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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73화 (473/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73화>

용커스시 외곽, 거대한 저택의 응접실.

지병이 있는 듯 안색이 파리한 중후한 인상의 노인, 존 리버사이드 병원의 이사장인 에릭 존 빌더가 자신의 앞에 앉은 동양인 청년을 재밌다는 듯 응시한다.

그러나 그 눈에 서려 있는 건 분명 분노였다.

“에릭 존 빌더입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찰리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잡는 나쁜 놈이라고 흉이나 보지 않았으면 다행이겠군요.”

에릭 존 빌더가 입술을 비튼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칭송만 자자하셨으니까요.”

“허허. 그렇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한 모금 마신 에릭 존 빌더가 찻잔을 거칠게 내려놓는다.

“그래, 내 병원을 인수하고 싶다고요?”

순간 화려하게 꾸며진 응접실을 찢어발기려는 듯한 분노와 살의. 하지만 종혁은 타격이 없는 듯 느긋하게 찻잔을 입에 가져간다.

“예. 그럴 생각입니다. 제 목적을 이루려면 그렇게 해야 될 것 같으니까요.”

“목…… 적?”

“병원장 제라드 덤벨의 몰락.”

쿵!

종혁은 놀라는 이사장을 차갑게 응시했다.

“전 그가 누리고 있는 모든 걸 잃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이. 기빙에서 나온 게 아니군요.”

지금 한창 떠들썩한 복지재단 기빙.

그곳에서 병원을 인수하고 싶다고 하기에 이렇게 자리를 만든 것이었다.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존 리버사이드 병원을 인수하려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요.”

“만약 내가 거부한다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대답 대신 가져온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병원 설립 계획서]

움찔!

몸을 굳힌 에릭 존 빌더는 서류의 내용을 살피다 그대로 굳어 버렸다.

건설 예산 10억 달러.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짓는 데 드는 비용만 순수 10억 달러였다. 이게 정말이라면 용커스시 내에 있는 병원을 모두 잡아먹을 초거대 병원이 지어진다는 소리였다.

후룩!

“존 리버사이드 병원 맞은편에 지을 생각입니다.”

“네놈!”

“병원비는 글쎄요……. 존 리버사이드 병원의 반값으로 할까요?”

이어진 종혁의 말에 에릭 존 빌더는 눈을 부릅떴다.

“그게 가능할 것 같나! 다른 병원들이 용납할 것 같아?!”

“제가 왜 그런 걸 신경 써야 하죠?”

“뭐, 뭐라고?”

“이게 당신들이 하던 짓 아닙니까?”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실시되고 있는 터라 모든 의료비가 국가에서 운영되는 공단을 거쳐 결제되는 한국과 달리, 자기들 마음대로 의료비를 청구하는 미국.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는 이들만 무려 연간 수십만 명에 달했다.

“심신 안정을 위해서라고 환자가 원하지도 않는 인형 따위를 안겨 주고선 청구를 하고, 별 의미 없는 영양제를 처방하고, 심지어 목으로 넘기는 물 한 모금까지 청구하는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우습군요.”

그중에서도 존 리버사이드 병원의 폐해는 매우 심각했고, 제라드 덤벨이 병원장이 된 이후에는 환자가 마시는 물까지 비용을 청구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돈에 미친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병원에서 이딴 행위가 자행되고 있는데 이를 묵인했다는 점에서 눈앞의 에릭 존 빌더도 똑같은 개자식이었다.

“그건……!”

물론 종혁도 이 모든 것이 시장 경제의 원칙에 따른 행동일 뿐이라는 건 이해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란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를 똑같이 이용해 줄 생각이었다.

“다른 병원이 용납하지 않는다? 어차피 사업인데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리고 용납하지 않으면 뭘 어쩌려고요? 기사라도 내시게요? 글쎄요. 그게 도움이 될까요?”

현재 미국을 들썩이게 만드는 복지재단이 설립하려는 병원과 과한 의료비 때문에 같은 미국인들에게도 욕을 먹는 기존의 병원들.

국민들이 손을 들어 줄 곳은 누가 봐도 기빙이었다.

“아니면 스태파니 퀸스 클린턴?”

현재 버락 던햄 루터와 마지막 후보 경선을 치르고 있는 뉴욕주의 상원의원, 스태파니 퀸스 클린턴.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그녀 또한 기빙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어디 한번 싸워 볼까요?”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소?”

사실상 패배 선언.

종혁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제 뜻은 방금 전 말해 드렸습니다.”

“제라드 그 친구를 해고시키면 되는 것이오?”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기어코 내 병원을 인수하겠다는 것이로군요.”

