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63화>
105.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
콰앙!
“후우…….”
어지간한 역도선수들도 대회에 맞춰 충분히 몸을 만들어 뒀을 때나 들어 올릴 무게의 바벨이 바닥을 부술 듯 굉음을 울렸고, 이 모습을 바라보던 헬스장 회원들은 경악한 시선으로 혀를 내두른다.
“지금 몇 개 했지?”
“30개 10세트.”
“저게 어떻게 로이더가 아닐 수 있는 거야?”
스테로이드 등의 약물을 사용해 근육과 기량을 손쉽게 늘리는 로이더. 그건 여기 있는 회원들에겐 욕이나 다름없다.
온몸의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질 듯한 고통 속에서 겨우겨우 해내는 1kg의 증량. 그것은 신이 그들에게 유일하게 허락한 쾌락이자 성취감이고, 자부심이었다.
“정말 동양은 신비의 나라가 맞는 것 같아. 한국으로 여행을 가 봐야 하나?”
“난 평소에 먹는 게 더 궁금해.”
“아, 나도. 프로틴은 어느 브랜드 걸 이용하지?”
“저번에 보니까 아무거나 다 먹는 것 같던데?”
“진짜?”
수근거리던 100kg이 넘어가는 덩치들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이봐, 최! 평소에 먹는 게 뭐야?”
순간 종혁의 입에 쏠리는 시선.
종혁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해 주었다.
“특별히 챙겨 먹는 거라면…… 산삼?”
그래서 한국에서 산양삼이나 산삼이 발견됐다고 하면 일단 무조건 사들이고, 없다면 미국산을 주로 이용한다.
웬만한 산양삼보다 배는 좋은 미국산 산삼.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스태미나에 좋다는 식재료는 보기에 비위가 상하지만 않는다면 다 챙겨 먹는 편이다.
“아, 장어랑 복분자도 일주일에 한 번은 챙겨 먹고.”
산수유도 챙겨 먹는데, 이건 건포도처럼 말려서 챙겨 다니며 입이 심심할 때마다 먹는다.
“이것도 뭐 특별히 더 챙겨 먹는다는 거지, 먹기야 딱히 가리는 거 없이 다 먹죠.”
“뭐? 식단 조절도 안 하는데 이런다고?”
“즐겁자고 하는 운동인데 닭가슴살만 먹고는 못하죠. 저 도넛 좋아해요.”
“미친…… 사, 산삼 뭐?”
“누가 메모지 좀 가져와!”
“최! 다시 불러 줘!”
종혁은 눈이 돌아간 회원들의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탈의실로 향했고, 회원들은 그런 종혁을 뒤따랐다.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아침 운동을 끝내고 샤워까지 마친 종혁은 개운한 기분으로 출근을 했다.
“최.”
“오우, 최! 왔어?”
“출근길은? 막히지 않았고?”
“다들 최가 출근하는 전용 도로를 만드는 거 어때?”
“오오! 좋은 의견!”
오늘따라 유독 반기는 FBI 요원들.
그럴 수밖에 없다.
에덤 크루거를 검거함으로써 이 사무실에 있는 모든 요원들에게 상여금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뉴욕주에 있는 천여 명의 재향군인회 회원들이 거리에 나앉을 뻔했다.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과 그들의 유가족이.
만약 에덤 크루거를 검거하지 못했다?
그럼 뉴욕주의 주지사 모가지부터 날아가는 거다.
그걸 막았으니 500퍼센트 상여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탕비실에서 커피를 따르던 종혁이 탕비실 한쪽 벽에 걸린 상패를 보곤 피식 웃는다.
대통령 감사패.
미 대통령의 이름으로 표창장이 하사됐고, 그 외에도 미 국방부 장관과 아메리칸 리전의 회장 등 군 조직과 관련되어 있는 단체의 정점에 있는 양반들이 감사패를 전해 왔다.
에덤 크루거가 검거된 후 피해자의 숫자가 발표된 바로 다음 날 말이다.
“이 동네는 이런 게 빨라서 좋네.”
회귀 전의 한국이었다면 이런 표창장이 내려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을 터였다. 물론 지금은 경찰 복지의 일환으로 빠릿빠릿하게 처리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설계자라…….”
종혁의 눈이 가늘어진다.
코라 인베스트먼트의 대표가 말한 설계자의 존재.
설계자.
종혁으로선 낯선 개념이나 존재가 아니다. 한국에도 이런 범죄 설계자가 존재하니 말이다.
소정의 돈을 받고 범죄를 설계해 주는 설계자.
범죄를 저지르고 수사기관을 따돌리는 데서 쾌락을 느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설계해 준 범죄가 성공하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는 진성 변태들.
설계도를 팔았다는 걸 입증할 수 없기에 아주 골치 아픈 놈들인데, 거슬리는 점이 있다.
“이 동네는 설계자가 영업도 뛰나?”
