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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51화 (451/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51화>

    기이이잉!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마이애미공항.

    입구 앞에 선 종혁이 케인 반장, 엘먼 풀러 형사와 작별을 고한다.

    “아쉽군요.”

    “죄송합니다. 웬만하면 놈들을 잡을 때까지 있으려고 했는데…….”

    맡기겠다는 시선에 케인 반장이 꼭 잡겠다는 듯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종혁은 고개를 돌려 엘먼 풀러를 바라봤다.

    “나오지 않으셔도 됐는데요.”

    “그래도 인연이 있는 분이 떠난다는데 안 올 수가 없죠. 범인을 잡는 건 저도 도울 테니 아마 곧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레냐에게 안부 전해 주시고요.”

    “예, 그러겠습니다. 1시 비행기라고 하셨죠? 어서 들어가 보시죠. 늦겠습니다.”

    “아, 그건 괜찮습니다. 퍼스트거든요.”

    볼에 보딩 패스를 두드리는 종혁의 모습에 엘먼 풀러가 부럽다는 듯 혀를 내두른다.

    “제가 다음에 다시 이 도시에 놀러 오면 찐하게 한잔하죠. 반장님도요.”

    “그땐 제가 사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가시길.”

    “예, 그럼.”

    종혁은 걸음을 억지로 뗀다는 듯 아쉬워하며 공항 안으로 향했고, 케인 반장은 엘먼 풀러를 봤다.

    “전 샬로트 제인 메모리얼 파크로 가 볼 건데…….”

    “죄송합니다. 사건이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수사 진행 사항이 궁금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그럼.”

    고개를 까딱인 엘먼 풀러는 몸을 돌려 자신의 차로 향했다.

    부르릉!

    그로부터 약 10분 뒤, 엘먼 풀러의 차가 있던 자리로 종혁과 케인 반장이 다가온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엘먼 풀러의 차가 있던 자리를 가만히 응시하는 둘.

    “퍼스트인데 괜찮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제가 돈이 좀 많거든요.”

    농담이라 생각했는지 케인 반장이 실소를 터트린다.

    “그럼 가시죠.”

    “예.”

    둘은 몸을 돌려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 * *

    “하!”

    대니 트레호가 숨을 탁 내뱉자 엘먼 풀러가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해 왔던 종혁.

    지금 가려는데 시간 되냐, 물어볼 게 있다며 계속 그를 긴장시켰었다. 그 탓에 장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제 갔으니 마음 놔. 거래가 언제라고?”

    “내일 자정입니다.”

    “순찰 경로야 잘 알 테지만, 해안경비대 친구들에게도 말해 놓을 테니 잘하고 와.”

    그렇게 말한 엘먼 풀러가 작은 선착장을 둘러봤다.

    배가 약 열두 대 정도 정박할 수 있는 작은 선착장.

    그러나 지금 정박되어 있는 배는 지금 한참 물자를 싣고 있는 대니 트레호 소유의 배 네 척뿐이다.

    이번에 수리를 위해 모두 들어온 배들.

    “여기에 들어오려는 놈은 없지?”

    “있을 리가요.”

    눈을 살벌하게 빛낸 대니 트레호의 입술이 비틀린다.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디에고 가르시아에게 벗어날 순 있었지만, 미래가 막막했던 대니 트레호.

    어부 일을 하던 아버지가 사망하며 남긴 배 한 척과 선착장의 창고 겸 집이 있긴 했지만, 아버지처럼 어부 일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출소가 코앞에 다가왔을 때 밀입국 사업을 생각해 냈고, 동료였던 페드로 인판테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그 짓도 돈과 인프라가 필요했다.

    그때, 엘먼 풀러가 접근해 왔다.

    그들의 계획을 엿들은 다른 죄수가 소개시켜 준 엘먼 풀러. 그에게 자금을 얻은 대니 트레호는 출소를 하자마자 이곳 선착장부터 장악했다.

