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52화>
불빛 하나 켜지지 않은 건물 안.
선착장을 내려다보는 종혁이 입술을 깨문다.
이 늦은 시간 어딜 가려는지 선착장 중앙에서 불빛을 켜고 있는 자동차 한 대와 그 옆에서 담배를 펴고 있는 대니 트레호의 아들, 로니 트레호.
치익!
-전 대원 정해진 포지션에 위치. 명령을.
MDPD와 FBI SWAT 대원들의 무전에 종혁이 다급히 입을 연다.
“아직입니다. 대기하세요.”
아직이다.
해상으로 작전을 나간 팀의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기다려야만 했다. 섣불리 급습을 했다가는 그들이 밀입국자들을 인질로 삼을지도 몰랐다.
“하, 씨발. 왜 이렇게 연락이 안 오는 거야?”
분명 레냐를 넘긴다고 했다.
그게 어디든 누구든 자칫 레냐를 놓칠 수 있었다.
“제발 빨리…… 어?”
-타깃 포인트에서 움직임 감지!
같은 걸 본 종혁의 눈이 부릅떠진다.
‘레냐!’
선착장 중앙에 세워진 차로 다가오는 레냐.
그때처럼 새하얀 프릴 원피스를 입은 레냐의 모습에 종혁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런데…….
“뭐야, 저건 또?”
-타깃 포인트에서 다수의 움직임 감지!
레냐처럼, 그리고 엘리나처럼 새하얀 프릴 원피스를 입은 여성들.
“……씨발?”
자매가 단순히 같은 옷을 입은 게 아니었다.
유니폼. 저건 어떤 목적으로 입는 유니폼이었다.
‘그건 아마도…….’
뒤통수를 맞은 종혁의 목구멍으로 뜨거운 분노가 넘어간다.
-차에 시동이 걸렸습니다, 최.
잡아야 한다. 지금 저놈들을 놓치면 골치아픈 상황이 벌어진다.
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미안합니다, 케인 반장. 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종혁은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다.
“전 대원…….”
“최 요원! 해상팀에서 무전이 왔습니다!”
번쩍 떠지는 종혁의 눈.
다급히 받아 드는 무전기에서 케인 반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최, 여긴 끝났습니다. 기다렸습니까?
“……존나게요.”
자신이 여자라면 사랑에 빠질 뻔한 타이밍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저희도 시작하겠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종혁은 자신의 무전기를 들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살기 가득한 미소가 피어났다.
“전 대원, 작전 시작.”
-라져! 무브, 무브, 무브!
아치형 입구 양옆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그림자들과 선착장 펜스를 넘는 그림자들.
“우리도 갑니다! 타격팀, 여성들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저격팀, 좆같으면 그냥 쏴 버려!”
무전기를 집어 던진 종혁은 권총을 빼 들며 몸을 돌렸다.
타다다당! 콰광!
선착장 안에서 울리는 총소리들.
그 섬뜩하고도 통쾌한 하모니를 들으며 로니 트레호가 탄 차에 도착한 종혁은 너무 당황해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로니 트레호의 모습에 주먹을 들었다.
콰아앙!
차창을 부수고 들어가 로니 트레호의 멱살을 잡는 종혁의 손.
“나와, 이 개새끼야.”
“끄악?!”
콰자작! 쿠당탕!
로니 트레호를 바닥에 던져 버린 종혁은 SAWT 대원들이 제압하는 그를 일견하며 차 뒷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레냐의 모습에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알라님 모든 신에 감사했다.
하지만 곧 슬퍼졌다.
‘이 아이가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럴 때마다 엿 같다.
종혁은 애써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엘리나가 보내서 왔어. 아저씨랑 갈까?”
“언니가요?!”
“그래. 언니가…… 보내서 왔어.”
“엘리나 언니 어디 있는지 아세요? 레냐는 안 보고 싶대요?”
“멀리…… 좀 멀리 가서 레냐와 연락을 할 수가 없대. 그래서 미안하대. 그래서 아저씨를 보낸 거야. 자기 대신 레냐를 너를 돌봐 달라고.”
“이잉…….”
그럼 왜 말을 해 주지 않은 걸까.
레냐가 떼를 쓸 거라고 생각한 걸까.
서운함이 폭발해 버린 레냐는 울음을 터트리며 종혁의 품을 찾아들었다.
마치 아빠처럼 넓고 따뜻한 품.
왜인지 낯설지 않은 품에 레냐는 더 크게 울어 버리고 말았다.
“미안해. 아저씨가 미안해. 구해 주지 못해서…… 그때 알아차려 주지 못해서…… 미안해.”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구해 주지 못하고, 알아차려 주지 못했다는 게 무슨 말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레냐는 우느라 곧 잊어버렸다.
타다다다당!
“으아아앙!”
살벌하고 지독한 전쟁터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압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끄으.”
