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41화 (441/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41화>

    사진 속 얼굴은 참 순박했다. 어두운 밤길에 만나도 웃으며 인사할 수 있을 정도로 순한 외모.

    “이름. 노아 해밍턴. 나이 52세.”

    코쿠스 운송회사 소속 화물 기차의 기관사로, 현재 경력은 24년. 납세의 의무를 단 한 번도 저버리지 않는 모범 시민이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 시각, 그 도시들 전부에 있던 유일한 사람.”

    쿵!

    현재로선 유일한 교차점.

    사건이 벌어진 도시엔 무조건 노아 해밍턴이 있었다.

    이런 몰리의 말에 사무실이 고요해진다.

    “모범 시민이라…….”

    종혁의 얼굴이 뒤틀린다.

    “카드 사용 내역을 살펴보면 사냥을 제외한 특별한 취미 활동은 없는 것 같고, 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 같아.”

    아침엔 도넛과 커피 한 잔, 점심엔 부리또나 햄버거. 특별히 간식을 먹진 않는 것 같고, 이 패턴은 최소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일을 하러 나가도 계속 유지가 된다.

    그런데 그럴 땐 언제나 저녁에 정차하는 도시의 펍에서 술을 마신다.

    ‘펍?’

    “흠. 출장, 그러니까 운송을 나갈 때마다 담당하는 노선은 언제나 같나요?”

    “응. 반년에 한 번씩 노선이 바뀌는 것 같아. 그리고…….”

    타닥!

    몰리가 키보드를 두드리자 사무실의 한쪽 벽에 걸린 TV에 노아 해밍턴의 카드 사용 내역이 뜬다.

    “나이프 마니아인 것 같아. 특정 사이트에서 칼을 구입한 내역이 많아.”

    헌팅 전문 사이트에서 생일날, 한 번에 2개에서 4개씩 칼을 구입한 노아 해밍턴.

    “그런데 3년 전부터 구매하는 나이프의 숫자가 많아졌어.”

    시기가 오묘하다.

    “피해자들 몸에서 발견된 나이프와 일치하는 모델이 있어요?”

    타닥!

    TV에 나타난 나이프 모델 사진과 사체의 목에 꽂혀 있던 칼이 똑같다.

    그뿐만이 아니다. 상흔에 실리콘을 쏴서 모형을 뜬 나이프들과도 똑같은 모델들을 구매한 내역이 있었다.

    요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90퍼센트.’

    거기다 대머리이기까지 하다.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어떡할 건가요, 최.”

    지금껏 카운트 살인마를 잡지 못한 이유가 뭐던가. 현장에 체모나 지문 등 아무런 단서도 없었기 때문이다.

    노아 해밍턴이 정황상 범인으로 유력하긴 하나,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놈을 체포할 수 없었다.

    이런 캘리의 말에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놈은 사냥꾼입니다.”

    인내할 줄 아는 사냥꾼이다.

    하지만 그것도 과거형이다. 놈은 점점 자신의 욕구를 참지 못하고 있다.

    끈기와 인내심을 잃고 성급히 사냥을 나서는 순간, 분명 놈에게도 실수가 나올 터.

    “그러니 우리도 덫을 놓죠.”

    “덫?”

    “예. 놈은 인식할 수도 없는 덫.”

    종혁의 입술이 비틀렸다.

    * * *

    터엉!

    어두운 밤, 화물 기차가 정차를 하자 기관석에 앉아 있다 일어선 노아 해밍턴이 화물칸들이 잘 잠겨 있는지 검사한다.

    콰득! 콰득!

    철도에 깔린 자갈들을 짓밟는 안전화.

    “수고했어요, 코쿠스.”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언제 오시나요?”

    “새벽 4시에 10분에 출발입니다.”

    “4시 10분…….”

    노아는 인사를 건네는 관리자에게 서글서글한 인사를 하다 무언가를 발견하곤 눈빛을 가라앉혔다.

    “저건 뭡니까?”

    “아, 저거요? 몰라요. 시에서 설치하라고 해서 하는 건데…….”

    명분은 외부에서 들어온 도둑들에 의해 도난 사고나 훼손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니 그걸 예방하기 위해 설치하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도 감시하겠다는 거겠죠. 빌어먹을. 우리가 정말 화물을 빼돌리는 줄 아나!”

    CCTV를 설치하는 사람을 보며 침을 뱉는 관리자.

    노아 해밍턴은 어색하게 웃었다.

    “크흠. 아무튼 확인 다 했으면 여기에 사인해 주세요.”

    “예.”

    스스슥!

    “그럼 수고하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예. 수고하세요.”

    관리자가 사라지자 노아 해밍턴은 다시 기관석으로 올라가 운동화로 갈아 신은 뒤 기관석 문까지 완벽하게 잠근 후 기차역을 나섰다.

