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45화>
부우웅.
도로를 달리는 승합차 안.
디에고 가르시아가 일러 준 주소에는 3층짜리 작은 건물이 있었다.
‘SG 인터네셔널. 세광상사.’
1989년, 앤디 가르시아가 디에고 가르시아에게 접근 할 때 마이애미에 세워진 회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세입자가 들어와 있었고, 그 회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뭐, 10년도 훌쩍 지난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아쉽게도 별다른 단서를 얻진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1989년의 한국은 여권법 시행령이 개정되며 해외 여행이 전면 자유화가 되었지만, 그래도 미국으로 여행을 오는 이들이 많진 않았다.
공항을 통과했다면 분명 기록이 남아 있을 터.
당시 미국에 온 이들, 그리고 앤디 가르시아가 자취를 감췄을 때 행방이 묘연한 이들.
이들의 공통분모에 속하는 자 중에 앤디 가르시아가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SVR에게 확인을 맡기면 됐다.
‘그럼 난 대니 트레호, 페드로 인판테 이 두 놈을 찾으면 되겠군.’
당시 앤디 가르시아를 감시한 디에고 가르시아의 부하들. 어지간히 빡대가리가 아닌 이상 분명 기억하고 있는 게 있을 거다.
“뭘 그렇게 심란하게 중얼거려?”
“응? 아.”
정신을 차리는 종혁의 귀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꽂힌다.
“꺄하하하하!”
“조용! 엄마가 차에 타면 어떻게 하라고 했지?”
“조용히 하라고 했어요!”
순간 입을 다물었던 아이들은 금세 다시 입을 열었다.
“엄마! 엄마! 엄마는 배 타 봤어요?”
“배는 어떻게 생겼어요?”
“얼마나 커요?”
“그, 글쎄? 엄마도 배는…… 아, 배를 태워 주신다는 최에게 물어볼까?”
“이 차를 다섯 개 합쳐 놓은 크기?”
“……우와아아아아!”
“나란히 다섯 대예요? 위로 쌓아서 다섯 대예요?”
“헉! 설마 합체하는 것처럼 다섯 대예요?”
종혁은 눈을 초롱초롱 뜨는 아이들을 향해 흐뭇히 웃어 주었다.
“조용. 계속 떠들면 안 태워 준다.”
“헉!”
입을 다무는 아이들의 모습에 그제야 만족스러워한 종혁은 보조석에 앉은 벤을 봤다.
“방금 전에 뭐라고 묻지 않았어요?”
“뭘 그렇게 혼잣말하냐고. 혹시…….”
어젯밤 종혁이 몰리에게 신분 조회를 의뢰한 대니 트레호와 페드로 인판테.
“흠. 대체 놈들과 무슨 사이인 거야?”
“개인적인 일이에요. 뭐 그런 것도 있는데, 저렇게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옛날의 한국이 떠올라서요.”
종혁이 선을 긋자 아쉬워하던 벤이 뒷말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상체를 드러내거나 비키니를 입은 채 조깅을 하는 사람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들.
“한국?”
“예. 90년대에…….”
종혁은 야타족과 오렌지족에 대해, 특히 오렌지족의 유래에 대해 설명했고, 벤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미국이 못된 걸 가르쳐서 미안해, 최.”
“그게 어디 미국 탓입니까.”
그냥 애초부터 그럴 놈들이었을 뿐이다.
“아, 다 왔네요.”
오늘의 목적지인 요트 선착장.
“우와아아아아!”
“와아아!”
차에서 내린 아이들이 선착장에 줄줄이 서 있는 하얀 요트들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최! 최! 최의 배는 어떤 거예요?!”
“흠. 잠깐만?”
종혁도 CIA에게 선물로 받은 요트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 오늘 운전을 맡아 줄 선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저희 지금 도착했습니다. 지금 선착장 입구…….”
“여깁니다-! 여기!”
고개를 돌린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다.
“……최, 저건 요트가 아니라 크루저 같은데?”
길이만 무려 30미터는 되어 보이는 3층짜리 거대한 요트. 사람들은 그 압도적인 위용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건 종혁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 꼬맹이들! 먼 바다로 항해를 떠날 준비 됐습니까!”
“네!”
“이럴 땐 예, 캡틴이라고 하는 겁니다!”
“예, 캡틴!”
