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49화>
뒷문을 통해 MDPD 건물을 나선 엘먼 풀러는 팔을 빼려고 하는 다리오를 향해 싸늘히 일갈했다.
“계속 이대로.”
“……예.”
CCTV가 잔뜩 깔린 MDPD다. 최소한 차에 탈 때까진 이대로 가야 했다.
그때였다.
“잠시만요.”
그들이 나온 뒷문으로 달려나온 종혁.
흠칫 놀란 엘먼 풀러가 슬쩍 앞으로 나선다.
“무슨 일이십니까?”
마치 다리오를 보호하는 듯 경계 어린 시선에 종혁은 걱정 말라며 웃어 주었다.
“전에 구한 소녀는 잘 있는지 궁금해서요.”
차에 치일 뻔한 소녀, 레냐. PTSD가 왔을 수도 있기에 걱정이 됐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허락만 하신다면 후원을 하고 싶습니다.”
언니를 잃은 아이와 딸을 잃은 아빠. 계속 눈에 밟혀 안 되겠다.
“후원이요?”
엘먼 풀러가 눈을 빛낸다.
“아이를 키운다는 게 보통 돈 들어가는 일이 아니잖습니까.”
엘먼 풀러는 다리오를 힐끔 봤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이상은 얽히지 않는 게 좋습니다, 요원님.”
전에 말했듯 커리어를 위해선 이게 최선이라는 엘먼 풀러의 말에 종혁은 앓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후우, 그럼 이거라도 받아주십시오. 엘리나 양의 장례와 그 소녀의, 이름이 레냐 맞죠?”
“네. 레냐 도밍게즈입니다.”
“얼마 안 되는 거지만, 레냐의 미래에 보탬이 됐으면 싶습니다.”
이를테면 새로 얻을 집이라든지 말이다. 이민국의 단속을 받았으니 원래 살던 곳에선 살지 못할 터.
“아, 그런데 원래 사시던 집이 어디십니까?”
생각해 보니 이걸 묻지 않았다. 그들이 어디서 도망을 쳤고, 어디서 어떻게 헤어졌는지도.
“그, 그게…….”
다리오가 당황하자 다시 엘먼 풀러가 나섰다.
“그 부분은 제가 문자로 따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거기에 다리오 씨만 있는 게 아니라서…….”
“아, 그렇군요.”
실수를 했다며 머리를 긁은 종혁은 돈을 내밀었고, 다리오는 엘먼 풀러의 눈치를 봤다. 그에 엘먼 풀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리고 부디 엘리나 양께서 좋은 곳으로 가셨길 빕니다. 아니,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종혁은 진심을 담아 허리를 숙였고, 다리오도 황급히 따라 허리를 숙였다.
이후 둘은 차를 타고 MDPD 주차장을 빠져나갔고, 종혁은 멀어지는 차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뭘까. 대체 뭐가 걸리는 걸까.”
분명 코가 무슨 냄새를 맡은 것 같은데, 그래서 뛰어왔는데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과하게 엘먼 풀러 형사의 눈치를 보는 게 신경 쓰이긴 하는데…….”
그동안 엘먼 풀러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받았다면 딱히 이상할 게 없는 모습.
방금 전에도 그렇다. 엘먼 풀러는 마치 다리오의 변호사인 것처럼 곤란할 때마다 나서 주었고, 다리오는 그걸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엘먼 풀러가 제아무리 선인이라고 해도 다리오는 밀입국자라는 약자의 입장이기에 무슨 결정을 하든 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여 자신의 결정이 엘먼 풀러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냥 이놈의 의심병 때문일까나…… 쯧.”
혀를 찬 종혁은 몸을 돌렸다.
일단 엘먼 풀러와 이민국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 CCTV를 뒤져 엘리나를 찾아야 했다. 그래야 동선 추적이 쉬울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놈의 이민국은 대체 언제 자료를 줄는지…….”
한국이나 미국이나 공무원들 일 처리 늦는 건 알아줘야 했다.
* * *
부우웅! 끼익!
노스웨스트 36번가의 한 골목.
햇빛조차 들지 않는 어두운 골목에 차를 세운 엘먼 풀러가 담배를 물며 손가락을 까딱인다.
