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39화 (439/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39화>

    “이야아.”

    크리스마스이브의 아침.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커피잔을 든 채 테라스로 나온 종혁이 겨울왕국,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축복이 내린 뉴욕의 전경을 둘러보며 화사하게 웃는다.

    “좆됐네.”

    빠앙! 빵!

    고작 아침 7시임에도 도로에 차들이 가득하다.

    지금 출발한다고 해도 제시간에 출근할 수 있을까.

    “……헬기 부를까?”

    종혁은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스으응!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1층 버튼을 누른 종혁이 입술을 깨문다.

    “빌어먹을.”

    지난 일주일 동안 하루 2시간씩 자며 노력했지만, 그 어떤 단서도 찾을 수가 없다.

    에덤 폴 이전에 발생한 살인 사건에 혹여 목격자가 있는지 그 주위를 싹 다 뒤져 봐도, 당시 용의선상에 오른 도축업자나 특수부대원의 알리바이를 다시 조사해 봐도 마찬가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이전에 했던 진술과 엇비슷했다.

    오히려 진술이 토시 하나도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면 의심했을 것이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건 시간이 흐르며 퇴색되기 마련이니까.

    카운트 살인마의 첫 살인은 무려 6년 전.

    6년 전 일을 자세히 기억한다?

    완전기억능력을 갖춘 괴물이 아닌 이상 제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6년 전 일을, 그날 하루에 있었던 모든 일을 완벽히 기억할 순 없다.

    인간의 뇌란 그렇게 대단한 놈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종혁을 초조하게 만드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4번째 살인 이후 갑자기 살인의 간격이 반년으로 짧아졌어.”

    약 1년의 텀을 뒀던 살인이 아무런 징조도 없이 반년으로 짧아졌다.

    살인 충동이 강해진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이 잡히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가진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둘 모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살인은 겨우 4개월 만에 일어났다.

    이미 정해진 루틴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놈의 행적. 어쩌면 당장 내일 아홉 번째가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염병, 씨발! 진짜 뭐하는 놈이기에 단칼에 경동맥을 찌를 수 있는 거지?”

    차라리 베었다면 이렇게 골치 아프지도 않다.

    하지만 베는 것과 찌르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사람의 신체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뜻이 되니 말이다.

    거기다 놈은 뼈를 교묘하게 피해 가며 상체를 찔렀다. 이래서 도축업자나 특수부대원을 용의선상에 올린 거다.

    ‘그리고 그동안 살인 충동을 어떻게 참은 거냐고!’

    4번째 살인까지 있었던 1년의 텀.

    한 번 피 맛을 본 놈이 1년 동안 참는다? 고양이가 생선을 참는다는 게 더 설득력 있다.

    첫 번째 살인까지는 그럴 수 있지만, 두 번째 살인 이후부터는 그럴 수가 없다.

    살인은 마약이다. 살인에 한 번 중독된 사람은 결코 그 충동을 참지 못한다.

    텀이 반년, 그리고 4개월로 줄어든 게 그 증거다.

    살인을 하지 않고도 살인 충동을 잠재울 수 있는 건 오직 피를 보는 것뿐이다. 그것도 대량의 피를.

    ‘역시 도살장에서 일하는 걸까? 아니면…….’

    “아오, 진짜!”

    띵!

    한숨을 내쉰 종혁은 프런트로 다가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최.”

    “좋은 아침이에요, 드웨인.”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하는 140kg 거구의 경비원, 드웨인. 이 아파트 빌딩의 든든한 수문장이다.

    “오늘은 눈이 많이 내려서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시려나 보군요.”

    언제나 출근 시각엔 바로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던 종혁.

    “지하철을 이용하려고요.”

    “저런. 조심하세요. 뉴욕 지하철엔 못된 놈들이 많거든요.”

    “하하. 그러도록 할게요.”

    종혁은 제발 그래 줬으면 싶었다. 이 짜증 좀 풀 수 있도록.

    “아, 맞아. 딸이 있다고 했죠? 이르지만 메리 크리스마스예요. 퇴근 후에 백화점에 들러서 공주 드레스라도 사 가세요. 물론 아내분을 위한 꽃다발과 케이크는 기본 옵션이고요.”

    “오, 최!”

    입주민에게 이런 선물을 받은 건 처음일까. 드웨인이 과하게 감동한다.

    종혁은 드웨인을 부럽다는 듯 쳐다보는 다른 프런트 직원에게도 백화점 상품권을 건넸다.

    “그럼 오늘 하루도 파이팅 있게 근무하세요…….”

    재차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던 종혁은 갑자기 문득 든 생각에 잠시 멈춰 섰다.

    “아, 그러고 보니 드웨인.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했죠?”

    “예. 미 육군 레인저 부대 출신입니다.”

    “그럼 혹시 사람의 경동맥을 단번에 찌를 정도가 되려면 어느 정도로 훈련을 받아야 하나요? 혹시 정말 특수한 부대에 소속되어야 하나요?”

    종혁이 궁금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용의자를 좁힐 수 있는 정보.