“좋아. 그럼 배를 향해 출발-!”
“우와아아아아!”
종혁은 빠르게 달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어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도 가죠.”
“……최, 정말 연애에 관심 없어? 아니면 곧바로 결혼은 어때? 일단 여기에 나이는 많지만 외모는 끝장나는 아줌마가 있는데?”
“헬렌!”
음흉한 미소를 짓는 헬레나의 모습에 벤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드롭은 조용히 달싹이는 아내의 입을 막았다.
* * *
쏴아아아!
그래도 겨울이라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바다 위.
맥주캔을 옆에 쌓아 둔 종혁과 벤이 낚싯대를 드리운 채 세월을 낚는다.
“벤, 여기에 올 때까지만 해도 수영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망망대해 위에서의 수영. 그것이 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고 했다. 그래서 아까도 구명조끼조차 입지 않은 채 다이빙을 했었다.
생각할 게 많은 종혁은 거기에 어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최, 나도 아까 물속에 들어가고 나서 기억난 건데 마이애미에는 상어가 많대…….”
“아.”
에메랄드빛 물을 힐끔 본 종혁은 슬쩍 엉덩이를 뒤로 뺐다.
솔직히 호랑이나 곰과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물속에서 상어와 싸우는 건 무리였다.
“뭐야. 무슨 이야기 중이야?”
“응? 애들은요?”
배가 출발할 때만 해도 호들갑을 떨었지만, 계속 바다만 보이자 결국 흥미를 잃은 아이들.
딱히 물이나 낚시를 좋아하지 않은 드롭은 요트 안에서 놀기로 한 아이들의 감시역을 자처했다.
“잠들었어. 헬렌과 내 와이프는 태닝 중이고.”
“어…….”
“깜둥이도 태닝을 해. 별로 달라지는 건 없지만. 하하하!”
“그거 엄청 비겁하네요.”
흑인은 같은 흑인보고 깜둥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인종은 그러면 안 된다.
“억울하면 깜둥이로 태어나라고, 최! 하하핫!”
“진짜 비겁하네.”
“크큭. 그래서 뭐 잡히는 건 있어?”
“없죠.”
수심이 너무 깊은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선장이 포인트를 잘못 잡았거나.
벌써 몇 시간째 허탕을 치니 종혁도 슬슬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흠. 슬슬 날도 저물어 가는 것 같은데…….’
부아아아앙!
저 멀리서 마이애미를 향해 달리는 배 한 척을 발견한 종혁은 결정을 내렸다.
“슬슬 돌아갈까요? 어차피 저녁에 예약해 놓은 식당에 가려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가서 아이들을 씻기는 등 준비할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 돌아가야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듯했다.
이런 종혁의 말에 드롭과 벤은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최, 정말 연애 안 해 본 거 맞지?”
“연애는 안 하고 애는 있는 거 아냐?”
“내가 여자 손목이라도 잡아 봤으면…… 음, 아무튼 애는 없으니까 그만 갑시다!”
“우리한테만 말해 봐.”
“선장님! 출발해요!”
그렇게 집에 돌아와 준비를 하고 외식 장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벤과 드롭이 어느새 어두워진 마이애미의 하늘을 보며 아쉬움을 토한다.
“끙. 벌써 휴가도 반이 지났네.”
종혁과 달리 4박 5일의 휴가를 낸 벤과 드롭.
다시 활기차진 아이들을 케어하던 헬레나와 드롭의 아내도 아쉬움을 내비친다.
“이제 반절밖에 안 지난 거죠. 아직 두 밤이나 더 여기 있을 수 있다고요.”
“하하! 그렇지! 그게 맞지!”
“벤, 오늘 저녁에 야시장이 열린다는데 거기 가 볼까?”
“야시장? 최, 야시장 어때?”
“야시장 좋죠.”
특유의 매력이 있는 야시장.
맨날 마시던 맥주도 거기서 먹으면 뭔가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어?’
순간 차 앞으로 뛰어드는 작은 그림자.
종혁은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익!
“꺅!”
“으악!”
“뭐야. 무슨 일이야!”
“잠시만요?!”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차에 뛰어든 건 분명 어린아이였다.
다급히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린 종혁은 차 앞으로 달려갔다가 깜짝 놀랐다.
정신을 잃은 듯 도로에 누워 있는 히스패닉계 여자아이.
