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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88화 (488/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88화>

종혁이 차이나타운에 진입하기 20분 전.

차를 모는 종혁이 캘리 그레이스팀의 든든한 대들보이자 사무요원인 몰리와 통화를 나누고 있다.

-다른 FBI 지국들에 알아보니까 군에서 마이애미와 DC, 필라델피아로 향하는 길 모두 검문검색을 했다고 해. FBI를 배제하고.

“그게 가능해요?”

-원칙적으로는? NCIS도 수사기관이다 보니까 경찰에 지원 요청을 할 수는 있지. 더욱이 군대이잖아. 미국에서 군대가 어떤 의미인 줄 알지?

“흠. 그럼 뉴욕으로 들어오는 다리들도 다 검문했겠네요? 우리 몰래?”

-응. 오늘 새벽부터 그렇게 했더라고. 그런데 너무 갑작스런 요청이라서 조지 워싱턴 브릿지부터 베라자노 내로스 브릿지까지만 겨우 막았대.

“그래서 코네티컷을 통해 들어오는 라비 일병을 잡지 못한 거군요.”

-아무래도 그렇다고 봐야겠지. 뭐 뉴욕으로 들어오는 모든 도로를 봉쇄했다고 한들 작정하고 들어오는 사람을 잡지는 못했을 테지만.

“그건 맞죠.”

다른 곳에서 뉴욕시로 들어올 수 있는 루트가 너무 많다. 그 모든 루트를 봉쇄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몰리.”

통화를 종료한 종혁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진짜 뭐 있네.’

“……병신 같은 새끼들.”

라비 일병이 도주를 한 순간 곧바로 뉴욕에 알려 왔다면 더 확실하게 도주 경로를 봉쇄하고 검문검색을 할 수 있었을 거다.

이건 정말로 자신들이 어떻게든 잡아 보려다가 놓쳐서 울며 겨자 먹기로 협조 요청을 해 온 거다.

“하여튼 이 군인 놈의 새끼들은 당최 정이 안 가.”

폐쇄적인 집단일 수밖에 없는 군대. 그렇다 보니 생각들도 답답하기 그지없다.

혀를 찬 종혁은 그레이스 탐정사무소에 연락을 했다.

“접니다. 차이나타운 전체에 CCTV 까는 데 며칠이나 걸릴 것 같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음?”

-그쪽에서 용납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쪽이란 말에 뭔가가 떠오른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교 연합…….”

-아시는군요.

“모를 리가요.”

겉으로 드러낸 명칭은 차이나타운 상가 번영회.

미국에 이주해 온 1세대 중국인의 후손들이 스스로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만든 단체로, 미국에 사는 화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선 종종 화교를 지배하는 왕이나 배후 세력처럼 등장하는 곳이다.

중국계 갱들이 이 상가 번영회 소속이기도 하니 영 틀린 말이 아니기는 하다.

“후. 그럼 그쪽 회장과의 만남을 주선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 정도는 가능합니다.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은 종혁은 마침 모습을 드러낸 차이나타운 특유 상징인 거대한 문 안으로 차를 몰았다.

그렇게 라비 마트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종혁은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생각이 있으면 근처에 오진 않았을 테니, 멀리서 여기를 살필 수 있는 포인트가…….’

스페츠나츠에게 사격 훈련을 받으며 정찰과 저격 훈련 역시 받은 종혁.

‘현재 부모님의 얼굴을 무척 보고 싶을 테니…….’

라비 일병이 잡힐 위험을 무릅쓰고 뉴욕에 온 이유가 뭐겠는가.

멀리 떠나 숨기 전에 마지막으로 양부모를 만나기 위해서다.

‘아, 저기가 괜찮겠네. 저기도 나쁘지 않고.’

이쪽에 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으면서도 수월하게 이쪽을 쳐다볼 수 있는 포인트들.

저곳에 CCTV 설치하면 좋을 듯싶다.

고개를 끄덕이며 돌린 종혁은 차양막을 펼치다 멈춘 두 장년인 부부를 발견하곤 고개를 숙였다.

“이런 일로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리자춘 씨, 유에롱 씨. FBI의 최종혁입니다.”

“FBI에서도…… 오셨군요.”

‘에서도?’

의아해하며 마트 안을 바라본 종혁은 얼굴을 구겼다.

“아 나, 이 씨발.”

