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40화 (440/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40화>

‘신발 사이즈도 얼추 맞는 것 같고…….’

종혁은 싱긋 웃으며 노아의 앞을 막아섰다.

“FBI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라이선스 좀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일입니까?”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 뉴욕에서 큰 사건이 터질 뻔했거든요. 그때 도주한 잔당들 중 선생님과 비슷한 체격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뜬금없는 종혁의 행동에 잠시 의아했던 벤과 드롭이 한 발 물러서며 허리로 손을 가져갔다.

“이보세요! FBI면 답니까! 우리는 성실히 세금을 납부하는 뉴욕주의 시민입니다!”

“예, 죄송합니다. 그래도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반발하는 이웃을 향한 서글서글 웃는 낯을 빤히 응시하던 노아는 이내 혀를 찼다.

“따라오세요. 신분증은 차에 있으니까.”

노아는 픽업트럭에서 드라이빙 라이선스와 보험증서를 내밀었고, 이웃도 신분증을 내밀었다.

그걸 받아 들어 벤에게 확인해 보라고 넘긴 종혁은 차창의 틀을 잡으며 차 안을 스윽 훑어봤다.

“아, 트렁크도 열어 주십시오.”

덜컹!

드롭이 트렁크를 확인하러 가는 것을 본 종혁은 다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렇게 추운데도 취미를 즐기러 나오셨네요.”

“휴가입니다!”

“어휴. 제가 기분 좋을 휴가를 망쳤군요. 많이 잡으셨습니까?”

“큼! 노루 한 마리 잡았습니다!”

“아까 그거요? 오, 손맛 좀 보셨겠는데요? 슬쩍 보니 단 두 방에 죽이신 것 같고……. 이거 저보다 실력이 좋으신 것 같은데요?”

“요원님도 사냥을 하십니까?”

“겨울이면 가끔 토끼나 여우 사냥을 하죠. 먼 곳, 스코프 안의 세상에서 땅바닥을 코를 박은 채 먹잇감을 찾는 놈들을 꿰뚫는 쾌감이란! 크으…….”

“아, 알죠! 그거 알죠!”

노아의 이웃은 흥분하며 노아를 흔든다. FBI보다 실력이 좋다며 말이다.

“이야, 이거 이런 고상한 취미도 가지시고……. 이런 재미는 진짜 우아한 사람들만 아는 건데……. 하시는 일들이 뭡니까?”

“아, 난 소방관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샘슨.”

“아.”

이웃의 입을 막은 노아가 종혁을 본다.

“멀었습니까?”

“하하. 그게…….”

“최.”

종혁은 벤에게 건네받은 노아의 라이선스와 보험증서를 받아 들어 돌려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요원님도 수고하세요!”

끝까지 활발한 이웃.

노아와 이웃을 태운 차는 곧 출발해 주차장을 빠져나갔고, 노아는 가라앉은 눈으로 백미러로 종혁을 빤히 응시했다.

멀어지는 차를 지켜보던 종혁은 혀를 차며 몸을 돌렸고, 벤이 살짝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뭔가 알아차린 거라도 있는 거야?”

“신장이랑 체중이 프로파일링과 흡사하더라고요.”

“그것뿐이야? 저런 체격은 미국에 수천만 명은 있을걸?”

맞는 말이다. 그래서 수사에 애로사항이 많은 거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체격인 탓에 수사망을 좁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별한 건 없던가요?”

“모범 시민이야. 매달 소액이지만 기부도 하고, 세금부터 시작해 핸드폰 요금조차 밀린 적이 없더라고.”

“흠…… 트렁크는요?”

“아, 트렁크에도 별건 없었어. 안전화? 같은 것과 작업복을 제외하면 라이플 케이스밖에 없더라고.”

‘아, 그래서 친구의 입을 막은 건가?’

아마 기술직이 아닌, 보조 인부로 일하는 것일 터. 그 탓에 직업에 대해 자격지심을 느끼고 자신의 직업이 알려지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 게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그 스트레스를 사냥으로 풀었을 수 있겠네.’

단순히 방금 전 피를 봤기에 짙었다고 여기기에는 약간 이질적인 피 냄새. 이번 한 번만이 아니라, 몇 번이나 피를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피 냄새였다.