종혁은 다급히 여자아이를 안아 들었다.
“야, 꼬마야! 정신 차려 봐!”
아무리 흔들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아이.
종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벤! 911-!”
* * *
사고가 일어난 장소 근처의 병원 응급실.
“탈진입니다.”
약간의 영양실조와 발바닥에 찰과상에 있긴 한데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이 말에 종혁은 안도의 한숨을 탁 내뱉었다.
“하아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와는 무슨 관계인지…….”
“아, 갑자기 이 아이가 차 앞에 뛰어들어서요.”
“그렇습니까?”
“왜 그러시죠?”
왜인지 의심스럽다는 듯 쳐다보는 의사. 약간의 경멸마저 스며 있다가 사라진 눈에 종혁은 미간을 좁혔다.
“음. 아닙니다. 그럼 경찰에 신고는 했습니까?”
“예, 했습니다. 곧 올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멀어지는 의사를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이던 종혁은 아차 하며 응급실을 나섰다.
그러자 응급실 밖에서 담배를 태우다 달려드는 벤.
드롭은 다른 일행들과 함께 먼저 예약한 식당으로 향했다.
“어떻게 됐어?!”
“단순한 탈진이래요.”
“하아아. 다행이다. 대체 이게 뭔 일이래?”
“그러게요.”
가족끼리의 저녁 외식이 다이나믹해졌다.
“일단 벤은 가 보세요. 지금 가면 얼추 예약 시간이겠네요.”
“너는?”
“일단 쟤 보호자가 오는 걸 보고 가려고요.”
그 말에 벤의 표정이 굳는다.
“확실히 의심스럽기는 하지.”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뭐에 쫓겼기에 맨발로 도망을 친 걸까. 그것도 탈진이 일어날 때까지 말이다.
“그냥 들개 같은 것에 쫓겼다면 좋겠지만…….”
어쩌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거나 어떤 개새끼가 쫓은 것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의사의 반응도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가정폭력일 수도 있고요.”
아이의 몸을 상세히 살핀 의사가 적개심을 보였다면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다.
증거는 또 있다. 발목에 새겨진 작은 문신. 가족의 이름으로 보이는데, 어린아이에게 문신을 했다는 것 자체가 가정폭력의 증거다.
“아니면 아이가 졸랐을 수도 있어. 저 나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거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몰라.”
많아야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 정말 말을 안 들을 때다.
아이 아빠가 그렇게 말하니 신빙성이 생긴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경찰과 보호자가 오면 뭐든 밝혀지겠죠. 아, 경찰 저기 오네요.”
“으음. 그냥 나도 여기 있을까?”
“헛소리 말고 얼른 가세요. 늙어서 아빠가 내게 해 준 게 뭐냐는 소리 듣고 싶어요?”
슬프게도 언제나 사건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는 형사라는 직업. 그건 FBI도 마찬가지다.
“끄응. 미안해, 최.”
“됐으니까 얼른 가라고.”
벤은 한 번 더 사과를 하고는 몸을 돌렸고, 종혁은 차에서 내리는 경찰에게 다가갔다.
“교통사고 신고 때문에 오셨습니까?”
“혹시?”
“예, 제가 신고했습니다.”
“……면허증부터 봅시다.”
종혁은 면허증 대신 FBI 신분증을 보여 주었다.
“엇?!”
놀랐던 경찰은 이내 낯빛을 굳혔다.
“일단 신분 조회부터 하겠습니다.”
의심스런 눈길로 종혁의 위아래를 훑는 경찰들.
종혁은 씁쓸히 웃으며 그러라고 했고, 경찰 한 명이 무전으로 신분 조회를 의뢰할 때 나머지 한 명은 종혁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도주를 막기 위해서다.
‘진짜 이놈의 인종 차별은, 씨발.’
“크흠. 확인됐습니다. 보편적인 확인 절차니 기분 나빠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뉴욕 지국의 요원께서 마이애미는 왜…….”
“휴가 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종혁은 경찰들을 데리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저 아이가 갑자기 차 앞으로 뛰어들더군요. 다행히 부딪치지는 않았지만…… 뭔가에 쫓기는 것 같더군요.”
“음. 일단 실종 신고가 들어왔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들어오지 않았다면 실종 신고를 해야 됐다. 그래야 보호자와 연락이 빨리 닿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아이의 신체적 특징에 대해 보고를 하던 경찰이 아이의 발목을 보곤 살짝 말을 버벅거렸다.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일입니까?”