“여기 있습니다, 형사님.”
종혁에게 받은 돈을 내미는 다리오.
“케인 반장의 명함도.”
명함까지 넘겨받은 엘먼 풀러는 돈의 반을 떼어 다리오에게 다시 돌려줬다.
“수고했어. 연기 좋았어.”
특히 엘리나의 시신을 붙들고 절규하는 연기가 좋았다.
“하하, 아닙니다. 연기로 벌어먹고 사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그리고 형사님이 제게 해 주신 게 얼만데요.”
거의 이십여 년 전, 소련이 건재하던 시절 할리우드의 대배우가 되고자 바다를 넘은 중년인.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목숨을 걸었지만, 기껏 밟은 미국 땅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때 도움을 준 게 바로 눈앞의 엘먼 풀러다.
일자리를 알아봐 주고, 영주권의 원활한 획득까지 도움을 준 엘먼 풀러.
덕분에 미국에 온 지 10년 뒤부터는 극단에서 연기를, 계속 간직했던 꿈을 다시 이어 갈 수 있게 됐다.
아직 아이는 없지만 가정도 꾸릴 수 있었다.
“그럼 언제든 또 찾아 주십시오!”
“로페즈, 주변 정리는 다 했겠지?”
“걱정 마십시오. 극단에도 다 말해 놨습니다.”
“경고하는데, 당분간 마이애미에서 얼굴을 비추면 재미없을 줄 알아. 딴 데로 새지 말고 곧바로 너 좋아하는 할리우드로 가라고. 알았어?”
“예, 예! 알겠습니다.”
“가봐.”
고개를 숙인 다리오, 아니 로페즈는 빠르게 골목으로 사라졌고, 사이드미러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엘먼 풀러는 핸드폰을 들었다.
“어, 나야. 여기 일은 모두 처리됐어.”
-감사합니다, 형사님. 제가 곧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좋은 곳은 됐고. 이번에 물건이 들어온다지?”
-……처녀로 두 명 빼놓겠습니다.
“끊어.”
통화를 종료한 엘먼 풀러는 방금 전 일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쓸데없이 예리한 것들.”
특히 종혁이 이민국의 습격을 받은 위치를 물었을 땐 꽤 뜨끔했다.
고개를 저은 그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어. 난데…….”
-방금 전 문자로 보냈습니다.
지이잉! 지이잉!
갑자기 우는 핸드폰을 눈앞으로 가져온 엘먼 풀러는 지난 일주일 동안 마이애미를 비롯한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에서 발생한 이민국 단속 리스트를 보곤 눈을 빛냈다.
“이 중 하나를 골라서 보내면 되겠지.”
‘어차피 CCTV에 나오는 건 없을 테지만!’
그럼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결국 미제로 종결될 터. 제일 거슬리는 종혁도 눈앞에서 치워질 거다.
아니, 이번 일의 가장 큰 소득은 MDPD의 핏불 테리어라고 불리는 마리오 케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줬다는 거다.
혹여 훗날 그가 어떤 사건을 수사하다 자신의 비리에 대해 안다고 해도 케인 반장은 망설이게 될 것이다.
이것만 해도 정말 큰 소득이었다.
“이런 게 쌓여서 나를 보호할 방패가 되어 주는 거지. 흐흐흐.”
그는 다 타 버린 담배의 마지막 연기를 뿜으며 나른히 웃었다.
“그럼 돈을 벌러 가 보실까.”
그에겐 무한한 돈줄인 밀입국자들.
정확히는 그들을 고용한 고용주들에게 수수료를 받으러 갈 시간이었다.
* * *
“……하아.”
아침 해가 떠오르는 새벽.
모니터 앞에 있던 종혁이 고개를 푹 숙인다.
“없네…….”
샬로트 제인 메모리얼 파크와 코코넛 그로브 공원 인근 CCTV를 비롯해 마이애미 남서부 전부를 뒤졌지만 엘리나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씨발, 이놈의 미국은 CCTV가 왜 이렇게 없는 거야?”
뭔 놈의 공백 지대가 이리도 많은지, 여기가 정말 선진국인가 의심이 들 정도다.
“이상해.”