    “흠. 사건 이야기인가 보군요. 전 저희 부대밖에 모르긴 하지만, 보통 3년 정도 고도로 훈련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소리 없이 적을 제압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경동맥을 긋거나 폐를 찌르는 것으로, 어느 특수부대든 숙달해야 하는 기본 기술이다.

    “으음. 그래요.”

    레인저 부대도 살인 기술을 배운다는 말에 종혁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미치겠네.’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니 점점 짜증만 늘어난다.

    “크흠. 그, 그런데 범인이 레인저나 특수부대원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

    무슨 말인가 의아해하던 종혁은 뒤늦게 아차 했다.

    레인저나 특수부대원이 살인자다.

    레인저 출신으로서 그걸 받아들일 수 없을 거다. 군인은 적을 죽이는 존재지, 지켜야 할 국민을 죽이는 존재가 아니니까.

    Thank you for your service.

    Thank you for your support.

    이 두 문장으로 대변되는 미군의 자부심을 생각하면 실수를 한 게 맞았다.

    “도, 도축업자일 수도 있고, 사냥꾼일 수도 있잖습니까.”

    움찔!

    “사냥꾼이요?”

    새로운 가설.

    종혁은 눈을 빛냈다.

    “그런데 사냥꾼이 해체도 잘하나요?”

    사냥과 해체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었다. 또한 사냥엔 칼이 쓰이지 않지만, 해체는 능숙하게 칼을 다룰 줄 알아야만 했다.

    “대부분? 보통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다니면서 해체를 배우니까요.”

    “어, 어린 시절에요?”

    뜨악한 종혁의 모습에 드웨인은 피식 웃었다.

    “최는 도시 중심에서만 살았나 보네요. 뉴욕시의 외곽이나 아무 농장만 가도 숲에 야생동물이 넘칩니다. 멧돼지부터 여우, 늑대, 오소리, 심지어 곰까지 있으니까요.”

    그런 야생동물들의 위협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하기에 미국인은 총에 익숙할 수밖에 없고, 그런 야생동물을 잡는 날이면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옆에 두고 야생동물을 해체해 먹을 수 있는 부위와 없는 부위를 알려 준다.

    ‘시발, 진짜 어메이징 미국이네.’

    아버지가 자식에게 동물을 해체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한국인에겐 절대 상식적이지 않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감탄하는 것도 잠시.

    ‘어린아이 때부터 사냥을 배운다라……. 사냥…… 피…….’

    놈과 비슷하다. 인내심을 갖고 기회가 올 때까지 진득이 기다릴 줄 아는 놈의 방식과.

    종혁은 간지러워지기 시작한 코를 긁었다.

    “감사해요, 드웨인! 그리고 방금 제가 실수한 것에 대해서도 사과할게요! 벤, 접니다! 동부에서 수렵 면허를 받은 사람들 명단이 필요해요!”

    ‘놈은 이걸 통해 계속해서 피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켜왔을 수도 있어!’

    아니, 어쩌면 이 사냥이 놈의 살인마 본능을 깨웠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도 질려 갔을 거다. 살인 주기가 급격하게 단축된 데에 이것도 영향을 끼쳤을 터.

    종혁은 지하철역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 * *

    타앙!

    눈을 덮고 잠든 숲을 한 발의 총성이 깨운다.

    촉촉이 젖다 못해 얼어붙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꿰뚫으며 나아간 한 발의 총탄.

    그것이 뼈가 시린 날씨임에도 먹잇감을 찾으러 나온 노루의 살갗을 파고든다.

    “끼이이-!”

    심장을 파고드는 무지막지한 고통에 펄쩍 뛰었다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노루.

    스코프를 통해 그 모습을 관찰한 남성이 펄쩍 뛰며 기뻐했다.

    “나이스, 노아! 이번에도 명중이야! 대단해!”

    “하하.”

    배만 볼록 튀어나온 어수룩한 인상의 오십대 사내, 노아가 털모자를 쓴 머리를 긁는다.

    “뭘. 사냥만 벌써 40년이 넘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몸을 일으킨 그들은 총을 어깨에 메며 쓰러진 노루를 향해 다가갔다.

    “그런데 넌 정말 안 해도 되겠어?”

    “됐어. 난 그냥 보는 걸로 만족해. 단 한 발의 총알로 목표물이 침묵할 그 순간까지 냉정히 기다리는 스나이퍼의 옆모습! 그리고 귀와 온몸을 꿰뚫는 총소리! 크으으!”

    그는 직접 하는 것보다 보는 걸 더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돈 아깝게…….”

    이 사냥터를 4시간 빌리는 데 얼마나 드는지 알고 이딴 헛소리를 지껄이는 걸까.

    “넌 다음부터 따라오지 마.”

    “앞으로 일주일 동안 맥주 살게.”

    이런 핑계라도 있어야 집을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슬슬 기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오십대 유부남에겐 이런 자유 시간이 절실했다.

    “……콜.”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던 그들은 곧 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이는 노루 앞에 설 수 있었다.

    단숨에 허리춤에 찬 칼을 빼 들었던 노아는 아차 하며 이웃에게 내밀었다.

