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62화>
수많은 사람들이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난 오후.
그러나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증시 때문에 햄버거나 샌드위치로 간단히 점심을 깨운 코라 인베스트먼트의 직원들이 피곤해지는 정신을 한 잔의 커피로 깨운다.
“에덤.”
“아, 예. 대표님.”
약속이 있는 듯 코트를 입은 대표.
에덤 크루거도 코트를 챙기며 몸을 일으킨다.
“대표님과 잠시 미팅이 있어서 나갔다 올 테니까 적당히 하고 퇴근해.”
“예!”
“다녀오세요!”
몸을 일으켜 배웅을 하는 직원들.
둘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하아!”
갑자기 한숨을 내쉬는 코라 인베스트먼트의 직원들.
“이봐, 요새 대표님과 에덤 씨 좀 이상하지 않아?”
“너도 그렇게 느꼈어?”
2주 전쯤부터 묘하게 쌀쌀맞아진 것 같은 에덤 크루거와 대표.
“일은 잘 진행된다고 들었는데.”
재향군인회와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맺은 코라 인베스트먼트.
그에 관한 건 에덤 크루거와 대표가 모두 관리하느라 정확한 사정은 알지 못했지만, 유치한 고객의 숫자가 천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지치신 걸까? 헤이, 존. 뭐 들은 거 없어?”
에덤 크루거가 외부 미팅을 나갈 때면 가끔 잡무를 도맡던 직원, 존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맡았던 일이라곤 계약까지 끝마친 회원의 사후 관리 정도일 뿐, 자세한 내용은 아는 바가 없었다.
“음…… 업무가 너무 과중되셔서 그런 거 아닐까?”
“회원 수가 얼마나 되는데?”
“내가 다 도와 드리는 건 아니라서 잘 모르겠고, 천 명은 넘으시는 거 같던데.”
“처, 천 명? 투자액은?”
“대충 추산해 봤을 때 한 4천만 달러 정도는 될 것 같더라고.”
“그 정도나?”
경악했던 직원들의 표정은 이내 어두워졌다.
4천만 달러와 천 명의 회원.
심지어 이것도 존이 알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예상이었으니, 실제로 이것보다 많을 것이 분명했다.
“이거 우리가 도와 드리지 않아도 괜찮은 거야?”
코라 인베스트먼트의 전 직원이 운용하는 자금을 모두 합쳐도 4천만 달러의 10분 1 수준에 불과했다. 아무래도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말씀드려 보자고. 아, 누구 몸에 좋은 음식에 알고 있는 사람 없어?”
단둘이서 여기까지 투자를 받아 내는 데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그들은 동료임에도 그 부분을 알아주지도, 도와주지도 못해서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아볼게. 전 직장 동료가 그런 거 좋아했어.”
“난 비타민 종류로 알아볼게.”
그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곳에서 애를 쓴 에덤 크루거와 대표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한편 엘리베이터 안.
“……푸흐!”
“아직 뉴욕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어흠흠. 알았어. 걱정 말라고.”
대표는 그렇게 답했지만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나흘 전, 승인이 된 대출.
그 액수와 이번 사기의 마지막 단계에서 밑바닥까지 끌어모은 돈을 모두 합하니 무려 7200만 달러였다.
그들이 재설정한 목표치보다 무려 1200만 달러는 많은 액수. 둘이서 나눈다고 해도 3600만 달러다.
물 쓰듯이 펑펑 써도 평생 쓸 수 있을까 생각되는 액수.
“대표님.”
“알았다니까.”
띵!
지하주차장에서 내린 둘은 자동차로 향했다.
나란히 세워진 둘의 차.
대표가 봉투 하나를 꺼내어 에덤 크루거에게 넘겼다.
“자, 여권.”
여권을 확인한 에덤 크루거의 표정이 묘해진다.
“이젠 마지막이니 한 가지 묻고 싶군요. 대체…… 날 어떻게 찾아낸 겁니까?”
