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89화 (489/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89화>

뉴욕 퀸스의 작은 광고 회사 앞.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예. 굳이 이렇게 찾아오시기까지 했는데 당연히 그래 드려야죠.”

비꼼이 가득한 말투.

적개심마저 보이는 젊은 청년, 어제는 출장을 갔었다고 만나지 못한 라비 일병의 친구의 모습에 씁쓸히 웃은 종혁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돌아섰다.

종혁은 타고 온 차량으로 걸어가 보조석에 올라탔다.

그러자 벤의 표정이 굳는다.

“어떻게 한대?”

“표정을 봐요.”

이쪽을 향해 침을 뱉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라비 일병의 친구.

“끙. 저 친구에게도 뭔가를 바라면 안 되겠군.”

저 친구뿐만이 아니다.

라비 일병이 군 복무를 하는 와중 연락을 주고받은 다른 2명의 친구 역시 FBI가 찾아온 걸 못마땅해했다.

“친구는 적어도 우정이 참 끈끈하네요.”

“아니, 그래도 살인인데!”

“라비 일병에게 무슨 사연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NCIS가 먼저 와서 휘젓기도 한 것 같고요.”

“빌어먹을, 군인 새끼들!”

처음부터 종혁들을 반기지 않았던 라비 일병의 친구들.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런 모습을 보인다는 건, 아무래도 윌리엄 소위가 라비 마트에서 쫓겨난 이후 곧바로 찾아와 한바탕 휘젓고 간 것 같다.

“동의합니다. 정말 빌어먹을이네요.”

“골치 아프게 됐네…….”

운전대를 잡은 드롭이 뒷목을 주무른다.

라비 일병의 부모인 리자춘 부부와 함께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라비 일병을 끌어내야 하는 친구들이 저렇게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라비 일병을 잡을 길이 요원해진다.

“어떻게 할 거야?”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저 친구들의 동선 전체에 감시망을 깔아야지.”

곧 그레이스 탐정사무소에서 파견된 탐정이 미행을 할 테지만, 그걸로는 안심할 수 없다.

“이에 대한 허가도 받아야 하니까 일단 복귀부터 하죠. 라비 일병이 터미널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확인했어요?”

“싹 다 수거해서 몰리에게 맡겨 놨으니까 금방 나올 거야.”

파바바바바박!

‘비가 많이 오네.’

낮인데도 깜깜한 하늘, 앞 유리창에 세차게 부딪치는 빗줄기를 본 종혁은 한숨을 내뱉었다.

‘라비 일병 이 친구는 지금 어디서 비를 피하고 있을까?’

종혁은 그게 많이 궁금했다. 비를 피하고 있는 그곳이 곧 숨어 있는 아지트일 테니 말이다.

지이잉! 지이잉!

“예, 최종혁입니다.”

-차이나타운 상가 번영회와 약속을 잡았습니다.

순간 번쩍 뜨이는 종혁의 눈.

“언제입니까?”

부우웅!

차가 FBI 뉴욕지국으로 출발했다.

* * *

“그럼 이만 퇴근해 보겠습니다!”

사무실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며 건물을 나선 라비 일병의 친구, 후덕한 덩치의 잭 웡이 아직까지 쏟아지는 비를 보며 혀를 찬다.

“비는 잘 피하고나 있을지……. 바보 같은 자식.”

힘들고 괴로우면 도와 달라고 말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라고 있는 게 친구 아니던가.

“그깟 놈의 군대 차라리 관둬 버리지! 퉤!”

침을 뱉은 잭 웡은 우산을 펴들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덜컹, 덜컹, 덜컹, 덜컹.

퇴근 시간이라 사람들이 가득한 지하철.

1시간 넘게 달려 차이나타운에 도착한 잭 웡은 손님 한 명 없는 작고 허름한 중국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저 왔어요!”

“왔어? 오늘도 볶음밥?”

“오늘은 좀 추우니까 온탕면으로 주세요.”

“알았어!”

가방을 놓고 몸을 일으킨 잭 웡은 벽에 붙은 선풍기가 돌아가는 고작 다섯 평 남짓한 작은 식당 가운데에 놓인 불 꺼진 난로 위의 주전자를 기울여 차를 따랐다.

