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38화 (438/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38화>

카운터 살인마.

이런 외곽처럼 인적이 드문 길이나 공원 같은 곳에서 납치를 하듯 손으로 입을 막고 경동맥에 칼을 꽂아 무력화시킨 후 깊숙한 곳으로 끌고 가서 사람을 무참히 살해한 개새끼.

그런 놈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놈이…… 살해의 재미를 더 중요시하게 된 것 같네요.”

“빌어먹을!”

이래서 부디 아니길 빌었던 거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 메시지를 남기며 경찰과 FBI를 우롱하던 놈이 더 괴물이 됐으니 말이다.

놈의 수법이 갑자기 돌변, 아니 진화한 거다.

‘그러며 안전을 꾀하게 됐어.’

사방이 막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집이라는 공간.

야외에서 스릴을 즐기던 놈이 갑자기 사방이 막힌 공간으로 들어온 거다. 분명 무언가 계기가 있었을 터.

“설마 저번 살인 때 방해를 받은 건가?”

“아!”

감탄한 드롭은 얼른 핸드폰을 꺼냈고,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라고 했다.

종혁은 피로 물든 침대와 발견 당시의 시신 사진을 응시했다.

“반항의 흔적이 미약해.”

벤의 말에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피해자가 무력화될 때까지, 즉 잠이 깊게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침입해 죽인 겁니다.”

놈은 이번에도 경동맥에 칼을 꽂아 넣어 피해자를 무력화시킨 후 상체에 칼을 찔러 넣었을 거다.

천천히, 그리고 즐기듯.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끔찍한 악의가 느껴졌다.

“그럼 지켜봤다?”

정답이다.

놈은 가까운 곳에서 에덤 폴을 지켜봤다.

“드롭!”

“빌어먹을! 가고 있어!”

드롭이 탐문 조사를 위해 밖으로 뛰쳐나가자 종혁은 과학수사팀의 요원을 붙들었다.

“놈의 족적이 나왔습니까?”

“……예. 따라오세요.”

과학수사팀의 요원은 현관문에서 거실 방향으로 찍힌 족적을 가리켰다.

“일단 신발이 뭔지는 찾아봐야 알겠지만…….”

“잠깐만요.”

종혁은 현관문과 족적의 거리를 살피다 발을 내디뎠다.

그에 벤이 깜짝 놀랐다.

“어? 보폭이…….”

“예. 큽니다.”

놈은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아무런 조심성 없이 발을 내디뎠다. 이건 이 집에 자신을 방해할 사람이 없다는 걸, 에덤 폴이 잠들었다는 걸 완벽하게 인식을 하고 있었단 소리다.

“역시 치밀하고 과감한 성격이야.”

“예. 평소에도 자신감이 넘칠 겁니다.”

“체크.”

“신장은 저번처럼 대략 5피트 5인치에서 6피트 사이.”

최소 170cm에서 최대 185cm 사이. 사람의 보폭을 보면 키도 어느 정도 추정된다.

“몸무게가 얼마로 추정된다고 했죠?”

“145파운드에서 165파운드 사이!”

65kg에서 75kg 사이다.

신발 사이즈는 한국식으로 하면 255다.

‘애매하네.’

아직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애매하다. 덩치가 큰 여자일 수도 있고, 보통 체격의 남자일 수도 있다.

종혁은 몸을 돌려 집 밖으로 나갔다.

“에덤 폴 씨가 매일 나오던 그 시간에 나오지 않아서 의아해했다는 거죠?”

“네,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고…… 연세도 있으시니까 혹시나 해서 안방 창문으로 봤더니……. 그, 그랬더니…… 흑!”

최초 발견자이자 신고자인 샐리라는 여성.

‘162? 작지만…….’

일단은 종혁은 그녀도 용의선상에 올렸다. 최초 발견자이자 신고자가 범인인 경우가 제법 많기 때문이다.

“혹시 못 보던 차를 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아니요.”

“처음 보는 사람이 동네에 나타난 적 있습니까? 키가 큰 여성이거나 보통 크기의 남성을…….”

샐리에게서 시선을 돌린 종혁은 안방 창문을 등지며 주위를 둘러봤다.

거대한 숲에 둘러싸여 듬성듬성 세워진 집들과 그 앞에 세워진 차들. 참 구석진 작은 동네라는 게 몸소 느껴진다.

“거실과 안방의 불빛이 모두 보이는 장소는 저쪽인가?”

굳이 집 안으로 들어가서 보지 않아도 에덤 폴이 잠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 그건 바로 불빛이었다.

놈은 불이 켜지고 꺼지는 걸로 에덤 폴이 잠든 걸 확인하고 범행을 저질렀을 확률이 높았다.