제아무리 공백 지대가 많다고 해도 사람인 이상 CCTV를 모두 피해 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것도 쫓기는 와중에 감시 카메라를 모두 비켜 간다?
CIA도 불가능한 일이다. 수십, 수백 번 도주로를 외우지 않았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고…….’
“역시 동양인은 성실하군요.”
“아, 반장님.”
케인 반장이 옅게 웃으며 차가운 커피를 내밀자 종혁은 단숨에 들이켰다.
“어우!”
차가운 당분과 카페인이 위장을 적시자 확 쫓아지는 피로.
“뭐 좀 나온 거 있습니까?”
“반장님은요?”
날을 샌 듯 눈가에 피로가 가득한 케인 반장.
반장쯤 되면 이런 조사는 하지 않아도 됨에도 날을 샜다는 건 무슨 의미겠는가. 그가 그만큼 열정적인 경찰라는 증거이면서도, 곧 있으면 떠날 종혁 자신을 위해 무리를 했다는 거다.
그런 마음을 들켜서인지 케인 반장은 헛기침을 했다.
“큼. 저도 없군요. 대원들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케인 반장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들을 가리켰다가 이내 낯빛을 굳혔다. 그건 종혁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군요.”
“예, 이상합니다.”
마이애미는 엄연히 큰 도로가 거미줄처럼 뻗은 도시다. 엘리나가 이민국의 추적을 피해 골목으로만 이동했다고 해도 어떻게든 큰 도로로 나올 수밖에 없단 소리다.
‘엘리나의 부친과 풀러 형사의 정보가 잘못된 게 아닌 이상 이건 불가능한 일인데…….’
어젯밤 단속 장소를 문자로 넣어 준 엘먼 풀러. 그러나 중년인과 밀입국자를 위해 애쓰는 엘먼 풀러를 의심 할 순 없었다.
“아, 설마?”
종혁의 탄성과 함께 케인 반장도 깨닫는 게 있었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봤다.
“대중교통!”
택시나 버스를 이용했다면 가능한 일이다.
“지금 당장 마이애미 샬로트 메모리얼 파크 인근을 지나는 모든 버스와 그날 그 근처에서 여자 승객을 내려 준 택시들을 알아봐!”
전화를 끊은 케인 반장은 종혁을 봤다.
“그럼 우린…….”
“샬로트 제인 메모리얼 파크 주변을 뒤져 봐야죠.”
만약 엘리나가 무사히 샬로트 제인 메모리얼 파크에 도착했고, 그 근처에서 가족이 오는지 살피다 참변을 당했다면?
분명 뭐가 있어도 있을 거다.
이런 종혁의 말에 케인 반장은 옅게 웃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종혁은 남은 커피를 모두 들이켜며 몸을 일으켰다.
* * *
“아니…… 하아.”
어느새 해가 저물어 버린 저녁.
문이 잠긴 샬로트 제인 메모리얼 파크 입구에 쪼그려 앉은 종혁이 한숨을 내쉰다.
허탕이다. 인근을 샅샅이 뒤지며 주변을 탐문했지만, 엘리나나 다리오를 목격한 사람이 없었다.
“수상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도 없었답니다.”
“……후우. 두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죠.”
몸을 일으킨 종혁은 차가 지나는 인근을 둘러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그들 가족이 흩어지면 만나기로 한 장소인 샬로트 제인 메모리얼 파크의 입구. 엘리나나 중년인은 혹여 흩어진 가족이 찾아올까 이곳 입구가 잘 보이는 어딘가에 숨어 지켜봤을 거다.
“일단은 저 골목…….”
종혁은 순간 자신이 뭘 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말을 이어 갔다.
“맞은편 보도를 서성였을 수도 있다는 가정은 제외.”
“그랬다면 CCTV에 걸리지 않을 수 없겠죠.”
케인 반장은 이 거리에 설치된 두 개의 CCTV를 가리켰다.
서로 설치된 교차로를 비추기에 약 30미터의 공백이 있다. 엘리나가 숨어 있었다면 저 공백 속에 숨어 있었을 거다.
“도밍게즈 씨는 중년 남성이니 가만히 앉아 있어도 별 의심을 받진 않았겠지만 엘리나 양은 아니죠.”
