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36화 (436/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36화>

태안을 찾는 봉사자들! 그보다 먼저 도착한 행복의 쉼터!

재난에 두 팔을 걷어붙인 가출청소년들!

누가 이들을 불량아라 손가락질했는가! 가출청소년이 지핀 희망의 불씨!

행복의 쉼터 재단 권회수 이사장, ‘아이들이 먼저 가고 싶어 했다’.

막대한 기금을 출연한 권회수 이사장!

속속 태안에 닿는 도움의 손길들!

“크아! 냄새!”

“답답해도 마스크 똑바로 씁시다! 안 그러면 병원 갑니다!”

“보호복 찢어진 사람들 이쪽으로 오세요! 보호복 많습니다!”

태안의 해안가를 뒤덮은 검은색 기름들의 위를 덮은 새하얀 물결들.

새하얀 보호복에 공기정화기가 달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새하얀 흡착포로 기름을 닦아 낸다.

그리고 거대한 화물차들이 계속해서 현장 안으로 들어와 싣고 온 물품을 내려놓는다.

띠이! 띠!

“오라이! 오라이!”

“보호복과 마스크 도착했습니다!”

“핫팩 왔습니다! 얼른 가져가세요!”

“새참 왔어요! 드시면서 하세요!”

“와아!”

간식이라는 말에 그제야 굳은 허리를 펴며 뭍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 안엔 종혁도 있었다.

12월 겨울의 강추위에 얼어붙은 몸을 노곤하게 녹이는 뜨끈한 라면 한 그릇. 대용량으로 조리를 한 탓에 면발은 다 불어 터졌지만 꿀맛이 따로 없다.

“최 팀장.”

“엇! 충성!”

종혁은 제복을 입은 채 이쪽으로 걸어오는 노인들을 향해 얼른 거수경례를 했다.

경찰대학교와 경찰교육원, 중앙경찰학교의 교장들.

그리고 그 뒤에 도열해 있는 수천 명의 꼬꼬마들.

‘왔구나!’

합법적으로 24시간 굴려도 되는 노예들이 도착했다.

“이거 최 팀장이 건의한 거라며?”

“하하. 이 기회에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는 경찰, 그런 이미지를 가져가자는 거죠. 그리고…….”

종혁은 교장들에게 귓속말을 했다.

“더 높은 곳으로 가셔야죠.”

움찔!

“으하핫! 하여튼 최 팀장은 우리 경찰의 보배야, 보배!”

“하하.”

머리를 긁은 종혁은 얼어 있는 후배들을 향해 다가갔다.

“경찰대 48기 경정 최종혁이다.”

순간 경찰대 간부후보생도들의 눈빛이 돌변한다.

최종혁. 경찰대학교의 전설이자 경찰대 역사상 최고의 세대라 불렸던 황금세대 48기의 리더이며, 경찰 조직 역사상 유례없는 진급을 하는 괴물 같은 인물.

말로만 들었던, 소설 속에서나 존재할 거라 여겼던 선배가 눈앞에 나타나자 간부후보생도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전체-! 차렷! 최종혁 선배님을 향하여 경례!”

“충성-!”

“충성. 네가 4학년 수석이냐?”

“예! 그렇습니다!”

“오느라 수고 많았으니 일단 라면 한 그릇씩 때리도록 해. 그리고 경찰 간부가, 대한민국에서 경찰 간부가 되려면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국민들에게 각인시켜. 경찰대를 쪽팔리게 하지 마라. 알았냐-!”

“충성!”

“최 팀장님-!”

“어? 나 PD님!”

나연석 PD뿐만이 아니다.

지금 한창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국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들과 윤아네 그룹, 준형이 형들, 연예인들이 함께 오고 있었다.

종혁은 그중 아는 얼굴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종핵아!”

“삼촌-!”

“형님!”

태안의 재앙을 널리 알릴 방송국이 도착하는 순간이었다.

* * *

띠이! 띠!

