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67화>
교장이 씩씩거리며 다가가자 클라크는 그냥 잠깐 부딪친 거라는 말을 남기곤 얼른 도망을 쳤고, 조던은 우물쭈물하다가 마치 종혁과 모르는 척을 하며 돌아섰다.
그러며 흘린 포기의 눈빛.
종혁은 거기서 많은 걸 읽을 수 있었다. 가령 그동안 조던이 살기 위해 어떤 발버둥 쳤는지를 말이다.
“하하. 여기까지가 저희 학교의 모든 것입니다. 아무래도 학교가 오래되다 보니 여기저기 낡아 교육을 하는 데 약간의 애로 사항이 있지만, 그래도 모든 선생들과 학생들이 좋아하는 곳이죠.”
그러니 기부금을 더 내놓지 않겠냐는 수작을 부리는 교장.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래 보이더군요.”
조던을 제외한 모든 학생과 선생들이 좋아하는 용커스 미들스쿨.
선생과 학생들 모두 조던을 따돌리고 있었다.
방금 전 조던이 괴롭힘을 당하는 현장에 있던 학생들 중 그 누구도 조던을 동정하거나 그 상황에 불쾌해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곳에 선생도 두 명이나 있었는데, 그들 모두 그 현장을 외면했다.
그래서 종혁은 처음에 여기가 드라마 촬영장인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이는 조던이 괴롭힘을 당하는 게 꽤 오랫동안 지속됐다는 뜻이다. 아니면 조던을 괴롭힌 놈의 배경이 좋거나.
‘개 같은 학교네.’
“고쳐야 할 부분이 몇 군데 보이고요.”
그냥 싹 다 엎어 버리고 싶었다.
“오! 그렇습니까?!”
‘당신부터.’
속으로 이를 간 종혁은 아차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까 복도에서 그 학생은 누굽니까? 운동선수처럼 몸이 아주 좋던데요.”
“아! 저희 학교의 자랑인 클라크 덤벨 말이군요! 뉴욕의 내로라하는 명문들마저 욕심을 내는 용커스 미들스쿨 미식축구부의 주장이죠!”
“미식축구요?”
‘운동선수가 그 지랄을 한다고?’
남을 괴롭히는 데 시간을 쓸 만큼 몸과 정신이 편하다?
실력은 안 봐도 뻔했다.
이런 작은 도시에서나 왕처럼 구는 그저 그런 선수. 고등학생만 되어도 도태될 수준의 재능일 거다.
‘중학교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놈들이 모이는 곳이 고등학교니까.’
그중에는 상상치도 못할 괴물들도 있는 법이고, 그런 괴물들만이 프로의 무대를 밟는다.
어느 세대건 말이다.
“호오. 그럼 뉴욕 자이언츠나 제츠를 노리고 있겠군요.”
“하하. 뉴욕을 연고지로 둔 팀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렇죠!”
“그렇단 말이죠…….”
‘잘됐네.’
마침 잘됐다.
안 그래도 일단 클라크를 조던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했는데, 이 미식축구를 이용하면 될 것 같다.
‘일단은…….’
눈앞의 교장부터 치운다. 털어서 먼지가 난다면 말이다.
현재로서 이 사람의 죄는 하나다.
교육자로서 본분을 지키지 못한 것.
물론 몰랐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의 교장이기에 그것조차 죄가 된다. 학생을 돌보지 않는 선생은 교단에 있을 자격이 없었다.
20만 달러의 수표를 기부한 종혁은 학교를 나서며 핸드폰을 들었다.
“네, 몰리. 전데요. 용커스 미들스쿨의 교장 메덕 돕슨의 계좌 좀 까 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서요. 그리고 재학생 중 미식축구부 주장인 클라크 덤벨에 대해서도요.”
-……오케이.
단순히 촉이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끝까지 매달려 결국 에덤 크루거의 사기를 밝혀낸 종혁.
이 외에도 종혁이 이 팀에 와서 해결한 사건이 몇 개던가. 종혁의 육감은 짐승, 아니 예언가의 그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이번엔 뉴욕의 오랜 지인에게 연락을 했다.
-오! 최-!
“하하. 오랜만이에요, 잭. 잘 계셨죠?”
