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84화 (484/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84화>

뉴욕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은 도시, 뉴저지의 리빙스턴.

과르릉!

람보르기니 한 대가 도로 위에 선다.

-오늘 하루는 푹 쉬고 내일부터는 열심히 범인을 쫓는 거야. 알았지, 최?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스.”

-쉬어.

전화를 끊은 종혁이 씁쓸히 웃는다.

‘걱정시켰네.’

말투가 꼭 어린 아들을 위로하는 듯했지만, 그렇기에 그녀의 마음이 더 잘 느껴진다.

실패에 무너지지 말고 딛고 일어서라. 그런 걱정하는 마음이.

지이잉!

“예, 접니다. 곧 도착합니다.”

-저희도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아, 저기 보이는군요.”

저 멀리 다이너 앞, 후덕한 덩치의 오십대 백인을 발견한 종혁이 그쪽으로 차를 몬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종혁에게 정중히 인사하는 그레이스 탐정사무소의 직원, 데이비드.

“저야 이런 일이 다반사인데요, 뭐. 오히려 데이비드가 이 먼 곳까지 출장 오시느라 수고하셨죠.”

“저희도 주를 넘나드는 건 다반사라…… 하하.”

의뢰인을 위해서라면 캐나다와 브라질까지 넘어가는 그레이스 탐정사무소. 겨우 주 하나 넘는 것 정도는 출장 축에도 끼지 못한다.

거기다 종혁이 이번 의뢰에 들인 금액이 얼마던가. 설사 그곳이 지옥 끝이라도 가야 했다.

그런 그의 말에 웃음을 흘린 종혁은 다이너 주변을 둘러보며 눈을 빛냈다.

“여기였죠?”

“예. 현재 이곳까지 이동했음은 확인됐습니다. 이후 행적은 계속해서 다른 직원들이 조사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단 들어가실까요? 뭘 하든 밥은 먹고 해야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죠.”

종혁은 데이비드와 함께 다이너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때였다.

“어? 최?”

“응?”

갑작스런 부름에 고개를 돌렸던 종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앙카?”

“최가 여길 왜…….”

“비앙카가 여길 왜…….”

동시에 말하고 동시에 입을 다문 둘.

종혁은 풀썩 웃었다.

“아무래도 우린 서로 같은 걸 떠올렸나 보네요.”

“그런 것 같네…….”

그 순간 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언제부터 의심했습니까?”

“그녀가 방송국과 인터뷰를 했을 때부터.”

“너무 차분해서요?”

“응.”

인터뷰에서 사건의 경위를 너무나 차분하게 설명했던 마리나 콥스.

딸아이가 실종된 지 며칠이 지나서 생사도 불분명한 상황임에도, 설명을 이어 나가던 그녀는 너무나도 침착했다. 마치 미리 준비한 대본대로 연기하는 것처럼.

“친모가 아니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평소 그녀는 소피아를 엄하게 대했다는 증언들이 있었어.”

부모가 자식을 혼내는 건 일종의 관심이었다. 관심도 없다면 혼을 내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도를 넘어섰던 것이라면?

그저 주변의 시선 때문에, 자신의 체면 때문에 아이를 혼낸 것이라면?

비앙카는 그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마리나가 소피아를 훈육했던 것이 아니라 학대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그 의심은 인터뷰들을 볼 때마다 커져 갔지만…….”

“마리나에겐 알리바이가 있었죠.”

종혁도 마리나를 의심해 보지 않은 게 아니다.

그녀는 계모다.

한 해에 계모나 계부로 인해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건이 몇 건이던가.

하지만 사건 발생 시각에 마리나가 소피아를 향해 ‘조심히 다녀와!’라며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는 주변 이웃들의 진술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건 발생 시각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집에서 15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카드 내역뿐만 아니라 CCTV로도 확인됐다.

소피아를 데리고 어딘가로 이동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이토록 알리바이가 확실했으니, 종혁도 그녀가 미심쩍었으나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었다.

“맞아. 그랬지. 그런데…….”

“사건 발생 전날 저녁 11시, 그녀는 차를 몰고 이곳으로 왔죠.”

종혁은 브룩클린에 들어서는 낯선 차량이 없는지 찾기 위해 CCTV를 확인하던 중, 야심한 시각에 차를 몰고 브룩클린을 벗어나는 마리나의 차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늦은 시간에 어딜 갔던 것일까. 그것도 어린 딸을 집에 홀로 놔두고 말이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종혁은 그 차의 동선을 쫓았고, 이내 이곳 리빙스턴에 왔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브룩클린에서 리빙스턴까지는 무려 차로 3시간 거리. 새벽 2시에 이곳에 무슨 볼일이 있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더더욱 마리나가 의심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놓치고 있던 게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애초부터 사건의 초점을 잘못 잡은 게 아닌가 하는…….”