후룩!

“하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진한 찻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며 몸과 정신을 나른하게 만드니 이제야 좀 퇴근을 한 것 같다.

잭 웡은 테이블 위로 엎어지며 앓는 소리를 냈다.

“대학 때가 좋았어. 대학 때가…….”

그놈의 경제가 뭔지 세 명이서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이 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계속해서 야근을 하니 이러다 과로로 죽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그냥 씻고 바로 자야지.’

타악!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얼른 일어나서 먹어.”

“오!”

몸을 일으킨 잭 웡은 얼른 젓가락을 빼 들었고, 그걸 가져 온 주방장이 잭 웡의 맞은편에 앉는다.

“어떻게 된 일이야? 라비가 정말 사람을 죽인 거 맞아? 왜?”

“……저도 알고 싶네요.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NCIS인가 NCCC인가가 와서 널 찾는데 모를 리가 있겠냐? 다행히 손님이 없을 때 오긴 했지만, 소문이 퍼지는 건 금방일 거다. 어휴, 어쩌자고…….”

“그냥 모른 척하세요, 아버지. 라비 아시잖아요. 분명 무슨 사연이 있을 거예요.”

“나도 그럴 거라 생각은 한다만……. 에휴, 혹시라도 라비 만나면 데리고 와. 지금쯤 이 아빠 밥이 얼마나 먹고 싶겠냐?”

코 찔찔 흘리고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그들 사총사의 아지트는 이 식당이었다.

식사 때만 되면 쪼르르 나타나 아빠, 아저씨 밥 주세요 하던 작고 귀여운 망아지들. 그런 망아지 중 한 명에게 큰일이 닥쳤다고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런 아버지의 말에 잭 웡은 눈을 빛냈다.

‘아지트.’

있었다. 이 식당 말고 그들이 썼던 비밀 기지가.

‘하지만 거긴 지금…….’

“회사에선 별일 없지?”

“있을 리가요. 저 아버지 아들이에요.”

“옆집 바오 형님 아들도 이번에 직장에서 잘렸다더라. 상사가 뭐라고 하던 꾹 참고 그냥 나 죽었소 하고 버텨.”

“걱정 마시라니까요.”

“그래. 얼른 먹고 올라가서 씻어. 감기 걸리겠다.”

“우산 쓰고 왔으니까 걱정 마세요. 잘 먹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잭 웡의 아버지는 담배를 물며 가게 뒤편으로 향했고, 잭 웡은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지으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딸랑!

“쯧. 어서…….”

가게 입구를 등지고 있다 일어선 잭 웡은 한 손에 피크닉 바구니를 든 채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녀의 모습에 혀를 찼다.

허름한 옷차림에 홀딱 젖은 몰골.

‘슌 패거리, 이 빌어먹을 것들. 최소한 우산은 들려 보내야지.’

이 차이나타운에서 저런 아이들을 데려다 앵벌이를 시키는 슌 패밀리. 아마 이 소녀도 고아거나 영주권을 얻기 위해 차이나타운에 숨어 사는 불법체류자의 자식일 것이다.

이제 13살 정도 되어 보이니 곧 슌 패밀리에서 쫓겨나 다른 패거리로 넘겨질 테지만 말이다.

“간식 사세요. 맛있는 거 많아요.”

“……해바라기씨 하나 줄래?”

“오늘은 삶은 땅콩이 좋아요.”

“아니, 내가 땅콩을 좋아하긴 하지만 오늘은…….”

“여기요.”

잭 웡은 소녀가 넘기는 봉지 위에 적힌 이상한 글자를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건?’

갑자기 잭 웡의 시간이 과거로 향한다.

아주 옛날, 그들이 썼던 암호.

그땐 왜 부모님이 자신들의 대화 내용을 알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그런 이유로 만들어 썼던, 그저 스펠링의 배치만 바꿨던 단순한 암호다.

부모님들은 그때마다 그런 자신들을 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근처에 있구나!’

라비가 근처에 있다.

무사히 이 차이나타운에 온 거다.

그런데…….

‘감시?’

“저 다른 가게 가 봐야 하는데…….”

