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50화 (450/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50화>

우글우글, 웅성웅성.

얇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할리우드.

“정말 여기 할리우드에서 반년간 지낼 수 있단 거지?”

수많은 연예인과 부자들이 사는 할리우드.

마이애미보다 더 살기 편하고 화려한 도시 LA.

기대와 흥분이 가득한 아내의 말에 중년인 다리오 도밍게즈, 아니 아켈로 로페즈가 가슴을 편다.

“어쩌면 아예 눌러살 수도 있지! 내가 근사한 집을 렌탈해 놨으니 기대해!”

“여보!”

품을 파고드는 아내를 꽉 끌어안은 아켈로는 넓게 펼쳐진 할리우드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흐흐. 드디어 내가 왔다, 할리우드!’

어젯밤 너무 흥분이 되어 호텔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든 할리우드.

경찰과 FBI까지 속인 연기력이다.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렇게 그는 결국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제2의 아메리칸드림에 젖어 들어갔다.

그 순간이었다.

“어이, 아켈로 씨. 좋냐?”

“누구…… 흡?!”

종혁은 하얗게 질리는 그와 그 옆의 아내를 보며 입술을 주욱 찢었다.

“레냐는? 없네? 왜 없냐?”

“그, 그게…….”

“이리 와, 씹새야.”

종혁은 주먹을 들었다.

* * *

출근하는 사람들로 인해 북적이는 마이애미의 도로.

한 빌딩 앞에 세워진 푸드트럭에 사람들이 줄을 선다.

“쿠바 샌드위치 하프 하나요!”

“양파 빼고, 맞으시죠?”

5년 전,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 아메리칸드림을 이뤄 낸 삼십대 쿠바 여성은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지으며 쿠바 샌드위치를 구워 낸다.

“여기 있습니다!”

“햄 샌드위치 세 개요!”

“네!”

아침밥을 먹지 않고 출근한 회사원들 때문에 정신없이 샌드위치를 구워 내는 여성은 9시가 되어서야 겨우 숨을 돌린다.

“휴우.”

“쿠바 샌드위치 풀 사이즈로 하나.”

“예! 쿠바 샌드위치 풀 사이즈…… 풀러 형사님.”

낯빛이 딱딱하게 굳는 여성이 안쪽에 걸린 달력을 본다.

“벌써 한 달이…….”

엘먼 풀러는 옅은 미소를 짓는다.

“배고파.”

“……예, 잠시만요.”

바게트처럼 길쭉한 쿠바 번을 버터를 듬뿍 바른 철판 위에서 무거운 판으로 눌러 구워 내고, 그 위에 고기와 각종 야채들을 넣어 다시 구운 쿠바 샌드위치.

여성은 샌드위치를 감싼 포장지 아래에 오늘 아침 수익 전부를 덧대어 넘겨주었다.

“오늘도 고마워. 이건 언제나처럼 쿠바인들을 위해 쓸게.”

“……네. 조심히 가세요.”

밀입국자였던 예전의 자신과 같은 처지인 쿠바 동포들. 그들을 위해 쓰는 돈이라고 하니 이젠 부담스러우니 오지 말아 달라는 말이 쏙 들어간다.

더욱이 엘먼 풀러는 동료 경찰들에게 존경받는 형사다. 엘먼 풀러를 거역했다간 어떤 불이익이 생길지 몰랐다.

그렇게 떠나는 엘먼 풀러를 응시하던 그녀는 앞치마를 벗고 트럭에서 내려 담배를 물었다.

“빌어먹을, 시민권.”

올해 겨우 영주권을 획득한 그녀.

시민권을 얻기 위해선 앞으로 5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즉, 그 안에 엘먼 풀러에게 밉보였다가는 다시 지옥 같은 쿠바로 쫓겨나는 수가 있었다.

“5년. 5년만 참자.”

박탈될 수도 있는 영주권과 달리,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시민권.

시민권만 얻는다면 엘먼 풀러가 무슨 수작을 부린다고 한들 두려울 게 없었다.

“글쎄요.”

흠칫!

갑자기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여성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비스듬히 선 채 응시하며 선글라스를 벗는 케인 반장.