너도나도 설계도를 사길 원하니 콧대가 하늘을 뚫는 설계자들. 그건 이 미국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초짜 설계자가 아니고서야. 게다가…….’
계속 놈들을 신경 써서 그런지 왜인지 놈들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최근에야 행보가 약간 달라지긴 했지만, 웬만해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범죄를 지휘하는 놈들 조직.
설계자와 놈들 조직의 방식이 유사하긴 하다.
코를 긁적이던 종혁은 혀를 찼다.
“쯧.”
이 설계자란 놈이 놈들의 조직원인지 아닌지는 둘째 치고, 이놈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가 막막하다.
마치 똥을 싸다 끊은 듯한 기분에 종혁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자리로 향했다.
그때였다.
“최.”
종혁은 개인 사무실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채 부르는 캘리 그레이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세요?”
“음. 이제 한국으로 복귀해야 하는 게 네 달 정도 남았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전화기 앞 책상을 두드렸다.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내선 전화기.
종혁은 눈을 빛냈다.
“지금이 4월이니까 아무래도 그렇죠. 확실히 정해진 건 아닙니다.”
웬만하면 백종명 경찰청장이 임기를 다 마치고 물러 날 때까지 FBI에서 있고 싶다. 물론 한국과 러시아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는 놈들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흠. 그렇단 말이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홍보부 같은 곳에 파견 가라는 거라면 안 갈 겁니다.”
코라 인베스트먼트 사건을 해결한 후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한 FBI 뉴욕지국.
종혁은 거기에 어울려 광대놀음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뭐 FBI 시스템을 정리한 파일을 넘겨주시고, 한국으로 복귀하기 보름 전에 전 부서를 순환할 기회를 준다면 생각해 보죠.”
어느 부서든 간에 배울 점은 많았고, 그렇다면 그만큼 다양한 부서를 경험해서 나쁠 건 없었다.
한국 경찰의 부족한 점들을 메우려면 FBI의 시스템과 노하우를 조금이라도 더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었다.
‘보름이면 충분하지.’
“뭣?!”
펄쩍 뛰는 캘리 그레이스.
“아니, 그건…….”
“아니면 안 합니다.”
종혁의 단호한 대답에 캘리 그레이스는 미간을 좁힌 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종혁이 요구하는 FBI 시스템을 정리한 자료에는 극비 문서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었다.
똑똑!
“보스! 대통령 경선 후보가 찾아왔습니다.”
“나를?”
의아해하며 일어서면서도 시간을 벌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캘리 그레이스. 그만큼 종혁의 요구는 약간 무리한 일이었다.
‘에라이.’
종혁은 조금만 더 밀어붙였으면 성사됐을 일이 어그러지자 원망을 담아 요원을 노려봤지만, 요원은 무슨 일인지 캘리 그레이스의 눈치를 보며 종혁을 힐끗거린다.
‘뭐지?’
“어…… 부른 대상이 보스가 아닙니다.”
“그럼?”
요원은 슬그머니 종혁을 봤고, 종혁은 눈을 껌뻑였다.
“엥?”
‘나를? 왜?’
종혁의 눈 깜빡임이 더 빨라졌다.
* * *
“반가워요.”
스태파니 퀸스 클린턴.
통칭 여왕님.
대통령 영부인 출신으로, 현재 이곳 뉴욕주를 구역으로 삼은 민주당의 상원의원이자 대선 경선 후보.
2008년 경선에서는 아쉽게도 패하지만 국무장관의 자리에 오르고, 훗날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인물이다.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양반이지.’
한국이나 미국이나 정치인은 도통 믿음이 가지 않는다. 현몽준 당대표는 약간 다르지만 말이다.
‘이 양반이 왜 날 보자고 했을까.’
종혁은 머릿속으로 그녀의 의도가 무엇일까 고민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은 채 싱긋 웃으며 그녀의 악수를 받았다.
“한국에서 연수를 온 최종혁 경정입니다. 최가 성입니다.”
벤과 드롭도 악수를 나눈다.
“한국. 저희 미국의 오랜 우방이죠. 다시 한번 이 나라 장병들의 목숨값을 지켜 줘서 고마워요.”
촤라라라라!
격렬하게 터지는 플래시 세례.
스태파니 클린턴의 눈을 본 종혁은 살짝 놀랐다.
‘진심이군.’
실제로는 별다른 관심도 없으면서 여론에 얼굴을 비추는 전시 행정이 아닌, 진심으로 재향군인회를 구원해 준 것에 감사해하고 있다.
여타 정치인들과는 다른 그녀의 모습에 종혁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건 정말 부럽네. 시부럴.’
“아닙니다. 경찰로서, FBI 요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훌륭하군요. 앉을까요?”
“앉으시죠.”
소파에 앉은 스태파니 클린턴이 차를 권하며 자기 몫의 차를 홀짝인다.
