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90화>
-참새 뒤로 사람이 지나쳐 갑니다.
-체크. 흑인이다.
귀에 꽂은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보고.
촤악!
다리를 꼬고 앉은 윌리엄 소위가 잡지를 신경질적으로 넘기며, 잭 웡의 뒤를 스쳐 지나가는 흑인의 손 쪽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그러다 흑인이 스쳐 지나가자 귓가에 손을 가져간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털썩!
옆에 앉는 사람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던 윌리엄 소위는 혀를 찼다.
“이번에도 방해할 생각입니까?”
적개심이 서린 눈빛.
“이쪽에 세 사람 모두 몰려 있으면 라비 일병의 다른 친구들은 누가 감시합니까?”
“흥. 그건 알 거 없습니다.”
그 말에 종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른 팀원이 더 있거나 잭 웡이 라비 일병과 가장 많이 연락한 사람이겠군요.”
“맘대로 생각하십시오.”
‘둘 다네.’
종혁이 생각에 잠긴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데 팀장이라……. 어지간히 엘리트인가보군.’
아니면 배경이 좋거나.
-최, 타깃이 출입문 앞에 서고 있어.
마침 윌리엄 소위도 같은 무전을 들은 건지 동시에 잭 웡을 흘깃 살폈다.
“이번에도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그러시든가.”
종혁의 퉁명스런 말투에 죽일 듯 노려보는 윌리엄 소위.
‘연수나 온 자식이!’
맘 같아선 뒤통수를 찍어 버리고 싶지만, 이번 일은 가능한 조용히 해결해야 하기에 윌리엄 소위는 애써 참을 수밖에 없었다.
덜컹, 덜컹, 끼이익!
브레이크가 잡히는 소리를 내며 멈춰 서는 낡은 지하철.
문이 열리자 역 이름을 확인한 잭 웡이 망설임 없이 내리고, 벤과 드롭 역시 따라 내린다.
그에 동시에 종혁과 윌리엄 소위의 입이 열린다.
“벤 3미터, 드롭 20미터 거리 두고 따라붙습니다.”
“맥기 3미터, 쏭 15미터 거리 두고 따라붙어.”
흠칫 놀라 서로를 본 둘.
-라져.
-수신.
혀를 찬 둘은 지하철 문이 닫히려 하자 얼른 몸을 날렸다.
그리곤 이번에도 동시에 잭 윙의 모습을 살피면서도 라비 일병을 찾는 둘.
둘의 눈이 무심하면서도 매섭게 빛났다.
‘좌우측 이상 없음.’
라비 일병으로 보이는 사람이 없다.
종혁은 핸드폰을 귀에 가져가며 입을 열었다.
“난 좌측으로 갈 건데, 그쪽은?”
“……내가 좌측으로.”
“맘대로 하쇼.”
혀를 찬 종혁은 우측으로 몸을 돌려 역에 서거나 앉아 있는 사람을 훑으며 승강장 끝으로 걸어갔고, 윌리엄 소위는 침을 뱉으며 좌측 승강장 끝으로 움직였다.
그러며 둘은 맞은편도 계속 쳐다보며 승강장 끝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갔다.
화장실도 차분히 훑어봤지만 보이지 않는 라비 일병.
결국 지하철역을 완전히 빠져나올 때까지 라비 일병을 찾지 못한 종혁은 담배를 물며 입을 열었다.
“벤, 현 위치 및 상황 보고.”
-3번 출구에서 좌측으로 10미터, 카페. 로즈마리. 난 따라 들어왔고, 잭 웡은 라떼와 샌드위치를 시켰어. 두 개씩.
종혁의 심장이 크게 흔들린다.
-그 외 특이 사항 없음. 해병 애들도 들어왔어.
“보이네요. 그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리고…….”
순간 종혁의 눈빛이 낮아진다.
“벤, 음료 두 잔 시키고 화장실 가는 척 뒷문으로. 드롭 투입.”