“값은 부족함 없이 치를 겁니다.”

“……후우. 어쩔 수 없군요.”

에릭 존 빌더는 몸을 일으켜 손을 내밀었고, 씩 웃은 종혁은 그 손을 맞잡았다.

“현명한 선택을 하신 겁니다.”

“그러기만을 바랍니다. 그런데 그보다…… 대체 당신의 정체가 뭡니까?”

80년을 살아오며 수많은 인간 군상을 겪었지만, 이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글쎄요. 기빙의 주인 되시는 분의 목숨을 구해 준 사람? 아무튼 다신 볼 일 없길 바랍니다.”

돌아서던 종혁은 아차 하며 다시 에릭 존 빌더를 봤다.

“회수할 건 회수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젠 더 이상 돈을 버실 곳이 없잖습니까?”

“……!”

달칵!

문이 닫히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소파에 앉은 에릭 존 빌더는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후우…….”

이 나이 되도록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낀 건.

“푸흐.”

돌연 웃음을 흘린 그는 곧 망해 버릴 용커스시의 다른 병원들을 떠올리며 더 크게 웃었다.

혼자 죽지 않는다는 게 참 기꺼운 그였다.

“그나저나 회수할 거라……. 그렇군. 회수할 게 있었어.”

돈에 미친 인간인 제라드 덤벨이 그동안 착복했을 돈들.

그가 병원장이 된 이후 병원 매출이 크게 뛰었기에 어느 정도는 눈 감아 줬지만, 이젠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의 것이었야 할 돈. 그걸 돌려받을 때였다.

에릭 존 빌더는 핸드폰을 들었다.

“날세. 변호사를 소집해야겠네.”

그의 눈이 흉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한편 밖으로 나온 종혁은 헨리 스미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헨리. 접니다. 혹시 용커스시에 있는 존 리버사이드 병원 이사장의 뒤를…….”

-그에 대한 자료는 사흘 뒤까지 준비될 겁니다, 최.

급하게 병원 설립 계획서가 필요했던 종혁이 CIA에게 부탁했을 때부터 헨리는 이미 에릭 존 빌더의 조사에 착수한 상태였다.

-제라드 덤벨에 관한 것도 모두!

이는 종혁이 조던에게 관심을 쏟자 곧바로 준비했다.

“내가 말했던가요? 사랑한다고.”

-하핫! 그것참 기쁜 말이군요!

“그래서 그런데 미국 대통령이란 거대한 도박판에 베팅 한번 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전 이미 베팅을 한 상태라서요.”

-……!

종혁은 웃음을 흘리며 차로 향했다.

* * *

벌떡!

하얗게 질려 일어난 제라드 덤벨이 핸드폰을 응시한다.

지금 자신이 환청을 듣는 건 아닐까.

지독한 의심이 그를 잠식해 갔다.

“다,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동안 수고했다고 말했네만?

“제가 잘못한 게 있다면 시정하겠습니다.”

-자네가 잘못한 건 없네. 그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뿐이야. 그럼 다음 이사회 때 보지. 그동안 수고했네.

달칵!

“이사장님! 이사장님-!”

쿵쿵!

“드, 들어가시면 안 된다니까요!”

“비키세요. 공무집행방해로 체포되기 싫으면.”

벌컥!

제라드 덤벨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에 눈을 크게 떴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제라드 덤벨 씨? FBI입니다.”

‘흡?!’

“F, FBI가 왜…….”

“제 동료가 사건을 접수해서 말이죠. 아무튼 제라드 덤벨 씨, 당신을 애나 파커 씨와 조던 파커 씨에 대한 협박 및 용커스 미들스쿨 뇌물 수수, 부정 청탁 혐의로 체포합니다. 나머지 죄도 많은 것 같지만, 일단은 여기서부터 시작하죠. 당신은…….”

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미란다 원칙.

제라드 덤벨은 멍하니 벤을 쳐다봤다.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도, 그리고 끌려 나가도.

그런 그의 정신을 깨운 건 벤과 함께 들어온 존 리버사이드 병원 법무팀의 변호사였다.

“이사장님께서 1센트 한 장까지 긁어모으시랍니다.”

“헉?!”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제라드 덤벨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자, 잠깐! 이러면 클라크는?’

분명 애나 파커와 조던 파커에 대한 협박이라고 했다.

그는 다급히 용커스 미들스쿨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 *

용커스 미들스쿨의 운동장.

“헉! 헉!”

구슬땀을 쏟아 내는 상체를 굽힌 채 숨을 몰아쉬는 클라크 덤벨에게 로버트 제퍼슨이 다가선다.

“흠. 휴가 기간 동안 쉬지 않았나 보군. 역시 주장다워.”

