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42화>
“읍! 으읍!”
“쉿!”
질겁하며 반항하던 엠버는 코앞에 내밀어지는 FBI 신분증에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를 집 안으로 밀어 넣으며 현관문 옆에 있는 전등 버튼을 누르는 종혁.
달칵!
“크리스.”
“오케이.”
엠버처럼 호리호리한 몸매와 짧은 단발을 한 여성 요원이 종혁과 엠버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 안방의 불을 켜고, 뒤이어 화장실로 들어가 화장실 불도 켜며 샤워기를 틀었다. 엠버가 평소 집에 와서 했던 그대로.
쏴아아!
엠버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종혁은 엠버를 이끌고 옆집으로 향했고, 엠버는 그에 깜짝 놀랐다.
‘여, 옆집에 이사 온 사람이 FBI였다니!’
“앉으세요.”
부엌 앞에 놓인 테이블의 의자에 앉은 엠버는 곧 종혁이 가져오는 뜨거운 커피를 얼떨떨하게 받아 들다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저, 전 아무 잘못한 게 없어요!”
“쉿.”
“…….”
“일단 깜짝 놀라게 하여 죄송합니다, 엠버 버드 씨.”
“헉! 저, 전 정말로…….”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는 종혁의 행동에 엠버는 입을 다물었다. FBI가 자신의 이름을 안다는 것에 찔리는 게 많은 그녀.
‘마, 마약 때문인가? 하, 하지만 고작 마리화나를 폈을 뿐인데!’
대마초는 모르핀이나 헤로인 등의 마약과 비교하면 판매를 한 게 아니고서야 흡연은 경범죄 수준으로밖에 취급되지 않는 게 미국이었다.
그러니 그것 때문에 FBI까지 출동했다는 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종혁은 안절부절못하는 그녀를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엠버 버드.’
21세. 뉴저지의 작은 도시 트랜턴의 옆에 있는 더 작은 도시, 한국으로 치면 읍이라고 할 수 있는 페닝턴 출신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트랜턴으로 온 시골 소녀.
그러나 하라는 공부 대신 술과 클럽, 대마란 유흥에 빠져 버린 소녀.
이 여자다. 카운트 살인마로 추정되는 노아 해밍턴이 다음으로 노릴 것이라 예상하는 타깃이.
화물 기차가 정차하는 다른 도시들에선 펍과 모텔만 오간 노아 해밍턴.
그러나 최근 이곳 트랜턴에서만 유일하게 그동안의 동선과 달랐다. 심지어 별다른 용무 없이 불필요한 동선이었다.
그래서 그 동선에 걸치는 모든 인물들을 확인한 결과, 유일하게 엠버 버드와 동선이 겹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에 다음 타깃이 엠버 버드임을 확신한 FBI는 곧장 덫을 깔았던 것이다.
‘대체 놈은 무슨 기준으로 목표물을 정하는 거지?’
이전 피해자들과 일말의 공통점도 없는 엠버 버드.
이미 그녀에 대한 모든 걸 조사한 종혁은 미간을 좁혔다.
‘대체 뭘까. 이 여자의 어떤 부분이 놈으로 하여금 목표로 삼게 만든 걸까.’
엠버의 얼굴을 보며 생각에 잠겼던 종혁은 잔뜩 겁먹은 그녀의 모습에 아차 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을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니 너무 걱정 마세요.”
“그, 그럼 저를 왜…….”
“협조를 구하기 위해섭니다.”
“협조요?”
“근처에 테러 용의자가 있습니다.”
“헉!”
굉장히 고민을 하다가 나온 말.
연쇄 살인마가 당신을 노리고 있다고 말할까 고민을 했던 종혁은 이렇게 말을 돌렸다.
‘이 여성의 입을 믿을 수 없다.’
부모의 뼈골을 빼내 제 향락에 쓰는 여자를 어찌 믿을 수 있을까. 철이 없어도 정도껏 없어야 했다.
지금껏 피해자들의 동선을 집요하게 체크하며 나름의 확신이 섰을 때만 움직였을 거라 추정되는 카운터 살인마.
놈은 엠버의 행동이 평소와 달라진다면 뭔가를 눈치채고 도주할 확률이 높았다.
‘이번에 어떻게든 잡아야 해.’
하지만 종혁은 이번에 놈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점점 살인 욕구를 참아 내지 못하고 범행을 저지르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 놈이다. 이번에 잡아내지 못한다면 욕구를 참아 내지 못한 놈이 무차별 살인을 저지를지도 몰랐다.