“새하얀 프릴 원피스. 분명 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엘리나는 십대 특유의 매력이 통통 튀는 미녀다. 더 눈에 뜨였을 거다.
“그래서 숨어 있다가 변을 당했겠죠. 차를 탄 괴한들에게.”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밍게즈 씨가 CCTV에 잡히지 않는 걸 보면 그도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겁니다.”
‘자, 단서는 여기 다 있다. 생각해라, 생각해.’
대체 뭘 놓치고 있는 건지, 왜 이렇게 머릿속이 간지러운 건지 생각해야 된다.
종혁은 엘리나의 입장이 되어 보기로 하며 도로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이었다.
“최!”
끼익! 빠아앙!
“미쳤어? 죽고 싶어?!”
“어?”
멍하니 쌍욕을 내뱉는 차를 보는 종혁.
라이트가 눈을 아프게 함에도 종혁의 시선은 돌려지지 않았다.
“최, 괜찮습니까?!”
“……반장님, 단서가 다 있는 게 아니었어요.”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놓치고 있는 거요?”
“레냐 도밍게즈. 제가 칠 뻔한 소녀요.”
마이애미 북동쪽에 위치한 서프사이드의 934번 국도를 이용해 노스 베이 빌리지를 거쳐 마이애미로 진입한 종혁.
목적지는 마이애미의 중앙에 위치한 리틀 하바나.
쿠바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기에 리틀 하바나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반대 방향이군요.”
이곳 샬로트 제인 메모리얼 파크에서도, 그리고 엘리나의 가족이 모여 살았다는 리틀 하바나 인근에서도 완전히 반대편이다.
“레냐는 탈진 상태였고, 발바닥에 찰과상이, 아니 피범벅이었습니다.”
그 작은 아이가 그런 고통도 참으며 탈진이 될 때까지 달린 거다.
“아……!”
그제야 종혁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차린 케인 반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맨발로, 그것도 탈진을 할 정도로 뛰었다는 건 레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거군요.”
“네. 레냐의 동선은 CCTV로 확인이 가능할 겁니다.”
그 동선을 역추적하다 보면 결국 엘리나를 찾을 수 있을 터.
‘그러면 내가 지금 뭘 놓치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겠지.’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엘리나를 해친 범인을 쫓는다는 생각에 너무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
종혁이 스스로를 자책하던 그때, 재차 경적이 울렸다.
“이봐요! 사과는 안 합니까! 연극도 안 돼서 죽겠는데 별 거지 같은 게 계속 길을 막고 있어!”
거기다 원래 있던 극단원이 갑자기 관두면서 그가 했던 이 홍보 일을 대신, 그것도 인수인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마이애미 전역을 떠돌아야 해서 짜증이 솟구친 사람들은 쌍욕을 토해 냈다.
“아,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
종혁은 따지는 사람들이 내린 차를, 갓길에 세워진 차의 차문들에 붙은 포스터를 보곤 눈을 부릅떴다.
“반장님.”
종혁이 가리킨 곳을 본 케인 반장도 눈을 크게 뜬다.
“……마이애미 데이드 폴리스의 마리오 케인 반장입니다. 저 사람이 혹시 극단원입니까? 맨 아래 오른쪽의 사람 말입니다.”
“누, 누구요? 아켈로 로페즈 씨요? 예, 예! 그런데요? 아, 포스터에서 지우는 거 깜빡했네. 하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워낙 영세한 극단이라서.”
극단. 종혁과 케인 반장의 얼굴이 굳는다.
“아켈로 로페즈? 다리오 도밍게즈가 아닙니까?”
“아뇨. 아켈로 로페즈인데요.”
연기 경력이 무려 10년 차나 되는 아켈로 로페즈.
“그리고 이번에 할리우드에 도전하러 간다고 하셨는데…….”
종혁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 씨발.”
그래, 이거였다.
본능이 계속 보내왔던 경고가.
종혁은 자신의 손으로 레냐를, 그런 꼴이 되면서까지 누군가에게서 도망치던 그 어린아이를 호랑이 아가리에 집어넣은 것이었다.
빠아악!
종혁은 자신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의 두 눈에 살의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