    다른 배의 선장을 교통사고로 중태에 빠트리거나 엘먼 풀러의 도움으로 교도소에 보내고, 창고를 불태우는 등 자신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이용하지 못하게 만든 선착장.

    피는 속일 수 없는지 자신이 교도소에 가 있는 동안 험하게 자란 아들도 적극 동참했다.

    그렇게 원래 공용 소유였던 이곳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바뀌게 됐다.

    “무서워서라도 못 오죠. 그래서 마음 놓고 상품들을 여기다 보관을 하는 거고요.”

    대니 트레호가 컨테이너들을 가리키자 엘먼 풀러의 눈이 빛난다.

    “어떻게, 오신 김에?”

    “……됐어. 다 먹어 봤어. 그보다 그 레냐? 걔는 어떻게 되지?”

    상황을 이렇게 꼬아 놓은 좆같은 꼬맹이.

    “제가 다시 경계선 안으로 들어올 때쯤 제 아들이 넘길 겁니다.”

    “같이 가는 게 아니군.”

    “한 명은 남아 있어야 일이 어그러졌을 때 사업을 인계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상품들도 처분할 수 있을 테고요.”

    섬뜩한 그 말에 엘먼 풀러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그럼 수고해.”

    “예.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손을 흔든 엘먼 풀러가 떠나자 대니 트레호는 침을 탁 뱉었다.

    “빌어먹을 짭새 자식.”

    사업이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자 엘먼 풀러가 거슬린다. 이렇게 영업장에 찾아와서 더.

    그러나 대니 트레호 자신에 대한 비밀을 참 많이 알고 있는 엘먼 풀러.

    ‘언젠가 정리해야 되는데…….’

    “페드로와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군.”

    이제 그들의 수익이면 얼마든지 부패한 경찰을 한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아니면 훌륭한 경찰을 부패한 경찰로 만들거나.

    머릿속에서 계획을 짜 가던 대니 트레호는 쉬고 있는 선원들을 발견하곤 얼굴을 구겼다.

    “뭣들 해! 얼른 물자 실어! 일 안 나갈 거야!”

    황급히 물자를 싣기 시작한 그들은 몰랐다. 근처에서 자신들을 지켜보는 시선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선착장의 전경이 훤히 보이는 한 건물 안.

    떠나는 엘먼 풀러를 차갑게 응시하다 시선을 돌린 케인 반장이 종혁을 보며 어이없어한다.

    “왜요?”

    “……아닙니다.”

    돈이 많다는 게 농담인 줄만 알았던 케인 반장. 그러나 그것은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고작 감시를 위해 건물을 통째로 사 버리다니.’

    대니 트레호가 용의선상에 오르자마자 이 건물을 포함해 저 선착장이 잘 보이는 건물 세 채를 매입해 버린 종혁.

    뿐만 아니라 각 건물에는 최신형 원거리 도청기기까지 설치됐다.

    빈틈없이 놈들을 감시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기쁨보다 종혁의 재력에 놀란 감정이 앞섰다.

    “거래가 내일이네요. 분명 GPS를 끌 텐데 괜찮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이곳 마이애미 해안경비대 친구들은 이런 일에 이골이 나 있으니!”

    시시때때로 바다를 건너는 쿠바인과 멕시인들.

    마이애미 해안경비대와 해상경찰들은 도망치는 배를 추적하고, 나포하는 일에 있어 베테랑들이었다.

    GPS를 껐다고 해도 놈들이 해안선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해안경비대와 해상경찰들이 물샐틈없이 포위할 거다.

    그런 케인 반장의 호언장담에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선착장을 봤다.

    “그럼 이제 남은 문제는 레냐인데…….”

    저 선착장 안으로 들어간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 레냐.

    대니 트레호와 그의 부하들의 차량이 계속 왔다 갔다 했기에 레냐가 아직 저 안에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 확신을 했다면 진즉에 저 선착장을 덮쳤을 거다.

    ‘부디 저 안에 있어야 할 텐데…….’