-라져.
카페 건물 근처 신문 따위를 파는 가판대에서 삼류 가십잡지를 구매한 종혁은 이쪽으로 다가오려다 멈추는 윌리엄 소위를 향해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먼저 자리 잡았다.’
‘빌어먹을!’
얼굴을 구긴 윌리엄 소위는 종혁을 지나쳐 가판대 옆에 왼쪽에 섰고, 종혁은 자연스럽게 오른쪽에 섰다.
그리고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며 기다렸다.
‘쯧. 이쪽을 지켜볼 수 있는 포인트가 너무 많아.’
주위 모든 건물이 이쪽을 지켜볼 수 있다.
잭 윙이 주문한 음식 중 한 세트는 라비 일병의 몫일 확률이 높았다. 만약 그렇다면 라비 일병은 이 근처에서 이곳을 지켜보고 있을 터.
‘어디냐, 인마. 대체 어디에…….’
지이잉! 지이잉!
“예, 최종혁입니다.”
-역 근처입니다.
“예. 아, 이쪽이에요.”
종혁은 도로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이내 곧 오토바이 한 대 다가와 멈춰 선다.
여차할 상황을 대비해 부탁한 오토바이. 혹시라도 골목을 누벼야 할지도 모르기에 오토바이를 부탁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그레이스 탐정사무소 직원들과 FBI 지원팀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부르릉!
종혁은 헬멧을 벗으며 내리는 그레이스 탐정사무소 직원을 향해 웃으며 양팔을 벌렸고, 직원은 자연스럽게 안겨 든다.
와락!
“특이 사항은요?”
“별다른 이상점은 없었습니다.”
잭 웡을 제외한 라비 일병의 다른 친구 중 한 명은 택시기사로 맨하탄을 돌아다니고 있고, 공사장에서 일하는 친구는 공사장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라비 일병과 접촉한 정황도 없습니다.”
리자춘 부부도 마찬가지다. 잭 웡을 제외한 그들 모두가 평소처럼 생활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서로 떨어진 둘은 서로를 향해 중지를 치켜들었다.
“왜 점심시간에 부르고 난리야.”
“너 점심이라도 사 주려고 그랬다, 왜?”
“오! 어디서? 아니, 그 전에 담배부터 피우자.”
“난 피웠어.”
“의리 없는 놈.”
혀를 찬 직원이 담배를 물며 핸드폰을 드는 순간이었다.
‘음?’
순간 코를 스치는 고약한 냄새.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종혁은 마스크와 모자를 깊게 눌러쓴 백인이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눈을 크게 떴다.
마지막 목격 장소인 포트 오소러티 터미널 근처의 CCTV에 잡혔던 라비 일병이 입었던 것과 똑같은 옷.
윌리엄 소위도 마찬가지다.
종혁은 곧바로 발을 떼는 윌리엄 소위의 모습에 움찔거렸다.
‘잠깐?!’
* * *
“후.”
카페 안, 음식을 시키고 자리에 앉은 잭 웡이 카페 내부를 둘러보며 다리를 떤다.
마치 스파이 영화와 같은 상황.
마치 범죄자가 된 것 같고, 스파이가 된 것 같으며, 친구를 이토록 어렵게 만나야 하는 상황에 잭 웡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딸랑!
문을 열고 나타난 커다란 덩치의 흑인 사내.
“카페 들어왔는데 어디야? 화장실? 커피를 시켜 놨다고?”
경기를 일으키듯 쳐다봤다가 전화를 하며 카운터로 향하는 흑인의 모습에 혀를 찬 잭 웡은 들썩였던 엉덩이를 의자에 붙였다.
“잭 웡 씨!”
“아, 예!”
샌드위치 두 개와 커피 두 잔이 올려진 쟁반.
얼른 음식을 받아 온 잭 웡은 무의식적으로 가슴팍을 더듬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두리번거린다.
