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56화>
“일단 이야기에 앞서 감사와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가, 감사요?”
“댄 심슨 일병의 순직은 저희 미국을, 그리고 미국 시민을 지키기 위한 숭고한 희생이었으니까요.”
“아…….”
단발 금발에 안경을 낀 사라 심슨의 눈이 흔들린다.
먼 곳으로 파병을 갔다가 시체로 돌아온 남편.
정복을 입은 두 명의 군인이 부고를 전하러 왔을 때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부정했었다.
-톰이 양치질을 했다고? 와우!
-톰, 이 아빠가 없으면 네가 엄마를 지켜야 해.
-시간이 다 됐네. 아! 더 통화하고 싶다! 이왕이면 사라 너랑 키스도!
-사랑해, 사라. 다음에 또 연락할게.
부고를 받기 고작 2주 전, 영상통화로 이야기를 나눴던 남편 댄.
그런 남편이 죽었다는데 어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남편이 관에 누워 돌아왔을 땐 그녀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댄이 죽었구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가 죽었구나.
그런 남편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이런. 죄송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에덤 크루거가 내미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은 그녀는 애써 웃었다.
“그런데 재향군인회에서 저에겐 무슨 일이신가요?”
“음. 정확히는 재향군인회와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맺은 투자회사입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현재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마트에서 캐셔를 하고 있어요.”
“역시 그렇군요.”
사라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고, 에덤 크루거는 씁쓸히 웃었다.
“현재 미국의 경기가 좋지 않다는 건 심슨 씨도 잘 아실 겁니다. 아마도 현재 일하시는 마트에서 직원 감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 겁니다.”
흠칫!
정답이다. 다음 달에 그에 대한 면담을 진행한다고 했다.
“뒷조사를 한 게 아닙니다.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는 일이죠.”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지출을 줄이려 한다.
그건 기업도 마찬가지.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골치 아픈 건 아무래도 인건비였고, 직원 감축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정이 있으시니 웬만해선 퇴직을 당하지 않으실 테지만, 아무래도 심슨 씨의 나이가 걸리는군요.”
언제든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는 이십대 중반의 나이.
남편이 없다고 해도 감축 대상 우선순위에 꼽힐 수밖에 없다.
“마, 말도 안 돼요! 제게는 톰이 있다고요!”
“하지만, 그 마트에는 심슨 씨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겠죠. 다수의 자식을 가진 홀어머니라든지 장애인 자식이나 부모를 둔 가장, 연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인, 엄청난 빚이 있는 사람 등 힘든 사연을 가진 분들이 존재할 겁니다.”
사라 심슨이 다시 놀란다. 정말 그런 사람들이 동료로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얼굴이 사라 심슨의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 그래도! 그래도……!”
“이 사회는 냉혹합니다, 심슨 씨.”
“아…….”
사라 심슨의 몸이 크게 흔들리고, 에덤 크루거가 안경을 추켜세운다.
“이런 위험성 있기에 재향군인회가 심슨 씨를 추천한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추천이라는 말에 억지로 감정을 추스르는 그녀.
에덤 크루거는 그런 그녀에게 냉혹한 현실에 대해 더 알려 주었다.
“아마 직장에서 강제로 퇴직을 당하게 되면, 심슨 씨는 미국의 경제가 좋아져 다시 직장을 구할 때까지 댄 심슨 일병의 전사자 보상금으로 버티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건 비관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팩트입니다. 실제로 작년부터 그러신 분들이 많고요.”
대학에서 박사 과정까지 밟은 이들도 일자리를 잃는 시기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라 심슨이 마트에서 잘린다면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일 터였다.
그 말에 다시 하얗게 질리는 그녀.
“그래서 재향군인회에선 저희 투자회사와 조인을 하여 여러분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리고 있습니다.”
“기회요?”
“이것을 봐 주시겠습니까?”
에덤 크루거는 한 장의 카달로그를 내밀었다.
“임대차…… 사업 투자 설명서?”
임대차라는 말을 처음 들어 본 그녀기에 어리둥절해 한다.
“쉽게 말해 심슨 씨가 아파트를 사고, 세입자를 들여 월세를 받는 사업입니다.”
“네? 저, 저는 그런 걸 살 돈이 없는데요?”
“그러니 심슨 씨와 같은 처지인 분들과 돈을 모아 아파트 같은 공공주택을 사는 겁니다.”
“……?”
에덤 크루거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약간 답답해했다.
“예를 들어 심슨 씨를 포함한 10명의 사람들이 모여 10개의 방이 있는 작은 아파트를 매입한다고 치죠. 그럼 심슨 씨는 그중 1개 방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진 이해하셨습니까?”
“아……! 그래서 월세라고!”
“예. 심슨 씨는 그 방을 통해 세입자에게서 월세를 받으실 수 있는 겁니다. 마트 캐셔로 일하며 번 돈과는 별개로 말이죠.”
“네? 하지만 방금…….”