“아, 그게…… 후우, 어쩌면 밀입국자일 수도 있어서 말입니다.”
“예?!”
“보통 이런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목숨 걸고 바다를 건널 때 그 부모들이 아이의 몸에 가족의 이름을 새기거든요. 가족을 잊지 말라고.”
“아.”
아이를 본 종혁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직 확실한 건 없습니다. 입양을 보내는 아이들도 가끔 이러니까요. 거기다 아이의 옷도 새것 같고.”
여기저기 찢기고 오물이 묻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새 옷이다. 어쩌면 단순한 미아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겠지만…….”
아니라면 뭐든 슬픈 이야기였다.
경찰들은 동감이라는 듯 씁쓸히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울리는 경찰의 핸드폰.
“예. 전화……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예.”
종혁은 의아해하며 경찰을 봤고, 경찰은 활짝 웃었다.
“다행히 보호자를 찾은 것 같습니다.”
“하아…….”
종혁은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단 보호자가 올 때까지 커피나 마실까요?”
“커피 좋죠.”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응급실 안으로 배불뚝이 오십대 백인 남성이 들어온다. 곧바로 아이의 살핀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핸드폰을 들었다.
“응. 그래. 찾았어. 네 아이 맞아. 그래. 내가 데려다 놓을게.”
종혁과 경찰들은 미간을 좁히며 남성에게 다가섰다.
“당신이 FBI 요원?”
“아이의 보호자 되십니까?”
“아이의 보호자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며 내미는 경찰 배지에 종혁은 깜짝 놀랐다.
“잠시 이야기 좀 하죠.”
종혁은 씁쓸한 그의 표정에 일단 따라나섰다.
“후우. 이번 일 모른 척해 주시죠.”
“예?”
“저 아이의 보호자가 떳떳하게 경찰 앞에 나설 수 없는 사람입니다. 범죄자는 아닌데…….”
“밀입국자군요.”
“안 그래도 오늘 이민국 단속에 걸렸다고 합니다. 다행히 무사히 도망은 쳤다고 하지만…….”
종혁은 탄식을 터트렸다.
이제야 아이가 맨발로 쫓긴 이유를 알 것 같다.
‘의사가 적개심을 보인 것도 그렇게 도주하면서 난 멍 같은 걸 자주 봤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형사님이 그런 사람과는 어떻게?”
“저 같은 사람도 있어야죠.”
“아.”
종혁의 눈에 옅은 존경심이 피어오른다.
여차하면 옷을 벗을 수 있는 위험한 일, 가시밭길을 걷고 있었다.
“접수된 거나 저 경찰들은 제가 무마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게 하세요. 저도 모른 척하겠습니다.”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넜을까. 불법이지만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감사합니다. 신의 축복이 당신과 함께하길 빌겠습니다.”
“형사님도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빌겠습니다. 이 돈은 아이의 부모에게 전달해 주시고요.”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마이애미에는 언제까지 계실 예정입니까?”
“한 이틀 정도 더?”
벤과 드롭이 뉴욕으로 떠나면 종혁도 잠시 어머니 고정숙을 보러 한국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왜 그러시죠?”
“이런 좋은 분에게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어서요.”
“하하. 괜찮습니다. 그리고 우린 서로 모르는 게 낫죠.”
혹시라도 이렇게 봐준 게 잘못되면 커리어에 흠집이 생긴다. 서로 모른 척하는 게 나았다.
“……알겠습니다. 즐거운 휴가가 되시길.”
이후 경찰들과 뭐라뭐라 말한 형사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아이를 업어 응급실을 빠져나갔고, 종혁은 그 모습을 보다 머리를 긁적였다.
“보통 저 나이쯤 되면 얼굴에 삶이 드러나는데 말이야.”
분명 심술과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착각을 한 것 같다.
종혁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다시 가족을 만난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며.
* * *
다음 날 이른 아침, 마이애미의 한 선착장에 들린 종혁은 인부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십대 후반 중년인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대니 트레호.’
디에고 가르시아가 검거될 때 함께 검거되어 8년형을 받았다가 재작년 출소한 대니 트레호.
‘넌 뭘 기억하고 있을까.’
종혁은 눈을 빛내며 그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