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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69화 (469/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69화>

빠드득!

워싱턴 DC에서 날아온 사진 한 장에 종혁의 이가 갈린다.

어느 공원, 흙바닥을 구르고 누군가에게 밟힌 듯 더럽혀진 옷과 엉망이 된 얼굴.

누가 봐도 구타의 흔적이다.

그레이스 탐정사무소의 직원이 한발 늦게 도착했기에 폭행 현장이나 범인을 확보할 순 없었지만, 누가 봐도 범인은 명백했다.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리고 얼마나…… 포기했을까.’

스스로를, 그리고 도와주지 않는 주변을.

종혁은 뻣뻣해지는 뒷목을 주물렀다.

“하, 이 개새끼를 어떻게 죽여야 하지?”

머릿속에 수많은 방법이 떠오르지만, 일단은 후속으로 이어질 구타를 멈추게 하는 게 먼저다.

“최! 사건이야!”

“쯧.”

‘지금 가야 하는데!’

얼굴을 구긴 종혁은 외투를 챙겨 들었다.

* * *

“오늘 재밌지 않았어?”

“와, 워싱턴 기념탑 앞에서 피크닉 즐기는 사람 많더라!”

“fuck. 호텔에서 잔다고 엄청 기대했는데.”

해가 저문 저녁, 학생들이 떠드는 허름한 호텔의 로비.

터벅터벅.

조던이 무거운 걸음을 옮긴다.

분명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다른 공간인 듯한 모습.

대체 뭐가 저렇게 즐거운 걸까.

‘난 이렇게 힘든데 너흰 뭐가 그렇게 웃겨? 너흰 왜 친구랑 웃어?’

자신의 고통 따윈 저들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 같은 모습에 상실감이 심장을 옥죈다.

입술을 깨문 조던은 로비의 중앙 패거리와 웃는 클라크를 발견하곤 얼른 몸을 돌려 도망치듯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조던, 미안한데 방 좀 옮겨 줄 수 있을까?”

“뭐?”

“아, 친구들이랑 같이 자려고.”

그러며 3인실 방에 모인 같은 조원이자 룸메이트인 같은 반 학생과 다른 반의 학생들이 웃으며 내려다본다.

“왜? 싫어?”

“아, 아니…… 알았어.”

“고마워. 여기 네 짐!”

“그, 그럼 몇 호인지…….”

쾅!

조던은 닫힌 문을 멍하니 쳐다보다 손을 들었지만 두드리진 못했다.

우물쭈물하던 조던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3반 얘들이었지.”

이름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아무래도 하나하나 다 물어봐야 할 듯했다.

“몰라. 다른 애한테 물어봐.”

“아, 빌어먹을. 재밌었는데. 야, 꺼져.”

자신의 방에서 자려는 아이들이 몇 호에서 자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하는 조던.

겨우겨우 방을 알아내 찾아갔지만…….

“야, 야. 딴 데 가서 자.”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눈을 부라린다.

조던처럼 직접적인 폭력을 당하진 않지만, 은연중에 다른 학생들에게 무시와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

“하, 하지만…….”

“여, 여기도 꽉 찼어!”

“널 받아들였다가 클라크에게 찍히면 어떡해!”

“맞아! 때, 때리기 전에 딴 데 가서 자! 이, 이 너드 새꺄!”

“꺼져! 꺼져!”

쾅!

조던은 멍하니 문을 쳐다봤다.

왜일까.

몇 호에 머무는지 알려 주지도 않고 내쫓은 애들이나 문전박대하던 애들보다 지금이 더 자괴감이 든다.

“너희도 약자잖아. 너희도 나랑 똑같잖아…….”

각자의 반에서 겉도는 아이들.

무시를 당하는 것은 예사고, 밀쳐지거나 험한 소리도 듣는 아이들.

‘그런데 왜…….’

큰 걸 바란 것도 아니다. 그냥 잠만 자게 해 달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거부당했다.

같은 처지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에게까지.

이게 더 조던의 자존감을 뭉갰다.

조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역시 아무도 날 돕지 않는구나……. 그 누나처럼…….’

숨이 막힌다. 머리가 어지럽다.

“하하하!”

“호호호!”

닫히고 열린 문들을 통해 흘러나오는 소음들.

다른 세상이었다. 저들과 자신은 결국 다른 세상에 살았던 거다.

자신이 있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었다.

고개를 떨군 조던은 몸을 돌려 계단을 향해 발을 옮겼다.

점점 빨라지는 걸음.

조던은 도망치듯 호텔을 뛰쳐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어이. 옆집 꼬마! 어디 가냐?”

흠칫!

“……흐어어어어엉!”

그대로 무너져 울어 버리는 조던의 모습에 종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 *

호텔 근처의 카페.

“자.”

“가, 감사합니다.”

따뜻한 레몬꿀차.

종혁은 고개를 숙인 채 컵을 만지작거리는 조던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모습이었다. 모든 걸 포기하기 일보 직전의 모습이었다.

조던의 상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조던.”

“네…….”

종혁은 몸부터 움츠리는 조던의 모습에 이를 악물며 억지로 표정을 폈다.