때문에 확실히 놈을 유인하기 위해선 엠버의 모습이나 주변 환경이 평상시와 다름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엠버 버드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엠버 버드 씨에게 한 가지 제의를 하고 싶군요.”
“어, 어떤 제의요?”
“당신의 방과 이 방을 서로 맞바꾸는 겁니다.”
“……네?”
“놈을 감시하기 위해선 당신의 방이 최고의 포인트거든요.”
이 아파트의 맨 끝 방인 엠버 버드의 방.
이번에도 놈은 8번째 타깃이었던 에덤 폴을 살해했을 때처럼 과감하게 집 안으로 들어와서 범행을 저지르려 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 아니…….”
“굳이 거창하게 이사를 할 필요 없이 옷과 이불만 옮기시면 됩니다.”
당황한 엠버는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봤다가 눈을 반짝였다.
‘T, TV……!’
50인치다. 거기다 안에 있는 모든 물품이 전부 비싼 메이커의 제품들이다.
“그리고 보호 차원으로 저희 FBI 요원도 붙여 드리죠.”
“네에?!”
“당신이 뭘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평소처럼 행동하시면 됩니다.”
대학을 가는 둥 마는 둥, 친구를 만나는 둥 마는 둥 날라리 대학생인 평소처럼.
그저 그뿐이라면 이런 호화로운 방을 쓰게 해 준다는 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기에 엠버는 눈빛을 빛냈다.
“아, 참고로 우려가 돼서 하는 말인데 우리 FBI의 눈과 귀는 어디든 있습니다. 당신의 뒤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요원일 수도 있고, 클럽에서 만나는 남성이 우리 요원일 수도 있다는 말이죠. 알겠습니까?”
“네에…….”
입을 함부로 놀리면 재미없을 거라는 눈빛에 엠버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오늘은 저희 요원과 함께 계시고, 내일 짐을 옮기도록 하시죠.”
“따라오세요.”
FBI 요원의 안내에 엠버 버드가 자신의 방으로 향하자, 종혁은 고개를 돌려 안방으로 향했다.
“어때, 드롭?”
불이 모두 꺼진 방.
몇 개의 분할된 화면을, 이 근방에 쫙 깔린 엄지 손톱만 한 크기의 초소형 카메라들이 촬영하는 영상을 보고 있던 드롭이 고개를 젓는다.
“어떻긴…… 지독하지.”
벌써 몇 시간째인지 모른다. 골목의 어둠에 숨어 엠버 버드의 방만 쳐다보는 게.
“봐. 미동도 없어.”
다른 FBI 요원들이 노아 해밍턴의 인식 밖에서 찍고 있는 열화상 카메라와 적외선 카메라가 아니었다면, 이미 자리를 떴거나 얼어 죽었을 거라고 착각을 할 만큼 미동도 없는 노아 해밍턴.
몸 여기저기, 심지어 신발에서도 발산되는 열기. 핫팩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거였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정말 지독하네.”
예전 러시아에서 특수부대 및 정보기관 교관들을 가르쳤을 때 그들에게 배웠던 저격수의 행동을 그대로 하고 있는 그.
종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벌써 몇 차례나 엠버 버드의 동선을 확인했어.’
지금쯤이면 나름의 계산을 끝내고 혹여 있을지도 모르는 변수까지 대비해 뒀을 터.
즉, 지금 당장 쳐들어온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지이잉!
-최, 나야!
“몰리?”
-7번째 살인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어!
엄밀히 말하자면 카운터 살인마의 얼굴을 본 목격자는 아니었다.
사건 발생 당시, 그 근처를 우연히 지나다 범행을 저지른 뒤 현장을 빠져나가려던 카운터 살인마와 마주쳐 도망쳤다는 목격자.
‘이거였구나!’
놈이 굳이 8번째 피해자인 에덤 폴의 집으로 들어간 이유.
놈은 정말로 방해를 받을 뻔한 거다.
“그래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이 변수를 없애려고 집 안으로 침입한 거였어……. 고마워요, 몰리!”
전화를 끊은 종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확신이 섰다.
“드롭, 놈은 무조건 엠버의 집 안으로 들어올 겁니다. 아니, 집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겠죠.”
드롭을 그렇게 말하는 종혁을 경이롭다는 듯 응시했다.
