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83화>
“왜 시간이 지나고도 신고를 하지 않은 겁니까.”
모든 쓰레기가 그날 분리되고 소각되는 쓰레기 픽업 회사.
만약 톰이 이틀 후에라도 신고를 했다면 전체 공정을 멈출 일도, 지미 쿠퍼에게 매달리며 시간을 낭비하는 일도 없었을 거다.
“처, 처음엔 신고를 하려고 했는데…….”
신고를 하면 저렇게 톰이 일하는 4번 라인을 비롯해 다른 공정까지 모두 저렇게 정지를 시켜야 하기에 가젤이 막았다고 한다.
“있는 일자리도 잘리는 시기라고……. 그 아이의 것인지도 확실치 않은 옷가지 때문에 그런 손해를 발생시켰다가는 저와 4번 라인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이 잘릴 수도 있다고…….”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흐르며, 이제는 자신이 의심을 받을까 겁을 먹어 더더욱 신고하기가 힘들어졌다는 톰의 설명.
절로 한숨이 나오는 말이었다.
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니…… 하아.”
종혁은 수갑을 빼 들려다가 멈췄다.
“알겠습니다.”
“저, 전 어떻게 될까요! 지, 징역을 받는 건가요?!”
“나중에 저희가 연락하면 찾아오기나 하세요.”
증거 은닉은 중범죄이지만, 방금 전 톰이 진술했다시피 그는 자신의 인사에 영향을 주는 가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
그 부분을 참작하면 약식기소, 벌금 정도의 처벌만 받을 거다.
‘톰은 이렇게 처벌받겠지만…….’
4번 라인장인 가젤은 다르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무기로 톰의 의견을 묵살시키고 침묵시켰다.
그렇기에…….
철컥!
“뭐, 뭡니까! 나를 왜 체포하는 겁니까!”
“가젤 톰슨 씨, 당신을 증거물 은닉 혐의로 체포합니다.”
가젤 또한 벌금 정도의 처벌을 받게 되겠지만, 그 액수가 톰과는 다를 터였다.
종혁은 끌려가는 가젤을 보며 담배를 물었다.
‘거지 같네.’
* * *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검사는 빠르게 이뤄졌다.
그리고 그 결과도 종혁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옷가지에 묻은 피와 소피아의 유전자가…… 일치한다고 합니다.”
“……Fuck-!”
아동 실종 및 납치 전담 부서가 뒤집어진다.
흥건할 정도로 옷에 묻은 피.
그 어린 소녀가 그 정도의 피를 흘릴 정도로 맞거나 베였다는 소리다. 그 작고 어린 것이 말이다.
눈이 뒤집어지지 않는다면 경찰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 흉흉한 살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건과 옷에서 소피아의 것이 아닌 여성의 혈액도 검출됐다고 합니다!”
멈칫!
머리를 쥐어뜯거나 화를 삭이던 모두의 시선이 검사 결과를 발표하던 요원에게로 향한다.
“여성?”
순간 요원들의 눈이 번뜩인다.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시각 종혁이 말한 범위 내에 집에 혼자 있던 여성이.
아만다 거스. 나이 36세.
평소 데니 콥스와 사이가 썩 좋지 못했다는 이웃들의 증언이 있는 여성이다.
서로 다툼을 하는 건 아니지만 경원시했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녀는 데니 콥스의 소꿉친구이자, 전전 여자친구였으니 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미 용의선상에 올랐다가 지미 쿠퍼가 등장하면서 제외됐던 아만다 거스.
‘이런 그녀를 용의선상에 올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지. 그건…….’
그 이유를 떠올린 다넬 잭슨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토니! 얼른 아만다 거스에 대한 영장 청구하고……!”
콰앙!
갑자기 열리는 문에 고개를 돌렸던 요원들의 입이 다물어진다.
봉두난발이 되어 달려오는 데니 콥스.
“소, 소피아의 옷이 발견됐다는 겁니까?! 어디 있습니까, 제 딸은!”
종혁의 옷을 붙들며 외치는 그의 처절한 절규에 종혁뿐만 아니라 모두의 시선이 돌려진다.
“요원님-!”
“……후우. 이쪽으로 오시죠.”
종혁은 그를 소피아의 옷가지가 담긴 증거물 봉투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털썩!
피가 묻은 옷가지를 발견하자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는 데니 콥스.
“아으…… 아…….”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아빠를 찾았을까.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데니 콥스는 딸의 옷가지를 끌어안으며 오열했고, 마리나는 그런 그를 다독인다.
지독한 슬픔과 절망이 사무실에 내려앉는다.
그걸 견디지 못한 것일까. 올해 초 이곳 부서로 발령받은 한 젊은 요원이 그런 그들에게 다가선다.
“저…… 데니 콥스 씨, 혹시…….”