    대니 트레호를 검거한다고 해도 그가 입을 다물어 버리면 레냐에게 신체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거기다 묘하게 거슬리는 상품들이란 단어.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대니 트레호는 지옥의 악마들도 혀를 내두를 악인일 것이다.

    종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 * *

    묵직하고 큰 엔진 소리와 함께 출렁이는 어둡고 좁은 공간.

    그 안에서 열두 명이 살을 맞댄 채 뜨겁고 지친 숨을 가쁘게 토해 낸다.

    벌써 몇 시간째일까.

    네 시간? 아니, 어쩌면 하루.

    그들은 시간조차 알 수 없는 이곳에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눕지도 그렇다고 다리를 펴지도 못한 채 웅크리고 앉아 있느라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거기다 코를 찌르는 기름 냄새와 생선 비린내, 오바이트 냄새.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지만,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그들은 지금의 이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기로 했다.

    그중엔 메이저리거를 꿈꾸는 18살 소년 호세 안드레아스도 있었다.

    최고 시속 152km의 좌완 파이어볼러이자, 3번 타자인 호세 안드레아스.

    해외 진출이 불가능한, 작디작은 쿠바 리그에서는 큰돈을 벌 수 없기에 프로선수의 꿈을 펼치려면 그에겐 망명밖에 답이 없었다.

    “호세…….”

    “누나, 괜찮아?”

    호세는 다급히 누나를 살핀다.

    심장에 병이 있는 누나, 아델.

    “으응. 난 괜찮아. 넌 괜찮아? 어깨는? 허리는?”

    “괜찮아. 나야 몸이 무기잖아.”

    “……이제 무기라는 말은 그만. 이제부턴 쿠바에서처럼 주먹을 휘둘러선 안 돼.”

    “내가 뭐 아무나 팼나? 누나를 건드리니까 팼지?”

    동네에서 소문난 미녀인 누나.

    미국행을 택한 것은 나날이 악화되어 가는 누나의 심장병을 고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뭐, 뭐?”

    “그러니까 적당히 예쁘라고.”

    빠악!

    “악!”

    “야, 누가 가족끼리 그런 느끼한 말 하래? 죽을래?”

    “……머리 때리지 마라. 이젠 누나라고 안 봐준다.”

    “안 봐주면? 너 따위가 안 봐주면?”

    “이게 진짜…….”

    “거 조용히 좀 합시다. 여기 둘만 있어?”

    “죄, 죄송합니다.”

    몸을 움츠린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말없이 쌍욕을 박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엔진 소리가 작아지며 배가 느려지는 게 느껴진다.

    호세와 아델은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다 결국 멈춘 배.

    벌컥!

    천장, 아니 이 선창을 막아 놨던 뚜껑이 열리자 사람들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뭐해! 얼른 올라와! 빨리! 빨리!”

    “예, 예!”

    가장 먼저 일어나 먼저 뚜껑 위로 몸을 날리는 호세.

    위험이 없는지 주위를 빠르게 살핀 호세는 옆에 접안한 배에 눈을 빛내곤 얼른 누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올라와, 누나!”

    “응!”

    그렇게 하나둘씩 갑판 위로 올라오는 12명의 밀입국자.

    “빨리 저 배로 옮겨 타! 빨리! 빨리 움직여, 이 굼뱅이들아!”

    그들은 쫓기듯 옆에 접안한 배로 옮겨 탔다.

    소총과 칼로 무장한 무서운 사람들로 가득한 배.

    몸을 움츠린 그들은 무서운 사람들이 안내하는 선창 안으로 순순히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너, 이름이 뭐지?”

    “아, 아델이요.”

    위아래로 훑는 대니 트레호의 눈길에 마치 개미가 전신을 기어 다니는 듯한 끔찍한 느낌이 든 아델.

    “아델…… 흠, 알았어. 그럼 너희 중 누가 호세지?”

    “저, 접니다.”

    “……옆의 여자는?”

    “제 누나요.”

    “쯧. 알았어. 타.”