거기다 흔들림 없이 응시해 오던 눈은 분명 능숙한 사냥꾼의 그것이었다.

‘연쇄살인마도 그런 눈빛을 짓긴 하지만…….’

“흠. 수고했어요. 그럼 들어가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간 종혁은 FBI 신분증을 내밀었다.

“직접 와야 협조를 해 주신다고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FBI입니다.”

“……끙. 뭘 협조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이 사냥터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이곳을 이용한 고객 명단이요.”

‘이 명단들 속에 부디 일치하는 사람이 있길.’

카운트 살인마가 살인을 저지른 도시에 들른 차와 기차, 버스의 고객 명단과 이 사냥터들 고객 명단 사이에 겹치는 게 있기를…….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덜컹! 덜컹!

승객을 실은 기차가 떠나는 뉴저지의 작은 도시 트랜턴의 기차역.

목깃을 세운 오십대 사내, 노아가 빠져나온다.

퇴근 시간이라서 그런지 정체된 도로에서 경적을 울리는 차들과 웅성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들.

“미진해.”

미진하다. 며칠 전 대량의 피를 봤음에도 갈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더 심해진다.

하루, 1시간, 1분, 1초, 시간이 흐를수록 갈증은 계속 강해진다.

‘분명 처음엔 1년은 넘게 참을 수 있었는데…….’

목을 태워 버릴 듯한 지독한 갈증에 정신이 나가려는 와중에 보게 된 사람의 피.

그때 깨닫게 됐다. 자신의 가슴속에 숨어 있던 괴물의 본능을.

처음엔 영화 속 괴물이 된 것처럼 무섭고 두려웠다.

하지만 본능을 깨닫게 되자 주체할 수 없는 살인 욕구에 다시 사람의 피를 보게 됐을 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는 다짐했다.

이 본능에 휘둘리지 말고 의미 있는데 쓰자.

그렇게 1년에 한 명씩, 이 미국을 좀먹는 해충을 치우는 사냥꾼이, 해충 박멸가가 된 것이다.

목표물을 정하고 미행하며 덫을 놓고, 아버지에게 배운 모든 기술을 이용한 사냥에 성공했을 때의 그 미칠 것 같은 쾌감.

그 카타르시스는 1년에 몇 번씩이고 영혼을 찢고 나오려는 괴물을 1년 동안 잠재웠다.

그런데 지금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갈증이 솟는다.

“후우.”

하얀 입김을 내뱉은 노아는 눈이 녹지 않은 보도블럭 위를 걸으며 시내 중심가로 향한다. 온갖 군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시내 중심가로.

그럴수록 더 많아지며 더 큰 소음을 내는 사람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그에게 있어 참 곤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참았다. 저들이 해충일지 아닐지 아직 모르니까.

그는 걷고 또 걷다 중심가에 위치한 펍에 들어갔다.

“으하하하하!”

“호호호!”

따악! 다르륵!

웃음소리와 당구 치는 소리가 가득한 펍.

바에 앉은 노아가 주문을 한다.

“레드록 한 병. 간단하게 먹을 것도.”

맥주 브랜드 중 하나인 레드록.

노아는 펍의 주인이 금방 내준 맥주를 입에 가져가며 귀를 활짝 열었다. 그러자 가게 안의 소음이 그의 고막을 때린다.

오늘도 좆같았던 상사를 향한 험담.

한 병의 맥주로 오늘 하루의 피로를 잊는 노동자의 한숨.

당구 내기를 하며 투닥거리는 연인과 과제가 너무 많다며 징징거리는 학생들.

이 안에 있을 거다.

아무런 쓸모가 없는 버러지가. 미국을 좀먹는 해충이.

“레드록 한 병 더.”

“손님, 이번이 라스트 오더입니다.”

“……그럼 취소하죠. 얼맙니까?”

“46달러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수고하세요.”

팁까지 넘기며 몸을 일으킨 노아는 펍을 빠져나갔다.

“쯧.”

오늘은 없다.

타는 목을 쓰다듬은 그는 마침 보이는 모텔로 향했다.

그 순간이었다.