과거, 종혁은 동일고 유도부의 기량을 끌어올리려 훈련 자료를 요청하기 위해 NFL(내셔널 풋볼 리그) 사무국에 힘겹게 연락을 취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맺은 인연을 지금까지도 이어 오고 있는 NFL 사무국 소속의 스포츠 사이언스 및 메디컬 치프이자, CIA와 미군 특수부대의 피지컬 트레이닝 자문인 잭 와일러.
그는 현재 CIA와 미군이 합작해 진행하는 슈퍼솔져 프로젝트의 자문도 맡고 있다.
-나야. 잘 있었지. 네 활약은 TV를 통해 잘 보고 있어!
뼈가 있는 잭의 말에 종혁이 입맛을 다신다.
“끙. 알았어요. 조만간 식사 같이해요. 저도 함께 연구하고 싶은 자료가 있으니까.”
-오오오! 무슨 일이야?
“아, 다름이 아니라 혹시 뉴욕 자이언츠나 제츠에 친한 사람 있어요? 있다면 소개 좀 받고 싶은데요.”
운동선수가 다른 이를 괴롭힐 시간이 있을 만큼 몸과 정신이 편하다면 그렇지 않게 만들어 주면 되는 거다.
종혁은 비릿하게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다, 단순히 넘어진 것뿐이었어요!”
“응?”
그 말만 남기고 집으로 달려가는 조던.
종혁은 그런 그를 안타깝다는 듯 응시했다.
“엄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거냐……. 아니면 엄마가 미덥지 못한 거냐…….”
어떤 생각인지 몰라도 안쓰럽고 안타깝다. 혼자서 어떻게든 견디려는 게.
그렇기에 더 조심스럽게 풀어가야 했다.
지이잉! 지이잉!
“예, 몰리. 아, 그래요?”
빠득!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종혁의 눈빛이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 * *
철컥!
“메덕 돕슨 씨, 당신을 공금 횡령 및 업무상 배임, 뇌물 수수, 탈세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방금 전까지 20만 달러라는 거액의 기부금을 어떻게 착복할까 희희낙락하였던 교장은 손목에 채워지는 FBI의 수갑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그를 보는 벤과 드롭이 헛웃음을 터트린다.
뻔뻔한 건지, 멍청한 건지는 몰라도 본인 명의의 통장으로 뇌물을 받고, 학교 공금을 지속적으로 빼돌린 메덕 돕슨.
“당신이 뇌물을 받고 어떤 개수작을 벌였는지 천천히 알아봅시다.”
그동안 이런 선생 밑에서 고생했을 학생들을 생각하니 혈압이 오른 벤은 그를 거칠게 끌고 갔다.
타악!
“오우. 이틀 만입니다, 교장 선생님.”
“다, 당신은?!”
종혁은 기겁하는 그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그래서 같이 뇌물 처먹은 놈은 누구냐?”
종혁은 이번 기회에 조던을 외면한 용커스 미들스쿨의 교사진을 싹 다 물갈이할 생각이었다.
* * *
용커스 미들스쿨 교장 메덕 돕슨 체포! 다음 교장은 누구?
갑자기 터진 스캔들에 인구가 20만이 안 되는 용커스시가 시끄럽다.
뉴욕주에서 4번째로 큰 도시지만, 인구가 20만도 채 안 되기에 더 크게 와닿는 이번 스캔들.
그런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더 경악스럽다.
돈을 받고 성적을 조작한 것부터 시작해, 우수한 학생에게 줘야 할 고등학교 추천장을 다른 학생에게 준 것까지.
운동부를 맡고 있는 체육교사와 감독들은 비품 예산을 가로채거나 리베이트까지 받았다.
용커스의 시민들뿐만 아니라 용커스 미들스쿨의 졸업생들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띠리링!
“예, 용커스 미들스쿨…… 그, 그분들은 이미 정직 처분을 당했습니다, 선생님! 아, 아뇨 그게 아니라요!”
난리가 난 교무실.
교장실 소파에 앉은 교감이 식은땀을 닦으며 떨리는 눈으로 맞은편의 종혁을 본다.
다리를 꼰 채 한껏 불쾌함을 드러내는 종혁.
“하마터면 제 20만 달러가 범죄자의 아가리에 처박힐 뻔했군요. 그리고 그 짧은 사이에 이미 예산을 집행하셨고.”