“정확히는 사건 발생 시각이겠지.”

맞다. 정확하다.

평소에 마리나가 소피아를 훈육이 아니라 학대를 했다면?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 오후 6시, 소피아의 친구인 에이미가 돌아가고 난 이후 학대를 하다가 잘못됐다면?

그렇게 가정을 하자 모든 게 맞물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랬어. 하지만…….”

“납치 피해자의 가족을 소환하기엔 언론이 무섭죠.”

갑자기 끼어든 데이비드의 말에 종혁과 비앙카는 씁쓸히 웃었다.

어디 언론뿐이겠는가. 버락 던햄 루터와의 경선에서 패배한 스태파니 퀸스 클린턴과 그녀의 지지자들이 FBI 뉴욕지국을 잡아먹으려고 들 터였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이렇게 온 거다.

“나도 마찬가지야. 마침 보스가 휴가를 주기도 했고.”

사건 발생 후 9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휴가는 당연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뭐라도 해 보려고 온 거야.”

“저도 그렇습니다.”

종혁도 내일이면 다른 사건을 담당해야 된다. 그전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고 싶었다.

“대단하네. 네 사건도 아닌데…….”

“사건에 내 거, 네 거가 어디 있습니까?”

피해자가 있으면 구한다.

그게 경찰이었다.

“그 점이 대단하다는 거야.”

“하하.”

“그럼 늦은 아침을 먹으려고 온 거야?”

“비앙카도 같이 먹을래요?”

“그럴까? 아, 그런데 이쪽은?”

“평소에 절 도와주고 있는 그레이스 탐정사무소의…….”

지이잉! 지이이잉!

갑자기 울리기 시작한 데이비드의 핸드폰.

눈을 빛낸 데이비드가 다급히 전화를 받는다.

“어, 나야. 그래? 알았어. 곧 가지.”

통화를 종료한 데이비드는 기대 어린 눈빛을 짓는 종혁을 향해 싱긋 웃었다.

“찾았답니다. 마리나의 동선을.”

쿵!

종혁과 비앙카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 어딥니까?”

“베커 공원. 마리나의 차가 베커 공원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베커 공원. 그곳은 새벽에 사람이 갈 만한 곳이 절대 아닌 넓은 숲이었다.

* * *

웅성웅성.

베커 공원의 입구에 도착한 비앙카는 몰려 있는 백여 명의 사람을 보곤 입을 떡 벌리며 종혁을 봤다.

“이, 이게 다 그레이스 탐정사무소 소속의…….”

“마지막이라서 돈 좀 썼어요.”

작은 단서라도 나오길 바라며.

“저희 사무소가 설립된 이래 최고로 많은 직원이 동원됐습니다.”

대부분 보조 사무원이지만 말이다.

“이것을 봐 주시겠습니까? 저희 직원이 확보한 영상들입니다.”

데이비드가 보여 주는 노트북 속 CCTV 영상.

가로등 불빛 아래, 마리나의 차량이 보인다.

“ATM CCTV 영상인가요? 각도가 그런데…….”

“예, 맞습니다. 이렇게 이동한 차량은 이 루트를 거쳐 이곳에 도착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게 공용 CCTV의 배치도와 차량의 이동 동선입니다.”

“……이쪽 길로는 CCTV가 아예 없네요.”

“작은 도시니까요.”

범죄가 잘 일어나지 않은 인구 2만의 작은 도시. 번화가나 중요 관공서를 제외하면 CCTV가 썩 필요하지 않다.

“그날 새벽에 누가 오지 않았냐 물었지만, 관리인은 퇴근해서 잘 모르겠다는군요.”

“저녁엔 공원을 폐쇄하지 않는 겁니까?”

“걸쇠로 걸어 놓기만 한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색을 시작하죠.”

휘이익!

데이비드의 입에서 높고 강한 휘파람 소리가 울리자 주목하는 시선들.

종혁이 데이비드의 권유에 한 발 앞으로 나선다.

그러나 그 입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이미 머릿속을 잠식해 버린 가정.

종혁은 어렵사리 입을 뗐다.

“사소한 거라도 좋습니다. 뭐라도 찾기만 하십시오.”

“……예!”

“공원 관리인에게 돈을 지불했으니 뭐라도 하나 건지지 못하면 뉴욕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수색해! 출발!”

우르르!

