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80화>
거리에 쓰레기가 널려 있는 브룩클린의 한 주택가.
해가 저물자 동네에 들어선 아이스크림 트럭 한 대가 한 주택 앞에 멈춰 선다.
“오늘은 많이 팔았어요, 지미?”
“얼마 못 팔았어요.”
“저런. 계속 못 팔아서 어떡해요?”
“경제가 어려운데 어쩔 수 없죠. 남은 거 있는데 좀 드릴까요?”
“그럼 나야 고맙죠.”
마치 그게 목적이었다는 듯 눈을 빛내는 사십대 여성.
바닐라, 초코, 딸기, 민트초코, 갤럭시, 다섯 가지 맛이 쌓인 5단 아이스크림을 받아 든 여성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걸린다.
“좋은 저녁 보내요, 지미.”
“카터도 좋은 저녁 보내요…… 퉤!”
여성이 멀어지자 침을 뱉는 지미 쿠퍼.
“거지보다 지독한 년.”
아이스크림을 줄 때까지 옆에서 알짱거리니 얼른 줘 버리고 치워 버리는 게 낫다.
혀를 찬 지미 쿠퍼는 남은 아이스크림을 부엌의 냉동고로 옮기기 시작했다.
“하아.”
반절도 채 팔지 못해 무겁디무거운 아이스크림.
지미 쿠퍼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뒷정리까지 말끔히 끝내고 나와 트럭의 운전대를 뽑고, 짐칸을 쇠사슬로 잠근 지미 쿠퍼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후우우. 그새 또 집이 나왔네.”
못 보던 부동산 푯말이 세워져 있다.
지금 지미 쿠퍼가 보는 주택뿐만이 아니다.
SALE 푯말이 세워진 주변의 주택들.
빈민가에 가까운 동네라서 그런지 하루에도 몇 명씩 이사를 가 버린다. 그렇다 보니 어느새 거리는 유령이 나올 정도로 어둡고 음산했다.
“쯧. 이러다 옆집 사람들도 이사를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담배를 튕기며 주위를 살핀 지미 쿠퍼는 마지막으로 종이백 하나를 챙겨 집 안으로 들어가 늦은 저녁을 준비했다.
달그락, 달그락.
아침에 대량으로 만든 스크램블드에그를 데우며 소시지를 굽고, 토스트 기계에 식빵을 집어넣은 그.
간단하다 못해 처참한 수준의 저녁을 두 개의 접시로 나눠 담은 지미 쿠퍼가 그중 하나의 접시와 포크를 집어 들다 잠시 멈칫한다.
그의 머릿속에 오늘 오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FBI…….”
주는 것 없이 싫은 놈들인 FBI.
“빌어먹을. 들키진 않았겠지?”
자신이 일요일에 그 동네에 갔다는 걸.
“아니, 들키지 않았을 거야.”
만약 들켰다면 지금 자신은 여기 집이 아니라 FBI의 취조실에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불안한 지미 쿠퍼는 거실 창가로 걸어가 주변을 다시 둘러본 후에야 다시 부엌의 식탁에 앉았다.
그러자 한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소피아…… 소피아 콥스. 그래, 그런 이름이었구나.”
지미 쿠퍼의 눈가에 번져 가는 붉은 기운.
스릅 침을 삼킨 지미 쿠퍼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한 숟가락도 채 뜨지 않은 음식을 밀며, 남은 접시와 종이백을 들고 일어섰다.
그가 향한 곳은 안쪽의 작은 방이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거실의 어스름한 불빛만이 전부인 작은 방의 침대 위, 사람 형태의 실루엣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빠 기다리느라 배고팠지? 자, 밥부터 먹고 속옷 갈아입자?”
거친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에 쇠사슬이 철그럭 흔들리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지는 실루엣.
그 앞에 접시를 내려놓은 지미 쿠퍼는 종이백 안에서 손바닥만큼 작은 여성용 팬티를 꺼내 들며 거친 콧바람을 내뿜었다.
한편 지미 쿠퍼의 집이 잘 보이는 곳에 세워진 승용차 안.
찰칵 라이터 켜지는 소리와 함께 작은 불꽃이 피어난다.
“후우. 운전대를 들고 가네요.”