메덕 돕슨을 족쳐 다른 선생들의 영장을 받기까지 고작 나흘이 지났을 뿐인데 기부한 20만 달러 중 4만 달러가 여기저기에 쓰여 버렸다.
“죄, 죄송합니다. 그,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그중 10만 달러는 용커스 미들스쿨의 자랑이자, 마스코트인 미식축구부를 위해 써 달라고 부탁까지 했는데…… 거참.”
미식축구부 감독부터 촌지를 받고 있었다. 말단을 제외한 코치진 전부가. 그것도 당당히.
어떻게든 형량을 낮추기 위해 숨겨 둔 비밀까지 토설한 교장 덕분에 비리의 온상 용커스 미들스쿨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었다.
윗물이 더러우니 아랫물도 이렇게 더러웠다.
종혁은 불법주차 미납이나 무단횡단 같은 사소한 위법 사항까지 걸고넘어지며 용커스의 선생들을 족쳤다.
“이, 일단 미식축구부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 모두 해임했으니……”
“그거야 당연한 거고요. 설마 말단 직원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면피를 하려고 했던 겁니까?”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됐고. 봄 시즌은 어떻게 할 겁니까?”
미식축구 대회에서 성과를 올려야 용커스 미들스쿨이 건재하다는 걸 알리지 않겠는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총 4번의 큰 대회가 있는 미 동부 미들스쿨 미식축구.
“그, 그게 얼른 감독을 구해서 미식축구부를 정상화 시키겠습니다!”
“그 감독은 어떻게 믿고요?”
“예? 아니, 그게…….”
콧방귀를 뀐 종혁은 옆에 앉은 신장과 덩치가 어마어마한 백발의 노인을 바라봤다.
“큼. 반갑습니다. 로버트 제퍼슨입니다.”
“허어억! 자이언츠의 철벽!”
“하하. 아직도 이 늙은 퇴물을 알아봐 주시는 분이 계실 줄 몰랐군요.”
“모, 몰라볼 리가요!”
자이언츠의 라인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레전드.
자이언츠의 애칭인 빅 블루의 빅 베어.
아빠 손을 잡고 미식축구장에 가서 그의 경기에 열광을 했던 교감으로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스타다.
뿐만 아니라 로버트 제퍼슨은 코치로서도 자이언츠의 전성기를 이끌며, 자이언츠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종혁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교감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분을 감독으로 추천하고 싶군요.”
‘원래는 시즌이 끝난 자이언츠나 제츠와 연습 경기를 시켜 놈을 박살을 내 놓으려고 했는데…….’
그래서 자신의 무능력을 깨닫고 연습에 매진시키려고 했다. 원래의 감독도 회유해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굴리게 만들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이 모두 검거되면서 방법을 선회하게 됐다.
“이분을요?!”
“제 능력이 미흡하게 보일 테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요! 환영합니다! 제가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로버트 제퍼슨이 용커스 미들스쿨 미식축구부의 감독이 됐다.
이후 교실을 비롯한 복도, 교무실 등 빈틈없이 CCTV를 설치해야 된다는 등 부탁을 빙자한 몇 개의 강요를 20만 달러의 추가 기부와 함께 말하고서 교장실을 나선종혁과 로버트 제퍼슨.
낯선 사람이라 경계하는 학생들로 가득한 복도를 걷는 로버트 제퍼슨이 입을 연다.
“우리의 거래 내용을 잊지 말게.”
“걱정 마세요. 돈에 관련된 건 절대 어기지 않으니까.”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친정팀인 자이언츠뿐만 아니라, 미식축구와 관련된 여러 단체에 거액을 후원해 주는 것을 조건으로 종혁의 거래에 응한 로버트 제퍼슨.
“제퍼슨 씨도 거래 내용 잊지 마시고요.”
“선수들을 매일 집에 기어서 가게 만들라는 거? 걱정 말게. 그건 내 특기니까!”
종혁은 믿는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성격이 더럽지만, 그 능력은 최고라며 로버트 제퍼슨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잭 와일러.
‘이 정도면 일단 숨통이 트이겠지.’
보기조차 끔찍한 사람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조던은 심리적 안정을 찾을 거다.