“힘드냐?”

번쩍!

놀라 고개를 든 조던이 흔들리는 눈으로 종혁을 살핀다.

이 사람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설마 엄마도 모르는 걸 알고 있는 걸까.

‘어, 엄마가 알면 안 되는데?’

“힘들면 포기해도 괜찮아.”

“네, 네? 무, 무슨 말인지…….”

종혁은 애써 부정하려는 조던을 가만히 응시했다.

네가 포기해도 응원을 하겠다는 듯.

그래도 널 질책할 사람은 없다는 듯.

“네가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땐 어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야.”

“흡?!”

아는구나.

“그러기 위해 어른이 있는 거고.”

울컥!

‘어째서…….’

이 사람은 내게 이런 눈빛을 보내오는 걸까.

너무도 따뜻해 다시 눈물이 왈칵 차오르는 눈빛에 조던의 입술이 달싹인다.

말할까, 말까.

조던의 눈에 갈등이 서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말하고 싶지 않은 거냐…….’

정확히는 종혁 자신이 혹여 애나 파커에게 말할까 겁을 먹은 거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도 종혁은 모른 척해 주기로 했다.

“……사건 때문에 잠깐 왔다가 시간이 늦어서 여기서 자고 가려고 했지.”

아니다. 조던이 걱정되어 퇴근을 하자마자 전용기를 타고 워싱턴으로 날아온 거다.

“그러다 네가 워싱턴에 여행 왔다기에 찾아온 거고.”

“아아……. 그런데 어떤 사건인가요?”

갑자기 초롱초롱해지는 조던의 눈빛에 종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가 조던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상기하고는 입을 열었다.

“자동차 도난 사건이야.”

“헉! 진짜요?! 자동차를 훔치는 집단을 쫓는 거예요? 아니면 도둑 집단이 전자기기를 실은 트레일러를 터는 거예요?”

“그 이상은 수사 기밀이야, 인마.”

“우와아!”

혀를 찬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어, 어디 가시게요?”

“어디 가긴. 나도 호텔 잡고 짐 풀어야지.”

“아…….”

조던이 벌써 가는 거냐고 낙담을 한다.

“그래서 그런데 너희 호텔에 방 있냐?”

“네?”

조던의 눈이 동그래졌다.

* * *

저녁 10시가 다 되어 감에도 시끄러운 호텔의 로비.

용커스 미들스쿨이 이 호텔을 전세 냈기에 호텔의 종업원들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못하고 한숨만 내쉰다. 이 학교도 시끄럽다고 생각하며.

그 순간이었다.

“뭐야! 왜 아직까지 로비에 있어! 얼른 방에 올라가지 못해?!”

“아아-!”

선생의 호통에 잔뜩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일어서는 아이들.

그중엔 클라크와 그 패거리도 있다.

“애들아, 이따가 12시에 나가는 거 어때? 아까 오는 길에 다이너 하나 봐 뒀는데.”

한 소년의 말에 눈을 빛내는 클라크와 나머지 패거리들.

솔직히 수학여행까지 와서 다이너에서 노는 게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대로 방에 갇혀 뒹굴거리다 자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눈빛을 교환한 그들은 다른 학생들 사이에 섞여 방으로 향했다.

웅성웅성…….

갑자기 조용해지는 로비.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던 클라크와 패거리가 눈을 부릅뜬다.

“저, 저……!”

병신, 샌드백 조던이 덩치 큰 FBI와 함께 들어온다.

찔리는 게 있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그들.

“크, 클라크.”

“입 다물어.”

클라크는 입술을 깨물며 조던을 노려봤고, 학생들을 해산시키던 선생은 식겁하며 종혁과 조던에게 다가갔다.

“F, FBI가 무슨 일이십니까? 저, 저희 학교 학생이 무슨 잘못이라도……?”

“아, 별거 아닙니다. 제가 오늘 일이 있어서 워싱턴에 오게 됐는데, 마침 옆집에 사는 여기 조던도 워싱턴에 왔다는 게 기억나서요. 그래서 실례가 안 된다면 조던과 함께 잘 수 있을까 해서 와 봤습니다.”

“그, 그러십니까?”

선생은 맞냐는 듯 왜 FBI가 옆집에 사는데 말하지 않았냐는 듯 조던을 봤고, 조던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선생.

“하하. 그런데 어쩌죠? 저희도 그러고 싶지만, 이게…….”

“대가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이걸로 내일 학생들 밥이나 사 주십시오.”

선생은 종혁이 악수를 하는 척 건네는 1만 달러 수표에 깜짝 놀랐다.

“허흠……. 신원이 명확하시기도 하고, 이 멀리까지 오셨는데 어쩔 수가 없군요. 그런데 호텔이 방이 없을 텐데…….”

“음. 그러면 죄송하지만 조던을 데리고 다른 호텔에서 자도 될까요?”

“……이번 만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야, 가자.”

“네? 네…….”