“……!”

주장. 눈을 부릅뜬 클라크가 로버트 제퍼슨을 본다.

“전에 말한 건 다 바로잡았겠지?”

“거, 걱정 마십시오! 감독님이 신경 쓰실 만한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알았어. 계속 이대로만 해.”

“……옙!”

“자, 그럼 해산! 오전 훈련은 여기서 종료한다!”

“우와아아아아!”

클라크도 샤워실로 뛰어간다.

세상을 다 가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클라크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피어난다.

로버트 제퍼슨은 그런 클라크를 차갑게 응시하며 들고 있는 서류철에 붉은 볼펜으로 선을 죽죽 그었다.

“하아. 죽겠다.”

점심을 먹으려는 학생들로 가득한 급식소.

테이블 위로 엎어진 클라크가 힘이 죄다 빠진 몸을 추스르려 애쓴다.

“그러다 정말 죽는 거 아니야?”

“와, 무한체력인 네가 이렇게 죽을 정도라니. 그 감독 진짜 미쳤네.”

패거리가 감독을 향한 험담을 쏟아 냈지만, 클라크는 말리지 않았다. 솔직히 로버트 제퍼슨은 이보다 더 심한 욕을 먹어도 괜찮은 악마였기 때문이다.

‘아니, 대악마라고 해야겠…… 응?’

“아, 저 너드 새끼. 계속 거슬리네.”

앉을 자리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조던.

그러다 클라크 자신과 눈을 마주치자 깜짝 놀라며 시선을 피한다.

그 모습이 너무 꼴 보기 싫고 짜증 났다.

“……학교 뒤로 불러낼까?”

“됐어. 관둬.”

‘내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놔둔다.’

오늘은 너무 기분이 좋아서 조던이 옆자리에 앉는다고 해도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웅성웅성!

“응?”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는 급식소에 고개를 들었던 클라크는 급식소 안으로 들어오는 FBI들을 발견하곤 눈을 껌뻑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클라크는 FBI가, 종혁이 자신의 앞에 서자 의아해하며 상체를 세웠다.

“클라크 덤벨?”

“그, 그런데요? 그런데 왜 저를…….”

“왜 왔겠냐?”

종혁의 말에 철렁 심장이 내려앉는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클라크의 전신을 휘어 감는다.

종혁은 그런 그를 향해 비릿하게 웃어 주었다.

“지난 2년 동안 조던 파커를 괴롭혔지? 가자.”

“……미친!”

벌떡 일어난 클라크는 곧바로 몸을 뒤로 날렸지만…….

콱!

클라크의 뒷덜미를 낚아채는 우악스러운 손길.

“켁?!”

“어디 가, 새꺄.”

허공에 뜬 클라크를 잡아당긴 종혁은 그대로 그의 허리에 손을 얹으며 번쩍 들어 올려 그대로 바닥에 메다꽂았다.

콰아앙! 우드득!

“끄아아아악……!”

어깨를 붙잡은 채 비명을 지르는 클라크.

종혁은 그런 그의 다친 팔을 잡아 사정없이 뒤로 꺾었다.

“끄아아아악!”

“클라크 덤벨, 너를 폭행 및 특수폭행, 협박 혐의로 체포한다. 너는…….”

미란다 원칙이 모두 읊어지자 강제로 일으켜 세워진 클라크. 그는 조던을 죽일 듯 노려봤다.

“네가! 네가 감히……!”

급식소를 쩌렁쩌렁 울리는 원망의 외침.

그런데 왜일까.

평소 같았으면 그대로 주저앉았을 정도로 무서운 표정을 짓는 클라크지만, 조던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니, 후련했다.

‘이래서 아저씨가…….’

“조던.”

“아저씨…….”

앞에 선 종혁에 눈을 파르르 떨던 조던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그래.”

한숨을 내쉰 종혁은 수갑을 꺼냈다.

“양손을 내밀어 줄래?”

“네. 여기요.”

철컥! 조던의 손에 채워지는 수갑.

급식소에 몰린 학생들이 기겁하며 쳐다본다.

“조던 파커, 당신을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한 이번 체포가 부당하다 생각되면 체포구속적부심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네. 이해했어요.”

“……그래. 그럼 가자.”

“네.”

“어깨 펴, 인마. 이럴수록 당당해야 하는 거야.”

“그런가요?”

“그래, 인마.”

조던은 놀란 눈으로, 아니 살인미수란 말에 경악하고 겁먹은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학생들의 모습에 형언할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저런 애들에게 겁을 먹었네요.”

“시끄러워. 뭘 잘했다고.”

“하하.”

약간은 씁쓸한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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