“아, 그래! 어! 여기 있어! 여기 우산도 가져가!”

“가, 감사합니다!”

넉넉하다 못해 과하게 셈을 치른 것에 소녀는 활짝 웃으며 가게 밖으로 나갔고, 잭 웡은 글귀 부분이 손바닥 쪽으로 향하게 쥔 채 다시 자리에 앉아 재빨리 밥을 해치웠다.

“아버지, 저 먼저 올라갈게요!”

“그래. 그릇은 놓고 가!”

최대한 태연하게 가게 안쪽에 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근 잭 웡은 기억을 더듬어 암호를 해독하기 시작했다.

분명 첫 글자는 감시였다.

‘감시가…… 붙었다. 돈이 필요하다. 갚을게. 미안해……?’

“개자식!”

암호 쪽지를 내려놓은 잭 웡은 창문을 활짝 열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쏴아아아아!

비가 쏟아지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사람 한 명 지나다니지 않는 어두운 골목. 작은 물방울들만이 잭 웡의 얼굴을 때린다.

‘밥은 먹고 다니냐, 이 개자식아?’

잭 웡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 *

차이나타운 상가 번영회 건물의 한 사무실.

“FBI의 최종혁입니다.”

“차이나타운 상가 번영회의 앤드류 칭입니다.”

종혁은 자신과 악수를 나누는 사십대 사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전 회장님과 약속을 잡은 걸로 기억하는데 말입니다.”

“그레이스 탐정사무소에서 말하길, 미스터 최가 저희 차이나타운에 도움이 될 제안을 할 거라고 하더군요. 그런 실무적인 이야기는 저와 하시면 됩니다.”

“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차는 어떤 걸 선호하십니까? 커피와 차, 주스가 있습니다.”

“차로 하죠.”

옆에 놓인 내선전화로 차를 주문한 앤드류 칭이 종혁을 보며 속으로 눈을 가늘게 뜬다.

‘최종혁.’

한국 경찰로 작년 7월쯤 미국으로 NYPD로 연수를 와서 초대형 사건을 해결, 그대로 FBI로 픽업되어 수많은 대형 사건들을 해결한 능력 있는 형사.

며칠 전엔 뉴욕을 떠들썩하게 달군 아동 납치, 아니 의붓딸 살해유기 사건을 해결했다.

아니, 그냥 능력 있는 수준이 아니다.

종혁이 뉴욕에서 암약하던 피에트로 패밀리를 무너뜨리며 뉴욕의 수많은 마약 조직들까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그때 중국계 갱들도 꽤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쯤이면 거의 자연재해 수준이다.

‘거기다 센트럴파크 인근 최고급 아파트 최상층에 살 정도로 재력도 대단하지.’

FBI에 있는 지인의 말에 의하면 일주일에 한 번씩 차를 바꿔 탈 정도라고 한다.

소설로 써도 욕먹을 존재가 바로 종혁이었다.

이윽고 차와 다과가 나오자 둘은 잠시 말없이 그것을 즐겼다.

그 고요한 침묵을 깬 건 앤드류 칭이었다.

“라비 에드거 리에 관한 일은 들었습니다.”

“귀가 밝으시네요.”

“NCIS가 많이 헤집고 다니더군요. 웡 식당에서 항의가 들어오기도 했고, 저희 사무실까지 찾아와 강압적으로 굴더군요.”

‘이 병신 새끼들!’

지인들과 이들의 협력을 얻어도 모자랄 판에 왜 적을 만든단 말인가. 이래선 도움을 바랄 수 없게 된다.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NCIS와 FBI가 다른 조직인 걸 아니까요. 그래서 저희에게 어떤 도움을 원하는 겁니까? CCTV를 실시간으로 넘겨 드리면 됩니까? 아니면 수배 전단지를 붙여 드리면 됩니까?”

“수배 전단지는 됐습니다.”

라비 일병을 궁지로 몰아선 안 된다. 그러다 도망쳐 버리면 영영 찾을 수 없게 된다.

“흠. NCIS는 그걸 바라던데요.”

“미스터 칭, 라비 일병은 이 차이나타운의 주민입니다. 저희 FBI는 라비 일병이 다른 주민들에게 배척당하는 걸 원치 않습니다. 이곳은 그가 훗날 돌아올 고향이니까요.”