“이쪽으로! 천천히! 아니, 이쪽으로-!”

숙소용으로 개조된 컨테이너들이 놓이는 공터.

전국에 있는 모든 컨테이너 숙소들을 끌어온 종혁은 두 동마다 하나씩 세워지는 간이 화장실과 간이 샤워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는 감당하겠지.”

아침에 와서 저녁에 돌아갈 생각으로 봉사를 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보단 아예 며칠간 숙박을 할 생각으로 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텐트를 가져온 사람도 있고, 근처 모텔을 잡은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텐트에서 자다간 입이 돌아갈 정도로 날씨가 춥다.

좋은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하러 왔는데 병을 얻어야 되겠는가.

“징글징글하네. 야, 얼마나 썼냐?”

“글쎄요?”

종혁은 잠시 짬을 내서 내려온 오택수를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까지 한 400억?”

수만, 수십만 명을 입힐 보호복에 마스크, 흡착포, 숙소, 간식 및 식사 등 아마 그 정도 썼을 거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이상 더 쓸 생각이다. 자원봉사자들이 봉사를 하는 것 외에 그 어떤 불편함도 느낄 수 없이 말이다.

“……미친.”

“돈 벌어서 뭐합니까. 이럴 때 쓰는 거죠.”

어머니 고정숙도 수억의 달하는 금액을 투척하기로 했다.

정말 언제나 자랑스럽고 존경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였다.

“캬! 역시 참된 졸부는 마인드부터 다르다니까!”

“예예. 알았으니까 얼른 올라가기나 하세요. 내일 중국에 가야 한다면서요.”

종혁이 연수를 가면서 다른 팀에 지원을 나간 오택수. 중국으로 튄 사기꾼을 잡으러 가야 했다.

“하아. 그래. 가야지…….”

발길이 떨어지진 않지만 가야 했다.

“아, 재수가 못 와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아까 통화했습니다.”

지금 베트남에 있느라 오지 못한 최재수.

“그래. 그럼 장미랑 와이프 잘 부탁한다.”

오택수와 함께 온 딸 장미와 아내는 이곳에 남기로 했는데, 일단 올해가 다 가기 전까지는 태안에서 봉사를 하기로 했다.

종혁과 오택수는 잠시 둘이 잠든 컨테이너 숙소를 응시했다.

“걱정 마시고 가세요. 제가 여기에 있을 때까지는 잘 케어할 테니까.”

그래 봤자 이제 고작 나흘밖에 남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 간다.”

종혁은 손을 흔들며 떠나는 오택수를 바라보다 담배를 물었고, 그런 그에게 강철선이 다가섰다.

“최 팀장아.”

“어? 언제 오셨어요?”

“방금 도착했데이. 내가 뉴스에 너 나온 거 보고 얼메나 놀랐는지 아나?”

“큭큭. 그랬어요? 잠깐 스쳐 갔을 텐데 그건 또 어찌 보셨대?”

키득키득 웃던 종혁은 돌연 낯빛을 굳혔다.

“그래서 상황은요?”

“상황은 무신. VIP가 주목하는데 우리 회장님이라꼬 용빼는 재주 있겠드나?”

거기다 곧 대선이다.

대선 후보들 모두 이곳에 내려와 있는데 제아무리 삼전의 회장이라고 해도 사건을 묻을 순 없었다.

“우리 총장님도 그런 걸 용납할 분이 아이고.”

신문 기사에서만 겨우 삼전이라는 이름을 뺄 수 있었다.

“거기다 이번 사건은 우리 특수부에서 맡을 테니까 너무 걱정 말그래이.”

“……후우.”

다행이다.

회귀 전, 별다른 사과도 없이 이번 일을 질질 끌다가 6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보상을 한 삼전중공업.

수천억의 막대한 보상금을 지불하긴 했지만, 그땐 이미 수많은 자살자들이 나온 이후였다.

‘그 꼴을 볼 순 없지. ……나도 움직여야겠어.’

