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87화>
사건의 개요는 이랬다.
쿠바 관타나모에 위치한 미해군기지 소속 라비 에드거 리 일병은 마이애미로 휴가를 나왔다가 갑자기 선임을 살해 후 도주. 샬럿과 워싱턴 DC, 필라델피아를 거쳐 뉴욕에 들어왔음이 확인됐다.
그래서 사건이 FBI 뉴욕지국으로 인계된 것이었다.
“NCIS의 윌리엄 파웰입니다. 복무 당시 계급이 소위 였으니 윌리엄 소위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회의실, NCIS(United States Naval Criminal Investigative Service, 미 해군범죄수사국)에서 파견된 깐깐한 인상의 삼십대 백인 남성이 손을 내밀자 종혁이 그 손을 붙잡는다.
“아, 그래요.”
‘골치 아픈 유형이네.’
윌리엄 소위는 권위의식이 강한 타입이었다.
“FBI의 최종혁입니다. 이쪽은 제 동료인 벤과 드롭입니다. 그럼 곧바로 사건 이야기로 넘어갈까요?”
“저도 그편이 좋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사건 파일을 펼쳤다.
라비 에드거 리 일병. 21살에 군 입대를 해서 곧바로 관타나모 미군 기지에 배치, 2년 동안 군 생활을 한 젊은 청년이다.
178cm, 70kg 호리호리한 체격에 개미 한 마리 쉽게 죽이지 못할 듯한 선한 외모. 종교는 천주교.
‘세례까지 받은 독실한 천주교인이 살인을 저질렀다라…….’
종혁의 눈이 가늘어진다.
라비 일병이 천주교인이라서가 아니다. 독실한 신자라도 범죄를 저지를 놈은 범죄를 저지르니까.
그는 사건 파일의 한 대목을 짚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에 원한에 의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나오는데, 라비 일병과 피해자 간에 어떤 원한 관계가 있는 겁니까?”
“같은 소대에서 근무하는 해병들 진술에 따르면, 라비 일병과 피해자는 거의 앙숙 사이였다고 합니다.”
일어나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사사건건 부딪쳤다고 한다.
“그건 여기 뒷장에 나와 있으니 저도 압니다. 저는 정확한 원인을 묻는 겁니다.”
“……주로 라비 일병의 항명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항명…….”
“청소부터 쉬는 것까지, 라비 일병은 선임인 피해자의 통제를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했다고 합니다. 피해자는 계속 엇나가는 라비 일병이 안쓰러워 잔소리를 많이 했고요.”
“그러다 휴가를 나와서까지 잔소리를 듣자 욱해서 찔렀다?”
살해에 쓰인 흉기는 부서진 맥주병.
펍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라비 일병은 같은 펍에 있던 피해자가 동료들과 함께 화장실로 향하자, 따라 들어가 들고 있던 맥주병을 부순 후 그대로 피해자의 전신을 12번이나 찌르고 도주했다.
“피해자가 정말 지독히도 싫었나 보네요.”
“저희 NCIS에서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흠. 그런데 라비 일병은 왜 이 먼 뉴욕까지 온 겁니까? 그 부분은 기록되지 않았던데요.”
“그의 양부모가 차이나타운에 살고 있습니다.”
순간 종혁의 눈살이 꿈틀거렸다.
“그럼 친구나 지인들도 차이나타운에 살겠군요.”
“그에 대한 자료는 여기 있습니다.”
라비 일병이 복무 중 통화한 기록과 편지를 주고받은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인맥도.
그런데 그 숫자가 부모를 제외하면 고작 3명뿐이다.
‘친구가 어지간히 없네.’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탈영 당시의 무장 상태는 어땠습니까?”
“휴가를 나온 것이기에 당연히 비무장 상태였습니다.”
“살상 무기 제작에 관한 지식이 있습니까? 살인 경험은요? 병과는?”
“그는 뛰어난 해병이었습니다.”
“지금 그걸 묻는 게…… 하, 됐습니다. 그냥 모든 자료를 넘겨주시죠.”
“지금 제가 말한 게 전부입니다.”
“이봐요.”
“이게 전부입니다.”
까득!
“……알겠습니다. 그럼 호텔에서 쉬고 계십시오. 찾으면 연락드릴 테니까.”
괜히 남의 구역에 와서 분탕 치지 말라는 경고.
콧방귀를 뀐 윌리엄 소위는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침을 뱉었다.
“아오, 저 씹새끼!”
그들이 범인을 놓쳤기에 자신들 FBI가 수습하게 된 것임에도 뻣뻣하게 구는 윌리엄 소위의 모습에 화가 솟구쳤다.
그런데 그보다 거슬리는 게 있다.
“뭔가 있는 것 같죠?”
“응. 뭔가 숨기는 게 있네. 말이 두루뭉술해.”
사건을 기록한 파일 내용도 죄다 두루뭉술하다.
그뿐만 아니다.
“사건 당시의 상황이나 진술서들도 어색해요.”
피해자는 동료들과 함께 화장실에 있다가 찔렸다고 했다.