    “후우우.”

    잠시 멈춰 선 그의 입에서 흩어지는 하얀 입김.

    왜인지 노아 해밍턴의 낯빛이 어둡다.

    “점점 삭막해지네.”

    현재 하는 일도 그렇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일하면 닷새 정도는 쉴 수 있었는데, 지금은 겨우 사흘만 쉴 수 있다.

    거기다 올해 초엔 기관사들도 15퍼센트나 정리 해고가 됐다. 주로 60세가 넘은 이들이었다.

    ‘국제 유가가 높아졌다며 어쩔 수 없다고 했지.’

    대체 유가와 기관사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노아 해밍턴과 동료들은 그 말도 안 되는 그 변명에 동료들이 떠나는 걸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괜히 반발했다가 이 어려운 시기에 잘리기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

    “쯧.”

    고개를 저은 그는 검정색 점퍼의 옷깃을 여미며 며칠 전 내린 눈에 곳곳이 얼어붙은 거리를 조심히 걸었다.

    근처에 바로 모텔이 있음에도 무시한 채 걷고 또 걸은 그는 한 버스정류장 뒤, 골목에 숨어 오는 길에 사 온 에너지바를 씹으며 버스정류장을 살핀다.

    부우웅! 끼이익!

    저 멀리서 달려와 멈춰 서는 버스에 올라타고 내리는 사람들.

    시간을 확인한 노아 해밍턴의 눈이 자연스럽게 버스에 탄 사람들을 훑는다.

    오늘 하루가 고됐는지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든 회사원.

    마트에서 산 물건이 가득 담긴 종이봉투를 소중히 끌어안은 채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사십대 주부.

    어깨를 늘어트린 채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는 학생.

    모두 이 미국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주역들이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그렇게 10분, 20분.

    1월 말의 강추위에 온몸이 얼어붙어 감에도 노아 해밍턴은 미동도 없이 버스정류장을 살핀다.

    그때였다.

    “으아아아! 추워!”

    미니스커트와 점퍼를 입은 채 달려온 여성이 버스 정류장에 서며 발을 동동 구른다.

    ‘왔군.’

    그는 수첩을 꺼내어 현재 시간을 기록했다.

    저녁 8시 53분.

    저녁 8시에서 9시 20분 사이에는 집을 나서서 클럽에 가는 사냥감. 수차례 지켜봤으나 큰 오차가 없었으니 매번 그럴 것이라고 봐도 무방해 보였다.

    이번 사냥감도 다행히 사냥하기 쉽게 제법 규칙적이었다.

    유심히 사냥감을 살피던 그때, 바람결에 흩날려 온 여성의 향수가 코끝을 파고들자 노아 해밍턴은 미간을 좁혔다.

    미국을 좀먹는 해충이 쓰는 싸구려 향수답게 지독한 냄새가 코를 아프게 했다.

    “왔다!”

    부우웅! 끼이익!

    멀리서 달려온 버스가 멈춰 서자 여성은 빠르게 버스에 올랐고, 그걸 빤히 응시하던 노아 해밍턴은 그제야 굳고 얼어 버린 몸을 풀기 시작했다.

    뿌드득! 뿌드득!

    “후우우. 그럼 다음 포인트로 이동해 볼까.”

    수첩을 닫은 그는 다음 포인트인 사냥감의 집, 싸구려 아파트 근처의 골목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폈다.

    저번에 보지 못했던 차가 세워져 있지는 않은지.

    혹여 그 사이 CCTV가 설치 되어 있는지.

    그렇게 모든 요소를 확인하며 변수를 체크한 그는 다시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목표물이 다시 둥지로 돌아올 때까지.

    지독히도 타는 목을 부여잡은 채.

    ‘오늘도 동선이 똑같다면…….’

    더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그의 눈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 * *

    작은 도시 트랜턴의 작은 클럽.

    작은 클럽답게 줄 서는 사람조차 없는 클럽 정문 앞에 두꺼운 점퍼를 걸친 채 서 있던 흑인 가드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이십대 초반의 여성을 보며 혀를 찬다.

    클럽의 수질과 매출을 높이고자 사장이 공짜 맥주와 인센티브를 주는 여성 중 한 명, 엠버.

    “공부하다가 잠깐 머리 식히러 나왔다고! 끊어! 안녕, 가드 씨!”

    “……들어가. 안에서 마약 하면 죽는다.”

    “그 작은 불알에 핫팩은 붙였죠? 수고해요!”

    “mother fucker…….”

    가드의 욕설에 히죽 웃은 엠버는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쿵쿵쿵쿵!

    그녀의 전신을 때리는 비트.

    겨우 그것만으로도 피가 끓은 그녀가 점퍼를 벗자 드러나는 짧은 미니스커트와 탱크톱 민소매 티셔츠.

