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59화>
뉴욕시와 인접한 도시, 뉴욕주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인 용커스.
사라 심슨과 그의 아들을 태운 1972년식 빨간색의 닛산 스카이라인이 한 주택 앞에 선다.
그르릉!
마치 더 달리지 못해 아쉬워하는 듯한 소리.
사라 심슨의 얼굴이 잠시 구겨진다.
소꿉친구이자 연인이었던 남편 댄 심슨이 처음으로 산 차.
별빛 쏟아지는 허드슨강에서 본닛 위에 누워 사랑을 속삭이던 댄의 청혼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사라 심슨은 다른 건 다 버려도 이것만큼은 버릴 수가 없었다.
“하아.”
습기가 가득한 한숨을 뱉어 낸 사라 심슨은 보조석, 유아용 시트에 잠들어 있는 아들 톰을 가만히 응시했다.
남편 댄과 자신을 반반씩 닮은 톰.
“……읏챠. 톰, 이모를 만나러 갈까?”
그녀는 마당을 지나 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자신의 집인 양 서슴없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그녀는 거실을 보곤 흠칫 굳었다.
“언니.”
“……왔어?”
술병을 끌어안은 채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친언니 애나 파커의 흐릿한 인사에 사라 심슨의 억장이 무너진다.
얼마 전, 사라 심슨 자신처럼 군인인 남편을 잃은 언니. 자신과 똑같이 해외 파병지에서 적군의 총탄을 맞아 사망했다.
대체 하늘은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걸까.
대체 자신들은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사라 심슨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쏟아진다.
비척비척 애나 파커에게 걸어간 사라 심슨은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눈물을 쏟아 냈다.
하루에도 몇 십 번, 몇 천 번씩 참는 눈물을.
보고 싶었다. 남편이 보고 싶었다.
“흑! 흐윽!”
“흐으윽!”
애나 파커도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해도 참을 수가 없는 슬픔.
서로를 끌어안은 자매는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하며 슬픔을 나누었다.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톰이 깨려는 듯 칭얼거리자 그녀들은 다시 또 억지로 눈물을 참는다.
“후우우. 밥은 먹었어? 언제 먹었어?”
“……오늘 아침?”
“안 먹었네.”
아마 남편 마틴 파커의 장례식 이후로 제대로 먹은 것이 없을 것이다. 아니, 먹을 생각도 들지 않았을 터였다. 사라 심슨 자신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찾아온 것이었다. 몇 달 전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밥 차릴 테니까 톰 좀 안고 있어 봐. 조던과 릴리는?”
올해로 15살이 된 조카 조던과 10살 된 릴리.
“학교에…… 갔을 거야.”
그렇게 대답하는 애나 파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엄마가 되어서 자식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엄마 실격이었다.
“오늘 목요일이야. 정신 차려, 언니.”
“……맞아. 차려야지.”
“안 되겠다. 일단 씻고 와. 톰은 이리 주고.”
사라는 이번에도 몇 달 전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언니를 욕실에 밀어 넣고는 톰을 안은 채 식사를 준비했다.
며칠간 술만 마셨을 언니의 속을 달랠 수 있는 음식들로.
“후우. 고마워.”
반조차 비워지지 않은 묽은 스프와 빵.
그러나 사라 심슨은 별다른 말없이 식탁을 정리한 후 설거지를 시작했다. 이 정도라도 먹은 것이 기적이기에.
쏴아아! 끼릭!
“휴우. 커피 마실래?”
“그래서 무슨 일 때문에 찾아온 건데?”
흠칫!
놀라는 사라 심슨의 모습에 애나 파커가 씁쓸히 웃는다.
아무리 정신이 없다지만, 자매인 동생의 버릇을 모를까. 계속 곁눈질을 하는 건 할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마틴의 사망 보상금은 어떻게 할 거야?”
순간 애나 파커의 눈에 경계심이 어린다.
사라 심슨은 한숨을 내뱉었다.
“마틴 쪽 가족들에게 많이 시달렸나 보네. 언니, 나 언니 동생인 사라야. 지금 이 질문과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
“아…….”
그러고 보니 익숙했다.
몇 달 전 매부인 댄 심슨의 장례식을 치른 후 사라 심슨의 집에서 그녀 또한 이와 똑같은 질문을 던졌었다.
“너도 나도…… 참 가족 운은 없다. 그치?”
그땐 댄의 친척들이 댄의 전사자 보상금을 노렸고, 이번엔 마틴의 친척들이 마틴의 전사자 보상금을 노렸다.
정작 댄과 마틴의 부모는 가만히 있는데도.
애나 파커는 씁쓸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연금 형식으로 받을 생각이야.”
노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매달 얼마의 돈을 받아 가계에 보태는 쪽이 나았다. 한꺼번에 돈을 찾을 수 없도록 공증까지 받을 생각이었다.
