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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75화 (475/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75화>

“아이고,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죠?”

카라 허드를 동료에게 인계한 종혁이 코지에게 다가선다.

“하마터면 큰일을 당하실 뻔했습니다.”

“크, 큰일이요? 아니, 제 여자친구가 무슨 짓을 했다는 겁니까! 빨리 풀어 주세요!”

“그건 좀 곤란합니다. 당신의 여자친구가 아주 유명한 사기꾼이거든요.”

“……예?”

“카라 허드. 돈 많고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남성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골드디거입니다.”

“카라…… 허드요? 아닙니다. 제 여자친구 이름은 케일라 버드입니다.”

“예. 이번엔 그런 이름을 쓴 것 같더군요.”

코지는 다급히 카라를 봤고, 카라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그에 충격 받은 모습을 보이는 코지.

“어, 어떻게…… 그, 그럼 그 모든 게…….”

“사기였습니다. 당신과 동거를 하고, 매일 아침을 차려 주고, 저녁에 침대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모습 모두.”

“마, 말도 안…… 잠깐?”

코지는 그걸 어떻게 아냐는 듯 종혁을 응시했고, 종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피해자분께는 죄송하게도 카라에게 감시자를 붙여 놔서요. 본의 아니게 다 알게 됐습니다. 사과드립니다.”

‘그럼 설마 아까 그놈이?!’

순간 열이 뻗힌 코지는 얼른 감정을 수습했다.

“그런…….”

“아무튼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분께서도 조사를 받으셔야 하는데…… 일단 성함과 직업을 좀 알 수 있을까요?”

“코지. 코지 나카모토입니다. 루한 컨설턴트에 영업과장을 맡고 있습니다.”

“어? 그래요?”

‘저년이 뭔 일이지?’

그동안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업을 지닌 이들만 타깃으로 삼았던 카라 허드.

의아해하던 종혁은 아차 했다.

“아, 일본분이셨구나. FBI의 최종혁입니다. 실례지만 잠시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함께 가 주실 수 있을까요?”

워싱턴에서 일하는 코지가 뉴욕까지 진술 조사를 받으러 올 순 없을 테니 지금 다 해치워야 했다.

“아니면 나중에 뉴욕으로 오셔도 됩니다.”

“그건…… 후, 아닙니다. 지금 하죠.”

“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가시죠.”

그들은 공항 내 직원들이 쓰는 휴게실 같은 공간으로 향했다.

* * *

“협조 감사합니다. 그리고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아, 저 그런데 혹시 일본에서 특수부대 같은 걸 나오셨습니까?”

“아니요. 전 미국 사람입니다.”

“아,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카라 허드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가득 들어찬 눈으로 응시하던 코지는 몸을 돌려 공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 나야. 작전 취소. 최종혁 떴다.”

-뭐요?! 그놈이 왜요!

“내가 알아! 그보다 고객들에게 연락은 했어? 아직 안 했지? 안 했다고 해라, 제발.”

-일단 물건 상태를 보고 연락하려고 했는데…….

“잘했어. 곧 복귀할 테니까 끊어.”

신경질적으로 통화를 종료한 코지는 이를 갈았다.

빠드득!

“최종혁, 이 개새끼…….”

아주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새끼였다.

한편 어느새 점처럼 멀어진 코지를 바라보던 종혁이 눈을 가늘게 뜬다.

“흐음. 희한하네.”

“뭐가?”

‘왜 이 몸뚱이가 저 양반을 경고했지?’

코지를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긴장을 했던 몸.

아무리 봐도 일반 회사원이었는데도 말이다.

“뭔데?”

“아니에요. 갑시다. 얼른 돌아가서 파티 열어야죠.”

그동안 FBI의 골머리를 썩게 만들었던 카라 허드를 검거했다.

일주일 내내 파티를 열어도 모자랐다.

‘일본이 아니라 미국의 특수부대 출신이었나? 아님 비밀 요원 출신?’

종혁은 갸웃거리며 출국장으로 향했다.

워싱턴 본부의 요원들이 들이닥쳐 카라 허드를 뺏어 가기 전에 얼른 토껴야 했다.

“뭐해요? 안 달려요?”

“마, 맞아! 뭐해! 다들 달려!”

“드롭! 카라 들어!”