백여 명의 사람이 베커 공원 안으로 진입하며 흩어진다. 길을 따라 걷지 않고 그 주변의 수풀로 들어간다.

“우리도 가죠.”

“응.”

데이비드가 주는 무전기를 받아 든 종혁과 비앙카도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스륵! 삭!

높게 자란 수풀이 휘젓는 손길에 눌리며 길을 연다.

그러나 또 다른 수풀과 나무가 종혁의 앞을 가로막는다.

‘있을까? 없을까?’

있을 거다.

정말 생각하기 싫지만 이곳에 소피아가 있을 거다. 이 수풀에 외로이 방치 된 채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하지만 희망을 버릴 순 없다.

부디…….

“후우.”

잠시 멈춰 선 종혁이 잠시 하늘을 보며 치미는 슬픔을 누른다.

그때였다.

-치익! 찾았습니다!

철렁 심장이 내려앉는다.

종혁은 떨리는 손으로 무전기를 들어 입을 열었다.

“거기가 어딥니까?”

-여기가…….

종혁은 다급히 몸을 돌려 수풀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Fuck.”

“우욱!”

그들이 진입한 입구에서 60미터가량 떨어진 지점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지 오래된 건지 수풀이 우거진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을 헤치며 안으로 들어간 종혁은 아주 옛날, 이곳에서 사람들이 파티를 벌였는지 낡고 부스러진 드럼통 안을 보곤 힘이 풀리는 무릎을 억지로 붙잡았다.

일말의 희망이 무너져 내린다.

“헉헉! 여, 여기에…… 아.”

드럼통 안을 본 비앙카가 털썩 무릎을 꿇는다.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마치 잠을 자듯 무릎을 끌어안은 채 구겨져 있는 부패한 작은 시신. 팬티 하나만 입은 알몸의 시신.

종혁은 입술을 깨물며 핸드폰을 들었다.

“예, 보스. 소피아 콥스를 찾은 것 같습니다.”

다시 드럼통 안을 보는 종혁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미안합니다.’

구해 주지 못해서.

빨리 찾아 주지 못해서.

‘많이 춥고 힘들었지?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아빠한테 가자.’

* * *

털썩!

딸이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에 데니 콥스가 무너진다.

오매불망 손녀가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하던 조부모도 무너져 내린다.

“꼭 찾는다며! 찾아 줄 거라며!”

소식을 전하러 온 FBI 요원의 멱살을 잡고 울부짖는 소피아의 조부.

FBI 요원들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잇지 못한다.

“죄송합니다.”

이 말 말고 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죄인이 된 그들은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디에서 발견했습니까. 제 딸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뉴저지에서 찾았고, 현재 저희 FBI로 이송 중입니다. 일단 가시죠.”

“예, 예. 가, 가야죠.”

가야 한다.

그 먼 곳에서 홀로 애타게 이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을 딸을, 겁에 질려 애타게 이 아빠를 찾았을 딸 소피아를 데리러 가야 한다.

데니 콥스와 그 조부모가 비척비척 집을 나서기 시작한다.

그때였다.

“잠깐만요. 뭘 좀 놓고 왔어요. 금방 다녀올게요.”

현관문에 서서 태연히 말하는 마리나.

돌아서는 그녀를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아니, 누구에게도 그럴 정신이 없다.

“예, 천천히 하십시오.”

애써 냉정하려는 FBI 요원만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하고 남은 가족들을 차량으로 안내하고, 돌아선 마리나 콥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대체 어떻게……!’

완벽했던 계획이다.

그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을 거라 자신했던 범죄.

누구도 찾지 못할 거라 여긴 소피아.

하지만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다. 소피아를 발견했다면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도 금세 추리해 낼 터.

핸드백과 지갑을 챙겨 든 그녀는 마당에서 기다리는 FBI 요원들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때였다.

콱!

“악?!”

갑자기 뒤로 젖혀지는 고개에 비명을 지르며 눈을 돌린 마리나가 헛숨을 삼킨다.

“이럴 줄 알았지.”

이럴 것 같아서 방금 전 마리나의 혐의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거다.

이렇게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서. 내가 범인이오, 라고 스스로 증명하게 만들기 위해서.

“다, 당신은?”

“일단 좀 맞자.”

종혁은 으스러져라 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안 돼-! 아아악! 꺼억! 꺽!”

새하얀 천에 뒤덮인 딸을 붙든 채 오열하는 데니 콥스.

“안 돼에-!”

자식과 아내를 잃은 아비의 절규가 흐릿한 하늘에 울려 퍼졌다.

아무래도 하늘도 슬퍼 비를 내릴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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