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91화>
띠리리리리링!
아침 6시, 열차가 들어온다는 걸 알리는 알람 소리가 지하철역을 울리자 승강장에 청소부들이 나타난다.
“Fuck. 쓰레기통이 꽉 찼으면 버리질 말아야지!”
일회용 커피컵이나 쓰레기가 쓰레기통에 가득하다 못해 흘러넘쳐 주변을 더럽힌 모습에 얼굴을 구긴 청소부들은 가져온 검은 봉투에 쓰레기를 담기 시작한다.
그러며 주위 의자에 널브러져 있는 노숙자를 보며 혀를 찬다.
“결국 여기까지 내려왔네.”
원래 노숙자는 게이트를 넘을 수 없지만, 출근하고 난 후 여기까지 오며 본 노숙자의 숫자만 20명이 넘는다.
아무래도 위에 쉴 공간이 없어서 여기까지 내려온 것 같다.
‘이게 모두 나라 경제가 박살 났기 때문이라니까.’
고개를 저으며 승강장의 쓰레기를 모두 수거한 청소부들은 하품을 하며 승강장을 빠져나갔고, 그들의 동정을 받은 노숙자 중 한 명이 모포를 젖히며 몸을 일으킨다.
“후우.”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다가 멈춘 한 백인 사내.
그레이스 탐정사무소 직원인 그는 핸드폰을 들어 CCTV 관리실을 지켜보고 있을 종혁을 향해 전화를 걸었다.
“쓰레기 수거해 갔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수고비는 두둑이 쳐서 보내 드리죠.
“어우. 그럼 감사하죠. 그럼 전 퇴근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포를 내려놓은 직원은 다시 울리는 알람 소리에 노란선 위에 섰고, CCTV 화면을 지켜보고 있던 종혁은 지하철역 출입구로 향하는 청소부를 보며 벤에게 전화를 걸었다.
“벤, 2번 출구로 청소부들 올라갑니다. 체크해 주세요.”
-푸후우. 알았어. 드롭에겐 내가 연락할게.
잠복이 고됐는지 목소리가 다 죽어 가는 벤.
종혁은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문 채 어젯밤의 일을 떠올린다.
쓰레기와 함께 돈을 버렸던 잭 웡.
저녁 11시가 넘어가며 지하철역 출입구의 셔터가 내려오자 지하철역 전체를 훑으며 그 돈을 찾으러 올 라비 일병을 기다렸으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몰라 탐정사무소 직원을 박아 뒀건만…….’
다른 역에서 선로를 따라 찾아올 가능성도 있기에 잭 웡이 돈을 버린 쓰레기통 앞에 탐정사무소의 직원을 노숙자처럼 위장시켜 놓았는데, 아무래도 잠복을 눈치챈 듯했다.
그런 종혁의 생각이 맞다는 듯 곧 벤에게서 연락이 온다.
-방금 쓰레기차가 쓰레기 수거했어.
“빌어먹을.”
튀었다. 들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임에도 과감히 돈을 포기한 거다.
“감 한번 더럽게 좋네.”
라비 일병과 잭 웡이 서로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이따가 잭 웡과 만나 봐야 할 것 같다.
“알았어요. 수고했어요.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거칠게 핸드폰을 닫은 종혁은 지하철역을 빠져나갔다.
* * *
쏴아아아아아!
다시 비를 쏟아 내는 뉴욕의 하늘.
저 멀리 지하철역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쓰레기차를 응시하던 라비 일병이 쌍안경을 내리며 잠시 하늘을 본다.
“내 육감이 맞겠지?”
그가 과거의 일을 떠올린다.
그날도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지독한 악마들과 단 1분이라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밖에서 버티고 버티다, 점호 시간에 맞춰 숙소로 들어갔었다.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 옮겨 문을 연 순간, 발목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과 함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뻐어엉!
-야.
-이, 이병 라비!
-너 방금 죽은 거 알지? 누가 사주경계 풀고 다니래? 박쥐자세 해.
그날 라비 일병은 동이 틀 때까지 2층 침대에 거꾸로 매달려 있어야 했다.
선임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이며 가혹 행위를 가한 건 비단 그날만의 일이 아니었다.