자신이 중심되어 움직이긴 했으나, 이 계획의 시작은 대표가 자신을 찾아와 제안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미국을 지옥에 빠트린 서브 프라임 모기지, 그 시초가 되는 주택담보대출상품에 대해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거부한 이유로 잘린 에덤 크루거.
그는 자신을 해고한 회사보다 그렇게 돈을 벌어다 주었는데 자신이 잘릴 때 단 한마디도 보태지 않은 고객들에게 더 큰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그때, 대표는 자신을 찾아와 그 분노를 사그라뜨릴 방법이 있다며 자신에게 이번 계획을 제안했었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길래…….’
재향군인회에 속한 회원들과의 계약은 자신이 따냈으나, 애당초 대표가 아메리칸 리전 등 재향군인회와의 로비를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했더라면 시작조차 못할 사업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기에 이런 방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움찔!
몸을 굳힌 대표가 이내 나른하게 웃는다.
“이봐, 에덤. 세상엔 돈이면 안 되는 게 없어.”
“무슨…….”
찰칵! 치이익!
대표는 담배 연기를 뿜으며 잠시 옛일을 추억했다.
2000년, 닷컴 열풍이 미 전역을 휩쓸 때 함께 편승했던 그.
그리고 2001년, 지옥이 펼쳐졌다.
부모님이 남긴 유산까지 모조리 날리는 그는 폐인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절망과 분노에 빠진 그에게 운명처럼 한 사람이 다가왔다.
자신을 설계자라 소개한 어떤 동양인.
그의 제안은 참으로 흥미로웠고, 대표는 그에게 몇 가지 대가를 건네는 조건으로 이번 사기의 설계도와 에덤의 신상을 받을 수 있었다.
‘투자 유치를 한 재향군인회의 명단이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을 만큼 설계자가 건넨 사기 설계도는 매력적이었다.
재향군인회들의 누구를 어떻게 공략해야 되는지까지 모든 게 나와 있던 설계도. 자신은 그저 그 설계도에 나와 있는 대로 따른 것뿐이다.
이렇게 여권 위조 같은 뒤처리를 해 줄 수 있는 업체까지도 그들에게 소개를 받았다.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매달린 대표는 에덤 크루거를 보며 담배 연기를 뿜었다.
“돈이면 이런 사기의 설계도도……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사람도 모두 얻어 낼 수 있지.”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했다는 말에 에덤 크루거의 미간이 굳는다.
“왜? 이해가 안 돼?”
“……아니요. 그 정도면 됐습니다.”
더 이상 물어봐선 안 된다.
그런 위기감이 에덤 크루거의 머릿속을 강렬하게 울린다.
“그래? 그럼 줘야지?”
대표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자 에덤 크루거는 자신의 명함에 어떤 숫자를 적어 대표에게 넘겨줬다.
“여기 있습니다.”
자금의 세탁까지 맡았던 대표.
그러나 믿을 수 없기에 그들의 돈이 최종적으로 모이는 계좌의 비밀번호 앞자리 6자리는 대표, 뒷자리 4자리는 자신이 설정하기로 했다.
둘은 서로의 비밀번호를 교환했고, 전화로 은행에 확인을 했다.
“흐흐.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에덤. 우린 서로 참 잘 맞는 것 같으니까!”
“훗. 다신 만나지 맙시다.”
코웃음을 친 에덤 크루거는 차에 탄 후 대표가 준 여권을 찢어 차창 밖으로 던지곤 놀라는 대표를 뒤로한 채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내가 이 여권을 어떻게 믿어?’
2001년 9월 11일 테러가 난 이후 여권 확인이 강화된 미국. 하자가 있는 것을 썼다가 공항에서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낭패였다.
그는 품 안의 위조된 여권, 얼굴 사진만 바꾼 사촌의 여권을 두드리며 공항으로 향했다.
* * *
웅성웅성.
오늘도 나가려는 사람들과 들어오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옷가방을 든 에덤 크루거가 출국 게이트를 넘는다.
“통과.”
여권 속 사진과 에덤 크루거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손을 까딱이는 직원.
“후우.”