“최, 피해자는 평상시 아침 8시에 집을 나서서 6시쯤에 퇴근을 한다고 해. 직장은 그린필드 시내에 있는 마트.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거의 7시 전후. 이동 수단은 버스.”

“처음 보는 차나 사람을 봤다는 사람은 없고요?”

“현재까지는.”

집과 집 사이에 거리가 있지만, 이런 구석진 동네의 특징이 있다. 바로 한국의 시골처럼 서로 비밀이 없다는 거다.

이런 작은 규모의 커뮤니케이션 그룹에 이물질이 들어왔다면 하루도 안 되어 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거동수상자를 못 봤다는 건…….”

종혁은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가 눈을 빛냈다.

‘설마 숲?’

숲이다. 숲이 있었다.

종혁은 곧바로 몸을 날렸고, 그 모습에 같은 걸 떠올린 벤도 함께 몸을 날렸다.

촤라락. 촤라락.

종혁의 몸에 부딪쳐 흔들리는 수풀들.

종혁은 오직 아래만 보며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얼마나 이 잡듯이 뒤졌을까.

움찔!

“……찾았다.”

족적. 에덤 폴의 집 안에 남은 족적과 똑같은 것이 흙바닥에 찍혀 있었다.

몸을 돌린 종혁은 미소를 지었다.

보였다. 피해자 에덤 폴의 집이.

“최! 여기 다른 족적이 있어!”

마을이나 시내 방향이 아니라 숲 안쪽으로 나 있다.

‘그렇지!’

뿌우! 뿌-!

화물 기차의 경적 소리가 종혁의 발견을 축하하듯 길게 울렸다.

그런데…….

“빌어먹을!”

“FUCK!”

혹여 족적이 훼손될까 조심스럽게 그 족적을 쫓던 그들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넓은 자갈길, 아니 기찻길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왼쪽 지평선에서 오른쪽 지평선까지 쭉 이어진 기찻길.

“……그래. 어쩐지 쉽다 했다.”

지랄 염병이었다.

종혁은 마찬가지로 암담해하는 이 지방 경찰들을 향해 싱긋 웃었다.

“병력 총동원하세요. 지금부터 수색에 들어갑니다.”

놈이 기찻길을 따라 걸었는지, 이 기찻길을 넘어 맞은편 숲으로 갔는지부터 기찻길을 따라 걸었다면 어느 방향으로 걸었는지, 어디까지 걸었는지, 중간에 새지 않았는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놈이 남긴 흔적을 찾아야 했다.

혹여 놈이 갈아입었을지 모를 옷가지까지도.

이런 종혁의 말에 경찰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벤도 지원 요청하고요.”

“알았어!”

수백, 아니 어쩌면 수천 명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 * *

“컹! 컹!”

경찰견까지 동원된 이틀간의 수색.

400여 명의 병력이 동원되어 반경 2킬로미터를 이 잡듯 뒤졌지만, 놈의 각질 하나 찾지 못했다.

그로 인해 놈은 기찻길을 따라 움직였다는 정황이 거의 확실시됐고, 놈이 인내심과 체력이 많다는 걸 또 한 번 확인했을 뿐이었다.

“필립, 뭐 좀 나온 거 있어요?”

“아, 벤. 똑같지, 뭐.”

싸늘하다 못해 춥기까지 한 검시실. 칠십대의 늙은 검시관은 하얀 면포를 덮은 채 싸늘한 철제 테이블 위에 누운 에덤 폴의 목을 가리켰다.

“단번에 경동맥을 찌르고…….”

그다음은 위를 찔렀다.

“그리고 이렇게 순서대로. 전과 똑같이 피해자가 살아 있을 때 찔렀어. 그래도 마냥 아프고 괴롭진 않았을 거야.”

“왜죠?”

“갈 때 죽은 아내를 만났을 테니까.”

종혁은 행복한 미소가 가득한 에덤 폴의 얼굴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대체 얼마나 아팠기에 이렇게 웃게 된 걸까.

사람이 극한의 고통을 받으면 뇌에서 뿜어지는 마약, 엔도르핀. 에덤 폴은 너무 아픈 나머지 엔도르핀이 분비된 게 분명했다.

일단 사람이 배를 찔리면 온몸에 힘이 풀린다.

그리고 한 10초 뒤에 오장육부가 뒤틀리다 못해 횃불로 배 안을 지져 버리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찾아온다.

맞아 봐서 안다.

이 고통 때문에 PTSD가 와서 경찰을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피해자 에덤 폴은 살아 있는 동안 이런 칼을 여덟 번이나 맞은 거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래도 다행이다. 엔도르핀이든 뭐든 덜 아팠을 테니까.