‘미친!’
콱!
“웁?!”
종혁은 다급히 요원의 입을 움켜쥐며 눈을 부라렸다.
“미쳤어?”
“무, 무슨…….”
“모르면 닥쳐. 아가리를 찢어 버리기 전에.”
“……!”
사람을 산채로 찢어발기려는 듯한 눈빛에 그대로 얼어붙은 요원.
“거기 아무나 이 미친 새끼 데려가요.”
“알았어. 이 또라이 새끼! 따라와!”
“악! 아악!”
종혁은 끌려가는 요원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맙군. 우리 쪽 애새끼의 실수를 막아 줘서.”
콥스 부부의 눈치를 보며 감사를 표하는 다넬 잭슨.
한 부서의 캡틴이 자신의 부서 요원을 혼낸 타 부서의 요원에게 감사를 표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딸의 피 묻은 옷가지를 보고 정신을 놓은 부모에게 용의자에 대한 걸 묻는다는 건 보복 살인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
종혁은 그걸 막은 거였다.
“정말 고마워.”
툭툭 종혁의 어깨를 두드린 다넬 잭슨은 더 이상 증거물이 망가지기 전에 콥스 부부를 일으켜 안쪽으로 데려갔고, 종혁은 힘들게 딸의 피 묻은 옷을 놓으며 다넬 잭슨을 따르는 그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뭘까.’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가 거슬린다.
저번부터 계속 들었던 미묘한 위화감.
“흐음.”
“응? 왜 그래요, 비앙카?”
“……아니야. 그보다…… 죽었을까?”
“아뇨. 사망할 정도의 출혈량은 아니에요.”
또한 날카로운 것에 베이거나 찔린 것도 아니다.
옷에 그런 흔적도 없거니와 혈흔의 패턴도 다르다.
소피아는 폭행으로 인해 피를 다량으로 흘린 거다.
그걸 뒷받침할 증거는 바로 소피아의 옷에 묻은 구토물들.
“하지만 머리에 충격을 받아도 구토는 해.”
뇌진탕 및 뇌출혈의 특징이 바로 그것 아닌가.
“아뇨. 아직 살아 있을 겁니다.”
아니라면 왜 굳이 옷을 갈아입혔겠는가.
살아 있을 거다.
그래야 했다.
그래야…….
빠드득!
비앙카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얼굴이 일그러진 종혁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맞아……. 살아 있을 거야.”
“예. 그럴 겁니다.”
종혁은 이번 사건에서 CCTV 검사를 담당하는 요원에게 다가갔다.
“아만다 거스에 대한 CCTV…….”
“확인하고 있어.”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만다 거스가 동네를 벗어난 흔적이 없다면, 소피아는 아만다의 집 안에 숨겨져 있을 터.
종혁은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 * *
부스럭!
해가 뜬 지 오래인 정오.
그제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금발의 여성, 아만다 거스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다.
아직 물러나지 않은 피로 때문인지 눈에 초점이 없는 그녀.
마치 의지가 없는 인형처럼 하염없이 허공을 바라보던 아만다 거스의 몸이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는 다급히 침대 옆에 놓인 원목 선반에 놓인 잎담배를 가져와 입에 물었다.
찰칵! 치이익!
“스읍! 하아아…… 흑?!”
뻣뻣하게 굳어 뒤로 넘어지는 그녀.
그녀의 몸이 배배 꼬이기 시작한다.
“헤에. 헤헤.”
대체 뭘 보는 것일까.
뭐가 그렇게 즐거운 것일까.
눈이 풀린 아만다 거스는 천장을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면서도 연신 담배를, 아니 다른 마약과 합성을 한 마리화나를 빨았다.
그렇게 해가 어스름히 저물 때까지 행복에 버둥거리던 그녀의 눈에 다시 초점이 생긴다.
“푸후우. 이제…… 일어나 볼까?”
마리화나에 중독된 사람 특유의 늘어지는 음성.
침대를 짚으며 몸을 일으키던 그녀는 갑작스럽게 통증이 느껴지는 손을 보곤 미간을 좁힌다.
누군가 사정없이 긁기라도 한 듯 다 찢긴 붕대와 진득한 피가 맺혀 있는 손등.
방금 생긴 상처가 예전에 생긴 흉터 위에 겹쳐져 마치 거미줄이 그어진 듯 흉한 손등에 아만다 거스는 혀를 찼다.
“정말 팔을 묶어 놔야 하나.”
그녀는 다시 침대 옆 선반을 열어 붕대를 꺼내어 손을 감고는 침대를 빠져나와 창가로 걸어갔다.
웅성웅성.
데니 콥스의 집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 주민들.
“없어…… 졌네.”
