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78화 (478/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78화>

“헉! 헉!”

어두운 밤, 피로 물든 주먹.

붉게 충혈된 한 쌍의 눈이 변기에 얼굴을 묻고 있는 작은 소녀를 죽일 듯 노려본다.

“후우. 다신 반항하지 마. 알았어?”

정신을 잃은 건지 미동도 없는 작은 소녀.

“이게 진짜……!”

발끈한 그림자가 소녀를 잡아 흔든다.

그러자 이리저리 꺾이는 소녀의 목.

마치 인형의 그것처럼 섬뜩한 모습에 그림자가 멈칫한다.

“얘, 얘야?”

이번엔 조심스럽게 소녀를 흔드는 그림자.

이번에도 소녀의 목이 힘없이 흔들린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그림자는 소녀의 코에 손가락을 가져갔다가 털썩 주저앉는다.

“미, 미친.”

죽었다.

죽어 버렸다.

그림자의 두 눈이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 * *

어느새 완연해진 봄.

봄기운을 만끽하고자 커피를 한 손에 든 채 걷던 종혁이 잠시 푸른 하늘을 본다.

“아, 씨발.”

피곤하다.

어머니 고정숙과의 나들이 때문에 오늘 새벽에야 겨우 도착한 뉴욕.

비행기에서도 푹 자고, 도착해서도 2시간 정도 자긴 했지만 아무래도 시차 적응 없이 바로 출근하려니 몸에 힘이 없다.

아니, 그냥 출근하기가 싫다.

“에휴. 그래도 출근은 해야지.”

그래야 한 명의 피해자라도 더 구하지 않겠는가.

한숨을 푹 내쉰 종혁은 FBI 뉴욕지국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오, 최!”

“좋은 아침입니다, 데런!”

“휴가 갔다며? 잘 다녀왔어?”

“덕분에요! 수고하세요!”

FBI 뉴욕지국의 로비를 지키는 경비들과 인사를 한 종혁이 사무실로 향한다.

“최!”

“휴가는 즐거웠냐, 이 배신자야!”

오늘도 다크서클이 팬더처럼 짙은 사무실의 동료들의 모습에 종혁은 히죽 웃었다.

“으음! 즐거웠냐? 노노. 행복했냐? 오케이.”

“……저거 죽여!”

“우와아아아아!”

종혁은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에 남은 커피를 모두 들이켜곤 양 주먹을 들었다.

“뎀벼.”

그렇게 사무실에 잠시 다대일의 MMA 경기가 열렸다.

“아오, 씨. 저 인간들 진심으로 때렸어.”

“큭큭. 그러게 누가 도발하래?”

탕비실, 벤과 드롭이 킬킬 웃자 종혁의 얼굴이 더 구겨진다.

“쯥.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질 말아야 한다니까. 콱 선물을 주지 말까 보다.”

“검은 머리는 몇 명 없…… 응? 선물?”

“내 앞으로 소포 온 거 있죠?”

눈이 동그래진 둘이 다급히 탕비실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응? 벤, 그거 최 앞으로 온 소포…….”

부우욱!

“우와아아악!”

“홀리 쉣!”

“다들 모여 봐! 이거 최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래!”

탕비실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종혁이 크게 외쳤다.

“거기에 이름들 써져 있으니까 알아서 가져가요!”

쿠당탕!

다급히 종혁의 자리로 달려간 요원들.

이내 곧 사무실이 환호성에 휩싸인다.

“오, 예쁘다! 최, 이게 한국의 인형이야?”

“내 건 화장품이네? 힉?! 가, 가격이……!”

“나 이거 알아! 엄청 좋은 성분들로만 만든 거라고 했어!”

“와우. 이게 한국의 전통 과자인가?”

각자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상품들.

요원들이 흥분에 젖어 든다.

그 소란 때문일까. 이제 막 출근한 캘리 그레이스의 얼굴이 구겨진다.

“뭐야,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아, 최 왔어?”

“보스! 얼른 와 보세요! 최가 저희를 위해 선물을 가져왔어요!”

“선물?”

눈을 빛낸 캘리 그레이스가 요원들에게 다가가고, 막 탕비실에서 나온 종혁이 그 뒤를 쫓는다.

“내 건?”

“보스 선물은…… 응?”

“아, 보스 건 이거예요.”

종혁이 들고 온 슈트백을 책상 위에 올려 지퍼를 내린다.

지이익!

그러자 드러난 화사한 한복.

“호오?”

화사하고 고급스러운 색상에 캘리 그레이스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들의 눈도 빛난다.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이라는 건데, 이게 속치마거든요?”

속치마를 꺼내 든 종혁이 가슴을 감싸듯 치마를 입자, 이번엔 남성과 여성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얼마나 얇은 건지 속이 다 비추는 속치마.

종혁이 음흉하게 웃으며 캘리 그레이스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밤엔 이것만 입어도 돼요.”

“……Thank you.”

“I know, my boss.”