“혹여 내가 잘못되어도 조던과 릴리가 굶지 않게는 해야 하니까.”
“그래? 흠. 언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말해.”
사라 심슨은 일단 어제 에덤 크루거와 계약을 맺으며 받은 카달로그를 꺼내어 내밀었다.
“아메리칸 리전과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맺은 코라 인베스트먼트라는 곳에서 하는 사업이야.”
“임대 사업이네. 너 설마…… 응?”
수익에 관한 부분과 원금 보전이라는 단어를 발견한 애나 파커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이, 이게 정말이야?”
고개를 끄덕인 사라 심슨은 에덤 크루거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었다.
“30만 달러면 1년에 2만 달러…….”
간호사인 자신의 월급과 연금으로 지급될 보험금까지 더하면 풍족하진 못하더라도 두 자식을 키우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 정도 수익을 낼 수만 있다면 자식들을 부족함없이 키우는 게 가능했다.
“어떻게 할래?”
자매라서 그런지 에덤 크루거와 이야기를 나눌 때 보이던 어수룩한 모습이 아닌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
‘내가 힘들 때 언니가 도와줬으니 이번엔 내가 도와줘야 해.’
사라 심슨은 간절하기까지 했다.
“이거…… 정말이지?”
“방금 아메리칸 리전과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맺은 곳이라고 말했잖아.”
애나 파커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사라 심슨은 그런 언니의 모습에 애가 탔다.
“그리고 크루거 씨가 나만 알고 있으라면서 말해 줬는데, 1인당 30만 달러 이상도 투자할 수 있대.”
“……보상금 전부를 투자할 수 있다고?”
“응. 전사자 유족들에겐, 특히 어린 자식이 있는 유족들에겐 그런 혜택을 주려는가 봐.”
에덤 크루거는 그런 이유를 들먹이며 초과 투자에 대해 말해 주었다.
“다만 자신들도 위험을 감수하는 거라 그 상품을 가입했을 때 정산 비율이 원래보다 10퍼센트 정도 낮대.”
“위험?”
“이런 혜택을 일부 사람들한테만 줘 봐.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어? 거기다 보상금을 모두 가져가면 아메리칸 리전에서 제동을 걸 수도 있고.”
“……그 사람에게 들었구나?”
동생 사라는 이런 걸 생각할 만큼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다.
“칫.”
‘확실히 맞는 말이긴 해.’
누군 더 받는데, 누군 덜 받는다?
재향군인회 내에서 분란이 일어날 거다.
그건 아메리칸 리전도 바라는 일이 아닐 거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5만 달러는 남겨 놓는다고 쳐도…….’
애나 파커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때였다.
“언니, 지금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긴 미안한데, 살 사람은 살아야지.”
이 역시도 애나 자신이 동생 사라에게 했던 말.
애나는 손을 잡아 오는 동생의 모습에 입술을 달싹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난…….”
“다녀왔습니다.”
오늘 하루 많이 피곤했는지 낯빛이 어둡고 어깨가 굽은 애나의 아들 조던과 릴리가 들어온다.
“이모!”
토다닥 달려와 사라에게 안기는 릴리.
사라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던을 봤다.
“잘 지냈니, 조던?”
“저야 뭐…….”
우물쭈물거리던 조던은 이내 릴리를 불러 2층으로 올라갔고, 사라 심슨은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예전엔 참 활기찼던 조카, 조던.
그런데 미들스쿨에 진학한 이후부터는 계속 저렇게 기죽은 모습을 보인다.
“언니, 조던 학교에서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답답해하는 그녀의 모습에 애나는 2층으로 올라가는 조던과 릴리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랬다. 자신은 자식을 부족함 없이 키워야 할 의무가 있었다. 자신의 몸이 부서지더라도 말이다.
사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 사람 연락처 가지고 있지?”
“어? 이, 이렇게 빨리 결정을 내리려고?”
“일단 이야기는 들어 보려고.”
사라가 돌아간다면 자신은 또 정신을 놓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 떠오르는 남편의 모습.
남편을 잃은 슬픔은 그 어떤 위로의 말로도 당장 극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정신이 멀쩡한 지금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조던과 릴리,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아, 알았어. 내가 연락할게.”
* * *
“예. 그럼 3시간 뒤에 뵙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에덤 크루거는 입술을 비틀었다.
“드디어 눈덩이가 커졌군.”
산꼭대기에서 굴린 눈덩이가 드디어 커지기 시작하고 있다.
원래의 계획을 수정하길 잘한 것 같다.
“계획했던 대로 진행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사실 투자 모집이 뜸해질 때쯤 꺼내려 했던 초과 투자라는 카드.
계획에 차질이 생긴 만큼 어떤 변수가 발생하지 몰랐다.
에덤 크루거는 완벽했던 자신의 계획에 미세한 균열을 만든 방해꾼을 향해 분노를 토했다.