“당신의 영주권 취득에 어떤 비리가 얽혀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추방될 수 있습니다만?”

여성은 케인 반장 옆에 세워진 MDPD의 SUV를 보곤 파랗게 질렸다.

* * *

“예, 최. 어떻게 됐습니까.”

-아켈로 로페즈 확보했습니다. 엘먼 풀러에게 대가성 제안을 받아 연기를 했다는 진술까지 모두요.

역시나 그는 레냐와 엘리나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살아 있습니까?

-일단…… 살려는 뒀습니다. 그쪽은요?

“엘먼 풀러가 마이애미에 정착한 쿠바인들을 대상으로 상납을 받은 정황을 확보했습니다.”

밀입국자들을 도우며 많은 징계를 받은 엘먼 풀러 형사. 그 천사 같은 가면 뒤엔 추악한 악마의 얼굴이 있었다.

“수고했습니다. 마이애미에서 보죠.”

케인 반장은 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엘먼 풀러의 모든 금융 거래 내역을 뒤져 봐. 차명으로 된 것까지 모두. 그리고 레냐의 동선 추적 결과는 어떻게 됐어?”

케인 반장과 종혁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 * *

다리오 도밍게즈, 아니 아켈로 로페즈가 레냐의 아버지가 아닌 게 드러나면서 수사의 초점은 레냐 찾기에 맞춰졌다.

어떤 위협을 피해 도망친 레냐.

그리고 괴한들에게 강간과 폭행을 당해 숨진 레냐의 언니 엘리나.

누가 봐도 전후 사정이 그려진다.

레냐를 찾아야 엘리나를 숨지게 만든 범인을 찾는 거다.

“동선 나왔습니까?”

사무실로 뛰어 들어오는 종혁의 모습에 케인 반장이 차가운 커피를 내민다.

“방금 전 겨우 찾았다고 합니다.”

케인 반장은 세 대의 커다란 모니터 앞에 서 있는 팀원을 불렀다.

“울프?”

이름처럼 짧은 머리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이십대 후반의 남성이 키보드를 두드린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6살 소녀. 솔직히 찾기 힘들었습니다.”

너무 작은 키. 성인들에게 가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희에겐 시작점이 있었죠.”

타닥!

화면에 종혁의 차 앞으로 뛰어드는 레냐가 나타난다.

이후 종혁에게 들려 차에 태워진 레냐.

“처음엔 여기서부터 역추적을 하려고 했습니다.”

화면이 역재생되기 시작한다.

종혁이 차에서 내리며 레냐를 도로에 눕히고, 알아서 일어나더니 뒷걸음질로 골목으로 들어가는 레냐.

이후 근방의 CCTV를 통해 레냐가 도망쳐 온 경로가 쭉 나타난다. 잠깐잠깐 CCTV에 비춰지지만 그걸로도 충분히 그려지는 동선.

CCTV에 나온 시간을 보면 레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두운 골목을 내달린 거다.

대체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 다리를 멈출 생각을 하지 않은 걸까.

종혁의 이가 악물어진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죠.”

다시 정방향 재생, 아니 빨리감기가 되는 영상.

차에 태워진 레냐가 근처 병원의 응급실로 향하고, 약간의 시간이 흘러 엘먼 풀러가 등장한다.

종혁처럼 레냐를 안아 들고 차로 향하는 엘먼 풀러.

그 순간 켜진 나머지 두 대의 모니터, 총 12개로 분할된 화면이 엘먼 풀러의 자동차를 쫓는다.

가끔 CCTV가 없어서 자동차가 잠깐씩 사라지긴 했지만, 기어코 자동차를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도심지를 벗어나 외곽으로 향하는 자동차.

그곳은 역시나 엘먼 풀러가 말한 아켈로 로페즈의 집, 리틀 하바나 인근이 아니었다.

“그리고.”

타닥!

엘먼 풀러의 차가 멈추자마자 갑자기 정지된 화면.

“이 지점이 20일 전, 다른 곳에 있던 CCTV가 옮겨져 설치된 장소인데 11시 방향의 차량에서 내려서 있는 사람들이 보이십니까?”