놈들은 악마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악마들.
라비 일병은 그들에게 트집을 잡히지 않기 위해 잘 때마저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고, 결국 나중엔 부비트랩은 물론이고 그 악마들마저 피해 갈 정도로 육감이 발달하게 됐다.
그런 육감이 어젯밤 경고를 했다.
친구 잭 웡에게 부탁한 돈을 가지러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순간 잡힐 것이라고 말이다.
마치 처음 부비트랩에 걸렸던 그 순간처럼 돋았던 소름.
그래서 라비 일병은 곧바로 몸을 돌렸고, 결국 이곳에서 날이 새도록 지하철역을 감시했었다.
그것도 결국 쓰레기차가 지하철역의 쓰레기를 수거해 가면서 끝나 버렸지만 말이다.
라비 일병은 어제 로즈마리 카페에서 뛰쳐나왔던 세 사람을 떠올렸다.
‘NCIS겠지?’
아마 그럴 거다.
만약 쿠바 관타나모의 해군 기지 안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면 군사경찰이 사건을 조용히 덮었을지도 모르나, 자신이 그 악마를 죽인 건 마이애미.
덮을 수 없을 만큼 사건이 노출된 이상, NCIS가 나설 수밖에 없었을 터다.
‘도망칠 수 있을까?’
과거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휴가를 나갔다가 사고를 친 장병이 며칠도 되지 않아 NICS에게 잡혀 왔던 걸 똑똑히 본 라비 일병에겐 NCIS가 터무니없는 조직처럼 느껴졌다.
꼬로록!
벌써 3일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위장이 뒤틀리는 것과 동시에 목구멍마저 울렁거린다.
“콜록! 콜록콜록! …… 후. 춥네.”
우비를 입고 있지만, 어젯밤 동안 계속 비를 맞아서 그런지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 같다.
행군을 오래 한 것처럼 눈앞도 어질거린다.
‘그냥…… 도망갈까?’
“아니야. 조금만 참자.”
NCIS도 언제까지고 뉴욕을 감시하지는 못할 터. 분명 시간이 흐르면 감시망이 느슨해질 수밖에 없을 거다.
‘부모님을 봬야 해.’
누구의 방해도 없이 만나서 손을 잡고 얼굴을 만지고 목소리를 듣고 싶다.
‘안심시켜 드려야 해.’
전화만 달랑 남기고 사라지면 걱정하실 부모님.
잘살 거라고, 어딘가에서 꼭 잘살 거라고 직접 뵙고 안심시켜 드리고 싶다.
그 후 어디로든 떠나서 숨어 지낼 것이다.
그 악마들이 없는 곳이라면, 그 지옥만 아니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거긴…… 어떨까?’
잠시 몸을 의탁할 수 있는 곳이 없을까 고민에 잠겼던 라비 일병은 이내 한 곳을 떠올렸다.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놀이터를, 차이나타운에 버려진 폐건물을.
어릴 적 친구들과 만들었던 비밀 기지.
그곳이라면 잠시나마 몸을 숨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일단 움직이면서 생각하자.’
갈등을 하던 그는 이내 힘들게 걸음을 옮겼다.
그의 눈앞이 조금씩 흐릿해져 갔다.
* * *
한참 배가 고프기 시작할 점심시간 전, 차이나타운 상가 번영회의 앤드류 칭은 다시 찾아온 종혁을 향해 미소를 짓는다.
“CCTV는 무사히 설치되고 있습니다.”
종혁은 전과 달리 반갑게 자신을 맞이하는 앤드류 칭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그거 다행이네요. 제가 말한 대로 설치되고 있는 겁니까?”
“그럼요.”
대로변보다는 골목 위주로. 사각 없이.
그러나 초소형 CCTV의 개수가 무려 3천 대인지라 설치를 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십니까? 하시는 일이 잘 안 되십니까?”
안 된다 뿐일까.
잭 윙을 찾아가 돈에 대해 추궁해 보았으나, 그는 모르는 일이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지문이 묻어 있는 지폐들까지 확보되며 더더욱 명백해진 정황.
그럼에도 그가 발뺌을 하니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증거도 있으니 범인은닉죄로 소환해서 조사할 수도 있겠지만…….’