일단은 사과부터.

대선 결과가 나온 이후에서야 슬그머니 사과를 한 삼전 회장으로 하여금 사과부터 하게 만들어야 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도 그럴 것 같으니까!’

“기부금 및 후원금 편취 사기가 성행할 겁니다.”

실제로도 그랬다.

당시 대통령이 된 박명후 대통령이 쉬쉬해서 그렇지 이 기름 유출 사고로 한몫을 잡으려는 놈들이 전국에 넘쳐 났었다.

“에이. 사람이 우예 그랄…… 리가 있제.”

어디 사기꾼이 사람이던가.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 활약하는 게 사기꾼이라는 개새끼들이다.

“알긋다. 그 부분도 신경 쓸게.”

“부탁드릴게요. 저도 아는 형사들에게 말해 놓을게요.”

“그래. 일단 씻어라. 해가 진지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꼴이 그게 뭐꼬?”

아직 보호복을 벗지 않은 종혁의 온몸과 얼굴이 기름투성이다.

“하하. 그래야겠네요. 저기 제 방에서…… 음. 제 방에 손님들이 좀 많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어제 촬영을 왔다가 아예 눌러앉아 버린 연예인들이 좀 있다. 대표적으로 준형이 형들이다.

“연예인? 오, 사인 받을 수 있는 기가?”

“하하. 가 계세요.”

“오야. 빨리 오그래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린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권 이사. 납니다. 삼전중공업 압박 가능합니까?”

-이미 준비 끝났습니다, 보스. 내일이면 삼전의 회장님께서 대국민 사과를 하게 될 겁니다.

인내심이 떨어진 권아영이 결국 칼을 뽑아 들었다.

“……좋네요.”

아주 좋다.

“그런데 문제가 되진 않겠습니까?”

삼전의 김 회장 성격이라면 참지 않을 거다.

-애초에 권&박 홀딩스의 이름으로 매입한 지분이 아니거든요.

“아하.”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종혁은 안심을 했다.

“그럼 이 문제는 권 이사에게 맡기도록 하죠. 그리고 물품이 부족하지 않도록 계속…….”

“형님.”

“잠시 후에 통화하도록 하죠.”

종혁은 얼굴이 기름투성이인 순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씻으면서 이야기하자.”

“예!”

오랜만에 만난 둘은 서로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간이 샤워실로 향했다.

“이제 좀 있으면 경찰서로 가던가?”

“아무래도 서울청으로 가지 않을까…….”

* * *

쏴아아! 쏴아아!

기름이 둥둥 떠 있음에도 여전히 좋은 소리를 내는 바다.

“후우.”

달빛과 함께 유일하게 빛을 내는 작은 불똥을 잠시 입에서 때어 낸 종혁이 툴툴거린다.

“사람들이 말이야. 깡이 없어요, 깡이.”

몸이 고돼서 그런지 죄다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뻗어 버렸다. 강철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 술을 기울이려 나온 거다.

혀를 차던 종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젠 그런 취미도 생기셨어요?”

“……늙은 사람의 작은 장난 정도는 받아 줄 수 있어야 요즘 젊은이라 불립니다.”

“세상에 그런 젊은이가 있다고요?”

“크흠.”

어둠 속에서 현몽준 당대표가 걸어 나오자 종혁은 막걸리가 담긴 잔을 내밀었다.

꿀꺽꿀꺽!

“크으. 좋군요.”

달빛 아래서 기울이는 막걸리 한 잔, 제법 운치가 있다. 코를 찌르는 기름 냄새만 아니라면 참 좋았을 거다.

그래도 둘은 잠시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기분이 좋은 관계, 사람들은 이를 두고 친구라고 말한다.

“제가 원망스럽진 않으세요?”

종혁이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이번 대선, 종혁 본인이 박명후에게 건넨 보물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곤 볼 수 없다.

“글쎄요.”

완전히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단 결국 올 게 왔다는 느낌입니다.”