출국 게이트를 넘은 에덤 크루거가 작게 한숨을 내뱉는다.
이미 한 번 실험을 해 본 것이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돈을 불려 주겠다는, 해외에 투자를 하려면 여권이 필요하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버지니아 시골에 사는 멍청한 사촌의 여권.
외모가 비슷했기에 사진을 바꿔 재발급받는 건 쉬웠다.
그래도 방심하지 않은 애덤 크루거는 자카르타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퍼스트클래스에 앉아 애써 초조함을 삼키던 애덤 크루거는 이내 곧 비행기가 이륙하자 웃음을 터트렸다.
“푸흐!”
한 번 터져 나오자 멈추지 않는 웃음.
한참을 킥킥거리던 애덤 크루거는 비행기가 고도에 오르자 치즈와 와인을 주문했다.
월 스트리트의 증권맨일 당시엔 참 많이 먹었던 치즈와 와인.
세월의 묵직함을 가득 담은 쌉쌀한 레드 와인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그의 어깨가 축 늘어진다.
“아, 끝났네.”
드디어 모두 끝났다.
내일, 어쩌면 모레.
코라 인베스트먼트의 직원들과 이 부동산 임대 사기에 투자를 한 바보들이 상황을 파악했을 때쯤이면 자신은 따뜻한 남쪽에서 잘 빠진 미녀들과 함께 파티를 즐기고 있을 터.
쏴아아 파도와 함께 밀려오는 따뜻한 열대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니 다시 웃음이 튀어나온다.
“크크큭! 푸흐흐흐! 아, 진짜 미치…….”
“야, 좋냐?”
흠칫!
고개를 돌린 에덤 크루거는 덩치 큰 동양인, 아니 자신의 좌석을 둘러싼 종혁과 사람에 어떤 위기감을 느끼고 눈을 부릅떴다.
“누, 누구…….”
“글쎄, 누굴까? 맞춰 볼래? 참고로 네가 1년 전 사촌을 만나러 버지니아에 가고, 거기서 여권을 위조한 것까지 모두 알아낼 정도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으며 비행기 안에 총기류를 가지고 탑승할 수 있는 정부단체야.”
“……?!”
“오, 눈치챘네?”
활짝 웃은 종혁은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럼 좀 맞자.”
이놈이 도망을 쳤으면 어떻게 됐을까.
가족의 핏값을, 목숨값을 맡겼던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
분명 끔찍한 선택을 내리는 사람들도 많았을 거다.
그걸 떠올리니 피가 거꾸로 솟은 종혁은 주먹을 들어 올렸고, FBI 요원들은 슬그머니 에덤 크루거의 좌석 주변을 감싸며 주위의 시선을 차단했다.
빠악! 빠아악!
“컥! 커억!”
에덤 크루거의 억눌린 비명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회항을 했다.
* * *
이른 아침의 용커스.
애나 파커의 집 부엌이 아침을 준비하는 애나 파커와 사라 심슨에 의해 시끄럽다.
“언니, 애들은 내가 학교에 보낼 테니까 들어가서 자. 어제 야간 근무였잖아.”
애나 파커는 고개를 저었다.
남편이 죽은 후 져 버렸던 엄마로서의 의무. 그것이 비록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도 엄마로서 실격이었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다신 애들을 방치할 수 없었다.
“잠은 애들 학교 보낸 후에 자도 돼. 스프 맛 좀 봐. 괜찮아?”
“언니, 당근 스프는 언제나 최고지!”
“우리 동생이 왜 이렇게 넉살이 많아졌지?”
“나도 한 아이의 엄마거든!”
“풋. 마무리 좀 해 줘. 난 애들 깨울게.”
“응!”
싱긋 웃으며 계단으로 향하던 애나 파커는 깜짝 놀랐다.
“엄마, 굿모닝.”
“안녕히 주무셨어요.”
대체 무슨 일인지 깨우지 않았음에도 일어나 내려오는 아이들.