“심슨 씨, 방금 제가 어디와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고 했죠?”
“재향군인회요…….”
“예, 재향군인회입니다. 이 미국에서 강력한 단체 중 한 곳인 재향군인회. 그런 재향군인회가 이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장병의 유족들을 어찌 가만둘 수 있을까요. 곧 대대적으로 여론몰이를 할 겁니다.”
누가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인의 유족을 거리로 내쫓았는가 하는 여론몰이. 그럼 웬만한 곳은 부담스러워서라도 유족을 해고시킬 수 없다.
Thank you for your servise.
미국은 군인을 무척이나 존경하는 나라니까.
“여기에 저희 코라 인베스트먼트에서도 이 상품에 가입을 하신 분들이 다니시는 직장에 작은 투자, 일종의 보조금이 투입될 겁니다. 음, 냉정하게 말하자면 심슨 씨 본인의 돈으로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게 하는 거죠.”
그쪽에서 받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여론 때문이라도 쉽게 해고시킬 순 없을 거다.
사라 심슨은 에덤 크루거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투자 설명서로 시선을 돌렸다.
“사, 삼십만 달러?”
“한 분께서 최대로 투자하실 수 있는 금액이 삼십만 달러입니다. 최저는 만 달러부터죠. 혹시 보상금을 어떤 형식으로 받으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일시불인지 연금 형식인지.
“연금이요. 앞으로 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남편처럼 사고사를 당할 수도 있고…….”
그럼 남겨진 톰은 어떻게 될까.
자신이 잘못되어도 톰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게 엄마의 마음이었다.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흠, 그럼 그 부분은 연금을 담보로 잡아 대출을 하면 되겠군요. 아, 이자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월세를 받기 시작하면 남편분의 보상금보다 훨씬 많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으니까요.”
삼십만 달러를 투자하는 사람 열 명이 모이면 삼백만 달러고, 백 명이 모이면 삼천만 달러다. 매물의 매입가가 커질 수록 수익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현재 부동산 가격이 많이 폭락하신 건 아실 겁니다.”
“대출을 갚지 못해서…….”
“오, 아시는군요. 저흰 그런 매물 중 알짜배기인 매물들을 탐색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죠.”
에덤 크루거는 한 장의 사진과 등기부등본을 내밀었고, 사라 심슨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여긴 센트럴파크 주변의?”
“천 명의 투자자를 모아 매입을 할 예정입니다.”
“아.”
사라 심슨의 눈이 방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흔들린다.
에덤 크루거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심슨 씨, 제 조카도 군인이었습니다. 2003년 이라크로 파병을 갔고…… 후우.”
말을 하다 만 에덤 크루거가 잠시 먼 곳을 응시하자 놀란 사라 심슨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인다.
“후.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지금 당장 결정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요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 역시 군인의 가족인데 어찌 남편 되시는 분의 목숨값을 내놓으라고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험한 세상 기댈 곳에 살아갈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안쓰러워 제의를 하는 것뿐이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연금 형식의 보상금보다 월에 겨우 몇 백 달러 정도만 더 받는 수준일지라도.
“혹시라도 중간에 누군가 빠져나간다고 해도 너무 걱정 마십시오. 그 지분에 대해선 저희 코라가 매입을 하거나 다른 투자자를 받을 테니까요.”
“저, 저는…….”
“아, 음식이 나왔군요. 저는 그저 제의만 드릴 뿐이니 돌아가셔서 생각해 보시고 결정해 주세요. 드시죠.”
“……네.”
사라 심슨은 잠든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후 식사를 마친 사라 심슨과 에덤 크루거가 몸을 일으켜 나가자, 조용히 듣고 있던 종혁과 벤, 드롭이 핸드폰을 든다.
“몰리, 전데요. 뉴욕 재향군인회와 파트너십을 맺은 코라 인베스트먼트에 대해 조사 좀 해 줄 수 있을까요? 공시된 자료만이라도요, 예.”
“난데, 에덤 크루거라는 인물에 대해 조사 좀 해 줘. 코라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회사 소속이야.”
‘우려라면 좋겠지만…….’
종혁은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서는 에덤 크루거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 * *
“코라 인베스트먼트. 3년 전, 월 스트리트에 설립된 투자회사로 설립 당시의 자본 규모는 100만 달러로 그렇게 크지 않아.”
주요 투자 분야는 금이나 보석, 채권 등의 안전성 자산. 2006년 말부터는 부동산에 진출하여 임대 사업을 하고 있다.
“주로 일반인을 위한 아파트를 사들여 리모델링 후 다시 임대를 하고 있어.”
말을 하던 몰리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왜 이때 임대 사업을 시작한 걸까?”
“사람들이 집을 뺏기기 시작했으니까요.”
종혁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응?”
“무리하게 대출을 해서 집을 샀다가 치솟는 금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집을 경매로 넘기게 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 뭘까요?”
“그거야 노숙을 할 게 아니라면…… 아.”