    목에 건 얇은 은 체인으로 포인트를 준 그녀는 클럽 한구석으로 다가가 바텐더에게 점퍼를 맡긴다.

    “오늘은 좀 어때요!”

    “별로야!”

    외모도 외모지만, 날이 추워서 그런지 여자들의 옷차림이 길다.

    대부분 청바지에 셔츠.

    물론 착 달라붙어 몸매를 드러내지만, 그래도 속살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런지 남자들도 지갑을 잘 열지 않았다.

    거기다 오늘따라 남자들 외모 상태도 영 별로라 피크 시간대임에도 매출이 적다.

    “알았어요! 나 30분만 흔들다 올게요!”

    “알았어! 자!”

    바텐더는 독한 위스키 한 잔과 맥주를 내밀었고,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켠 엠버는 맥주병을 든 채 스테이지로 향했다.

    “꺄아아아!”

    후끈 올라오는 술기운에 그녀는 함성을 지르며 몸을 흔들었다.

    텅!

    작고 둥근 테이블에 맥주를 내려놓은 엠버가 어수룩한 인상의 사내를 보며 옅게 웃는다.

    “안녕?”

    “아, 안녕!”

    어수룩한 인상답게 깜짝 놀라 대답을 하는 또래의 사내.

    ‘여기에 온지 한 시간밖에 안 됐다고 했는데 벌써 맥주를 4병이나 마셨다고 했지?’

    그녀의 눈이 빛난다.

    “친구들은?”

    “그, 글쎄?”

    분명 올 땐 같이 왔는데, 20분도 되지 않아 다 사라졌다.

    엠버는 울상을 짓고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모습에 속으로 한심스러워했다.

    “혹시 클럽이 처음이야?”

    “으응! 넌?”

    “난 가끔 와! 넌 어디 출신이야?”

    “나, 난 로렌스빌!”

    “우연이다! 나도 로렌스빌 출신이야!”

    “진짜? 이름이 뭔데? 어느 고등학교 출신이야? 너도 대학 때문에 트랜턴으로 온 거야?”

    ‘……하아.’

    엠버는 구겨지려는 얼굴을 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런 클럽에서 같은 지방 출신인 우리 둘이 만났다는 게 중요하지! 안 그래?”

    “마, 맞아! 거, 건배할까?”

    “건배 좋지!”

    챙!

    둘의 맥주병이 허공에서 부딪쳤고, 엠버는 단숨에 술을 들이켜는 그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 *

    부르릉!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싸구려 아파트 앞에 노란색 택시가 선다.

    “차, 찰리. 다 왔어.”

    “으응. 그래?”

    맥주를 무려 2병이나 마셨기 때문인지, 아니면 앞으로 있을 일 때문인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숨이 거칠어진 남성이 흔들자 찰리라는 가명을 댄 엠버가 기지개를 켜며 잠에서 깨어난다.

    “수고했어. 그리고 데려다줘서 고마워.”

    “아, 아냐. 그럼 내리자.”

    “잠깐만?”

    엠버는 자연스럽게 따라 내리려는 남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찰리?”

    엠버는 놀라 굳는 남성의 코를 튕겼다.

    “하룻밤의 즐거움은 즐거움으로 끝내야지.”

    “뭐, 뭐?”

    “다음부턴 바보처럼 클럽에서 여자를 어떻게 해 볼 생각하지 마, 너드. 병신처럼 또 클럽에 찾아올 생각도 말고. 안녕. 잘 가.”

    탁!

    문을 닫은 엠버는 택시를 두드리곤 몸을 돌렸고, 경악하는 남성을 태운 택시는 멀어졌다.

    “찐따 같은 게 귀엽기는 하지만…….”

    거기까지다. 가끔 봐야 재밌는 거지 애인이 되면 골치 아파진다.

    “으으으!”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다.

    둘이 합해 맥주를 무려 26병이나 마시면서 50달러도 벌었고, 교통비도 세이브했다.

    맨날 오늘만 같았으면 싶었다.

    기지개를 켜며 아파트로 입구에 선 엠버는 키를 꺼내 들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분명 무슨 공사를 하는 것 같았는데 말이야…….”

    거의 보름 전부터 막 벽을 뚫고 어떤 것들을 설치하는 것 같았는데 뭐가 바뀐지 모르겠다. 거기다 그때쯤부터 주변 아파트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왔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도 말이다.

    그런데 여전히 조용하고 변한 걸 찾아볼 수 없는 동네.

    어깨를 으쓱인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자신의 집 앞에 서서 키를 꽂던 그녀는 옆집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응. 이번에 이사 온 이웃은 조용한 부류인가 보네. ……무슨 상관이야. 내 잠만 방해하지 않으면 되지.”

    드르륵! 달칵!

    그렇게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와락!

    순간 뒤에서 끌어안은 누군가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는다.

    엠버의 눈이 부릅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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