다 씻은 것도 모자라 심지어 톰까지 품에 안은 조던의 모습에 애나 파커는 잠시 굳어 있다가 이내 푸근히 웃었다.
“잘 잤니? 좋은 아침이야. 어서 내려와. 밥 먹자.”
아무래도 전날 밤 남편이 아이들의 꿈에 나타났나 보다. 아니면 자신이 돌보지 못한 그 짧은 사이에 철이 들어 버렸거나.
뭐든 서운한 모습이었다.
애나 파커가 흐뭇한 미소를 짓던 그때, 그녀의 귓가로 충격적인 내용의 뉴스가 흘러들었다.
-다음 뉴스입니다 약 7200만 달러의 사기 혐의로 FBI에 검거된 코라 인베스트먼트의 에덤 크루거…….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애나 파커.
“어, 엄마!”
조던과 릴리가 경악하며 달려왔지만, 애나 파커에겐 들리지 않았다.
“사, 사라…… 사라-!”
“왜! 무슨 일이야! 언니 무슨…… 아!”
애나 파커가 뻗은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던 사라 심슨도 그대로 주저앉는다.
“이모!”
“아…… 아아아…….”
안 된다.
그 돈이 어떤 돈이던가.
나라와 가족을 지키려다 흘린 피와 목숨이며, 혹여 본인이 잘못되어도 가족은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한 땀과 책임이다.
“아, 아니야……. 아닐 거야…….”
아니어야 했다. 절대 아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눈에선 눈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쿵쿵쿵!
두들겨지는 현관문.
조던은 다시 정신을 놓아 버린 엄마와 이모, 그리고 안절부절못하는 동생 릴리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며 현관으로 다가갔다.
“누구세요?”
“FBI입니다. 혹시 애나 파커 씨 안에 계실까요?”
“……엄마! FBI래요!”
“FBI?”
애나 파커와 사라 심슨이 다급히 달려가 방범창과 현관문을 연다.
쿠당탕!
“그, 그 사람들은 잡은 건가요?! 잡은 거죠?! 잡았다고 해 줘요!”
종혁은 함께 있는 사라 심슨의 모습에 살짝 놀랐다가 이내 걱정말라는 듯 푸근히 웃어 주었다.
“걱정 마십시오. 애나 파커 씨와 사라 심슨 씨가 놈들에게 빼앗긴 돈은, 남편분들이 남기셨던 유산은 곧 다시 여러분에게 돌아가게 될 겁니다.”
그들이 빼돌린 돈이 담긴 계좌는 이미 확보한 상태. 그 돈은 곧 다시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종혁은 자신의 손을 붙든 채 바들바들 떠는 그들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 그럼 수고하세요.”
종혁은 다시 한번 눈물로 머리를 조아리는 둘을 뒤로하며 차로 향했다.
“오길 잘했네.”
이번 사건의 해결에 큰 단서를 주었던 사라 심슨과 애나 파커.
이 둘에게만은 꼭 직접 전해 주기 위해 찾아왔는데 그러기를 정말 잘한 것 같다.
차를 출발시킨 종혁은 열린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바람에 담배를 물며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Country roads! take me home. To the place I belong-!
“벌써 봄인가.”
시간이 참 빠른 것 같다.
“이제 몇 개월 안 남았네.”
이 미국에 진정한 지옥이 도래하는 날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날이.
“그런데…….”
돌연 미간을 좁히는 종혁.
“분명 어디서 봤던 얼굴인데…… 어디서 봤더라?”
애나 파커의 아들로 추정됐던 십대 소년.
미국의 일에 대해선 깜깜 그 자체인 종혁이 낯익다 느낄 정도면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큰일인 게 분명하다.
“파커. 조던 파커…….”
종혁은 조던의 풀네임을 계속 되뇌며 FBI 뉴욕지국을 향해 나아갔다.
-이 노래가 군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죠? 언제나 고향집으로 가고 싶기 때문이라는군요. 이 나라의 군인들은 오늘도 이 외로움과 고통을 참아 내며 이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습니다. Thank you for your servise. 이 나라를 지켜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건은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