“흠흠.”

속치마를 집어넣고 슈트백을 잠근 캘리 그레이스가 갑자기 돌연 낯빛을 굳히며 리모컨을 찾아 TV를 켠다.

-흐윽!

눈을 감은 이십대 여성의 어깨를 꼭 끌어안고 있는 삼십대의 남성.

의아해하던 종혁은 곧 이어진 그들의 절규에 낯빛을 딱딱하게 굳혔다.

-만약 제 딸을 보신 분이 계시다면 꼭 좀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제발-!

자식을 잃어버린 아비의 절규.

어느새 사무실에 지독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TV를 끈 캘리는 딱딱하게 굳은 요원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우리가 지원 나가야 하는 사건이다. 최, 벤, 드롭.”

“예.”

“너희들이 맡아.”

“옙!”

믿는다며 고개를 끄덕인 캘리 그레이스는 사건 자료를 넘겼고, 그걸 받아 든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사건이었다.

아동 납치와 실종이 수시로 발생되는 미국.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 * *

사건은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발생했다.

웅성웅성.

미국 어느 곳에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이층집.

그리고 그 맞은편에 있는 방송국 차량들.

차에 앉은 종혁이 얼굴을 구긴다.

“지랄한다.”

“어쩔 수 없잖아. 저렇게 주기적으로 뉴스를 타야 빨리 찾을 수 있으니까.”

“그건 아는데…….”

그걸 왜 모르겠는가.

문제는 방송국 차량 앞을 서성이다 자신들을 발견하자마자 눈을 빛내며 달려오는 리포터와 카메라를 켜는 카메라맨이다.

특종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한 눈들.

그들을 본 벤과 드롭의 입에서도 한숨이 쏟아진다.

“에휴. 내립시다.”

선글라스를 낀 종혁과 둘이 내리자마자 들이밀어지는 마이크들.

“현재 수사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소피아 양에 대한 제보 전화가 있었습니까?”

“FBI가 특별 수색팀을 조직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종혁은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들에 주먹을 쥐었다.

“mother fucker. 이미 조직됐다, 이 하이에나들아.”

아동 실종 사건이 접수된 순간, 경찰뿐만 아니라 FBI의 아동 실종 및 납치 전담 부서가 움직인다.

그걸 모를 리가 없는 언론일 텐데도 특별수색팀을 언급한다는 건 시청률을 위한 개소리일 뿐이었다.

분노를 드러내는 드롭의 모습에 종혁은 손에 힘을 풀고 그의 등을 두드렸다.

“됐어요. 하루 이틀입니까. 들어갑시다.”

혀를 차며 집 안으로 들어가는 그들을 싸늘한 공기가 맞이한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임에도 마치 겨울처럼 싸늘히 죽어 있는 공기.

종혁은 침중한 표정으로 거실에 모여 있는 소피아의 가족에게 다가섰다.

“제, 제 딸은 찾았습니까!”

아내의 위로를 받고 있다가 그들을 발견하곤 벌떡 일어나 다가오는 남편.

종혁은 그가 기대하던 대답을 줄 수 없음에 가슴이 옥죄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결국 무너지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남편과 그런 그의 등을 토닥이는 아내.

손녀가 실종됐다는 소식에 먼 곳에서 달려왔던 노인이 종혁의 멱살을 잡는다.

“대체 뭘 하는 거요! 벌써 36시간이나 지났는데 왜 내 손녀를 못 찾는 거냔 말이오! 찾을 생각이 있는 거요, 없는 거요!”

“죄송합니다. 저희도 열심히 찾고 있는 중입니다.”

“말만 하지 말고 찾으란 말이야!”

“……죄송합니다.”

“이! 이……!”

종혁의 얼굴을 후려치려는 듯 주먹을 들고 부르르 떨던 노인은 곁에 있던 할머니가 손을 잡자 얼굴을 구기며 뒷문으로 향했다.

“미안해요. 제 남편도 속이 상해서…….”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자식이, 손주가 사라졌는데 어떻게 침착할 수 있을까.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종혁은 도리어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곤 다시 입을 열었다.

“몇 가지 확인할 사항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혹시 몸값을 요구하거나 말없이 끊는 전화를 받진 않으셨습니까?”

종혁의 질문이 유괴를 의미함을 알아차린 할머니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있을 땐 없었어요. 데니?”

할머니의 부름에 소피아의 부친, 데니 또한 고개를 저었다.

“저도 없었어요.”

“저도요.”

데니의 아내마저 고개를 젓자 종혁이 한숨을 내뱉는다.

보통 돈을 목적으로 아동을 납치한 경우 납치범들은 늦어도 24시간 안에 부모에게 연락을 한다.

즉, 이번 사건은 금전을 목적으로 한 납치일 가능성은 낮다는 거다.

‘이러면 더 골치 아파지는데…….’