“솔직히 먼저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밥을 먹다 뒷자리에서 들린 대화에서 시작된 이번 수사.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떻게 된 일인지 처음부터 말해 줄 수 있을까요?”
벤, 드롭과 눈빛을 교환한 종혁은 그러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희가 이번 사건에 대해, 그리고 에덤 크루거라는 죽일 놈의 사기꾼에 대해 의심을 했던 순간은 약 두 달 전 월 스트리트 시위 통제에 지원을 나가면서…….”
시작된 그날의 이야기.
월 스트리트라는 부분에서 약간 표정이 흔들린 그녀는 이내 종혁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제게 시간을 내줘서 고마워요, 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줘요.”
‘휘유.’
거물 의원의 백지수표.
솔직히 혹한다.
“그리고 이 나라를 지켜 줘서 고마워요. 당신들도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주세요.”
“아, 아닙니다. 의원님.”
“앞으로도 뉴욕을 잘 부탁드릴게요.”
벤과 드롭, 종혁의 어깨를 두드린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멀어졌고, 벤과 드롭은 드디어 좋으면서도 지옥 같았던 시간이 끝나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최.”
쫘악!
하이파이브를 하는 셋.
“진짜 스테이크 사는 겁니다.”
“지금 스테이크가 문제겠어?!”
미국의 여왕님과 사진을 찍었다. 뉴욕주의 상원의원이자 강력한 대선 경선 후보이며,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될 것이라 추정되는 스태파니 클린턴과.
거기다 스태파니 클린턴이 소액의 백지수표를 제시했다.
앞으로의 승진은 탄탄대로라고 볼 수 있었다.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설혹 대통령이 되지 않아도 그녀의 경력이 어딜 가는 건 아니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아 훗날엔 비호감이 된다고 해도 말이다.
‘흠. 대선 경선 후보라…….’
종혁이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걸 개입해? 말아?’
“최.”
“응? 왜요?”
무슨 일인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드롭.
“정말 내 딸은 어때? 아직 많이 어리긴 하지만…….”
“에라이!”
“컥!”
헛소리를 하는 드롭에게 드롭킥을 날린 종혁은 고개를 저으며 사무실로 향했고, 벤은 드롭의 와이프에게 전화를 걸며 종혁의 뒤를 쫓았다.
“벤지? 지금 드롭이 뭐라고 했냐면…….”
“아, 안 돼-!”
* * *
스태파니 클린턴과의 인터뷰 때문인지 종혁의 요구는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모레부터 홍보부에 파견 형식으로 출근을 하기로 했다.
과르릉!
퇴근 후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는 종혁.
“네, 나탈리아. 러시아는 현 미국 대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번 미국 대선은 민주당이 될 거라고 여기고 있어요.
공화당인 현 대통령이 워낙 똥을 싸 놨기에 거의 대부분 그렇게 여기고 있다.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우승할 것 같은 후보는 꼽았어요?”
-그건 딱히 중요하지 않아요.
선거 로비는 대선 후보가 정해졌을 때 해도 늦지 않다. 어차피 나라와 나라의 거래이니 말이다.
-그래도 스태파니 클린턴이 유력하죠.
“그래요? 지금 지고 있는데?”
-이 정도면 치열한 거죠. 그리고 그녀에겐 역전의 기회가 남아 있고요.
아직 8개 주가 남아 있는 5월과 6월 경선.
스태파니 클린턴이 이 8개 주에서 모두 승리한다면 그녀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다.
-거기다…….
“음?”
-그녀의 텃밭인 뉴욕에 있는 누군가가 미국 군인들의 핏값을 지켜 냈죠.
모든 미국인의 존경을 받는 미군이다. 그건 현역이 아닌 재향군인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
이들을 구한 영웅의 지지를 받을 수만 있다면 다량의 표를 확보하는 게 가능할 터였다.
“아하?”
‘고게 있었네?’
미국이 군인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한국 군인의 처우 문제를 고민하느라 무심코 넘겨 버렸다.
이제야 스태파니 클린턴이 찾아온 이유를 완벽하게 이해한 종혁이 눈을 빛낸다.
‘이러면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건데…….’
회귀 전, 역전은커녕 5월과 6월 경선이 절반이 채 지나기도 전에 완벽히 패배해 버린 스태파니 클린턴.
종혁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최는 누가 될 거라고 생각하나요?
“글쎄요. 누가 됐건 현재의 미국을 지옥에서 건져 올려 줄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음?”
시동을 끄며 차에서 내리던 종혁은 지하 계단 앞에서 서성이는 한 흑인 중년인을 발견하곤 그대로 멈췄다.
‘이것 봐라?’
“……그 부분은 나중에 통화하죠. 손님이 오셨네요.”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흑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루터 후보님. 최종혁입니다.”
“타국인이 저를 알아봐 주실 줄 몰랐군요. 반갑습니다. 버락 던햄 루터입니다.”
버락 루터는 특유의 선한 웃음을 지으며 미국의 영웅에게 악수를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