그들은 도망치듯 뉴욕으로 향했다.

* * *

짝짝짝짝짝!

카라 허드를 앞세우고 복귀하는 요원들을 향해 박수가 쏟아진다.

“하! 그러면 먼저 잡으시든가! 내 새끼가 사비 써 가면서 잡은 놈이거든? 끊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식게 만든 전화를 끊은 캘리 그레이스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뭐해? 다들 박수 안 쳐?”

“브라보!”

“잘했어, 친구들!”

캘리도 종혁들을 향해 박수를 쳤다.

“수고했어, 아들들.”

“푸하핫……!”

“큭큭큭큭!”

“자, 다들 키보드에서 손 떼고 주목!”

순간 캘리에게 모이는 시선들.

“드디어 저 개 같은 년이 잡혔다. 아마 이번 달 최고의 실적일 거야. 다들 동의하지?”

“예!”

“그럼 모두 컴퓨터를 끄고 일어나 외투를 챙긴다! 실시!”

순간 눈치를 챈 요원들은 활짝 웃으며 얼른 작업을 하던 걸 저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존스 펍으로 돌격!”

“우와아아아!”

요원들은 앞다투어 사무실을 빠져나갔고, 캘리는 종혁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얘 좀 대신 넣어 줘요.”

“맡겨만 둬.”

드롭이 카라 허드를 끌고 가자 종혁은 캘리 그레이스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예, 보스.”

“한 대 피울래?”

“오?”

종혁은 거부하지 않고 담배를 받아 들었다.

찰칵! 치이익!

“후우우.”

순간 그녀의 사무실을 뿌옇게 물들이는 담배 연기.

캘리 그레이스가 종혁을 복잡한 눈으로 응시했다.

솔직히 그녀는 종혁을 불러들이면서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 제아무리 수사기법을 창시한 종혁이라고 해도 혼자였으니까.

그저 골치 아픈 사건 두어 개만 해결해줘도 감지덕지였다.

그런데 지난 몇 개월 동안 종혁이 해결한 초대형 사건이 몇 개던가. 또 종혁에게 조언을 얻어 해결한 사건은 몇 십 개던가.

얼마 전 용커스시에서 일어난 사건은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다.

‘만약 최가 그 조던이라는 아이를 주시하지 않았다면?’

전 미국을 강타할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을 거다. 조던은 해외 파병을 나가 전사한 군인인 부친에게 총 쏘는 법을 배운 아이였으니까.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고맙다면 그냥 고맙다고 하시면 됩니다.”

피식!

“그래, 고마워.”

“뭘요.”

잠시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둘.

“이거 진짜 욕심나네. 최, 정말 FBI에 남을 생각 없어?”

“예, 예. 얼른 가셔서 취하셔야죠.”

“두고 봐. 내가 어떻게든 최를 남게 할 테니까.”

“네. 저는 오늘 위스키 사 주십쇼.”

“쯧.”

담배를 끈 캘리는 외투를 챙겨 들었고, 둘은 그들의 단골 펍으로 향했다.

* * *

“그럼 먼저 퇴근할게. 문단속들 잘하고 가.”

“들어가세요, 사장님.”

어느새 해가 저물다 못해 어두워진 저녁, 손을 저은 고정숙이 집으로 향한다.

그때였다.

-뚜뚜루 뚜뚜뚜 키싱 유 베이베!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전에 한번 뵀었죠? 저 원푸드 컨설팅의 김경식 대리……

“네. 안 합니다.”

-아뇨, 사장님! 사장님께선 정말 아무것도 안 하셔도 된다니까요! 그냥 레시피와 운영 노하우만…….

“제 아들 경찰입니다. 끊습니다.”

매정하게 전화를 끊은 그녀는 핸드폰을 보며 혀를 찼다.

“요새 자꾸 이런 전화가 오네.”

예전에도 심심치 않게 왔지만 요새 들어 부쩍 심해졌다.

뷔페를 프렌차이즈화하자, 뚱뚱이 김밥을 프렌차이즈화하자 등 자꾸 사기꾼들이 달라붙는다.

“내가 돈 많은 호구처럼 보이는 거야, 아니면 내 음식이 맛있다는 거야? 아님 둘 다인가?”

그래도 실소가 나온다.