피해자와 그의 동료들은 해병이다. 일반 해군도 아닌 미국 최고의 전투부대 중 하나인 해병대 소속의 군인.
아무리 술김에, 홧김에라고 한들 그런 이들이 모여 있는데 범행을 저질렀다?
물론 제대로 빡쳤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다소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더 의아한 건 피해자의 동료들이었다.
그 어떤 진술에도 라비 일병을 저지하다가 상처를 입었거나, 반대로 라비 일병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내용이 없었다.
즉, 피해자의 동료들은 라비가 피해자를 12번이나 찌르고 도주할 때까지 구경만 하고 있었다는 거다.
사건 현장 사진도 좀 이상했다.
소변기 앞에서 팬티까지 모두 내린 채 사망해 있는 피해자와 피가 안 튄 곳을 찾는 게 빠를 정도로 피범벅이 된 화장실.
라비 일병이 피해자를 화장실 여기저기로 끌고 다니며 찔렀다는 뜻이 된다. 아니면 도망치는 피해자를 쫓아가 찌르며 화장실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거나.
그게 맞다는 듯 피해자의 등에 세 개의 상흔이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더더욱 피해자의 동료들과 라비 일병 사이에 마찰이 없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사건 파일에서 이 정도로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건 오랜만이었다.
심지어 NCIS는 라비 일병이 탈영한 직후 FBI에 도움을 요청한 게 아니라, 뉴욕까지 도주한 이후에야 이렇게 찾아왔다.
진작 FBI의 협조를 받았다면 뉴욕까지 도주하지도 못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종혁은 코를 긁으며 사건 파일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대체 뭘까. 뭣 때문에 이렇게 고약할까.’
뭐든 NCIS뿐만 아니라 관타나모 해군기지가 이번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 같다.
이 사건 파일은 딱 그런 의도가 담기다 못해 철철 넘치고 있었다.
“씨발. 이 새끼들보다 먼저 찾으려면 뺑이 좀 치겠네.”
군에서 뭔가를 은폐를 하려고 드는데 제대로 된 재판을 받을 수 있을까.
라비 일병이 진짜 개새끼라면 종혁도 신경을 쓰지 않을 테지만, 이 사건 분명 뭔가 있다는 직감이 든다.
그렇다면 NCIS보다 먼저 라비 일병을 찾아 잘잘못을 따져 봐야 했다.
“마지막 목격 장소가 포트 오소러티 터미널 근처야.”
사건을 저지른 후 종적을 감춘 라비 일병.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플로리다의 북쪽 도시 잭슨빌이었고, 이후 워싱턴 DC에서 필라델피아를 거쳐 뉴욕에 들어왔다.
마이애미에서 뉴욕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이틀, 정확히는 28시간에 불과했다.
포트 오소러티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도 고속버스를 탄 게 아니라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작고 허름한 트럭에서 내리는 게 CCTV에 찍혔던 것뿐이다. 뉴욕주 오른편 코네티컷주 번호판을 단 트럭에서.
굉장히 영리하고 행동력도 빠른 놈이다.
아니, 제대로 훈련을 받은 놈이었다.
“거긴 제가 훑을 테니까 벤과 드롭은 지원을 요청해서 양부모를 찾아가 봐요.”
탈영한 군인이 부모가 있는 뉴욕에 왔다면 그 이유가 뭐겠는가. 부모가 사는 곳 일대에 포위망을 펼쳐야 했다.
“아니, 우리가 버스터미널을 훑을 테니까 양부모에게는 네가 가. 라비 일병의 양부모가 동양인이잖아.”
“흠. 뭐,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사건 파일에 첨부된 라비 일병의 가족사진을 가만히 응시했다.
* * *
쏴아아아!
오전 11시부터 꾸물거리기 시작하던 하늘이 결국 비를 쏟아 낸다.
오늘 비 소식이 없었던지라 기겁한 사람들이 근처 건물 아래로 몸을 피하고, 혹시 몰라 우산을 준비한 사람들이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우산을 펴 든다.
그건 차이나타운도 다르지 않았다.
차이나타운의 어느 허름하고 낡은 건물 옥상.
“하아.”
난간에 몸을 숨긴 라비 일병이 쌍안경을 꺼내, 저 멀리 아주 희미하게 보이는 식료품 마트를 가만히 응시한다.
사람들이 펴 든 우산 때문에 더 잘 보이지 않는 작고 허름한 식료품 마트.
비가 쏟아지자 걸어 나와 차양막을 치는 오십대 동양인 부부의 모습을 보는 라비 일병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엄마. 아빠…….’
그의 눈에서 주륵 흐르는 후회의 눈물.
“미안해요. 제가 조금만 더 참았어야 했는데…….”
다른 기지로 전출을 신청해 놨는데, 결국 짧은 순간을 참지 못해 사고를 치고 말았다.
물론 그에 대한 후회는 없다.
놈은, 그리고 놈들은 악마였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부모님을 만나 뵐 수 없을 거라 생각하자 심장이 찢어질 듯 아프다.