“날 좀 내버려 둬! 그만 간섭해! 나도 이제 20살이라고-!”

머리를 금발로 물들인 갈색 머리의 히스패닉계 여성.

코와 귀를 뚫은 피어싱과 문신들과 허벅지를 훤히 드러낸 미니스커트.

“뭐? 하! 용돈 끊기만 해! 콱 죽어 버릴 거니까! 내가 용돈으로 마약을 사든, 남자들과 자러 다니든 엄마가 신경 쓸 건 아니잖아!”

눈이 차갑게 가라앉은 노아는 타다 못해 찢어지려고 하는 목을 쓰다듬으며 가만히 여성을 응시했다.

* * *

“해피 뉴 이어-!”

타임 스퀘어에서 2008년 새해를 맞이한 지도 벌써 2주일째.

캘리 그레이스가 수장으로 있는 수사팀의 사무실에 여덟 마리의 좀비들이 걸어 다닌다.

“으어. 커피가 필요해. 당분이 필요해.”

“타우린. 카페인…….”

“배달 왔습니다! 도넛과 커피 시키신 분?!”

“도넛? 커피?”

고개가 돌아간 여덟 마리의 좀비가 눈을 희번뜩 뒤집으며 몸을 날린다.

“커피다! 도넛이다!”

“내놔!”

“우와아아아악!”

불쌍한 도넛 배달원은 도넛이라는 살점과 커피라는 피를 물어 뜯겨야 했다.

거기엔 종혁도 있었다.

“아하하. 미안합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서.”

“아, 아뇨. 그, 그럼 수고하세요.”

“예, 수고하세요.”

떠나는 배달원에게 손을 흔들며 돌아선 종혁은 혹시라도 동료들이 도넛을 다 먹을까 얼른 한 박스를 더 확보했고, 그런 그에게 벤이 입을 연다.

당분과 탄수화물, 카페인이 들어가서 그런지 사람으로 돌아온 벤.

“와. 진짜 세월이 빠르긴 하네. 도넛이 배달도 되고.”

미국에서 배달되는 음식은 거의 두 가지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중국 음식과 피자.

종혁은 피식 웃었다.

“배달 와야죠. 배달료를 50달러나 줬는데.”

“……어?”

종혁은 당황해하는 벤을 뒤로한 채 이곳 수사팀의 정보 담당 요원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으음. 좋아. 그 옆에도…… 하아. 그래, 거기.”

“유부녀가 괜히 총각 꼬시지 맙시다. 확 대시하는 수가 있으니까.”

“호호호!”

“좀 어때요, 몰리?”

캘리 그레이스가 붙여 준 요원들이 조사한 자료를 넘기면 최종적으로 그 모든 자료를 취합하고 재검토해서 검수하는 몰리.

이곳 수사팀에서 캘리 그레이스 다음으로 없어선 안 될 인물이다.

“……없어.”

겹치는 사람이 없다.

기차와 버스를 이용한 승객, 차량의 소유주, 도축업자, 특수부대원, 사냥터에서 받은 명단까지 모두 대조해 봤지만 겹치는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다.

“이제 80퍼센트 확인한 거지만…….”

종혁은 혀를 찼다.

“사냥터의 명단과 특수부대원, 도축업자 사이에서 겹치는 인물도 없어요?”

“아, 그건 여기. 도축업자는 없고, 특수부대원 중엔 한 명 있었어.”

“그래요?”

다급히 명단을 받아 든 종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척 노리스. 나이 79세.

‘이래서 없다고 한 거구나.’

“그 사람, 아마 포크도 들기 힘들 거야. 검색해 보니까 당뇨에 고혈압, 류마티스 관절염, 골다공증에 척추 수술까지 해서 보조기구 없인 움직이기 힘들고, 경증 알츠하이머 진단도 받았더라고.”

“……고마워요. 조금만 더 수고해 주세요.”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 최.”

“충분히 도움되고 있으니까 그런 말은 마세요.”

이것이다. 종혁이 바라는 이상향 수사팀의 일부분이.

말만 하면 곧바로 그 사람에 대한, 그 단체에 대한 모든 정보를 추릴 수 있는 정보 수집 능력.