빠드득!

종혁의 눈빛이 차가워진다.

* * *

“빌어먹을!”

쾅!

FBI 뉴욕 지국의 사무실로 돌아온 벤과 드롭은 자기 책상에 FBI 점퍼를 집어 던진 후 탕비실로 향했고, 종혁도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놈은 인내심과 체력이 많을 뿐 아니라 살해 흉기를 트로피 삼아 가져갔다.

목에 꽂힌 후 다시 뽑히지 않은 칼.

놈은 다른 칼로 피해자의 상체를 찔렀고, 이 흉기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답은 하나다. 놈이 가져간 거다.

‘피가 묻은 채로 가져갔겠지. 피조차도 훈장일 테니까.’

어디로 갔을까. 어떻게 갔을까.

“서쪽으로는 뉴욕주로 향하는 기찻길, 동쪽으로는 시내 방향의 화물역을 겸하는 기차역.”

‘화물이 내리는 건 하루에…… 아니, 이건 필요 없지.’

종혁은 집중을 하자 무한대로 뻗어 나가는 마인드맵에서 쓸데없는 정보들을 삭제시켰다.

서쪽으로 튀었다면 찾을 길이 없고, 동쪽으로 튀어도 마찬가지다. 화물역 근방에서 벗어나 그린필드 시내에 스며들면 셜록 할아버지가 와도 못 찾는다.

기차역 안을 제외하면 기차역 반경 50미터가 CCTV 공백 지대.

기차역 안에도 CCTV는 겨우 세 대. 두 대는 선로 쪽에 설치되어 있고, 나머지는 기차역 안에 설치되어 있다.

선진국인 미국이라지만 이런 것들은 참 부족했다.

심지어 시골 도시라서 그런지 블랙박스를 단 차량도 거의 없다. 일단 화물역 근방엔 단 한 대도 없었다.

“하, 새끼. 진짜 치밀하고 운 좋네.”

이 정도로 노력을 기울였으면 대충 윤곽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여전히 안개에 둘러싸여 있다.

오랜만이다. 작정하고 프로파일링을 했는데도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나오지 않는 건.

범인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몇 살인지, 머리색은 어떤지, 직업은 뭔지,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은 상태.

심지어 피해자들 사이에 연관성도 없다.

‘첫 번째 살해 피해자는 흑인 여성. 뉴욕주 올버니시의 무용학원 파트타임 강사.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살해.’

여러 남자를 만났다는 증언이 있었지만, 딱히 누군가의 원한을 산 거 같진 않았다.

두 번째 피해자는 뉴햄프셔 클레어몬트의 홈리스. 성별은 남성이고, 백인. 나이는 쉰셋. 걸프전 참전 때 지뢰에 의해 한쪽 다리를 잃었고, 의가사 제대 후 이런저런 이유로 홈리스가 됐다.

“세 번째 피해자는 다시 뉴욕주…… 아오, 씨!”

이렇듯 성별이나 나이, 외모, 인종 등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피해자들의 과거를 모두 뒤져도 서로 겹치는 부분이 없다.

그런데 놈은 이렇게 접점이 없는 사람들을 무참히 죽인 거다. 그것도 4개 주를 돌아다니며.

이러니 놈의 거점이 어딘지도 모르는 거다.

“미 동부의 고속도로가 있는 도시라는 게 유일한 공통점이지……. 시발, 이게 뭔 의미가 있어.”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단 고속도로에 올라타면 미국 어디든 갈 수 있다. 고속도로는 의미가 없다.

게다가 놈은 결코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게 아니다.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감시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살해를 하는 지능적인 놈이다.

살인이라는 쾌락의 본능을 다룰 줄 아는 놈.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하. 이놈 정말 뭐하던 새끼지?”

놈은 첫 번째 피해자부터 경동맥에 칼을 찔렀다. 그것도 정확히.

일단 용의선상에 오른 건 도축업자나 살인 경험이 있는 특수부대원. 그래서 FBI는 첫 번째 범행이 발생했을 때 그들의 알리바이부터 확인했다.

‘아니면…….’

“에이, 아니겠지.”

아니어야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맞다면, 첫 번째 피해자는 결코 첫 번째가 아니게 되어 버리니 말이다.

그러니 놈이 살인을 통해 학습을 했다는 건 절대 아니어야 했다.

“최.”

종혁은 사무실에서 고개만 내밀어 손가락을 까딱이는 캘리 그레이스에게 다가갔다.

“뭐 좀 나왔어요?”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께 보고 올린 것 외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 범인이 대머리일 확률이 있긴 하네요.”