    대니 트레호는 깊숙한 선창, 원래는 얼음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는 창고 안으로 들어가는 아델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쟤는 빼야겠군.”

    호세는 동료이자 동업자 페드로가 밀입국 비용을 대신 줘 가며 데려온 상품이다. 그런 상품의 멘탈이 나가는 걸 페드로가 용납할 리 없었다.

    ‘풀러에겐 다른 여자를 줘야겠어.’

    이번 거래를 마치면 여자 두 명을 시식하겠다고 말한 엘먼 풀러.

    “다 실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대니 트레호는 여기까지 배를 끌고 온 쿠바 쪽 동업자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들어 주곤 부하에게 입을 열었다.

    “출발해. 그리고 경계선 넘으면 로니에게 연락할 준비해 놓고.”

    오늘 큰 거래이자 골칫덩이인 레냐를 소아성애자 변태 의뢰인에게 넘기는 아들, 로니 트레호.

    “알았습니다.”

    부두둥!

    대니 트레호의 배가 크게 선회를 하더니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마이애미로 향한다.

    후아앙! 후아아앙!

    동시에 얼굴을 매섭게 때리기 시작한 겨울의 찬바람.

    윗 지방 사람들은 마이애미를 보고 천국이라 말하지만, 이곳에서 나고 자란 대니 트레호에겐 뼈가 시릴 만큼 추운 바람이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안으로 들어가시죠. 위험합니다.”

    “……그러고 보니 달이 안 떴군.”

    왜 이렇게 주변이 어둡나 했더니 달이 구름에 가려져 있다.

    아주 낮게 깔려 있는 시꺼먼 구름.

    라이트도 함부로 켤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100미터 밖도 볼 수가 없다.

    거기다 바람도 매섭기 그지없다.

    아무래도 내일 파도가 크게 칠 것 같다.

    “이놈의 빌어먹을 기상예보는 맞아떨어진 적이 없어. 자주 왔던 곳이라고 해도 어쩔지 모르니까 속도 줄여서 천천히 움직이라고 해.”

    “예.”

    치익!

    -경계선을 넘었습니다, 선장님.

    “알았어. 지금 간…… 응?”

    기관실을 향해 발을 떼던 대니 트레호는 순간 귓가를 스치는 어떤 이질적인 소리에 미간을 좁혔다.

    다다다다.

    모터음 소리 같기도 하고, 짧고 두꺼운 천이 바람에 맹렬히 나부끼는 듯한 이상한 소리.

    배에 천 같은 게 달렸나 둘러보던 대니 트레호는 이어 들리는 소리에 얼굴을 구겼다.

    우우우웅!

    “빌어먹을! 속도 높여-!”

    -예?

    “속도 높이라고! 짭새들 떴다! 전투 준비!”

    -예, 예!

    “빌어먹을!”

    후다다닥! 철컥철컥!

    배가 다급히 속도를 높이고, 갑판 위가 소란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삐유우우우! 퍼어엉!

    하늘을 향해 쏘아지는 붉은 조명탄.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두운 바다 위에, 그것도 가까이서 켜지는 수십 개의 조명.

    “……아.”

    대니 트레호는 소총을 들어 올리는 모습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 아! 너희들은 포위됐다. 무장을 해제하고 엎드려 대기하라! 다시 말한다! 너희들은 포위됐다. 무장을 해제하고 엎드려!

    대니 트레호의 배보다 더 거대한 전함 네 척과 열 척의 쾌속 무장 경비정들. 그리고…….

    투다다다다다다!

    하늘 위에서 그를 비추는 무장헬기.

    그 모든 절망들이 이쪽을 향해 포를 겨누고 있다.

    모든 게 끝났음을 직감한 대니 트레호는 바닥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배에 올라타 대니 트레호의 머리를 밟는 케인 반장.

    “크으윽!”

    발밑에서 꿈틀거리는 벌레를 경멸 가득한 눈으로 응시하던 케인 반장은 무전기를 들었다.