그런 거다. 결국 그들에게 선택지는 다시 월세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었다.
이전보다 오히려 월세가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월세를 다시 구할 수밖에 없겠지.’
코라 인베스트먼트의 대표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시류 굉장히 잘 읽었다고 봐야 했다.
“코라 인베스트먼트가 뉴욕 재향군인회와 연결됐을 때가 언제인가요?”
“2007년 10월부터.”
“혹시 이유는 조사됐을까요?”
재향군인회는 자체적으로 자본을 관리하는 걸로 알고 있다. 회원들, 즉 제대한 군인들이 내는 회비와 기부금, 맡긴 연금으로 안전성 자산에 투자하고 로우 리스크의 펀드를 운용한다.
이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했다.
“조사해 보니까 코라 인베스트먼트는 이 임대 사업에서 큰 이득을 보지 않았어. 정확히는 이득을 볼 의지가 없다고 봐야겠지.”
주로 전역한 군인이나 미혼모 등 사회적인 약자를 임차인의 우선순위로 삼았다.
“거기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소문에 의하면 재향군인회가 운용하는 펀드가 작년에 천문학적인 손해를 봤다고 해.”
드롭이 다가오며 말하자 의아해하던 종혁은 이내 이마를 잡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투자를 한 거네.”
사기만 하면 값이 오르는데 사지 않을 이유가 없잖은가.
아마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의 대부분을 여기에 꼬라박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손해를 본 상황에서, 이젠 함부로 자금을 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코라 인베스트먼트가 접근해 군인을 위한 사업을 하겠다고 한 거다.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그렇게 해서 실질적으로 부동산을 구매한 건가요?”
“이게 좀 복잡하기는 한데…….”
A라는 부동산을 사기 위해 10명의 투자자가 필요하다면, 이 10명을 하나의 법인으로 묶어 A를 매입하게 만든 거다.
“다만 법인의 소유주는 코라 인베스트먼트야. 그쪽에서 수익의 10퍼센트를 가져가는 대신, 세금의 일정 부분 보조와 건물 관리를 부담하고 있어.”
“그럼 투자자들에게 월급 형식으로 돈을 지불하는 거네요.”
“그렇게 되면 투자자가 내야 될 세금이 엄청 낮아지지.”
서로 윈윈을 하는 결과다.
코라 인베스트먼트는 수익의 대부분을 투자자에게 돌리지만 겉으로 보이는 자산 규모를 키움으로써 외부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고, 투자자는 단순 노동자에 불과하니 세금 비율이 확 낮아진다.
단돈 10달러도 아까운 이 어려운 시기에 돈을 더 많이 벌면서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다면 좋은 일이었다.
“또 투자자에게 결정권을 줌으로써 부동산 매매도 코라가 함부로 할 수 없도록 해 놨어. 여기 표준 계약서.”
몰리가 코라 인베스트먼트가 홈페이지에 공시한 계약서를 띄운다.
주욱 읽어 내린 종혁은 턱을 쓰다듬었다.
‘작정하고 사기를 친다면 이것도 별 의미가 없는 거긴 한데…….’
“벤?”
종혁은 잠시 밖에 나갔다 온 벤을 봤다.
“에덤 크루거는…… 음.”
수첩을 꺼내든 벤은 머리를 긁었다.
“사기로 입건된 게 몇 번 있긴 한데, 별거 없던데?”
그건 모두 이, 삼십대에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아서 처벌받은 거다. 32살 이후로 전과는 없었다.
“조카가 정말 이라크에서 전사한 것도 맞고.”
정보원의 정보에 따르면 사생활도 모난 곳이 없다고 한다.
“대학은 뉴욕시립대. 농구 클럽에서 활동했고, 학점도 준수해. 전공은 경제학. 코라 인베스트먼트에 입사하기 전 직장에서 안 좋게 해고당했다고는 하는데, 그쪽 이야기를 들어 보니 투자자에게 너무 퍼 줘서 그랬다고 하더라고.”
“퍼 줬다고요?”
“만 달러 미만의 소액 투자자들만 담당했는데, 투자자가 더 많은 이득을 가져갈 수 있도록 계약서를 수정했나 봐.”
“미쳤네.”
이외에는 깨끗했다. 아니, 코라 인베스트먼트에 강력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는 없었다. 대표부터 말단 직원까지.
“그래요. 흐음…….”
“최, 아무래도 우리가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 같은데?”
‘솔직히…… 어딜 봐도 사기는 아니야.’
만약 저들이 터무니없는 수익을 보장했다면 종혁은 단번에 그들이 사기꾼임을 알아차렸을 거다.
하지만 코라 인베스트먼트가 창출하는 수익은 인건비를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누가 봐도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호의로 이런 사업을 벌이는 거다.
그런데 코가 간질거린다.
얼마 전 누가 봐도 호인이었던 엘먼 풀러를 보고 간질거렸던 코가.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