그건 클라크 덤벨이라는 이 학교의 강자이자 권력가에게 짓눌려 조던을 모른 척해야 됐던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터.
클라크 덤벨을 체포할 증거는 그 이후부터 수집을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
‘병원장의 아들이라…….’
그것도 조던의 어머니 애나 파커가 일하는 존 리버사이드 병원의 병원장.
조던이 애나 파커에게 괴롭힘에 대한 걸 털어놓지 못한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는 것 같았다.
‘바보같이…….’
조던이 더 안쓰러워지던 종혁의 눈빛이 매섭게 빛난다.
‘조금만 기다려라, 새꺄.’
로버트 제퍼슨의 훈련이 지옥처럼 느껴질 테지만, 진짜 지옥은 체포된 이후부터가 시작이었다.
물론 이 때문에 애꿎은 다른 선수들이 함께 고통을 받겠지만, 애당초 운동선수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될 일.
종혁의 입꼬리가 뒤틀리는 순간이었다.
‘음? …… 짜식.’
맞은편에서 종혁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가 모른 척 스쳐 지나가는 조던.
종혁은 그런 조던의 머리를 헤집었다.
움찔!
조던은 순간 경기를 일으킬 듯 퍼덕이다 굳어 버리며 움츠러들었고, 종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른 척 걸음을 그를 지나쳐 갔다.
“흠. 아는 학생인가?”
“옆집 사는 학생이요. 가시죠.”
종혁은 머리에 손이 닿자마자 보였던 조던의 반응에 이를 악물었다.
‘육체적 폭력까지 당하고 있다는 거군.’
괴롭힌다 정도가 아니라 진짜 폭력을.
조던의 머리를 만진 종혁의 손이 주먹을 쥐며 기괴한 소리를 냈다.
* * *
“누구 새로 온 감독에 대해 들은 거 있어?”
“몰라.”
7시, 이른 아침부터 운동장에 모인 용커스 미들스쿨 미식축구부 선수들의 얼굴에 기대와 두려움이 서린다.
누군가는 이번엔 주전이 될 수 있을까 하는 희망과 기대가.
돈으로 주전을 따낸 누군가는 주전에서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그중엔 미식축구부의 주장이자 쿼터백인 클라크 덤벨도 있었다.
‘괜찮아. 난 걱정 없어.’
객관적으로 따져도 8학년 중 자신을 능가할 쿼터백 자원이 없었다.
‘있다면…….’
클라크 덤벨의 시선이 2학년 중 키와 팔이 긴 흑인 소년에게로 향했다.
서브 쿼터백이면서도 리시버와 러닝백, 라인배커까지 소화할 수 있는 미친 괴물.
하지만 괜찮다.
‘난 주장이야.’
주전이 무조건 보장된 8학년인 데다가 주장. 거기다 미식축구부의 최대 후원자를 아버지로 두었다.
절대 주전에서 떨어질 리 없었다.
그제야 불안감을 떨쳐 낸 클라크 덤벨은 몸을 풀기 시작했고, 그런 그에게 눈이 작은 또래의 소년이 다가섰다.
“클라크, 넌 좋겠다? 든든한 병원장 아버지가 있어서?”
“시비 걸 거면 꺼져, 뱅크.”
용커스에서 가장 큰 마트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둔 동갑내기 라인배커인 소년.
소년은 날카로운 말투에 장난스럽게 몸을 움츠렸다.
“오우. 주장이 그러라면 그래야지. 근데…….”
소년의 눈이 뒤틀린다.
“네가 언제까지 주장일 것 같냐?”
“뭐?”
섬뜩 놀란 클라크 던벨이 소년을 죽일 듯 노려본다.
“너 뭐 아는 거 있지? 그렇지?”
“글쎄. 이번에 오는 감독이 무조건 실력 중시라는 거? 너처럼 친구들과 놀기 좋아하고 힘없는 애들 괴롭히고 다니느라 연습에 잘 참가하지 않는 놈은 바로 아웃이라는 거지.”
“……하! 날 놀라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실패했어, 뱅크.”
“그렇게 생각하시든지. 그럼 수고해.”
클라크의 어깨를 두드린 소년은 키득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몸을 풀었고, 불길함을 느낀 클라크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 아니겠지. 아닐 거야.’