‘순철이가 해야 될 능력. 하, 진짜 철이를 데려와야 하는데.’

풀이 죽은 몰리의 어깨를 두드린 후 자리로 돌아온 종혁은 이젠 보기만 해도 토가 쏠리는 CCTV 화면에서 외면하며 천장을 응시했다.

‘대체 뭘까. 피해자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걸까.’

놈은 사냥꾼이다.

먹잇감을 신중히 고르고 추적해 덫을 놓고 결국 때가 됐을 때 사냥하는 사냥꾼.

그런 놈이 무작위로 대상으로 골랐을까?

그것도 다년간의 실전 및 성공을 한 놈이?

아니다. 분명 피해자들 사이엔 종혁 본인이 눈치채지 못한 공통점이 있는 거다.

만약 아무나를 대상으로 골랐다면 지금보다 살인 주기가 더 빨라야 했다.

“그리고…… 이것도 문제지.”

놈이 뉴욕주를 벗어나 다른 주도 돌아다닌다는 것.

“하. 이놈이 왜 이렇게, 또 어떻게 이동했는지 알 수만 있으면 뭔가 풀릴 것 같은데…….”

그러기 위해선 종혁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한 피해자들과의 공통점을 밝혀내야 했다.

“학교, 아니야. 보이스카우트나 걸스카우트 아니고.”

어느 병원에서 출생을 했는지까지 모두 기록된 피해자들의 신상 기록을 살피던 종혁은 책상에 이마를 박았다.

없다. 털끝만큼도 겹치는 게 없다.

“아아아악!”

깜짝 놀라 종혁을 보는 사람들.

하지만 그게 보이지 않는 종혁은 눈을 부라렸다.

“그래, 씨발. 내가 언제 사무실에서 대가리 굴리며 수사했냐!”

발로 뛰면서 수사했다.

종혁은 외투를 챙겨 들고 일어섰다.

“벤! 드롭! 여행 갑시다!”

피해자들 주변을 다시 탐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 * *

“그러니까 카탈레냐 씨께서 평소에 사치가 심하셨다는 말이죠?”

세 번째 피해자, 뉴욕주 시러큐스에 사는 카탈레냐 호르메즈. 살해 당시 나이 27세.

멕시코 출신 불법 밀입국자로 펍에서 일을 하다가 눈앞의 백인 남성과 눈이 맞아 결혼을 하며 당당히 미국 국적을 얻었다.

“후우. 솔직히 죽은 아내를 욕보이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심했습니다. 치과의사인 제가 버겁다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아내의 사치로 인해 시내 중심가에 있던 집을 팔고 이렇게 외곽까지 오게 됐으니 정말 많이 싸웠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둘의 사이는 여느 부부처럼 좋았다.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도 아니었고, 저도 마찬가지였죠. 잠자리도 이틀에 한 번씩 가졌습니다.”

아내의 음식 솜씨도 정말 좋았다.

“다투셨다면 어느 정도로 심하게 다투셨습니까?”

“……또 말해야 하나요?”

“죄송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결혼 2년 차까지는 정말 애원하고 말렸지만, 이후부터 4년 차까지는 거의 주먹을 휘두르기 직전까지 갔었죠. 접시나 그릇, 액자처럼 손에 잡히는 걸 서로에게 던졌으니까요.”

당시엔 가족과 친구들이 말리던 결혼을 괜히 했다고 자책도 했었다.

그러다 5년 차 때 이러다 살인이라도 날 것 같아서 부부상담을 받았고, 이후 카운슬러의 조언대로 같은 문제로 싸운다고 해도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전화로 싸웠다.

아내 카탈레냐도 정신병 진단을 받고 고치려고 많이 노력했다. 결국 완벽하게 제어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다…… 그러다…… 큽.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종혁은 눈물이 맺힌 그에게 휴지를 건넸다.

“그럼 그날은 특별한 날이었나요?”

“아닙니다. 아내는 2주에 한 번, 요가 학원의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는데 그날이 바로 그날이었을 겁니다.”

여자들끼리 모여 같이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술도 마시는 그런 건전한 모임.

“저녁 9시쯤? 아무튼 그쯤에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았고요.”

