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72화 (472/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72화>

    정신없이 바쁜 병동과 달리 조용한 병원장실.

    그 앞에 선 애나 파커가 입술을 깨문다.

    ‘알아차렸구나.’

    종혁의 경고했던 일.

    분명 그쪽에서 이번 일을 알아차리면 어떤 제스처를 취해 올 거라는 종혁의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설마 진짜 그럴까 싶었는데, 막상 닥치고 나니 심장이 떨린다. 땀이 차기 시작한 손으로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한 차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래, 어차피 부딪쳐야 할 일이었어.’

    병원장이 내밀 카드라고 해 봤자 해고일 터.

    지난 10년간 일한 병원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해졌지만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니, 오히려 병원장이 그래 줬으면 싶었다. 그럼 애나 파커 본인도 아들을 위해 전력으로 싸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난 조던의 엄마야. 조던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어야 해!’

    이게 종혁이 했던 경고에 대한 그녀의 대답.

    눈빛을 단단히 굳힌 그녀는 병원장실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두드리는 것과 동시에 열리는 문.

    “애나 파커 간호사?”

    병원장의 비서가 그녀를 반긴다.

    “네. 제가 애나 파커입니다.”

    “병원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시죠.”

    비서가 열어 주는 문 안으로 들어간 애나 파커는 깜짝 놀랐다.

    “오! 왔군요.”

    애나 파커를 보자마자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나 미소로 반기는 병원장, 제라드 덤벨.

    “반갑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병원장 제라드 덤벨입니다.”

    “애, 애나 파커입니다.”

    사람 좋은 미소로 악수를 청하는 제라드 덤벨.

    애나 파커는 얼떨떨 그의 인사를 받았다.

    “하하. 애나 파커 씨가 성실한 간호사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환자들의 칭찬이 자자하더군요. 아, 일단 앉으시죠.”

    “네, 네.”

    “음료는 어떤 걸로?”

    “무, 물이면 됩니다.”

    애나 파커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분명 냉혈한이라고 했는데…….’

    일개 간호사가 병원장과 직접 대면할 일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건너건너 들려오는 이야기는 있었기에 병원장의 냉정함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들었던 것과 다른 제라드의 신사적인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의 기색을 알아차린 제라드 덤벨은 입술을 꿈틀거리더니 돌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헉!”

    “제 못난 아들 때문에 파커 씨의 아드님께서 큰 피해를 입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모두 자식을 잘못 키운 제 잘못입니다.”

    애나 파커의 눈이 흔들린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 걸까.

    “이 죗값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모르겠군요.”

    “……아, 아니요. 병원장님께서 사과하실 일이 아니에요.”

    그렇다. 병원장이 아니라 클라크 덤벨이라는 아이가 조던에게 사과를 해야 된다. 그리고 다신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아야 했다. 그게 옳았다.

    “전 클라크가 제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길 원해요. 다른 학생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으음. 그렇죠. 사과는 당연히 해야죠. 그런데…… 후우. 파커 씨, 아니 조던의 어머님.”

    제라드 덤벨의 얼굴이 씁쓸함으로 물든다.

    “어머님도 아시겠지만 자식을 키운다는 게 참 힘듭니다. 학교생활을 성실히 하는 어머님의 아드님과 다르게 제 아들은 누굴 닮았는지 어렸을 때부터 이런저런 말썽을 부리고 다녔습니다. 어리광도 많았죠. 그런 아들이 처음으로 미식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생에 처음으로 부탁다운 부탁을 한 아들 클라크.

    “나름 재능이 있는지 금세 주전이 되고, 주장이 되더군요.”

    제라드 덤벨은 애나 파커의 손을 잡았다.

    그에 애나 파커는 화들짝 놀랐다가 그의 뜨거운 눈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어머님, 클라크에게 있어 올해가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앞으로 있을 대회 성적에 따라갈 수 있는 하이스쿨이 달라질 것이다.

    “어머님께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미식축구부의 감독이 바뀌었습니다. 꽉 막힌 게 고지혈증에 걸린 환자처럼 고지식해서 기존의 데이터를 믿지 않고, 테스트를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여기서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들은 주전 경쟁에서 탈락하게 될 거고, 결국 훌륭한 미식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될 거다.

    “사과는 따로 찾아뵈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책임지고 아드님을 뉴욕의 명문 하이스쿨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그러니 이걸로 마무리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게 무슨…….”

    정중한 듯 보이지만 내려다보는 듯한 말투.

    애나 파커는 분명 자신들이 피해자임에도 마치 아량을 베푸는 듯한 느낌으로 말하는 제라드의 모습에 황당함을 느꼈다.