    주춤.

    “알잖아, 노아. 나 생고기도 못 써는 거.”

    “자랑이다.”

    고개를 저은 노아는 왼손으로 노루의 목을 쓰다듬으며 혈관을 찾았다. 그리고 그 위에 칼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차갑고도 기쁘게 번들거리기 시작한 노아의 눈.

    그는 애원하는 듯한 노루의 눈을 빤히 응시하며 칼을 찔러 넣었다.

    푸우욱!

    “끼익! 끼…….”

    ‘쯧.’

    습관적으로 허리춤을 뒤지다가 혀를 찬 그는 그대로 칼을 뽑았고, 노루의 목덜미에서 피가 솟구쳤다.

    푸슉! 푸슈슉!

    “웩!”

    기겁하며 고개를 돌리는 이웃을 무시한 그는 얼굴에 튄 피를 닦는 척 피가 잔뜩 묻은 칼을 쥔 손을 코에 가져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후우.”

    피 냄새를 짙게 맡았음에도 왠지 불만족스러운 그의 얼굴.

    ‘부족해.’

    노루의 목덜미와 배에서 흐른 피가 땅바닥을 촉촉이 적시고 있지만 부족하다.

    피 냄새의 질이 다르다.

    ‘역시 사람이 최고인가…….’

    코앞에서 보는 놀라고 아파하며 절망에 물들어 가는 표정의 변화. 한 칼, 두 칼 찌르는데도 꿈틀거리면서 어떻게든 살아 보려는 버러지의 발악.

    살려 달라는 발버둥.

    그 절망이 가득 섞인 피 냄새와 그 죽어 가는 목소리는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아, 못 참겠네.”

    ‘바로 준비해야겠어.’

    다음 사냥, 아니 이 미국을 좀먹는 해충을 죽일 준비를.

    “응? 뭘 못 참는다는 거야?”

    “아, 화장실.”

    “얼른 다녀와.”

    노아는 칼을 옷에 슥슥 문지르며 나무 뒤로 돌아갔다.

    ‘정말 시끄러워.’

    하지만 미국에 도움이 되는 인물.

    노아는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부우우웅! 카라락!

    거대한 숲, 작은 오두막 앞에 노루를 실은 ATV를 멈춘 노아와 이웃이 기지개를 켠다.

    “으그그. 어우, 춥다. 집에 가는 길에 펍에서 맥주? 맞아, 안 되려나? 나야 내일까지 휴가이긴 한데…….”

    “나도 내일까지 휴가야.”

    “와, 그 일도 휴가를 많이 주나 보네. 하긴 계속 신경을 집중해야 되니까 그럴 수밖에 없으려나?”

    “뭐, 그렇…… 응?”

    부우우웅!

    “오, FBI다. 뭐지? 무슨 일 있나?”

    노아는 호들갑을 떠는 이웃을 무시하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FBI…….’

    그는 몸을 돌려 사무실로 향했다.

    * * *

    부우웅!

    한겨울의 도로를 내달리는 SUV 안.

    보조석에 앉은 벤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피로를 나타낸다.

    “이번이 몇 번째지?”

    “네 번째.”

    “……죽겠네.”

    뉴욕주에 위치한 사냥터들 가운데 직접 오기 전엔 어림없다며 못을 박은 사냥터의 주인들.

    그래서 이렇게 달려가는 거다.

    그래도 이건 그나마 나은 거다. 다른 주의 FBI들이 협조에 응해 주지 않았다면 몇만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됐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기로 끝이니까 좀만 힘내요, 벤. 드롭, 괜찮아요? 바꿔 줄까요?”

    “아냐. 곧 도착하는 데 뭐.”

    드롭은 저 앞에 세워진 표지판을 가리켰고,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차가 숲 안으로 접어들자 창문을 내렸다.

    휘이이잉!

    따뜻한 히터에 가출할 뻔한 정신을 흔들어 깨우는 차가운 바람.

    ‘부디 이 사냥터들 안에 놈이 있길.’

    종혁은 간절히 바랐다. 사냥터들의 이용객 중 놈이 없다면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 테니 말이다.

    범인을 유추할 수 없는 오리무중으로.

    카가각!

    “도착했어.”

    차가 멈춰 서자마자 빠르게 내린 종혁과 벤이 기지개를 켜며 굳은 몸을 푼다.

    “어우으. 숲이라 그런지 정말 살벌하게 춥네.”

    “벤, 넌 뉴욕 토박이인데도 춥냐?”

    “닥쳐, 드롭. 그래도 추운 건 추운 거야.”

    ‘에휴. 저 양반들은 언제 철이 들런지.’

    고개를 저은 종혁이 통나무로 지어진 오두막 사무실의 문을 향해 손을 드는 순간이었다.

    벌컥!

    갑자기 열리는 문.

    깜짝 놀란 종혁은 마찬가지로 놀라 쳐다보는 오십대 남성, 노아의 모습에 낯빛을 굳혔다.

    ‘피 냄새?’

    거기다 대략 180cm 정도 되는 신장.

    종혁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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