방송국 차량이 사라졌다. 며칠 전만 해도 족히 10대는 세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단 한 대도 찾아볼 수가 없다.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킥! 오, 어떡해. 데니, 이젠 사람들의 관심마저 멀어져 버렸네.”
아만다 거스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부르릉!
두 대의 방송국 차량과 함께 집 앞에 도착한 데니 콥스의 차.
다시 나타난 방송국 차량에 혀를 찼던 아만다는 마리나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리는 데니 콥스를 보며 눈을 빛냈다.
“푸흐흐. 그래, 그렇게 괴로워하고 또 괴로워하면 되는 거야. 날 그렇게 차고도 잘 살 줄 알았어?”
십대 시절 데니 콥스와 뜨겁게 사랑을 나눴던 아만다 거스.
딱 한 번 술김에 다른 남자와 잤을 뿐이다.
그런데 데니 콥스는 매정하게 이별을 고했고, 그 이후로 소문이 잘못 나서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한 채 지금까지 살아오게 됐다.
그런데 데니 콥스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고, 예쁜 딸까지 얻은 것도 모자라 재혼까지 했다.
부모님마저 데니 콥스가 결혼을 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웃들 보기 창피하다며 그녀만 놔둔 채 이사를 간 상황.
그 충격에 그녀는 결국 마약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마약에 빠진 것도, 엄마랑 아빠가 나를 떠난 것도 모두 너 때문이야. 데니, 다 네가 잘못한 거야. 네가 잘못한 거라고…….”
눈에 지독한 독기가 들어찬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몸을 돌렸다.
생각해 보니 이틀 전 먹을거리가 다 떨어졌다. 마트에 가야 했다.
그때였다.
부우우우웅! 끼이이익!
“응?”
갑자기 그녀의 집 앞에 멈춰 서는 FBI SUV.
차에서 내린 FBI 요원들이 그녀의 집을 포위한다.
그리고…….
쿵쿵쿵!
“FBI다! 문 열어!”
“무, 무슨……!”
아만다 거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콰앙!
두 번의 경고 후 곧바로 진입.
다급히 2층으로 올라가려던 아만다 거스를 발견한 FBI SWAT 대원들이 소총을 겨눈다.
“엎드려! 엎드려!”
“히익!”
기겁하며 엎드리는 아만다.
요원들이 그녀의 팔을 꺾어 수갑을 채우고, SWAT 대원들이 집 안 곳곳을 살피기 시작한다.
“거실 클리어!”
“부엌 클리어!”
1층부터 훑는 SWAT 대원들을 일견한 종혁과 요원들이 다급히 2층으로 향한다.
‘분명 2층으로 가려고 했어!’
FBI가 덮치는 상황에서 뒷문으로 도주를 하는 게 아니라 2층으로 가려고 했다?
답은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아, 안 돼!”
아만다의 비명을 뒤로한 종혁은 가장 첫 번째 방부터 걷어차며 난입했다.
“……2층 첫 번째 방 클리어!”
“두 번째 방 클리어!”
계속 외쳐지는 클리어.
문이 하나하나 열릴수록 종혁과 요원들의 심장이 초조해진다.
그러다…….
“다락방 클리어.”
“2층…… 클리어…….”
없다. 2층에 없었다.
아니, 1층과 지하실뿐만 아니라 뒷마당까지 모두 살폈지만 이 집 어디에도 소피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 대체 왜…….’
“혹시?”
그녀를 용의선상에 올렸던 결정적인 이유를 떠올린 종혁은 다시 클리어된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없다. 없어! 설마?!’
딱 하나 뒤져 보지 않은 공간이 있다.
종혁은 다급히 2층 화장실로 뛰어가 천장을 열었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가 2층으로 향했던 이유를 말이다.
“씨발…….”
종혁의 입에서 허탈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한숨을 내쉰 종혁은 아래로 내려가 아만다를 족치고 있는 요원들에게 다가갔다.
“소피아 어디 있어!”
“어디다 숨겼어!”
“무, 무슨…….”
“됐어요. 그만해요.”
종혁은 의아해하는 요원들에게 자신이 발견한 것을 보여 주었다.
“이것 때문에 이년이 2층으로 튄 겁니다.”
마리화나 담배 수십 개가 든 봉지.
“악! 안 돼!”
겁에 질린 채 손을 뻗는 아만다 거스.
종혁은 얼굴이 일그러지는 요원들에게 그걸 맡기며 집 밖으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
‘저년이 아니야.’
아만다 거스는 그저 데니 콥스에게 원한이 있는 무기력한 마약중독자일 뿐이었다. 교도소를 가는 게 무서운 중독자.
위이이잉!
“푸후우. 씨발.”
종혁은 멀리서 달려오는 감식반을 보며 답답한 가슴처럼 탁한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 * *
꽈앙!
차를 걷어찬 종혁이 씩씩거린다 이내 얼굴을 쓸어내린다.