초조해서 그런지 컵을 내려놓는 소리, 바깥의 오토바이 소리 등 주위의 소음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하아. 미치겠네.”
잭 웡은 타들어 가는 목에 결국 커피를 먼저 마시고 말았다.
그때였다.
딸랑!
다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던 잭 웡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자와 마스크를 쓴 사내의 모습에 설마 하며 엉덩이를 뗐다.
그리고 그 눈과 마주친 사내는 이내 눈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잭 웡?”
“라비…….”
딸랑!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린 잭 웡은 카페 안으로 달려들며 총을 빼 드는 윌리엄 소위의 모습에 눈을 부릅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갑자기 주변에서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더니 사내를 향해 총을 겨눈다.
“NCIS다! 움직이지 마!”
“으악!”
“꺅!”
순간 아수라장이 되는 카페.
경악한 사내는 자신을 향해 겨눠진 총구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윌리엄 소위는 냉소를 터트린다.
“드디어 잡았군, 라비 에드거 리 일병. 엎드려 양팔을 허리 뒤로해라!”
“무, 무슨…… 나, 난…….”
“명령대로 해!”
커다란 고함에 몸을 움츠린 사내는 윌리엄 소위의 말에 따라 행동했고, 윌리엄 소위는 그런 그에게 다가가 수갑을 채운 후 거칠게 모자를 벗겼다.
그 순간이었다.
“어?”
드러난 얼굴에 몸을 굳히는 윌리엄 소위.
“뭐, 뭡니까!”
억울함을 가득 담아 외치는 사내에 윌리엄 소위의 눈이 크게 흔들린다.
때가 가득한 얼굴과 고약한 냄새.
라비 일병이 아니다. 노숙자다.
“너, 넌 뭐야!”
“뭔데요! 난 여기서 잭 웡이라는 동양인 사내를 만나면 먹을 것을 준다고 해서 온 것뿐입니다!”
오싹!
“……어디서?”
“예?”
“어디서!”
“저, 저쪽으로 다섯 블록 떨어진…….”
다급히 몸을 일으킨 윌리엄 소위는 카페를 뛰쳐나갔고, 그의 부하 직원들도 다급히 뒤따랐다.
“수, 수갑은 풀어 주고 가!”
애절한 노숙자의 외침이 카페를 쩌렁쩌렁 울렸고, 잭 웡은 그런 상황을 멍하니 지켜봤다.
“대기. 대기.”
카페를 뛰쳐나와 어딘가로 뛰는 윌리엄 소위를 일견하며 다급히 외치는 종혁.
-최, 일단 저 노숙자는 풀어 줘야…….
이미 노숙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갈 때부터 뭔가 이상해 대기를 시켰던 종혁이 낯빛을 굳힌다.
그렇게 영리하고 치밀하게 움직였던 놈이 이렇게 쉽게 모습을 드러낼까.
분명 함정일 거라고 생각해 멈췄던 종혁은 자신의 그 선택을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대기. 얼굴을 드러내면 안 돼요.”
-라져.
자신은 라비 일병에게 노출됐을 확률이 높지만, 벤과 드롭은 아니다. 아직 잭 웡뿐만 아니라 라비 일병, 그의 친구들에게까지 노출되지 않은 둘.
벤과 드롭이 숨겨져 있어야 움직이기 편하다.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라비 일병을 의식해 어깨를 으쓱인 종혁은 탐정사무소 직원을 봤다.
“일단 노숙자에게도 사람 붙이세요.”
노숙자와 라비 일병이 옷을 바꿔 입었다면, 노숙자가 본래 무엇을 입고 있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다시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을 확률도 있지만…….’
“우린 움직이죠. 저기 식당으로 갑시다.”
“예.”
종혁과 직원은 오토바이에 올라타 카페 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다.