FBI의 전담팀이 반경 2킬로미터를 이 잡듯 뒤지며, CCTV와 블랙박스까지 모두 확인했음에도 소피아의 흔적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연 9살 꼬마가 CCTV를 전부 피해서 혼자 반경 2킬로미터를 벗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이번 사건은 단순 실종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세상에는 일반인들은 생각지도 못할 발상으로 아이를 유괴하는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 넘쳐 났다.

그런 놈들이 소피아를 납치한 거라면……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고 할 수 있었다.

‘돌겠네.’

종혁은 아내의 맞은편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제일 처음 신고하신 게 아내분이시라고요.”

“마리나 콥스예요.”

‘마리나 콥스. 26세.’

직업은 딱히 없고, 2년 전 애아빠인 데니 콥스와 결혼하였다.

즉, 마리나는 소피아의 계모였다.

“예, 마리나 씨. 괴로우시겠지만 당시의 상황을 다시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혹시라도 새로 떠오르는 게 있을지 모르기에 여쭤보는 겁니다.”

그 말에 데니 콥스가 간절한 눈으로 아내 마리나를 본다.

마리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뗐다.

“그게 아마 오후 3시쯤이었을 거예요.”

친구 집에 숙제를 하러 간다며 집을 나선 소피아.

멀리도 아니고 바로 옆옆집에 불과했기에 마리나는 현관문 앞에서 소피아를 배웅했고, 소피아가 그쪽으로 향하는 걸 보다가 갑자기 전화가 와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저녁 10시. 시간이 늦었음에도 소피아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마리나는 소피아의 친구 집에 전화를 했고, 소피아가 오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후 다급히 집을 뛰쳐나가 딸을 찾다가 11시에 실종신고 전화를 했다.

“그때 제가 데려다줬어야 했는데…… 제가…….”

얼굴이 일그러지는 마리나의 모습에 데니가 그녀의 손을 잡는다.

“마리나…….”

“미안해요, 데니! 난 정말 나쁜 엄마인가 봐요!”

데니의 품에 안기는 마리나.

살짝 미간을 좁히던 종혁의 눈에 붕대가 감긴 마리나의 양손이 들어온다.

“그 손은?”

“아, 소피아를 찾다가 넘어져서…….”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말을 이어갔다.

“혹시 주변에서 낯선 사람이나 차량을 봤다는 소리를 들으신 적은 없으십니까?”

마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없어요.”

“사소한 거라도 좋습니다. 평소와 조금이라도 다른 것이 있다면 기탄없이 말해 주십시오.”

“……아니요. 없었어요. 죄송합니다.”

한숨을 뱉은 종혁은 실망하는 데니를 응시했다.

“출장을 가셨었다고요.”

“예…….”

데니 콥스. 34세. 직업은 리모델링 전문업자.

주택 리모델링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자로, 전 부인과 이혼하며 딸 소피아의 양육권을 가져온 후 2년 전 마리나 콥스와 재혼을 했다.

“제 크루와 함께 시러큐스로 2박 3일의 출장을 갔었습니다.”

“멀리 가셨군요.”

종혁의 눈이 가늘어진다.

뉴욕에서 시러큐스까지는 자동차로만 6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 타이밍이 공교롭다.

“예전 고객님께서 소개를 해 주셔서…….”

또 시기가 시기다. 좋은 대학을 나온 엘리트들도 잘리는 마당에, 고객이 멀리 있다고 일감을 거부했다가는 파산을 하는 수가 있었다.

종혁은 그 말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이 끝나고 바로 돌아오신 겁니까?”

“아니요. 딸이 실종됐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그런가요. 그럼 연 매출은 얼마나 되십니까?”

“작년 매출이 대략 120만 달러 정도 됩니다. 순수하게 제 몫으로 돌아오는 돈은 8만 달러 정도고요.”

‘역시 돈을 노린 범행은 아닌 건가.’

데니의 옷차림이나 집의 규모, 마당에 세워진 차량까지.

그의 소득이 적은 건 아니지만, 겉만 보고 판단하기에는 그를 협박한들 많은 돈을 뜯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똑같이 위험 부담을 짊어진다면 더욱 부유한 사람의 자녀를 노리는 것이 나았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원님! 부디…… 제발…….”

종혁은 자신의 손에 얼굴을 묻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데니의 모습에 가슴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꽉 막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어떡할 거야, 최?”

전담 부서가 받은 진술과 다를 게 없는 진술들.

성과가 없으니 복귀를 해야 마땅하지만, 이대로 돌아가자니 발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일단…….”

입술을 달싹이던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주변 탐문부터 하죠.”

소피아가 보호자의 시선에서 사라진 시각이 오후 3시.

제 발로 동네를 벗어났다면 분명 목격한 사람이 있을 터.

“소피아를 본 사람이 없다면?”

“낯선 사람이나 차량이 지나다니는 걸 본 적 없는지를 물어야겠죠.”

“납치?”

“예.”

현재로선 단순 실종보다는 납치일 확률이 높다.

돈이 아닌 다른 것을 노린 납치.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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