빌린 집만 여섯 채에다 투입된 FBI 요원만 열다섯 명이 넘지만, 이전과 딱히 달라진 게 없는 트랜턴 거리.
심지어 창문에 걸린 커튼, 거리의 차까지도 똑같다. 종혁이 모두 그대로 구매해 버렸기 때문이다.
놈은 덫이 있는 것도 모르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종혁은 CCTV 화면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자, 들어와라.”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목표를 노리는 사냥꾼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도망을 치냐, 아니면 그 사냥꾼을 노리는 사냥꾼들이 사냥에 성공을 하냐.
그렇게 피 말리는 눈치 싸움이 시작됐다.
* * *
달칵!
불이 꺼진다.
그와 동시에 한층 더 조용해진 거리.
그리고 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적막에 젖어든다.
1시간, 2시간, 3시간.
새벽 3시가 되자 거리는 가로등 불빛을 제외하면 완벽히 어두워진다.
“후우.”
하얀 입김을 쏟아 낸 노아 해밍턴이 몸을 풀며 저번엔 챙겨 오지 않아 아쉽게 돌아서게 만든 살인 도구들을 늘어놓는다.
두 자루의 칼과 열쇠수리공에게 돈을 주고 기술을 배우며 구입한 락픽.
‘CCTV는 여전히 없고.’
주차된 차들에 블랙박스도 없다는 걸 확인한 노아 해밍턴은 타 버릴 듯 뜨거운 목을 어루만졌다.
지독하다. 얼른 이 갈증을 달래 줄 피가 필요했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도구들을 챙겨 든 그는 몸을 움직여 엠버 버드의 싸구려 아파트 입구에 서서 락픽을 집어넣었다.
도르륵! 찰칵, 찰칵, 철컥!
손쉽게 열리는 입구.
노아 해밍턴은 마치 자신이 사는 아파트인 양 거침없이 계단을 올라 엠버 버드의 집 앞에 섰다.
‘복도에도 여전히 CCTV가 없고.’
소음도 없다.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한 복도와 엠버 버드의 집.
노아 해밍턴은 엠버 버드의 현관문에 거침없이 락픽을 집어넣었다.
이번에도 너무도 쉽게 열리는 문.
돈이 제값을 했음에 흡족히 웃은 노아 해밍턴은 곧바로 안방으로 향했다.
‘문이 열려 있군.’
좋다.
살짝 열린 문을 통해 안방으로 발을 내디딘 노아 해밍턴은 코를 찌르는 술 냄새와 침대 위에서 등을 돌린 채 옆으로 누워 자고 있는 목표의 모습에 입술을 핥았다.
목에 칼을 꽂기 딱 좋은 자세.
가죽장갑을 낀 노아 해밍턴의 손이 목표의 목에 닿는다.
두근! 두근!
“……너희 같은 해충들은 왜 이렇게 살려고 하는 걸까.”
그러나 이 혈관이 끊기면 어떻게 될까.
뇌로 가는 피가 천천히 멈출 거다. 그리고 목이 찢긴 아픔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괴로워할 거다.
“하아아. 너흰 해충이야. 너희 같은 놈들은 죽어야 해. 그리고 난 그런 해충을 처리하는 자.”
달뜬 신음을 뱉은 노아 해밍턴은 흥분을 더 고양시키며 칼을 높이 들었다.
푸우욱!
“……어?”
노아 해밍턴은 목표를 찍지 못하고 엄한 매트리스를 찍은 칼과 갑자기 옆으로 구른 목표를 멍하니 쳐다봤다.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던 상황이라 잠시 이해를 하지 못했던 노아 해밍턴은 곧 일어선 목표, 아니 전혀 모르는 여성과 이쪽을 향해 겨눠진 총에 눈을 부릅떴다.
“빌어먹을!”
다급히 몸을 돌리는 노아 해밍턴.
그 순간이었다.
콰아앙!
순간 현관문 쪽에서 들린 폭탄이 터진 듯한 굉음.
쿵! 쿵! 쿵! 쾅!
노아 해밍턴은 안방의 문을 부수며 난입한 괴물에 경악했고, 입술을 함지박하게 비튼 종혁은 단숨에 반사적으로 칼을 휘두르려는 그의 팔을 잡아 어깨에 걸쳐 투석기처럼 메쳤다.
“존나 만나고 싶었다, 씨방새야!”
뿌가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