    “더 이상 일을 키운다면 서로 다치기만 할 겁니다. 제 아들이야 제 뒤를 이으면 된다지만 어머님의 아드님인 조던은 그럴 수가 없잖습니까.”

    “이봐요, 병원장님!”

    “엄마라면 아들의 미래에 진정 도움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쿵!

    아들의 미래.

    애나 파커의 이가 악물어진다.

    제라드 덤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어 갔다.

    “파커 씨도 인사과로 부서를 이동시키겠습니다. 아시죠, 인사과가 어떤 부서인지?”

    병원에서 일하는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 여타 직원들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부서이자 의사 다음으로 가장 많은 돈을 받는 부서.

    연봉 인상은 당연히 따라올 수순이었다.

    “다, 당신…….”

    “이번에 사망하신 남편 되시는 분의 전사자 보험금이 얼마나 갈 것 같습니까?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십시오.”

    괴물이다.

    애나 파커는 미소를 짓고 있는 제라드 덤벨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해 볼게요.”

    “그럼요! 당연히 그러셔야죠. 하하. 그럼 드시죠. 다 식겠습니다.”

    털썩!

    다시 소파에 앉은 애나 파커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고, 이내 다 마신 그녀는 원장실을 빠져나갔다.

    그런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던 제라드 덤벨은 입술을 비틀었다.

    “저 간호사가 병원장님의 제의를 받아들일까요?”

    애나 파커를 배웅하고 온 비서의 말에 제라드 덤벨은 코웃음을 쳤다.

    “세상엔 이런 말이 있어.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

    제라드 덤벨은 애나 파커가 결국 자신의 제의를 받아들일 것임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럼 그 돈이 부족한 거지.”

    돈으로 안 된다면 그 돈이 부족하지 않은지 고민해라.

    그것이 제라드 덤벨의 지론이었다.

    “그보다 이사장님은 건강은 어떻지?”

    존 리버사이드 병원의 주인인 이사장.

    하찮은 간호사보다 그의 건강이 백배, 천배 중요한 일이었다. 여기에 갑작스러운 경기 악화로 인해 급격히 떨어진 병원의 매출까지.

    물론 차기 이사장이 누가 돼도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순 없을 테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져야 했다.

    “지미 교수가 말하길…….”

    제라드 덤벨은 귀를 기울였다.

    한편 병원 건물을 빠져나온 애나 파커는 무너지듯 벤치에 앉았다.

    덜덜 떨리는 그녀의 손.

    “이게…… 최가 말한 그거구나.”

    처절한 전쟁을 이어 가느냐, 안정된 삶을 얻느냐.

    현실만 놓고 보자면 무엇이 나은 길인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지독하다. 너무도 지독한 유혹이었다.

    그러나…….

    “후우…… 그래, 내 결정은 언제나 하나야.”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자.

    만약 종혁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흔들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애나 파커는 핸드폰을 들었다.

    “최, 저예요. 정말 당신의 말처럼 행동하더라고요.”

    아니, 종혁이 말했던 것 이상으로 지독했다.

    부전자전이라고 해야 할지, 제라드 덤벨은 부모로서의 책임감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선을 넘었군요.

    애나 파커는 귀를 얼려 버릴 듯한 종혁의 차가운 음성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증거는요?

    “증거요?”

    그녀는 어느새 손에 들린 녹음기를, 종혁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가지고 있으라고 쥐여 줬던 녹음기를 보며 피식 웃었다.

    * * *

    “정말요?!”

    용커스 미들스쿨의 벤치에 누워 있다 벌떡 일어난 클라크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그래. 그러니 그 여자가 제의를 받아들일 때까지, 아니 앞으로도 조던이라는 놈 근처에 얼씬거리지 마. 겨우 막아 놓은 거니까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알았어?

    “걱정 마세요.”

    통화를 종료한 클라크의 몸이 들썩인다.

    “푸하하핫!”

    “뭐야. 무슨 전환데?”

    갑자기 웃는 클라크의 모습에 의아해하는 패거리들.

    “아, 그게…… 응?”

    신이 나서 말하려고 했던 클라크는 저 멀리 걸어가는 조던을 발견하곤 입술을 비틀었다.

    방금 아버지가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몸을 일으켜 조던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때리진 않을 테니까!’

    주먹과 발로 때리진 않을 거다.

    ‘때리지는…….’

    거기다 이제 마지막이 아닌가?

    작은 심술 정도는 아버지도 이해해 줄 거다.

    더 잔인한 미소를 머금은 클라크는 조던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오, 조던.”

    “헉! 크, 클라크……. 나, 난 정말…….”

    “그래. 믿어 줄게.”

    “으응?”