“기빙…… 이 빌어먹을 것들!”
복지재단 기빙의 투자사업부.
이놈들 때문에 이미 많은 게 어그러졌다.
놈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만해도 모든 걸 통제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통제를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절대 그래선 안 되는데도 말이다.
“확 총이라도 쏴 버렸으면 좋겠군.”
에덤 크루거는 이를 갈았다.
* * *
“모두에게 발신을 했다는 겁니까?”
-예.
정확히는 이런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 성실히 군 생활을 한 장병과 더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유족들에게만 연락을 했지만 그것까지 종혁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최근 전사한 전사자 유족들에겐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그들에겐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종혁은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을, 아내를, 자식을, 부모를 잃은 슬픔.
슬픔이 너무 지독해 이성이 흐려지는 시기.
이건 잘한 거다.
-코라 인베스트먼트의 투자를 받은 유족과 장병들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고요.
입단속을 하며 언론에 노출되는 건 피하는 동시에, 이미 냄새를 맡은 언론들에게는 엠바고를 걸어 놓은 상태다. 군인들만 이런 혜택을 받는다면 분명 말이 나올 테니 말이다.
확보한 부동산에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 입주하기 전까지는 단속을 해야 됐다.
종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속에 숨은 다른 뜻을 읽어 냈다.
‘코라를 배려하는군.’
코라 인베스트먼트는 재향군인회가 어려운 시기에 손을 뻗어 준 은인이었다.
그들의 태도가 다소 불만스럽다고 한들 기분이 나쁘다며 그 은혜를 배신할 순 없었을 거다.
‘안 좋은 소문이 많았었는데…….’
돈이 모여들면 그 돈에 눈먼 사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 욕망을 이겨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마찬가지로 재항군인회도 그렇게 돈에 눈이 먼 이들이 저지른 비리와 관련된 소문이 무성했었는데, 아무래도 회원들을 위해 무리를 했던 것이 와전된 게 아닐까 싶었다.
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인들에게 더 많은 복지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행동했던 것들이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래도 일단 코라 인베스트먼트와 계약을 맺은 이들의 명단을 주시겠습니까?”
-음. 계약을 무를 순 없을 텐데요.
최소 3년 계약이다. 코라 인베스트먼트는 한 번 투자를 하면 3년간 투자금을 뺄 수 없다고 계약서에 명시해 뒀다.
그 안에 투자금을 빼면 위약금이 발생한다.
“예, 맞습니다. 3년이죠.”
-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5분 안에 메일로 넘겨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해 주십시오.”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사무실을 둘러봤다.
웅성웅성.
족히 300평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사무실, 복지재단 기빙의 투자사업부를 가득 채운 사람들.
월 스트리트 출신의 증권맨들이다.
경기 침체 등 여러 이유로 직장을 잃은 엘리트들. CIA가 고르고 고른 사람들이다.
“보스! 이것 좀 봐 주시겠습니까?”
“난 이제 보스가 아니라니까요.”
보스는 옆에서 생기 가득한 얼굴로 일을 하고 있는 장년인이다.
미국을 주저앉힐 뻔했던 닷컴 버블에서 활약을 했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성을 상부에 성토하다가 잘려 버린 인물.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사람들이다.
짜악!
300평 사무실 전체를 울리는 박수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종혁에게로 향한다.
“전 이제 물러나지만, 한 가지만 당부하겠습니다. 우리 투자사업부의 존재 의의는 이거 하납니다. 보다 많은 이들에게 혜택들!”
“예!”
사무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대답에 종혁은 다시 한번 외쳤다.
“보다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그를 위해 궁리하고, 또 궁리하십시오!”
“예-!”
다시 우렁차게 대답한 직원들은 눈빛을 뜨겁게 번들거리며 컴퓨터와 자료를 응시하기 시작했고, 종혁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이잉! 지이잉!
“예, 최종혁입니다.”
-어디야? 얼른 달려와! 사건이야!
순간 종혁의 눈이 번뜩였다.
“어딘데요?!”
-용커스!
“먼저 출발하세요, 벤! 곧 따라가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투자사업부의 새로운 부장이 된 장년인을 응시했다.
“……앞으로 투자사업부를 부탁하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이렇게 일할 맛 나는 직장을 내 손으로 박살 낼 생각은 없으니!”
그동안 오직 최대한의 이득만 좇으며 살아온 그.
그러나 기빙은 다르다.
최소한의 이득.
가진 자금을 모두 써도 되니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거다.
이보다 더 보람찬 직장이 있을까.
그동안 수익성 때문에 투자를 포기해야 됐던 모든 사업아이템들이 그의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그런 그와 뜨거운 악수를 나눈 종혁은 몸을 돌려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이젠 코라에만 집중할 수 있겠군.’
지금쯤 뭘 하고 있을지 참 궁금한 코라 인베스트먼트.
종혁은 그 생각을 하며 용커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