종혁은 조던을 데리고 다시 호텔을 나섰고, ‘이 돈이면 내일과 모레 애들에게 배불리 먹일 수 있겠다’고 희희낙락하며 몸을 돌리던 선생은 아직도 학생들로 가득한 로비에 얼굴을 구겼다.

“뭣들 해! 어서 안 올라가?!”

“선생님!”

“저 학생은 지인분께서 오셔서 잠시 밥이나 같이 먹자고 데리고 나가신 것뿐이니까 잔말 말고 올라가!”

학생들은 아쉬워하며 몸을 돌렸고, 클라크와 그 패거리도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FBI와 아는 사이라니……. 마, 말하진 않았겠지?’

입술을 깨무는 클라크.

‘아냐. 안 했을 거야.’

말했다면 자신은 예전에 수갑이 채워졌을 테니 말이다.

“크, 클라크.”

“알아봐.”

“……응.”

부디 친한 사이는 아니길.

아니, 아니어야 했다.

클라크는 애써 행복회로를 돌렸다.

* * *

파크 하얏트 워싱턴, 용커스 미들스쿨이 머무는 저가 호텔이 아니라 진짜 호텔. 아니, 그중에서도 최고급 호텔.

호텔의 로비에서부터 놀란 조던이 쾌적하고 넓은 트윈 룸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 씁. 스위트가 다 나가 버렸네. 뭐하냐? 씻어. 안 잘 거야?”

“네, 네!”

조던은 무엇 하나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럭셔리함에 발걸음도 조심하며 화장실로 향했고, 종혁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떨어트려 놓긴 했는데…….’

FBI인 자신이 조던과의 친분을 과시했으니 이제부턴 클라크 덤벨도 함부로 조던을 괴롭힐 순 없을 터.

하지만 이건 그저 미봉책일 뿐이다.

아무도 모르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괴롭힘을 이어 나갈 것이 분명했다.

“쯧.”

종혁은 혀를 차며 옷을 벗었다.

그리고 잠시 후 조던과 바톤 터치를 해 씻고 나온 종혁은 침대 걸터앉아 얼어붙어 있는 조던의 모습에 그럴 줄 알았다며 피식 웃었다.

종혁 자신도 회귀 전 범인을 잡으러 이런 곳에 왔을 때 딱 조던처럼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해 어디에 흠집이라도 낸다면 목돈을 물어내야 할 것 같은 위기감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종혁은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넘겨주었다.

“엑?!”

“한잔 시원하게 마시고 얼른 자라.”

치익! 딱!

자신 몫의 맥주를 원샷한 종혁은 침대에 몸을 날렸다.

“난 잔다. 너도 적당히 놀다 자. 부족하면 꺼내서 더 마시고.”

“아, 네. 감사합니다…….”

지금 조던에게 필요한 건 억지로 하는 공감이나 구차한 위로가 아니라, 그냥 누군가 옆에 있어 주는 거다.

네 편도 있다고 말해 주는 거다.

그걸 했으니 이제 나머진 조던이 걸어 잠근 빗장을 다시 열어 주길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조던은 음료를 만지작거리며 종혁의 등을 응시했다.

고맙다.

힘드냐고 물어봐 줘서 고맙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추궁하지 않아서 고맙다.

그냥 옆에 있어 줘서 고맙다.

그리고 무섭다.

엄마가 실망할까 봐 무섭다.

얼마 전 아버지를 잃은 엄마가 슬퍼할까 봐 무섭다.

‘나만 참으면 되는데…….’

힘들어 죽을 것 같지만, 그보다 엄마가 슬퍼하면 더 힘들 것 같다.

그런데 견딜 수가 없다.

‘대체 어떻게 하면…….’

아니, 쉬운 일이다. 클라크만 사라진다면 이렇게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그게 무섭다.

너무도 무서운 존재인 클라크.

자신 같은 서민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자에 킹카.

사라지게 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너무 힘들 땐 어른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했지만…….”

정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아무리 FBI라도?’

조던은 다시 종혁을 봤다.

자신을 위해 드라이브도 시켜 주고, 징계받을 걸 각오하고 압류 창고에도 데려가 준다고 약속하고, 오늘 위로도 해 준 고마운 아저씨.

“나 때문에 이분이 다치는 건 아닐까?”

조던은 씁쓸히 웃었다.

‘그래. 조금만 더 참자.’

여름 시즌이 되면 클라크도 바빠서 자신을 괴롭히지 못할 거다.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자신도 여태까지처럼 수업 시간에 숨을 죽이고, 점심에 밥 먹으러 갈 때 클라크의 눈에 띄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되는 거다.

‘내가 조금만 참으면…….’

“아저씨.”

“…….”

“오늘 고마웠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몸을 돌린 조던은 눈을 감았고, 그런 그의 갈등과 고민을 모두 느낀 종혁은 이불 아래 숨겨 놓은 주먹을 꽉 쥐었다.

조던은 이미 참는 걸 버릇처럼 하고 있었다.

공포에 의한 자기합리화를 배우고 있었다.

이건 아니었다.

‘안 되겠네. 그냥 치워야겠어.’

하지만 일단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하지만 안 된다면…….’

종혁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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