혹여 아들이 어디 다치진 않을까 매일같이 전화를 하시던 부모님. 혹여 아들이 상의 없이 파병을 가 버릴까 달래던 부모님.
그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오열했다.
늦봄의 차가운 빗줄기가 그의 영혼을 차갑게 식혀 갔다.
그 순간이었다.
덜컹!
‘흡?!’
“꺅!”
갑자기 열린 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삼십대 후반의 동양인 여성.
“W, Who are you? This is m, my…….”
“我来这里是为了抽根烟(잠깐 담배를 피우러 왔습니다).”
“Ah!”
라비 일병의 능숙한 중국어에 깜짝 놀라는 여성.
“그럼.”
라비 일병은 모자를 더 깊이 눌러쓰며 그녀를 지나쳐 아래로 뛰어 내려갔고, 멍하니 그런 그를 바라보던 여성은 이내 정신을 차리곤 옥상 한편에 세워진 허름하다 못해 다 쓰러져 가는 창고 같은 건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얘는 또 어디 간 거야!”
자식을 찾는 엄마의 사자후가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 * *
작고 허름한 식료품 마트, 라비.
흙이 묻은 생야채들이 뿜어내는 냄새 속, 카운터에 놓인 붉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남성 리자춘이 밖을 보며 혀를 찬다.
“먹구름이 끼네.”
“아까부터 무릎이 아픈 게 곧 비가 오려나 봐요. 장마는 모레부터 시작될 거라고 했는데…….”
안경을 낀 작은 체구의 아내가 다가오며 따뜻한 차를 내밀자 리자춘은 씁쓸히 웃으며 찻잔을 밀어냈다.
“됐어. 뭐가 안 넘어가네. 당신이 마셔.”
“저도 뭐가 안 넘어가네요. 후우. 라비는 밥이라도 챙겨 먹고 있을지…….”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얼마 전 통화를 할 때까지만 해도 소대원들이 잘 대해 준다고 했던 아들이 선임을 죽이고 탈영을 하다니.
어제 오후, NCIS라는 곳에서 연락이 왔을 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솔직히 처음엔 믿지 않았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에, 입양아임에도 자라는 동안 사고 한 번 안 친 아들. 그런 아들이 반항한 건 딱 한 번, 해병대에 입대하겠다고 했을 때다.
당연히 그들은 반대를 했었지만, 라비는 부모님과 이 나라를 지키고 싶다며 단식 투쟁과 함께 그들을 설득했고 결국 해병대에 입대하게 됐다.
“그때 말렸어야 했어요. 그때 어떻게든…….”
“후우우.”
리자춘은 가슴을 치는 아내를 애써 외면했다. 자신도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들이 굶어 쓰러진다고 해도 참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지독한 후회가 리자춘의 마음을 좀먹어 간다.
딸랑!
“아, 어서 오세요. 라비 마트입니다.”
누군가 마트에 들어오자 웃으며 몸을 일으키는 그.
하지만 이내 곧 표정이 굳는다.
“NCIS의 윌리엄 파웰입니다.”
“……오셨군요. 라비의 아비 자춘 리입니다. 이쪽은 제 아내입니다.”
“롱 유에예요.”
“라비 일병에게 연락 없었습니까?”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제 아들이 사람을 죽인 게 맞습니까? 혹시 착오라도…….”
“쉿.”
리자춘의 말을 끊은 윌리엄 소위는 리자춘과 아내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들어와.”
“응?”
딸랑!
청바지와 얇은 후드티, 백팩을 멘 두 명의 동양인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니, 그러다 못해 갑자기 카운터 안으로 들어오더니 전화기를 분리하기 시작하고 가게에 CCTV를 설치한다.
“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선임을 살해하고 도주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잡기 위함입니다.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건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더 협조를 구하는 겁니다. 저희가 라비 일병을 사살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 그게 무슨…….”
“해병대는 다른 군부대들보다 더 사람을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죽이는 기술을 배우는 곳입니다. 미스터 리, 그렇기에 저흰 라비 일병이 허튼짓을 할 시 곧바로 사격을 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
“여보!”
쓰러지는 아내를 붙잡은 리자춘은 윌리엄 소위를 죽일 듯 노려봤다. 그러나 그는 눈빛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그에 윌리엄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챈 리자춘은 그들의 행동을 그저 망연자실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쏴아아아!
결국 쏟아져 내리는 비.
“……차양막을 쳐야겠네.”
“그, 그래요. 사람들이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미국으로 이민을 오고 수십 년, 그리고 아들과 함께한 추억이 가득 묻어 있는 가게가 타인의 손에 짓밟히고 유린되는 걸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던 리자춘과 아내는 결국 가게를 나섰고, 윌리엄 소위는 그런 그들을 일견하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3분. 그 안에 끝내. 라비 일병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수 있다.”
“옛썰.”
윌리엄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현재 탱고가 관측되나?”
탱고는 군에서 타깃을 뜻하는 암호.
-보이지 않습니다.
“알았다. 계속 주시…….”
딸랑!
“햐,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어이, 내가 호텔에서 쉬고 있으라고 했지?”
윌리엄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종혁의 모습에 얼굴을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