잭 윙을 잡아들이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잭 윙을 구속한다면 라비 일병은 곧장 뉴욕을 뜰 것이 분명했다. 자신으로 인해 주변인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원치 않을 테니까.
그래선 안 됐다.
그가 뉴욕을 벗어나 자취를 감춰 버린다면, 그가 설령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한들 도와줄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전단지 좀 뿌릴 수 있겠습니까?”
“수배 전단지요?”
종혁은 결국 수배 전단지를 뿌리려는 거냐는 듯 쳐다보는 앤드류 칭의 눈빛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억울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FBI에 연락해 달라는 문구를 적은 전단지를 뿌려 달라는 겁니다.”
“……?”
종혁은 의아해하는 그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니 보고 좀 연락해 주라. 너도 힘들잖아.’
종혁은 부디 그러기를 바랐다.
* * *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붙여질 겁니다.”
차이나타운 전역에. 골목골목 빈틈없이.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식당 앞, 종혁과 악수를 나눈 앤드류 칭은 핸드폰을 귀에 가져가며 멀어졌고, 종혁은 그런 그를 바라보다 돌아섰다.
‘그런데…….’
“나한테 맛집은 남에게도 맛집인가 보네.”
헨리 스미스가 추천해서 함께 왔던 차이나 레스토랑.
‘그 종업원은 여전히 실수투성이고.’
피식 웃은 종혁은 몸을 돌렸다.
“수, 수고하셨습니다.”
“……후우. 그래요. 주안 씨도 내일 봐요.”
목을 움츠린 삼십대 여성 주안은 다시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고, 홀매니저는 그런 주안을 보며 입술을 달싹이다 돌아섰다.
쿵!
뒷문이 닫히자 허리를 펴는 주안.
“하아.”
오늘도 음식을 나르다 그릇을 깨 먹었다. 두 번이나.
처음 일했을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그래도 실수는 실수였다.
자신의 머리에 꿀밤을 먹인 주안은 비닐봉지에 묵직하게 담긴 남은 음식을 보곤 애써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라면 내일까지 식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터.
좋아할 딸의 얼굴을 떠올리자 주안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비 오겠네. 얼른 가자.”
대로변 쪽을 보다 고개를 저은 주안은 골목 안쪽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무언가를 피하듯.
그렇게 골목골목을 누비며 집에 거의 도착할 때가 되자, 연신 초조하게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주안의 얼굴에 여유가 깃든다.
“甜蜜蜜你笑得甜蜜蜜.”
기분이 좋은지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녀.
그 순간이었다.
“응?”
귓가를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소리.
마치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듯한 소리에 몸을 움츠렸던 그녀의 귀가 쫑긋 솟는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 서리는 갈등.
“……에휴.”
부모를 잃은 걸까. 아니면 다친 걸까.
한숨을 내쉰 그녀는 결국 소리를 쫓아 걸음을 옮겼고, 곧 한 골목 쓰레기통 옆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히익!”
‘사, 사람!’
사람이다. 사람이 쓰레기 통 옆에 쓰러져 있다.
“시, 신고를!”
그녀는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찾았다가 덥썩 옷을 잡는 손에 기겁했다.
“꺅!”
“시, 신고는 안 돼…….”
툭!
“아…….”
주안은 완전히 정신을 잃은 듯한 라비 일병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왠지 낯이 익다.
‘맞아! 그때 옥상에 있던 사람!’
자신이 사는 건물에 사는 걸로 추정되는 청년.
‘그런데 왜?’
대체 무슨 사연이기에 신고는 안 된다고 하는 걸까.
범죄자일까. 아니면 차이나타운의 갱에게 쫓기는 사람일까.
그것도 아니면…….
‘나처럼 살 곳을 잃고 이곳까지 도망쳐 온 것일까.’
분명 백인임에도 중국어가 현지인처럼 능숙했던 남자.
그 비 오던 날, 자신을 피해 계단을 내려가던 왠지 모르게 슬픈 등이 떠오른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홀리듯 다가가 라비 일병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헉! 모, 몸이……!”
불덩이다.
“어, 어떡하지? 어떡…….”
안절부절못하던 그녀는 이내 입술을 깨물며 라비 일병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