 딸, 린.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가출 소녀.

종혁의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했다.

* * *

툭!

작고 거친 손이 종혁의 가슴을 때린다.

힘이 없지만 너무도 아픈 주먹.

너무 아파 울음이 흘러내린다.

투욱!

“찾아 주신다면서요…….”

“죄송합니다.”

“찾아 준다면서요! 찾아 준다고-! 아아! 아아아! 아, 안 돼! 린, 엄마가 왔어! 일어나! 일어나 봐, 제발-! 아아아악!”

차가운 금속 침대 위, 하얀 천을 이불 삼아 눈을 감고 있는 딸을 붙들고 오열하는 어머니.

종혁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아아아아악!”

자식을 잃은 어미의 통곡이 안치실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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