    “예, 최. 여긴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건 레냐를 구출하는 것뿐이었다.

    케인 반장은 자신이, 그리고 종혁이 부디 늦지 않았기를 바랐다.

    * * *

    “미안해……. 레냐, 미안해.”

    대체 뭐가 미안한 걸까.

    따뜻한 물이 콸콸 나오는 샤워실, 언니의 친구들에게 씻겨지는 레냐는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레냐는 그런 언니의 친구들을 작은 손으로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자신이 울 때마다 언니 엘리나가 해 줬던 위로.

    “흑! 레냐!”

    “수, 숨 막혀…….”

    “흐윽. 미안해. 정말 미안해!”

    힘이 없어서 미안하다. 구해 줄 수 없어서 미안했다.

    나중에 원망을 하겠지.

    그래도 자신들은 그걸 탓할 수가 없었다.

    결국 여성들은 울음을 터트렸고, 그에 레냐의 얼굴도 일그러진다.

    언니를 떠올리니 언니가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에, 엘리나 언니…….’

    레냐를 놔두고 먼 곳으로 갔다는 언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서 언니를 데려오라고 많이 떼를 썼다.

    그때마다 자신을 끌어안고 미안하다고만 한 언니의 친구들.

    “이잉.”

    언니가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었다.

    레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때였다.

    “하루 종일 씻길래!”

    벌컥 문을 열고 외치는 무서운 아저씨.

    “아, 아니에요! 다, 다 씻겼어요!”

    “대충 씻겨! 어차피 가면 또 씻을 테니까!”

    “……네.”

    쾅!

    사내가 문을 닫자 여성들은 눈물을 더 많이 쏟아 내며 레냐의 몸을 씻기고 말렸다.

    레냐로선 마치 공주님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시 입혀진 새하얀 프릴 원피스.

    언니도 입고, 언니의 친구들도 입는 공주님 드레스 같은 원피스.

    레냐는 제자리에서 돌며 행복해했다.

    “미안해. 꼭 견뎌야 해?”

    “아프고 힘들어도 견뎌야 해, 레냐.”

    왜 아프고 힘들다고 하는 걸까.

    견뎌야 된다는 게 무슨 말인 걸까.

    이해를 할 수 없지만, 레냐는 언니에게 배운 대로 손을 흔들었다. 집을 나서면 인사를 하라고 가르쳐 준 엘리나 언니.

    “다녀오겠습니다!”

    “흐윽! 흐아아앙!”

    “닥쳐! 짜지 마!”

    “넌 뭐해! 얼른 차에 타!”

    “네, 네!”

    레냐는 얼른 뒷좌석에 올라탔고, 대니 트레호의 아들 로니 트레호가 그 옆에 앉았다.

    레냐는 고약한 담배 냄새가 풍기는 로니 트레호에게서 슬그머니 멀어졌다.

    “아버지는? 연락 왔어?”

    “아직 안 왔습니다. 아무래도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그런 것 같은데…… 별일은 없겠죠?”

    “한두 번 해 보는 것도 아니고. 걱정 마.”

    벌써 2년째 이 짓을 했지만, 단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다. 이번에도 당연히 그렇게 될 거다.

    “확실히 바람이 많이 불긴 하네. 어쩔 수 없지.”

    충분히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약속 시간에 늦는다.

    “됐어. 출발해. 아버지에겐 나중에 말하면 돼.”

    “예.”

    키리릭, 부르릉!

    시동이 걸린 차가 느릿하게 선착장을 빠져나가는 순간이었다.

    부아아아앙! 끼이이이익!

    갑자기 차 앞을 가로 막는 SUV들.

    느닷없는 상황에 로니와 조직원이 굳을 때, 아치형 입구 양옆에서 튀어나온 SWAT 대원들이 그들을 향해 소총을 들이민다.

    “내려! 차에서 내려!”

    “움직이지 마!”

    “……우와?”

    레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콰과광!

    그녀의 등 뒤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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