그리고 저녁 11시가 됐는데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도 모자라 전화도 받지 않아서 경찰에 신고를 했고, 아내는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오는 그 사이의 길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종혁은 잠시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흠. 그럼 아내분께서 그 요가 학원의 모임 말고 다른 외부 활동을 한 게 있을까요?”

“멕시코 불법 밀입국자들을 위한 모금 활동과 컨트리댄스클럽을 다닌 것 말고는 없을 겁니다. 제가 알기론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종혁은 눈을 빛냈다.

‘밀입국자들을 위한 모임.’

이건 새로운 정보다.

“그럼 혹시 카탈레냐 씨께서 멕시코에서 어떻게 뭘 하며 자라셨는지 아십니까?”

“예. 압니다. 결혼을 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했을 때 처가에 갔으니까요.”

처가는 지독히도 가난한 곳이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땅덩이에 농사를 짓고 사느라 궁핍했었다.

“매일같이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도왔다고 합니다. 그러다 못 견뎌서 미국으로 도망쳐 왔지만요. 그 전까지는 딱히…….”

정신과 의사가 말하길 이런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영향으로 그녀가 사치를 부리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일종의 보상 심리인 것이다.

“으음. 그래요. 그럼 실례가 안 된다면 남편분께선 어떻게 자라셨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저요?”

“여러 각도에서 생각을 해 보려는 거니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다고 남편분 때문은 아닐 테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으음…… 예. 저는…….”

종혁은 수첩을 빼 들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해가 어스름히 저물어 가는 오후.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 종혁이 머리를 벅벅 긁는다.

“아오, 씨.”

“이건 뭐가 없는데?”

남편의 과거사와 밀입국자들을 위한 모임이라는 정보만 추가됐을 뿐 뭐가 없다.

“이거 아무래도 헛물켜는 거 아냐?”

“어쩌겠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해 봐야지. 살인 현장도 둘러보죠.”

고개를 끄덕인 벤과 드롭은 세 번째 피해자 카탈레냐가 살해를 당한 현장으로 향했다.

집과 집 사이 골목길에서 죽임을 당한 카탈레냐.

“당시 이 두 집은 비어 있었다고 했죠?”

“어. 왼쪽 집은 시내로 이사, 오른쪽 집은 소유주가 노환에 의해 사망하면서 자식들 간에 분쟁이 일어났지.”

그래서 당시엔 방치되었다.

“저 가로등도 망가졌었고. 한 석 달쯤.”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놈은 치밀하게 주변을 조사한 뒤 이곳을 사냥공간으로 삼은 거다.

“그런데 어떻게 여길 들어왔을까. 어떻게 이 동네를 돌아다녔을까…….”

이곳도 8번째 피해자 에덤 폴의 동네처럼 작은 동네다. 외지인이 들어서면 눈에 띄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저 숲이 아니겠어?”

“……그렇겠죠?”

동네의 끄트머리에서부터 시작된 숲.

“일단 피해자 네 명과의 공통점이 생기긴 했네요.”

숲.

살해 현장 근처에 숲이 있거나 살인 현장이 작은 숲이었다.

“한번 가 보죠.”

시간이 많이 흘러서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가 보는 게 심적으로 편했다.

그렇게 숲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이곳저곳을 뒤적거리다 혀를 찼다.

미국도 이런 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건 마찬가지인지 폐플라스틱이나 비닐 포장지, 쪼개진 서랍장들 널브러져 있었다.

뿌우! 뿌!

더 찾아봤자 시간 낭비라는 듯 저 멀리서 기차 경적소리가 화를 냈다.

“응? 기차?”

순간 서로를 본 셋은 숲 안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8번째 피해자 에덤 폴과의 교차점, 철로를 말이다.

“에이. 아닐 거야. 기차 이용객 중 겹치는 사람이 없었잖아. 그리고 기차역이 없는 곳도 있었…… 어?”

손을 젓던 드롭이 멀리서 다가오는 기차를 보곤 입을 다문다.

화물 기차.

종혁의 홀린 듯 핸드폰을 들었다.

“몰리, 피해자들이 사는 도시에 화물 기차가 다니는지 확인해 봐요. 그리고 그 당시 화물 기차를 몰았던 운전사가 누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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