“브룩클린이잖아. 이런 동네는 어쩔 수 없지.”
상대적으로 못사는 사람들이 많은 브룩클린.
저렇게 쇠사슬로 잠그고, 운전대를 들고 가지 않으면 다음 날 차가 사라지거나 차 안에 있는 것들이 사라질 수도 있다.
“어떡할까. 지금 덮칠까?”
“아뇨. 아직.”
현재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지미 쿠퍼.
딸은커녕 아내도 없는 놈이 마트에서 여자 속옷을 샀다. 그것도 여아용 속옷을.
이놈이 범인일 확률이 거의 100퍼센트다.
하지만 문제는 소피아가 저 집 안에 있는지 확실치가 않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것부터 알아봐야겠죠.”
종혁은 옆집에 앞마당에 세워진 부동산 푯말을 보며 핸드폰을 꺼냈다.
“예, 부동산이죠? 집을 좀 구입하고 싶은데요. 주소가…….”
깜짝 놀란 벤과 드롭이 종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좀 급해서 그러니까 의사를 한번 타진해 보시고 바로 연락 주세요.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나기 전 가격, 아니 그 두 배 이상 주고 살 마음도 있으니까.”
-시, 십 분만 기다려 주십시오!
“예. 십 분만 기다려 달래요.”
“……하아. 최, 진짜 FBI에 남으면 안 돼?”
제아무리 FBI라지만 도청이나 감시를 위해 용의자의 주변 집을 구매하진 못한다.
그런데 종혁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아니 꿈에서나 조심스럽게 꾸던 최상의 환경을 턱턱 제공해 버린다.
이런 맛에 길들여져 버렸는데, 종혁이 한국으로 가 버린다?
벌써부터 한숨이 나오는 둘이었다.
종혁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키득키득 웃었다.
“차라리 벤과 드롭이 한국으로 오는 건 어때요?”
조심스럽게 눈을 빛내는 종혁.
“우리가?”
“현재 한국에서 FBI 수사 시스템을 따라 한 수사팀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거든요. 제가 거기의 팀장이 될 거고요.”
“오우. 그 나이에 벌써 팀장이라고? 수사팀 소속은?”
“위로 보고할 사람은 한 사람뿐인 독립적인 팀이 될 거예요. 작게는 동네 단위의 사건부터 크게는 외사국의 사건까지. 수사에 거리와 영역이 없는 수사팀이 될 겁니다.”
“그래? 흐음.”
종혁은 생각에 잠기는 둘을 보며 마지막 말을 던졌다.
“월급도 FBI에서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쳐줄 테니까 한번 생각해 봐요.”
순간 흔들리는 둘의 눈.
그걸 보며 담배를 마저 피우던 종혁은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에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방금 전의 부동산이었다.
“예, 얼마면 판…… 예? 안 판다고요?”
-예. 어차피 살날도 얼마 남지 않으셨다고 그냥 사신다고 하십니다. 호, 혹시 다른 집은 어떠십니까? 그 동네보다 훨씬 좋은 동네에도 매물이 많은데요!
종혁은 눈을 껌뻑였다.
‘씨발?’
* * *
짹짹짹!
이름 모를 새가 우는 아침.
얼마나 세탁을 하지 않은 것인지 때가 가득한 이불 속에서 눈을 번쩍 뜬 지미 쿠퍼가 얼굴을 구긴다.
“빌어먹을.”
또 아침이다.
결코 오지 않았으면 하던 아침.
“후우. 가야지. 일 가야지.”
먹고살려면 일을 가야 했다.
씻고 나와 아침을 먹고 운전대를 챙긴 지미 쿠퍼는 안쪽의 작은 방을 향해 크게 외쳤다.
“다녀올게! 응?”
지이잉! 지이잉!
“예, 지미 쿠퍼입니다. 아, 매니저님.”
그에게 아이스크림 트럭을 임대하고, 아이스크림을 제공하는 아이스크림 트럭 회사.
지미 쿠퍼는 담당 매니저가 하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회, 회사가 인수됐다고요? 갑자기요?”
지미 쿠퍼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예금의 절반을 털어 임대한 아이스크림 트럭. 혹시라도 회사가 문을 닫을까 걱정이 된다.