참 많은 업적을 이뤘지만, 그만큼 실수도 한 박노형 대통령.

결정타는 아무래도 2배 이상 상승한 집값과 삭막해진 물가였다.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걸 바로잡지 못했으니, 그 대가를 받는 것이었다.

뭘 어떻게 하려고 해도 박명후와의 지지율이 10퍼센트 이상 차이가 나니 당대표임에도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민의였다.

거기다 그동안 박명후의 치명적인 치부였던 것들도 어느새 폐업을 하면서 진짜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상황.

차라리 현몽준 본인이 나섰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았다.

그래서 종혁이 나머지 절반의 보물을 준다고 해도 잠깐 기다려 달라 한 거다.

“하지만 다음 대선은 다를 겁니다.”

이번까지 배운다. 그런 다음 나선다.

종혁은 현몽준의 눈에서 타오르는 불길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회귀 전과 달리 계속 진보 쪽 인사로서 권력을 지키며 국민들에게 지지와 사랑을 받는 현몽준. 이 사람이 정말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이 생긴다.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참 좋겠지.’

국민들에게도, 경찰에도 참 좋을 거다.

그래서 도울 생각이었다.

‘앞으로 5년 후라…….’

여러모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이거 파이팅하시라고 선물이라도 드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하. 말만 들어도…….”

현몽준은 종혁이 내미는 USB에 낯빛을 굳혔다.

“가서 보니 미국이 참 어렵더라고요. 믿을 만한 친구들에게 얻은 것이니 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거의 IMF 시절 때처럼 치솟았던 환율.

곧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를 거다.

“……난 참 복 받은 사람 같습니다.”

현몽준이라고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를까. 현재 한국 경제도 그에 조금씩 영향을 받는 중이다.

“마음 같아선 이 밤이 끝날 때까지 마시고 싶지만, 그럴 수 없게 되어 버렸군요. 한국엔 언제 다시 돌아옵니까?”

“한 10개월 후? 그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발을 뺄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더 오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때 보도록 하죠. 손님도 오신 것 같으니 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저벅저벅.

종혁은 어둠을 뚫고 나타난 박명후의 모습에 살짝 놀랐고, 종혁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왔던 박명후도 종혁의 옆에 있는 현몽준의 모습에 놀랐다.

“이거 제가 두 분의 친교를 방해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그럼.”

종혁의 어깨를 두드린 현몽준이 멀어지자, 종혁은 박명후에게 방금 전까지 현몽준이 막걸리를 마셨던 잔을 내밀었다.

지난 사흘간 고생을 했는지 피부가 많이 푸석한 그.

“하하. 잘 마시겠습니다.”

종혁은 넉살 좋게 웃으며 자리에 앉는 박명후를 향해 술을 따라 주었다.

“미리 당선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하하. 아직 투표를 하려면 멀었는데요. 그래도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은 좋군요. 최 팀장님이 이렇게 기대를 해 주시니 끝까지 힘내서 대통령이 돼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친구들이 말하길 미국이 크게 흔들릴 거라더군요.”

“……!”

박명후는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말에 눈을 부릅떴고,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경제가 파탄 나면 자살자와 사기꾼이 득세한다. 그걸 막아야 했다.

물론 완벽히 막진 못할 테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만큼은 해야 됐다.

‘거기다 광우병 파동도 있고.’

참 다사다난할 2008년을 떠올리니 한숨만 나왔다.

* * *

해가 떠오르자 다시 자원봉사자들로 인해 뒤덮인 태안 앞바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종혁은 이곳에서의 마지막 담배를 끄며 몸을 돌렸다.

할 수 있는 건 다했고, 해야 할 것도 다했다.

이제 남은 건 태안이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때까지 저 온정의 손길이 끊기지 않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뿐이다.

“끄으으! 그럼 이제 돌아가 볼까?”

미국으로. FBI로.

그곳에서도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고, 놈들도 쫓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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