    “어차피 네 엄마가 우리 아빠의 개가 됐는데 믿어 주지 않을 리가 없잖아.”

    ‘개……?’

    클라크는 어리둥절해하는 조던의 모습에 다시 몸을 들썩였다.

    “큭큭큭. 몰랐어? 네 엄마가 널 두고 우리 아빠랑 거래를 했다고. 여기서 관둘 테니 제발 살려 달라고 말이야.”

    쿠웅!

    “……뭐?”

    “무릎 꿇고 빌었다는데 어쩌겠어. 마음 넓은 우리 아빠가 이해해 줘야지. 그것도 모자라 네 엄마를 좋은 부서로 옮겨 줄 거라네? 크, 우리 아빠 정말 대단하지 않냐, 누구랑 다르게? 진짜 나 같으면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선택 안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난 집행 유예로 곧 풀려났을 테지만!”

    조던은 눈을 껌뻑였다.

    지금 클라크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엄마가…… 뭘 꿇어?’

    “와우! 제 엄마 무릎을 꿇린 불효자라니! 야, 너 왜 사냐?”

    턱! 심장이 옥죄어진다.

    눈앞이 흐려진다.

    ‘나 때문에 엄마가 무릎을 꿇었다고?’

    “왜? 왜 날 이렇게 괴롭히는 거야? 왜?”

    혼이 나간 듯한 조던의 모습에 클라크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거다. 마지막으로 이 모습을 보고 싶었다.

    “왜긴 왜야. 네가 겁쟁이라서 그런 거지.”

    ‘겨우 그 이유 때문이라고? 겨우?’

    조던의 머릿속이 엉클어진다.

    겨우 그런 이유로 엄마가 무릎을 꿇었다.

    ‘내가…… 내가 왜 참았는데……!’

    “야, 이 개자식아-!”

    쿠당탕!

    주먹을 피한 클라크가 다리를 걸자 넘어진 조던.

    “봤지? 다들 봤지? 쟤가 먼저 때리려고 해서 방어한 거야! 야, 네가 말해 봐. 네가 먼저 치려고 했잖아!”

    다급히 조던의 얼굴을 향해 얼굴을 들이민 클라크는 히죽 웃었다.

    “여기서 끝인 것 같지? 천만에.”

    미들스쿨에서의 괴롭힘은 여기서 끝일 거다.

    하지만 무사히 하이스쿨에 진학한다면?

    “네가 용커스, 아니 미국 어느 학교로 진학하든 내가, 내가 아니면 얘들이 널 찾을 거야. 그렇지?”

    “그럼.”

    “큭큭큭. 1년 뒤에 보자, 조던?”

    쿠웅!

    “거기 뭐하는 거야!”

    “친구가 쓰러져서 일으켜 세워 주려고 했어요! 그렇지?”

    클라크는 손을 내밀었고, 조던은 그 손을 멍하니 쳐다봤다.

    “안 잡네요. 제 손이 더러운가 봐요.”

    어깨를 으쓱인 클라크는 몸을 돌려 패거리와 사라지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

    조던의 시선이 멀어지는 클라크에게로 향한다.

    “얘! 괜찮니?”

    강제로 일으켜 세워진 조던은 자신을 일으켜 세운 사람을 멍하니 쳐다봤다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걸었다.

    계속, 계속…….

    학교를 벗어나도 걷고 또 걸은 조던이 도착한 곳은 집이었다.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집.

    아빠와 엄마, 여동생의 웃음소리가 울리던 집.

    조던은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방 안에 어둠이 진하게 내려앉았음에도 조던은 움직일 줄 몰랐다.

    흐린 눈으로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쿵쿵쿵!

    “조던, 안에 있니?”

    조던은 엄마의 밝은 목소리가 흘러드는 문을 가만히 응시하다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끼이익!

    “자는구나. 최, 아무래도 이야기는 내일 해야 될 것 같아요. 자는 것 같아요. 네.”

    문이 닫히자 다시 몸을 일으켜 무릎을 끌어안는 조던.

    방문을 응시하는 눈은 여전히 흐렸다.

    ‘엄마…….’

    그토록 알리기 싫었는데, 결국 알아 버린 엄마.

    못난 아들을 위해 무릎을 꿇은 우리 엄마.

    조던의 주먹이 쥐어진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더 이상 바깥에서도 소음이 들리지 않을 때 조던의 눈이 초점을 되찾는다.

    “벗어날 수 없다면…….”

    겁쟁이. 겁쟁이란 이유로 벗어날 수가 없다.

    클라크의 괴롭힘을, 이 지옥을.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면…….”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몸을 일으킨 조던 1층으로 내려갔다.