물론 임대 보증금은 돌려받을 테지만, 문제는 앞으로 먹고살 길이다.
아동 성범죄 이력 때문에 직장을 구할 수 없는 그.
예전이라면 임금이 싼 곳에서라도 일을 할 수 있었을 테지만, 거리에서 실업자가 넘쳐 나는 지금 상황에서 전과자를 써 줄 곳은 없었다.
“어제 아이스크림을 받을 때만 해도 그런 말은 없었잖습니까!”
-저도 이틀 사이에 갑작스럽게 진행된 일이라서 당황스럽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인수를 하시려는 분께서 계약을 모두 승계하신다고 했거든요. 거기다…… 트럭도 새 걸로 교체해 준대요.
“헉! 저, 정말입니까?”
-일단 시범적으로 열 분의 기사님을 선정해서 트럭을 교체해 드릴 텐데, 그중에 쿠퍼 씨가 뽑혔거든요?
“헉!”
지미 쿠퍼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운에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 회사로 오셔야 할 텐데 가능하실까요?
“가능하죠! 무조건 가능하죠! 예,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지미 쿠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전과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게 됐던 자신의 인생에 볕이 드는 것 같다.
얼른 차에 오른 그는 회사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흐흐. 기다려. 아빠가 곧 예쁜 옷 사 올게.”
지미 쿠퍼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그려졌다.
* * *
마치 화물 집하장을 연상케 하는 커다한 창고.
아이스크림 트럭에 아이스크림을 싣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곳에 선 지미 쿠퍼가 입을 떡 벌린다.
“holly…….”
포근한 베이지색 바탕에 파란색 핑크빛의 아기자기한 글귀가 써진 아이스크림 트럭의 자태가 단숨에 지미 쿠퍼의 혼을 빼놓는다.
그리고 전부 최신식으로 꾸며진 고급스러운 내부까지.
왜 고작 아이스크림 트럭으로 쓸까 싶은 최고급 밴을 쭉 훑은 그의 얼굴은 어느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때요?”
안경을 추켜세우는 매니저의 질문에 지미 쿠퍼가 낯빛을 굳힌다.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겁니까?! 당연히 최고죠!”
“후후. 다행이네요. 자요.”
“키도 멋지네.”
회사의 로고가 세련되게 박힌 키홀더까지 환상이다.
자동차 키를 받아 든 지미 쿠퍼는 재빨리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켰다.
그러자 울리는 노랫소리.
“미치겠네.”
깔끔하고도 빵빵 터지는 음질도 음질이지만, 마치 고급 세단에 탄 듯한 승차감에 그의 몸이 떨린다.
“여기에 사인해 주시고요.”
“여기요. 고맙습니다. 매니저님.”
“뭘요. 그동안 성실하게 일해 주셔서 기회가 찾아온 것뿐이에요. 그럼 오늘 하루도 아이들에게 웃음과 희망, 차가운 달콤함을 나눠 주세요.”
“예!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매니저가 돌아서자 기존 트럭에 있던 아이스크림을 모두 빼서 새 트럭에 실은 그는 도로를 향해 차를 출발시켰다.
부르릉!
-띠리링, 띠동, 띵, 띵동.
경쾌한 아이스크림 트럭 노래에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고, 지미 쿠퍼가 떠난 창고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싣던 종혁이 모자를 벗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미 카터가 교환한 트럭 주위에 있던 십여 명의 사람들 전부 멈춰 서며 모자를 벗는다.
“정말 이게 될 줄이야…….”
“미쳤어. 최, 넌 정말 미친놈이야.”
“뭐라고요? 고맙다고요? 에이, 동료끼리 그런 말은 안 해도 돼요.”
FBI 아동 실종 및 납치 전담 부서의 요원들은 너스레를 떠는 종혁을 어이없다는 듯 응시한다. 몇몇은 너흰 원래 이렇게 수사하냐는 듯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벤과 드롭을 본다.
유력 용의자를 감청하기 위해서 아이스크림 회사를 사들인 종혁.
이건 정말 미친 거다.
하지만 너무 고맙게 미쳤다.
‘최가 우리 팀에 온다면…….’
요원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짜악!
갑작스럽게 울린 박수 소리에 그들의 시선이 종혁에게로 모인다.