감독이 멍청한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을 주전에서 탈락시킬 리 없었다.
‘이 미식축구부가 누구 돈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그렇게 애써 마음을 다독이던 클라크는 저 멀리서 여러 어른들을 거느리며 다가오는 덩치 큰 노인의 모습에 낯빛을 굳혔다.
누가 봐도 새로운 감독.
“모두 조용! 용커스 미식축구부에는 수다쟁이들만 모여 있는 거냐!”
화들짝 놀란 선수들이 다급히 차렷 자세를 취한다.
그런 그들을 둘러본 로버트 제퍼슨은 선글라스를 추켜세우며 입을 열었다.
“반갑다, 꼬맹이들. 오늘부로 용커스 미들스쿨 미식축구부의 감독을 맡게 된 로버트 제퍼슨이다.”
묵직한 포스가 가득 느껴지는 저음에 어린 선수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기대 어린 시선을 보낸다.
“여기 주장과 주전이 누구지?”
“주장인 클라크 덤벨입니다. 포지션은 쿼터백입니다.”
클라크를 시작으로 가장 앞에 서 있던 주전들이 손을 들며 스스로를 소개한다.
고개를 끄덕인 로버트 제퍼슨은 클라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주장이라고 했던가?”
“예!”
감독에게 처음으로 불리자 얼굴이 환해진 클라크.
‘내 아버지에 대해 들었나 보네! 역시 날 무시할 수 없지!’
역시 소년의 말은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 개소리였던 것 같다.
“저 친구의 주력이 몇 초지?”
“예? 쟤, 쟤는…….”
“한심하군. 필드의 사령관인 쿼터백이면서 동료의 신체 능력도 모른다고? 됐다. 네게 묻느니 직접 확인하는 게 빠르겠네.”
‘내가 2군의 주력을 어떻게 알아!’
왠지 불길해진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난다. 선수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기 때문이다.
클라크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그걸 무시한 로버트 재퍼슨은 다시 선수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입술을 비틀었다.
“너희가 내게 뭘 바라는지 모른다. 하지만 난 나만의 기준을 통해 선수를 필드에 세운다. 그 기준은 바로 내가 내 눈으로 직접 본 것만 믿는다는 것.”
술렁!
클라크의 머릿속에 위기감이 번뜩인다.
“가, 감독님! 선수의 기량은 프로필을 보면…….”
“이봐, 내가 너한테 발언을 허락했던가?”
“그, 그건 아니…….”
“아니면 닥쳐. 죽여 버리기 전에.”
“…….”
그렇게 클라크를 침몰시킨 로버트 제퍼슨은 클라크 때문에 끊겼던 말을 이어 갔다.
“자신이 주전이었던 것과 주전이 아니었던 것은 지금 이 순간부터 잊어라.”
쿠웅!
‘개 같은!’
아직 아니다. 지금 클라크 자신이 누군지 모르기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일 거다.
“너희들이 올 봄에 나갈 대회는 이제 없을 거고, 그 시간 동안 주전을 새로 짠다. 그를 위한 테스트를 시작하지. 뛰어.”
“……?”
“뛰어, 이 병아리 새끼들아-!”
“헉!”
우르르르!
“기록 시작해.”
코치에게 말을 한 로버트 제퍼슨은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클라크와 주전들을 보며 의아해했다.
“내가 주장과 주전은 뛰지 말라고 했던가?”
“으흠. 감독님, 저흰 이미 주전이기에 이런 경쟁은 불필요하며, 제 아버지는 이 미식축구부의 최대 후원자…….”
“뛰어.”
“저희 아버지께선 존 리버사이드 병원의…….”
덥썩!
“큭?!”
갑자기 멱살을 잡혀 깜짝 놀랐던 클라크는 이내 분노를 터트리려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언제 선글라스를 벗은 건지 그를 찢어발길 듯 노려보는 눈빛.
“마지막으로 말한다. 뛰어. 정말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진심이다.
여기서 뛰지 않으면 진짜로 쫓겨난다.
‘……빌어먹을!’
이를 악문 클라크는 몸을 날렸고, 그렇게 그에게 지옥(체험판)이 열렸다.
조던에겐 천국 같은 시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