    * * *

    다음 날 아침.

    “잘 먹었습니다.”

    “그래. 학교 잘 다녀오고. 차 조심하고. 오늘 엄마가 할 말이 있으니까 일찍 들어오고.”

    조던은 오늘도 걱정이 가득한 엄마를 보며 싱긋 웃었다.

    “엄마.”

    “응?”

    “사랑해요.”

    갑자기 애나 파커를 끌어안는 조던.

    그에 애나 파커가 놀라 굳을 때 조던은 팔을 풀고 돌아섰다.

    “다녀오겠습니다.”

    “그, 그래. 조심히 다녀와.”

    고개를 끄덕이며 집을 나선 조던은 언제 웃었냐는 듯 눈빛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가자.”

    모든 것을 끝내러.

    이 지독한 굴레를 끝내러.

    조던은 학교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한편 남겨진 애나 파커는 눈을 껌뻑였다.

    대체 얼마 만에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걸까.

    “정말 최의 말처럼 마음의 문이 열리는 걸까?”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분명 좋은 일인데 갑자기 미치도록 불안해진다.

    의아해하며 돌아선 애나 파커는 거실 TV 위에 있는 남편의 사진 앞에 섰다.

    군복을 입은 채 짓궂게 웃고 있는 남편, 마틴.

    “응원해 줘, 마틴.”

    지금부터 힘든 싸움이 될 거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겨 내야 할 싸움이었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지켜 줘. 우리가 이길 수 있도록…… 응?”

    애나 파커는 사진 옆, 열쇠를 보곤 의아해했다.

    “이게 왜…….”

    남편의 유품을 모아 놓은 계단 아래 창고의 열쇠.

    그게 누가 만진 듯 삐뚤어지게 놓여 있다.

    그 순간 그녀의 불안감이 증폭된다. 마치 심장이 갑자기 상실된 듯 아득해지는 공포심이 그녀를 뒤덮는다.

    그녀는 뭔가에 홀린 듯 열쇠를 챙겨 들고 계단 아래 창고를 잠가 둔 자물쇠를 열었다.

    그리고…….

    “최-!”

    하얗게 질린 애나 파커는 다급히 집을 뛰쳐나갔다.

    * * *

    부우웅!

    달리는 버스 안.

    조던이 앞으로 멘 가방을 만지작거린다.

    이 지독한 굴레를 끝낼 무기가 든 가방.

    ‘탄창을 결합하고, 장전을 하고, 조종간을 연발로 돌린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긴다.

    이것이 아빠 마틴이 알려 준 이 무기를 쓰는 방법.

    조던의 눈빛이 더욱더 가라앉기 시작했다.

    “후우.”

    한숨을 내쉰 조던은 잠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봤다.

    이제 보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하늘.

    그의 입가에 후련한 미소가 걸리는 순간이었다.

    과르릉! 부아아아아앙!

    “응?”

    FBI 종혁의 차.

    이 길로 출근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던 조던은 이내 곧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미안해요, 최.’

    종혁은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믿을 수 없었다.

    클라크는 부자다. 설령 그를 잡아넣는다고 한들 곧 풀려날 게 분명했다.

    ‘그럼 지금보다 더한 지옥이 날 기다릴 테지.’

    그러니 자신이 끊어야 했다.

    조던은 버스를 추월해 가는 종혁의 차를 보며 서글피 웃었다.

    “엄마랑 릴리를 부탁해요.”

    그 말을 끝으로 조던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였다.

    끼이이이이익!

    “으악!”

    “악!”

    갑자기 멈춰 선 버스.

    의아해하던 조던은 갑자기 열리는 문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종혁을 발견하곤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그의 모습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종혁은 다급히 달려가 가방부터 빼앗아 안을 살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조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리 주세요!”

    빠아악!

    “……?!”

    정수리를 얻어맞은 조던이 멍하니 종혁을 본다.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이를 갈았다.

    “야. 힘들면 어른에게 말하랬지?”

    덜컥 굳어 버린 조던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진다. 지독한 설움과 공포가 그의 얼굴로 떠오른다.

    “하지만…… 하지만-!”

    “닥치고 지금부턴 이 아저씨한테 맡겨. 진짜 경찰이 뭔지 보여 줄 테니까.”

    구원을 바라는 이를 외면한다면 어찌 경찰이라 할 수 있을까.

    후다닥!

    “조던!”

    “어, 엄마!”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려 한 것일까.

    이미 봐줄 생각이 없었으나, 여기까지 내몰린 조던의 모습을 보니 더더욱 용서할 수가 없었다.

    개새끼는 지옥으로.

    돌아선 종혁의 눈에서 살의가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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