“아아악!”
몸에 구멍 몇 개씩 달고 바닥을 기는 버러지들.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씨근거리는 레냐가 보지 못하도록 레냐의 뒤통수를 살짝 누른 종혁이 선착장 안으로 들어간다.
‘결국 얘가 해결했네.’
이 아이가 해결한 거다.
하염없이 달리고 달리다 자신의 차 앞에 쓰러진 레냐 덕분에 이번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거다.
레냐가 아니었다면 인식조차 하지 못했을 이번 사건.
경찰로서 반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
‘후, 열심히 하자. 더 열심히.’
억울한 피해자를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도록.
어쩌면 구했을지도 모를 엘리나.
종혁의 입에서 습한 한숨이 뱉어져 나왔다.
그때였다.
“대장님!”
“최!”
다급한 부름에 그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긴 종혁은 이내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잔뜩 겁을 먹은 채 컨테이너 박스들에서 걸어 나오는 새하얀 프릴 원피스를 입은 14명의 여성과 마치 방처럼 침대 따위로 꾸며진 컨테이너들.
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의심조차 안 했던 것일까.
뿌드득!
“레, 레냐!”
“언니들!”
종혁은 버둥거리는 레냐를 바닥에 내려놓았고, 레냐는 여성들에게 달려가 그녀들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그런 레냐를 꼭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천사들.
쿠당탕!
“아악!”
종혁은 SAWT 대장에 의해 바닥을 뒹구는 로니 트레호의 모습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 새끼는 왜…….”
“어우. 수송 차량이 있는 곳이 여기가 아니었나? 나 잠시 담배 좀 피우고 올 테니까 이놈 좀 부탁합니다.”
“저도 같이 가시죠. 어우, 야간 작전이라서 뻐근하네.”
기지개를 켠 SAWT 대장과 요원들은 몸을 돌려 멀어지기 시작했고, 종혁은 피식 웃었다.
‘재밌는 양반이네.’
그래도 이렇게 판을 깔아 줬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대니 트레호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거기 아가씨들. 레냐 눈 가려요.”
“……!”
뭔가를 깨닫곤 다급히 레냐의 눈을 가리며 눈을 빛내는 여성들.
종혁은 바닥을 구른 고통에 꿈틀거리는 로니 트레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가랑이 사이에 서서 발을 들어 올렸다.
“죽진 않을 거야. 죽지는…….”
“자, 잠깐!”
부웅! 콰직!
“……!”
종혁은 입을 떡 벌리는 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콰드득!
“끄아악!”
“아가리 닫아라. 혀 잘린다.”
종혁의 발이 로니 트레호의 전신을 잘근잘근 짓밟기 시작했다.
* * *
“으흐음.”
이른 아침, 속옷만 입은 채 부엌에 선 히스패닉계 여성이 토스트를 베이컨과 함께 노릇하게 구워 내며 콧노래를 부른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모르겠지만 얼굴에 윤기가 도는 그녀의 등 뒤에서 털이 숭숭 난 두껍고 하얀 팔뚝이 뻗어 나와 건강한 배를 끌어안는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목덜미에 닿는 뜨거운 콧김.
“좋은 아침이야.”
“나 칼 들었어요.”
“오우.”
과장되게 물러선 엘먼 풀러가 여성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린다.
짜악!
“대충 차려. 아침을 해 주는 것만으로도 난 만족하니까.”
살이 뒤룩뒤룩 찐 것도 모자라 아침밥도 차려 주지 않았던 전 부인. 그런 주제에 사치는 어찌나 부리던지.
그런 전 부인에 비하면 얼마 전 결혼한 와이프는 천사가 따로 없었다.
‘어차피 내 돈을 노리고 접근한 것이지만…….’
쿠바 밀입국자였던 와이프. 그때 보호를 해 줄 때부터 그런 기미가 보였다.
그럼에도 그녀와 결혼을 한 건 그런 수작을 덮어 버릴 만큼 잘했기 때문이다. 잠자리부터 내조까지 모든 걸.
담배를 문 엘먼 풀러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다음 소식입니다. 어젯밤 밀입국 알선 사업을 하던 대니 트레호가…….
툭!
“……미친!”
식겁하며 몸을 일으킨 엘먼 풀러.
“여보, 식사 다 됐…… 응? 어디 가요?”
“조용히 해!”
안방으로 뛰어 들어간 엘먼 풀러는 다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터지지 말아야 할 게 터졌다.
‘대체 왜! 어떻게!’
-여보세요?
“나야! 어떻게 된 일이야?”
해안경비대에 있는 끈.
분명 어젯밤 대니 트레호가 마이애미로 돌아오는 경로에서 경비정을 치워 주기로 한 사람이다.
-당신이 누군데 아침부터 전화질이야! 끊어!
“어?”
엘먼 풀러는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멍하니 쳐다봤다.