수배 전단지는 최후의 방법이다. 그땐 차이나타운뿐만 아니라 미 전역에 수배 전단지가 붙을 거다.

“……그러면 잡기 힘들 텐데요? 최소한 상가 사장님들과 종업원들은 라비의 얼굴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그럼 큰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라비 일병은 어떻게 마이애미를 빠져나와 코네티컷까지 이동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없을 만큼 영리하고 신중한 인물이다.

분명 신뢰할 수 있는 인물들에게만 접촉을 시도할 터. 얼굴을 알지도 모르는 가게를 들어갈 거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대신 CCTV좀 설치할 수 있겠습니까?”

“……CCTV는 충분히 있습니다.”

“골목골목을 모두 비출 수준은 아니죠. 3천 대를 지원하겠습니다. CCTV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작은 놈들로. 주민들이 불편함을 겪을 일은 없을 겁니다.”

움찔!

“지금 FBI에서 차이나타운을 감시하겠다는 겁니까?”

순간 하늘로 치솟는 앤드류 칭의 눈썹.

당장이라도 꺼지라고 할 듯 화가 난 그의 모습에 종혁은 차분히 찻물로 입을 적시며 할 말을 골랐다.

“라비 일병을 체포한 이후 회수를 하시든, 중고로 팔아먹으시든 신경 쓰지 않도록 하죠. 아니, 아예 차이나타운에 양도하겠습니다. 후에 차이나타운으로 범죄자가 도망을 치거나 범죄가 발생했을 때 등 무슨 일이 있을 때 협조만 해 주시면 됩니다.”

“흐음…….”

구겨졌던 앤드류 칭의 눈썹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생각에 잠긴다.

종혁은 그런 그가 들어줄 수밖에 없는 제안을 하기로 했다.

“발전 기금도 내죠.”

스윽.

종혁이 내미는 수표에 앤드류 칭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거부하기엔 너무 많은 액수.

“……어흠. 말씀하신 건 꼭 지키시길 바라겠습니다.”

“아무렴요.”

싱긋 웃은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혹여 종혁이 다시 빼앗아 갈까 수표부터 갈무리한 앤드류 칭이 의아함을 드러낸다.

3천 대의 CCTV와 발전 기금. 고작 범죄자 한 명 잡는 것치고는 너무 과한 지출이다.

“제가 경찰이니까요. 억울한 게 있으면 풀어야죠.”

“……그 말은?”

“갱단들에게 웬만하면 자수하라고 하십쇼. 아니면 CCTV가 돌아가는 동안 숨어 지내든지. 그럼.”

지이잉!

“예, 최종혁입니다.”

-잭 웡이 평소와 다른 루트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가죠.”

눈을 번뜩인 종혁은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 * *

중요 인물으로서 주변을 탐문한 결과, 점심은 무조건 회사 인근에서 해결한다는 잭 웡.

그런 그가 회사 근처를 벗어나다 못해 갑자기 지하철을 타고 움직인다.

회사에 문의해 본 결과 외부 출장은 아니라고 했다.

끼이이익! 치이익!

멈춰 선 지하철에 올라탄 종혁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귓가로 손을 가져갔다.

“지금 탔습니다. 잭 웡의 위치는요?”

-6번 칸. 계속 품 안을 만지작거리고 있어.

종혁의 눈이 다시 빛난다.

품 안에 숨길 정도로 작으면서 계속 신경 써야 할 물건.

아마 돈 내지 카드, 혹은 쉽게 현금화를 할 수 있는 무언가일 것이다.

“넘어갑니다.”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고른 종혁은 지하철 내부에 탄 승객들의 얼굴을 빠르게 훑으며 6번 칸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출발하는 지하철.

덜컹, 덜컹! 드르륵!

“6번 칸 도착했습니다. 아, 저도 보이…… 씨발.”

-뭐야? 왜?

종혁은 의자에 앉아 잭 웡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윌리엄 소위와 그 부하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이 새끼들이 또 왜…….’

꽉 막히다 못해 권위주의가 있는 군인답게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새끼들.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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