‘어?’

어두운 밤, 가로등 불빛에 비춰지는 흐릿한 얼굴이지만 기시감이 든다.

분명 최근에 본 얼굴들이다.

‘내가 쟤들을 어디서 봤더라?’

이럴 때마다 화질 복원 프로그램이 간절해진다.

종혁이 아리송해할 때 울프는 다시 영상을 재생했다.

기절해 있는 레냐를 넘겨받고, 엘먼 풀러에게 정강이를 걷어차이는 네 명의 사내.

쿵쿵 뛰며 고개를 연신 숙이던 그들은 화를 내던 엘먼 풀러가 차를 타고 사라지자, 레냐를 뒷좌석에 집어 던지며 자신들이 타고 온 차를 출발시킨다.

그리고 그걸 쫓는 CCTV 영상들.

왜인지 익숙한 도로.

그럴수록 더 짙어져 가는 기시감.

그건 그들의 차가 어느 아치형 입구로 들어가는 순간 폭발했다.

“……어?”

종혁이 눈을 부릅뜨고, 케인 반장이 그런 종혁을 본다.

둘 다 아는 장소다.

울프는 어떠냐, 나 정말 고생하지 않았냐는 듯 케인 반장을 봤지만, 케인 반장은 그걸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최, 여긴…….”

타다닥!

“엘먼 풀러의 금융 거래 내역이 정리됐습니다, 반장님!”

“……일단 가죠.”

종혁과 케인 반장은 달려온 팀원의 사무실로 향했고, 이내 곧 사무실 내의 모니터를 보곤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물경 2백만 달러가 넘는 잔고.

“사촌 조카들 명의로 된 세 개의 차명 계좌인데, ATM CCTV를 확인 결과 실소유주가 엘먼 풀러임이 확인됐습니다.”

엘먼 풀러는 일주일에 두 번, 한 번에 최소 몇천 달러씩 입금을 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2만 달러의 돈을 인출해 밀입국자들에게 나눠 주는 것도 확인됐다.

“여기까지 보면 엘먼 풀러는 자신이 도와준 밀입국자들에게서 돈을 받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팀원은 다음 화면으로 넘겼다.

“영주권을 얻지 못한 쿠바인들을 고용하는 업주들에게도 커미션을 받아 온 것 같습니다.”

브로커.

엘먼 풀러는 브로커였다.

“그중 가장 큰 액수를 입금하는 사람은 바로 여기 이 둘.”

쿠웅!

뒤통수를 때리는 거대한 충격에 종혁의 눈이 크게 떠진다.

“……하!”

종혁의 헛웃음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그러나 그게 보이지 않는 종혁은 살기등등한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미치겠네. 너희가 그 안에 왜 있냐?”

케인 반장은 종혁의 한국어에 미간을 좁혔다.

“아는 인물들입니까?”

“……알다마다요.”

방금 전 CCTV에서 본, 레냐를 넘겨받은 네 명이 누군지 이제 알겠다.

네 명 중 한 명은 바로 지금 화면에 나오는 두 사람 중 한 명의 아들이고, 나머지 세 명은 바로 그의 선원이었다.

빠드득!

“대니 트레호, 페드로 인판테…….”

지금은 엄연히 미국 시민인 멕시코 출신의 밀입국자이자, 예전 가르시아 패밀리의 조직원들.

흠칫!

“설마 그 디에고 가르시아를 말하는 겁니까?”

“예. 과거에 디에고 가르시아의 조직원이었던 놈들입니다.”

케인 반장과 사무실에 있는 팀원들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는다.

십여 년 전 마이애미를 발칵 뒤집었던 마약 교주 디에고 가르시아.

“두, 두 달에 한 번 그들이 입금하는 최소 금액이 각자 만오천 달러씩입니다.”

둘이 합하면 무려 3만 달러. 많을 땐 둘이 합해 10만 달러가 입금 된 적도 있다.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다.

거기다 2년 전 페드로 인판테에게 거금이 흘러간 증거도 있었다.

이후로도 엘먼 풀러는 꾸준히 페드로 인판테에게 투자를 한 정황이 확인됐다. 상납과는 별개로 말이다.