“자, 그럼 우리도 늦기 전에 따라가 봅시다.”
소피아에게로 안내할 지미 쿠퍼의 뒤를.
종혁의 입술이 싸늘하게 뒤틀렸다.
* * *
“미쳤다, 미쳤어.”
방금 전 창고에서 느꼈던 승차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부드럽게 나아가는 트럭.
난생처음 느끼는 고급 차의 승차감에 엉덩이를 들썩이던 지미 쿠퍼가 오늘 자신이 가야 할 구역에 들어선다.
브룩클린에서 나름 부촌이라 불리는 웨스트 미드우드의 주택가.
새 스피커에서 빵빵하게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주택들의 창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엄마, 아이스크림 트럭! 아이스크림 트럭!”
흥분한 외침과 곧 제 엄마의 손을 이끌고 집을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에 지미 쿠퍼의 입술이 꿈틀거린다.
그는 적당한 곳에 트럭을 세우며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아이스크림 트럭입니다! 딸기, 바닐라, 초코, 민트초코, 입안에서 팝팝 튀는 갤럭시맛까지 다 있습니다!”
“와아!”
더 흥분해서 달려오는 아이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꼬마 신사분은 어떤 맛으로 줄까?”
“초코요!”
“씁. 초코는 이 썩는다고 했지? 바닐라 기본으로 주세요.”
“하하. 예!”
초코나 바닐라나 이가 썩는 건 매한가지지만 지미 쿠퍼는 모른 척했다.
“그런데 아이스크림 트럭이 벌써 돌아다니네요.”
“날이 예년보다 더워졌다고 일찍 시작하게 됐습니다.”
“아, 그렇구나. 확실히 날이 더워지긴 했네요. 여기요.”
“감사합니다. 자, 우리 꼬마 신사님이 좋아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와!”
“고맙다고 해야지, 행크.”
“고맙습니다!”
“그래. 먹고 이 닦아야 한다?”
푸근히 웃으며 잔돈을 넘긴 지미 쿠퍼는 다음 꼬마 손님의 오더를 받았다.
그렇게 몇 명에게 아이스크림을 퍼 줬을까.
“안녕하째요.”
이가 빠진 건지 발음이 새는 여섯 살 정도의 어린 여자아이.
분홍빛 프릴 드레스를 입은 채 돈을 움켜쥔 여자아이의 모습에 지미 쿠퍼의 눈이 번뜩인다.
“오! 예쁜 공주님이네!”
슬그머니 여자아이의 부모를 찾은 지미 쿠퍼는 입술을 핥았다.
“그래. 그렇다니까?”
전화를 하느라 바쁜 여자아이의 엄마.
자신도 모르게 거친 콧바람이 뿜은 지미 쿠퍼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우리 공주님은 무슨 맛을 원하실까?”
“짤기!”
“네. 딸기 오더 받았습니다!”
그는 콘에 아이스크림을 푹푹 퍼 담기 시작했다.
특대 사이즈인 5단을 넘어 8단.
한계까지 아이스크림을 쌓은 지미 쿠퍼는 세상 밝게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자, 딸기맛 아이스크림 대령이요.”
“우와아아아!”
거대한 아이스크림 탑에 여자아이의 눈에 별무리가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멈칫!
차창 밖으로 뻗으려던 손을 멈춘 지미 쿠퍼.
“이런.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담아서 창문으로 줄 수가 없네. 공주님, 차 뒤쪽으로 오시겠어요?”
“녜!”
아무런 의심 없이 차 뒤쪽으로 달려오는 여자아이의 모습에 지미 쿠퍼의 심장이 떨린다.
힘들게 문을 연 지미 쿠퍼는 ‘주세요’ 하며 양손을 내미는 여자아이의 모습에 침을 꼴깍 삼켰다.
‘흐흐. 이래서 아이스크림 트럭을 관두지 못한다니까.’
“자, 여기 아이스크림 대령이요!”
그와 동시에 여자아이의 가슴으로 향하는 손.
그리고 빠르게 말라 가는 입안.
탄탄하면서도 말랑하고 따뜻한 아이의 가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지미 쿠퍼의 손이 곧 여자아이의 가슴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빠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