오싹!
뭐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됐다.
그는 다급히 옷을 차려입고 안방을 뛰쳐나갔다.
“나 오늘 안 들어올 수 있으니까 그렇게 알아!”
“여, 여보!”
경찰서로 가야 했다.
아니, MDPD로 가야 했다.
아니, FBI…….
‘빌어먹을!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어디로 가야, 누구를 움직여야 대니 트레호의 입을 막을 수 있을까.
“일단 변호사부터 붙여…….”
현관문을 거칠게 닫던 엘먼 풀러는 집 앞에 서 있는 MDPD SUV에, 아니 그 앞에 서 있는 종혁의 모습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너, 너는?”
종혁은 대경실색하는 그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네가 올래, 내가 갈까?”
“Fuck!”
엘먼 풀러가 다급히 품 안으로 손을 가져가는 순간이었다.
타아앙!
“아아악……!”
어깨에서 피를 뿌리며 바닥을 뒹구는 엘먼 풀러.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간 종혁은 엘먼 풀러의 구멍 난 어깨를 총구로 내리눌렀다.
“캬아아악!”
“이것도 못 참는 씹새끼가 별짓을 다 했다, 그치?”
고작 이따위밖에 안 되는 놈에게 대체 몇 명이나 유린을 당한 걸까.
지난 2년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바다를 건넌 사람들.
그리고 펴 보지도 못한 채 저버린 엘리나 도밍게즈.
그들을 생각하니 뒷목이 뻣뻣해진다.
“넌 뒤졌어, 새꺄.”
섬뜩!
‘무, 무슨 사람의 눈이?!’
순간 사타구니에 힘이 풀린 엘먼 풀러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고, 종혁은 더 반항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혀를 차며 핸드폰을 들었다.
“엘먼 풀러 검거했습니다, 반장님.”
-예, 저희도 방금 막 페드로 인판테를 검거했습니다.
-놔! 빌어먹을 놔-!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물러섰고, 케인 반장의 팀원들이 달려들어 엘먼 풀러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엘먼 풀러, 당신을…….”
귓가를 울리는 미란다의 법칙.
종혁은 어젯밤 그렇게 꾸물꾸물했음에도 맑은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라지게 맑네.”
저 맑은 하늘이 엘리나가 살았다면 지었을 미소 같아서 가슴이 답답했다.
“씨발.”
* * *
또다시 찾은 마이애미공항 앞.
종혁과 케인 반장이 악수를 나눈다.
“잘 놀다 갑니다.”
“……마이애미가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군요.”
“마음에 드는 도시였어요.”
불쌍한 이들을 위해 진심을 다하는 경찰이 있었기에 마음에 들었다.
그런 종혁의 말에 케인 반장이 옅게 웃는다.
“그럼 이제 FBI로 돌아가는 겁니까?”
“아뇨. 일단은 쿠바에 가 보려고요.”
“쿠바…….”
종혁이 왜 쿠바에 가는지 눈치를 챈 케인 반장의 눈빛이 흔들린다.
종혁은 케인 반장의 옆에서 쿠바란 말에 귀를 쫑긋 세우는 레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찾아야죠.”
레냐의 부모를 찾아야 했다.
지금쯤 큰딸이 죽었다는 것조차 모른 채 매일 밤 미국에 있을 딸들의 행복을 기도할 레냐와 엘리나의 부모, 다리오 도밍게즈와 리즈 도밍게즈를.
CIA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다.
검거된 대니 트레호가 토설한 쿠바 내 조직, 아니 페드로 인판테가 현지에서 고용한 밀입국 알선업자들을 만나게만 해 준다면 말이다.
“그러니 그때까지…….”
엘리나의 시신을 보존했으면 싶었다. 멀리 가 버린 딸, 얼굴도 못 보면 얼마나 한이 되겠는가.
케인 반장의 눈빛이 무거워진다.
“걱정 마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죠.”
“예, 다음에.”
“그럼 잘 있어라, 꼬마야. 이 아저씨는 간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아저씨한테 전화하려면 어떻게 하라고 했지?”
“핸드폰을 켜고, 1번을 꾹 누른다!”
“그렇지!”
레냐의 머리를 쓰다듬은 종혁은 쉬이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며 몸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뚜뚜루 뚜뚜뚜 키싱 유 베이베!
“오, 헨리 씨.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했는데!”
CIA 동아시아 담당 헨리 스미스.
-후후. 벌써 돌아가시는 겁니까?
“휴가도 거의 끝났으니 이제 돌아…….”
-제 선물도 안 받고요?
“예? 그게 무슨…….”
“어? 엄마! 아빠-!”
“레, 레냐-!”
종혁은 공항 게이트에서 뛰어나오는 중년 부부를 보곤 입을 떡 벌렸다.
아무래도 휴가가 약간 더 길어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