종혁의 헛웃음은 더욱 커졌다.

“이거네.”

레냐가 공포에 질려 하염없이 뛸 수밖에 없었던 이유.

페드로 인판테가 출소한 지 고작 2년 만에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있었던 이유.

대니 트레호와 그의 아들이 FBI 신분증에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

각기 따로 놀던 조각들이 모두 합쳐져 거대한 그림을 그린다.

“좆같네, 진짜.”

이렇게 농락을 당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케인 반장의 낯빛도 차갑게 굳는다.

“이거…….”

“예. 아무래도 엘먼 풀러가 밀입국도 돕는 것 같습니다.”

쿠웅!

이번엔 사무실에 있는 모든 사람이 거대한 충격을 받았다.

종혁은 그런 그들을 일견하며 모니터를 가리켰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감정이 사라진 그의 목소리.

“아마 밀입국자를 선별하는 건 쿠바로 자주 출장을 가는 페드로 인판테일 겁니다. 그리고…….”

“해상에서 밀입국자를 넘겨받아 마이애미로 데려오는 건 대니 트레호일 테죠.”

“그리고 밀입국자들을 데리고 있는 것도요.”

레냐도 대니 트레호의 손에 있을 것이다.

‘회개? 반성? 가업?’

종혁은 모니터를 보며 이를 갈았다.

“이 개새끼들…….”

종혁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사람들의 시선이 종혁의 핸드폰으로 모인다.

“하, 이 새끼?”

발신자는 엘먼 풀러.

울고 싶은데 뺨을 때리고 있다.

눈웃음이 피어난 종혁은 케인 반장과 그의 팀원들을 향해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곤 전화를 스피커폰 모드로 받았다.

“예, 최종혁입니다.”

-엘먼 풀러 형사입니다. 미안한데 수사 진행 사항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범인의 윤곽은 드러났습니까?

미소가 더 짙어진 종혁이 끓는 화를 애써 누른다.

“후우. 엘리나 양의 이동 경로가 파악되질 않아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도밍게즈 씨에겐 죄송하다 전해 주십시오.”

-저런…….

안타깝다는 감정이 담긴 목소리. 하지만 그 감정이 거짓임을 아는 종혁은 분노가 울컥 튀어나오려 한다.

-후우. 어서 빨리 범인이 잡혔으면 좋겠군요. 요원님도 마이애미에 계속 계시진 못할 테니까요.

“예. 아무래도…….”

잠시 말을 멈춘 종혁이 핸드폰을 빤히 응시한다.

‘이놈 봐라?’

왜 자신의 마이애미 체류 기간이 궁금한 걸까.

눈이 가늘어진 종혁이 말을 잇는다.

“아무래도 그렇죠. 곧 뉴욕으로 복귀해야 하니까요.”

-음. 얼마나 계실 수 있습니까?

“글쎄요. 아마 길어도 사흘은 넘기지 못할 겁니다.”

-아! 그러시군요…….

순간 놀랐다가 안타까워하는 엘먼 풀러.

‘왜 놀라지? 왜? 아, 잠깐. 이거 혹시?’

뭔가를 직감한 종혁은 슬그머니 운을 뗐다.

“그마저도 온전히 엘리나 양만을 위해 쓸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목적이 있어서 마이애미에 온 거라서요.”

-목적이라면?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수사상 기밀입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부디 그 안에 꼭 범인을 잡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래야죠. 수고하세요.”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미간을 좁힌 케인 반장을 봤다.

“말이 뭔가 이상하군요.”

“예. 이상할 겁니다. 제가 여기 마이애미에 와서 만난 게 저 두 놈이었거든요.”

그 이유는 기밀이다. 하지만 케인 반장을 이해시키는 데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잠깐, 그 말은 설마…….”

“예. 엘먼 풀러는, 아니 대니 트레호는 제가 다시 찾아오는 걸 반기지 않는 겁니다. 제가 곁에서 알짱거리면 꼭 해야 될 일을 할 수 없을 테니까!”

그건 즉, 거래하는 날이 가까워졌다는 거다.

종혁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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