사건 현장에서 모발이나 체모가 발견되지 않았다.

“거시기까지 스프레이나 젤로 고정을 한 게 아니면 대머리일 확률이 높습니다. 아니면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았거나.”

“브라질리언 왁싱?”

‘아, 지금은 없는 단어인가?’

“왁싱이요. 여기랑 여기 털을 밀어 버리는 거. 여자들이 잘하는 거요.”

“풉!”

면도기로 사타구니를 미는 시늉에 커피를 뿜은 캘리는 사레 들린 기침을 하며 종혁을 노려봤다.

“아무리 여자들이 털을 민다지만 거기까진 밀지 않아요. 특이한 취향이 있지 않은 이상!”

“확실히 색다르긴 하죠.”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듯 종혁을 봤던 캘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결국 톨게이트 CCTV를 다시 뒤져야 한다는 거군요.”

사건 발생 한 달 전부터 도시 안으로 들어온 차량을 모두 검사해야 한다. 그래서 겹치는 번호판이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이렇게 머리를 쓰는 놈이면 그 번호판도 바꿔 버렸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일단 해야 됐다.

“놈은 꽤 오랜 시간을 들여서 범행 대상을 골랐을 겁니다. 사건 현장 근방 4킬로미터 내의 모든 숙박 시설도 뒤져 봐야 합니다.”

“……가능하겠어요?”

“뭐 하루 20시간씩 뒤져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한 도시당 두 달은 걸릴 것 같은데요……. 아니, 그 전에 쉬는 날 없이 하루 네 시간씩 자면서 두 달 동안 일하면 죽어요.”

“안 죽습니다. 해 봐서 압니다.”

“대체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요…….”

대체 어떤 나라이기에 이 어린 청년이 그런 경험을 해 본 걸까.

‘에이, 겨우 이 정도 가지고. 한국 고등학생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들으면 쓰러지겠네.’

물론 공부에 열의가 있는 학생들에 한해서다.

“원래 형사는 발로 뛰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 빼고 7명만 더 붙여 주세요.”

한 사람당 도시 하나씩. 두 달 동안 죽어 보는 거다.

‘이놈의 인식 프로그램은 대체 언제 개발되는 건지.’

그러려면 CCTV 화질부터 높아져야 할 테지만, 인식 프로그램이 없으니 죽을 맛이었다.

‘CIA에는 있을 것 같은데…….’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알았어요. 인력을 붙여 주죠. 그나저나 다음 주면 크리스마스네요. 일이 있나요?”

“……미국은 참 좋네요. 크리스마스도 챙기고.”

어디 형사에게 크리스마스가 있을까.

물론 회귀 후에는 명절이나 공휴일은 무조건 챙기려 노력하지만, 원래 형사에겐 그딴 건 없는 거였다.

“진짜 한국에 가 보고 싶네.”

“하하. 별일은 없습니다. 그냥 아침에 밥 먹으면서 캐빈, 아니 그 범죄자나 보지 않을까요?”

“한국인도 캐빈을 보는 건가요……. 그런데 범죄자요?”

“과잉 진압이요. 그거 방어용으로 쓴 소품들만 사소하지, 함정 장치들이 아예 죽으라는 거였잖습니까.”

“하지만 그 두 도둑이 침입을 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다칠 염려도 없죠!”

“……아, 여기 미국이지.”

법이 다르다는 게 여기서 확실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그 두 도둑, FBI에 스카우트하면 좋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 정도면 나름 똑똑하고, 깡도 좋고, 맷집도 인간을 벗어났고.”

“확실히…….”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머리를 아프게 하는 생각을 잠시 잊었다.

* * *

“룰루.”

해가 저무는 오후, 등 뒤에서 비추는 황혼에 온몸이 가려진 한 그림자가 콧노래를 부르며 차고로 향한다.

차를 지나 차고 안쪽으로 들어간 그, 혹은 그녀.

공구 따위를 넣는 붉은 서랍장의 맨 아래 칸을 연 그는 둘둘 말린 커다란 가죽 꾸러미를 꺼냈다.

촤라락!

선반 위에 펼쳐지는 칼의 향연들.

그는 그 16자루의 칼 중 하나, 굳은 피가 잔뜩 묻은 칼을 코로 가져갔다.

“흐으읍. 하아.”

오늘 하루 쌓인 모든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

그의 정신이 마치 약을 한 듯 몽롱하게 풀리며 붉은 입술 사이로 하얀 김이 쏟아진다.

“노아! 지금 퇴근한 거야?”

“아, 응! 나가!”

칼을 다시 원래 자리에 넣고 그는 찾아온 이웃에 환하게 웃으며 차고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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