“이제 어떻게 찾냐…….”
CCTV 기록을 확인한 결과 사건이 발생한 후 지금까지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어 검거 작전을 펼쳤던 아만다 거스뿐만이 아니다.
종혁이 설정한 범위 내에 있던 모든 용의자에게 알리바이가 있었다.
납치를 당한 사람은 있지만, 납치를 한 사람은 없는 사건.
아니, 이제는 소피아가 정말 납치를 당한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워진다.
‘만약 갑작스런 충동이든 뭐든 어떤 이유로 인해 친구 에이미의 집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다가 공백 지대 안에서 사고를 당했고, 그 사람이 사건 은폐를 위해…….’
“미쳤냐.”
그 동네에서 수거한 쓰레기에서 소피아의 피가 잔뜩 묻은 옷이 발견됐다.
설혹 사고를 냈다고 한들 그곳 주민들이 모를 리도 없고, 설마 몰랐다고 한들 범인이 굳이 옷을 벗길 필요가 있을까.
필요가 있다고 한들 그걸 벗길 심적 여유가 있을까.
마음이 급해지니 별 해괴한 생각이 다 떠오르고 있었다.
“휘유. 괜찮아?”
햄버거가 가득 든 봉지를 양손에 든 벤이 종혁의 우그러진 페라리 차문을 보며 걱정을 표한다.
“몰라요. 갑시다.”
종혁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는 벤은 혀를 차며 차에 올랐고, 그들은 곧 FBI 뉴욕지국으로 향했다.
-지이잉! 지이잉!
“예, 최종혁입니다.”
-최.
“……예, 보스.”
-다넬 잭슨이 사건을 장기로 돌릴 거야.
끼이익!
다급히 차를 세운 종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건 벤도 마찬가지다.
장기로 돌린다는 건 곧 미제 사건으로 편입시킨다는 뜻. 수사 인력이 급감하게 될 거다.
“왜요! 아직…….”
-그건 최 네가 더 잘 알잖아. 납치 및 실종 후 골든타임을 넘기고도 피해자를 찾을 확률이 얼마나 되지?
“그래도 이건 아니죠!”
-잭슨이 도와줘서 고맙다는군.
“아아아악……!”
쾅! 쾅쾅!
종혁은 운전대를 부술 듯 내려쳤고, 벤도 대시보드에 머리를 박으며 이를 갈았다.
-나도 이런 명령을 내려서 좆같지만, 오늘 오후까지 인수인계하고 복귀해. 우리도 사건이 밀려 있어.
종혁은 운전대에 머리를 묻으며 이를 악물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점심 먹고 바로 복귀하겠습니다.”
-수고했어.
전화가 끊기자 머리를 뒤로 젖힌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씨발. 졸라 무력하네.”
좆같다.
익숙한 상황이지만,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상황.
피해자가 코앞에 있는 것 같은데 돌아서서 다른 피해자를 구해야 하는 상황.
이럴 때마다 참 좆같고 무력하지만, 그래도 다른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최, 마약이나 할래?”
“꺼져요, 씨발.”
“문신은 어때? 기분 전환에는 문신도 좋아.”
“그건 나쁘지 않네요.”
‘아니, 이렇게 과거로 돌아오기 전엔 나도 많이 해 봤지.’
술에 진탕 취해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누굴 팰 수도 없으니 스스로의 모자람을 되새기고자 문신을 했었다. 피해자를 구하지 못할 때마다 한 개씩.
“후우, 갑시다. 가.”
종혁은 다시 차를 출발시켰고, 그들은 이내 곧 FBI 뉴욕지국에 도착했다.
“이게 마지막 식사네.”
“그러게요.”
다들 목구멍으로 뭘 넘길 정신이 아니라서 햄버거를 산 것인데, 아동 실종 및 납치 전담 부서와 마지막으로 하는 식사가 됐다.
그렇게 도착한 사무실.
속삭이는 잡담조차 사라진 우울한 사무실 중앙에 햄버거를 놔둔 종혁은 자신 몫의 햄버거를 씹으며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CCTV 기록을 뒤지기 시작했다.
인수인계를 하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정황상 면식범일 가능성을 놓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현재로서 그에 해당되는 모든 용의자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었다.
그에 종혁은 다시 외지인일 가능성을 놓고 고민을 시작했다.
‘나간 차량이나 사람은 없지만, 들어온 차량이나 사람은 찍혔을지도 몰라.’
혹시 놓친 게 있진 않을까 CCTV를 계속 뒤로 넘겨 보았지만, 역시나 낯선 차량이나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그때였다.
“어? 이 차는?”
이 시간에 왜 들어오는지 의문이 가는 차량.
동시에 떠오른 소피아의 친구 에이미의 증언.
“설마…….”
종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