종혁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 * *

자신을 보며 표정을 구기는 윌리엄 소위의 모습에 종혁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어진다.

“이거 허락은 받은 거냐?”

“뭐?”

“이거 저분들에게 제대로 허락은 받고 설치하는 거냐고. 아니지?”

“하! 지금 시민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는 탈영병을 잡아야 하는데, 지금 그딴 게…….”

“개새끼네.”

“……뭐?”

“예예.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까 손 내미세요. 윌리엄 파웰, 당신을 협박 및 재물손괴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당신은…….”

종혁이 수갑을 꺼내 들자 윌리엄 소위는 입을 떡 벌렸다.

“……날 체포하겠다고?”

“그럼 가짜겠어요? 지랄 말고 손이나 내미세요.”

“하아. 이봐, 이거 감당할 수 있겠어?”

툭! 툭툭!

종혁의 어깨를 미는 손.

그에 종혁의 눈이 번뜩였다.

“감당할 수 있겠…….”

휘익!

곧바로 윌리엄의 팔을 감싼 종혁은 그대로 그를 업어쳤다.

쾅!

“컥?!”

“소위님!”

“한 발자국만 더 움직여 봐. 대가리에 구멍을 뚫어 버릴라니까.”

어느새 총을 꺼내 들어 윌리엄 소위의 부하들을 멈춰 세운 종혁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윌리엄 소위의 이마를 권총으로 툭툭 쳤다.

“어이, 적당히 해. 범죄자 새끼들이 네 앞에서 설설 기니까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아? 까불지 마, 새끼야.”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다.

경찰이 고개를 뻣뻣이 세울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범죄자들 앞에서이고, 죄 없는 민간인 앞에서 대거리를 한다면 그건 경찰이 아니라 개새끼일 뿐이다.

“저분들이 잘못한 게 뭔데? 자식을 잘못 키운 죄? 정말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정말 그렇다고 말한다면 종혁은 망설임 없이 현재 잡고 있는 윌리엄 소위의 팔을 꺾어 버릴 생각이었다.

이딴 놈은 경찰을 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까드득!”

“그래. 들어 처먹지 않을 줄 알았다.”

혀를 차며 윌리엄 소위의 팔을 푼 종혁은 손을 저었다.

“야, 꺼져.”

“……오늘 이 일, 상부를 통해 항의할 겁니다.”

“예, 예. 그러시든가요.”

종혁은 중지로 귀를 후볐고, 다시 이를 간 윌리엄 소위는 부하 직원들과 함께 마트를 나섰다.

딸랑!

문이 닫히자 종혁은 얼굴을 구겼다.

“진짜 뭘 숨기는 거야?”

일병에 불과한 군인에게서 뭘 그토록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일지 도무지 예상되는 게 없었다.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방금 전 대화를 들은 건지 얼떨떨해하는 리자춘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종혁은 씁쓸히 웃고는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모든 수사기관을 대표할 입장은 못 되지만, 그래도 윌리엄 파웰 수사관의 무례를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럼 저 CCTV는 설치 안 하시는 겁니까?”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리자춘 부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고, 종혁은 걱정 말라는 듯 푸근히 웃어 줬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여보, 잠깐 가게 문 닫아.”

“알았어요. 곧 따라갈게요.”

“절 따라오시죠.”

리자춘이 마트 안쪽으로 난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 문 옆에 난 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주거 공간이 나온다.

“들어오시죠.”

“실례하겠습니다.”

식탁에 앉아 기다리니 리자춘이 차를 내온다.

“근근이 벌어먹고 사는 형편이라 대접할 게 마땅치 않습니다.”

“괜찮습니다. 저 차 좋아합니다.”

예의를 갖춰 차 한 모금을 마신 종혁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그의 미안함을 덜어 준다.

체면에 살고, 체면에 죽는 중국인.

미국에 온 지 오래되어 미국의 방식에 적응한 화교라고 해도 그 잔재는 남아 있다.

“혹시…… 중국계십니까?”

“한국인입니다. 하지만 중국말이 편하시다면 중국말로 하셔도 됩니다. 북경어나 광둥어 등 지독한 사투리가 아니면 다 할 수 있으니까요. 아, 오셨네요.”

유에롱이 리자춘의 옆에 앉자, 아내가 올 때까지 시간을 끌려고 했던 리자춘이 입을 연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NCIS에서 대충 말을 듣긴 했지만…….”