* * *
노숙자가 말한 곳 근처를 모두 뒤져 봤지만, 허탕을 친 윌리엄이 다시 카페로 돌아와 잭 웡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품 안 좀 확인합시다.”
“당신은 내 품을 뒤질 권리가 없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시종일관 윌리엄 소위의 행동에 낯빛을 굳힌 잭 웡.
“범죄자에게 협력한 죄로 체포되기 싫으면 품 안에 있는 걸 꺼내십시오.”
“증명할 수 있습니까?”
“당신의 오후를 모두 날릴 수는 있지.”
“……쯧.”
잭 웡은 어쩔 수 없이 품 안에 있는 걸 꺼냈다.
지갑과 담배가 전부인 품 안의 내용물.
직접 잭의 품을 뒤진 윌리엄 소위는 두툼한 지갑을 들었다.
“이건 뭐죠? 돈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거의 천 달러에 육박하는 돈.
“왜요? 나 같은 월급쟁이는 이런 돈을 가지고 다니면 안 되는 겁니까?”
“말해!”
“퇴근하면서 부모님께 선물을 사 드리려고 뽑아 놓은 겁니다. 왜요?”
빠드득!
“당신…… 지켜보겠어.”
“그러시든가.”
“따라와!”
노숙자의 팔을 낚아챈 윌리엄 소위는 귓가에 손을 가져가 주변 CCTV를 모두 확보하라고 외쳤고, 잭 웡은 카페를 빠져나가는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거였냐.’
잭 웡은 돈, 점심시간, 로즈마리 카페라는 암호를 떠올린다.
잭 웡 자신이 옛 여자친구와 자주 왔던 장소인 로즈마리 카페.
“나쁜 자식. 군대에서 뭘 배운 거야?”
안 그래도 조심성이 많았던 친구, 라비. 못 본 사이에 더 영리해졌다.
그래서 다행이다. 아니었다면 방금 전 잡혔을 테니 말이다.
‘날 미행했을 줄이야…….’
“다른 애들한테도 말해 줘야겠어.”
그제야 수사기관의 무서움을 알게 된 잭 웡은 하얗게 질린 몸을 떨다가 노숙자가 제 몫을 가지고 가고 남은 샌드위치와 커피를 지켜보다 몸을 일으켰다.
“이거 포장해 주세요.”
“아, 예!”
잭 웡은 봉지를 든 채 카페를 빠져나와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회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지하철역을 내려가며 샌드위치와 커피를 흡입한 그는 빈 봉지를 승강장 쓰레기통에 던진 후 마침 도착하는 지하철에 올랐다.
* * *
어느새 어두워진 밤.
저녁 10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 막차를 타기 위해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로 노숙자들이 하나둘씩 지하철역으로 모여든다.
그중엔 노숙자처럼 옷을 입은 라비 일병도 있다.
‘날 엄청 욕했겠지?’
아마 그랬을 거다.
매사에 불만이 많은 친구 잭 웡이라면 쌍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친구의 얼굴이 보고 싶다.
목소리를 듣고 싶다.
라비 일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후우. 그래도 곧 밥을 먹을 수 있겠지?”
친구 잭 웡에게 암호를 전달하기 위해 슌 패거리에 소속된 소녀에게 가진 돈을 모두 줬던 라비 일병.
평상시 월급은 모두 부모님께 보냈던 데다 잭슨 빌, 워싱턴 DC 등에서 다음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가진 돈을 전부 인출해 통장에 잔고가 하나도 없다.
아니, 남았다고 한들 이 뉴욕에서는 돈을 뽑을 수 없지만 말이다.
뽑는 순간 NCIS와 FBI가 추적을 해 올 터.
이제 남은 희망은 친구 잭 웡뿐이었다.
라비 일병은 잭 윙이 무사히 쓰레기와 함께 돈을 버려 두었길 기대하며 아래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
바로 그때.
멈칫!
왜인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기분 나쁜 느낌.
라비 일병은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지하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