아들 종혁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길거리에서 분식을 팔았을 자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린 아들이 자신을 설득해 권&박 홀딩스에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반지하에 살고 있었을 테고, 이런 전화는 일평생 받아 보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인지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엄마 음식 최고.”

“어마, 깜짝아. 이고르! 내가 인기척 좀 내고 다니랬지!”

“놀랐다면 미안, 엄마.”

고정숙은 머리를 긁는 덩치 큰 삼십대 사내, 정혁빌딩 경비 이고르의 모습에 쓴웃음을 흘렸다.

덩치는 종혁보다 반배는 큰데, 하는 행동은 강아지가 따로 없는 그.

“밥은 먹었어? 또 빵 따위로 때운 거 아니지?”

“…….”

“으이그, 내 그럴 줄 알았다. 배고프면 뷔페 와서 먹으라니까.”

“알았어, 엄마.”

“말이나 못하면 다행이지. 알았어! 오늘도 파이팅 하고. 우리 빌딩 잘 지켜 주고!”

“파이팅.”

거수경례를 한 이고르가 손전등을 만지작거리며 복도를 걷자, 푸근하게 웃은 고정숙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띠디디디디딕, 삐리릭!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녀를 반기는 휑하고 넓은 거실.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거실에 그녀의 낯빛이 좀 어두워진다. 그러다 양 볼을 짝짝 치며 우울해지려는 생각을 쫒았다.

“아줌마 왔다!”

벌컥! 후다닥!

“다녀오셨어요.”

고정숙에게 배꼽 인사를 하는 순희.

“그래. 숙제는 다 했고?”

“네!”

“철이는?”

얼마 전 시보 생활을 끝내고 근처 경찰서에 배치받은 순철.

“아직 퇴근 안 했어요.”

“오늘도 바쁜가 보네.”

누가 경찰 아니랄까 봐 야근을 밥 먹듯 한다.

“알았어. 쉬어. 과일 깎아 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아, 맞아. 여기요!”

“응?”

순희가 내민 성적표를 받아 든 고정숙은 깜짝 놀랐다.

평균 96점에 전교 2등.

“어이구, 내 새끼. 잘했다. 잘했어. 언니한테는 보여 줬고?”

“히히히. 이따가 보여 줄 거예요.”

“그래. 얼른 보여 드려.”

“네!

다시 제 방으로 뽀로로 달려가는 순희.

그 모습을 흐뭇히 바라보던 그녀는 거실 한편에 세워 둔 청소기를 들었다.

기이잉!

역시 사람이 없어서인지 치울 게 별로 없는 집. 그래도 워낙 넓다 보니 금세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그렇게 부엌을 치운 그녀는 습관적으로 종혁의 방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멈췄다.

벌써 거의 1년 동안 주인이 들어오지 않아서 그런지 향기가 사라진 방.

고정숙은 아들의 책상에 놓인 가족사진을 멍하니 응시했다. 매일같이 통화를 하는데도, 이 방만 들어오면 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지는지 모르겠다.

“쯧. 진짜 갱년기가 오려나.”

고개를 턴 그녀는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아들 종혁이 언제 돌아오든 떠나기 전처럼 편히 잘 수 있게.

이후 씻고 나온 그녀는 팝콘을 튀겨 TV 앞에 앉았다.

어느새 나온 순희도 그 옆자리에 앉아 팝콘을 훔쳐 먹으며 고정숙과 함께 하하호호 웃는다.

그때였다.

띠디디디디! 띠리릭!

“에고. 철이 왔나 보…….”

무릎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던 고정숙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곤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임 컴백! 다녀왔습니다!”

“오빠……!”

후다닥 달려간 순희가 종혁의 품에 안기고, 종혁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머니를 향해 미소 지었다.

“뭐야. 아들이 왔는데 반겨 주지도 않는 거야?”

순간 무너질뻔한 그녀는 비척비척 종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높이 들었다.

짜아악!

“으따따따?!”

“왜 전화도 없이 왔어!”

화를 내지만 눈에 눈물을 보이는 엄마.

“하하. 서프라이즈?”

“서프라이즈가 다 얼어 죽겠네……. 뭐해? 얼른 들어와!”

“옙!”

종혁은 환하게 웃으며 집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드디어 휴가다운 휴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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