이젠 영어가 편해서인지 영어로 말하는 리자춘.

“저는 아드님께서 부대원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NCIS의 수상한 행동이나 부자연스러운 사건 파일의 내용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때, 종혁은 그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한국에서도 몇 차례 발생한 적이 있는 군경(軍警)에서의 살인 사건.

그런 사건의 시작은 대부분 지독한 가혹 행위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살인이 용납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정상참작하여 감형을 받을 수는 있을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추어진 진실이 있다면, 진상을 밝혀 내어 진짜 죄인들도 마땅한 처벌을 받도록 만들어야 했다.

“무, 무슨! 아니, 왜……!”

“라비가 괴롭힘을 당했다는 건가요?! 제 아들이 무슨 잘못을 해서요!”

“그걸 알기 위해서라도 라비 일병을 찾아야 하는 겁니다.”

“그런…….”

“아버님, 그리고 어머님. 정말 라비 일병이 괴롭힘을 당한 것이라면, 그래서 그런 일까지 저지른 게 된 거라면 진실을 밝혀야만 합니다.”

흠칫!

리자춘 부부가 멍하니 종혁을 바라본다.

“숨어만 있어서는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부디 이번 사건의 진실이 명백히 밝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일어선 종혁이 허리를 깊이 숙인다.

그리고 잠시 그들 사이에 내려앉은 침묵.

감겨진 리자춘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가슴이 미어진다.

힘들어했을 아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리자춘은 결국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많이 망가트리지만 마십시오.”

배 아파 낳진 않았지만, 가슴으로 낳은 아들.

이날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고, 언제나 자랑스러웠던 아들.

종혁의 말처럼 분명 그런 일을 저지른 이유가 분명 있을 터였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겠습니다.”

종혁은 어려운 결단을 내려 준 리자춘을 향해 더 깊이 고개를 숙였고, 리자춘 부부도 종혁에게 고개를 숙인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파손된 부분은 모두 변상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

양해를 구하고 일어선 종혁은 캘리 그레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보스. 지원팀 보내 주세요. 라비 일병의 부모님께서 협조해 주시겠답니다.”

-오케이. 바로 보낼게. 수고했어.

전화를 끊은 종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한 고비는 넘겼군.’

나머지는 차이나타운 일대에 거미줄 같은 감시망을 깐 후 어둠 속에 숨어 있을 라비 일병을 끌어내는 거다.

“아, 그런데 라비 일병의 친구들이 어디 사는지 아십니까?”

부모에게 협조를 얻어 냈으니 이젠 지인들의 협조를 끌어내야 했다.

혹시라도 라비 일병이 그들을 찾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 * *

흐릿하고 빛 번짐이 심한 막사 안.

딱딱하게 굳은 라비 일병이 거수경례를 한다.

-이, 이병! 라비 에드거 리!

최대한 쥐어짠 자대배치 신고 내용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빛 번짐이 너무 심해 입만 겨우 보이는 군인들이 몸을 일으켜 다가온다.

‘안 돼.’

-오! 얘 몸이 너무 얇은데?

-여자 아니야?

-설마.

-설마는 무슨. 야, 벗어 봐.

-자, 잘못 들었습니다?

‘안 돼…….’

-명령이다. 벗어.

-예, 예! 알겠습니다!

‘안 돼-!’

와장창!

갑자기 깨져 버린 공간.

벌떡 몸을 일으킨 라비 일병이 거친 숨을 몰아쉰다.

그런 그의 얼굴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땀.

어디선가 불어온 꿉꿉한 바람이 그의 정신을 깨운다.

‘꿈…….’

“빌어먹을.”

욕지거리를 내뱉는 그의 근처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띠리리리링! 철컹철컹! 웅성웅성!

온갖 소음이 가득한 지하철역의 한구석.

아직도 깨지 않은 홈리스들이 뿜어내는 지독한 냄새에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삐 걸음을 옮기고, 그 모습을 보던 라비 일병이 모자를 눌러쓰며 몸을 일으킨다.

‘이 지하철역에서 홈리스가 쫓겨나는 시각이 오전 7시.’

이곳에서 20년 넘게 살았는데 모를 리가 없다. 더 사람들이 많아지기 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됐다.

그렇게 지하철을 나선 라비 일병은 혀를 찼다.

쏴아아아!

어제에 이어 오늘도 비가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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