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31화 (431/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31화>

웅성웅성.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는 센트럴파크의 어느 수풀 안.

FBI 요원들과 함께 구경꾼들을 뚫고 사건 현장에 도착한 종혁은 피범벅이 된 시체를 보며 혀를 찼다.

그건 다른 FBI 요원들도 마찬가지다.

“아주 난자를 해 놨군.”

시체에 남아 있는 이십여 개의 상흔에서 범인의 지독한 원한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 정도로 상흔이 많다면, 상흔을 감식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범인을 추정할 수 있겠군요.”

그런 종혁의 말에 FBI 요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흉기가 무엇인지, 범인의 키가 어떤지, 완력이 어느 정도인지 등을 알아낼 수 있으니까.”

자상의 길이나 깊이, 그리고 방향 등을 통해 다양한 단서를 얻을 수 있는데, 상흔이 이십여 개나 된다면 그만큼 정보의 신뢰도는 올라갈 터였다.

FBI 요원 중 한 명이 피해자의 목을 가리켰다.

“경부를 위에서 내리찍었군. 키가 큰 사람이 범인일 확률이 높겠어.”

범인이 키가 작을 때는 경부나 가슴보다는 복부를 찌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범인은 키가 제법 큰 피해자의 목을 위에서 내리찍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피해자와 키가 비슷하거나 큰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키가 작은 사람이 쓰러뜨린 다음 찌른 걸지도 모르죠.”

종혁은 정면에서 칼을 찌르거나 뭔가를 눕히는 시늉을 한 뒤 위에서 아래를 찌르는 행동을 했고, FBI 요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차. 그걸 깜빡했군.”

FBI 요원은 간과하고 있던 부분을 알려 준 종혁에게 감사하다는 듯 고개짓을 했다.

‘역시 대단해. 허술한 부분이 없어.’

“시신을 뒤집어 볼 수만 있다면 이 사람이 얼마나 반항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시신에 어떤 흔적이 남아 있을지 모르기에 섣불리 건드려선 안 된다.

“그건 부검을 해 봐야 알겠지.”

“그렇죠.”

그리고 그래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3년 전, 그리고 1년 전 발생했던 시신을 무참히 훼손한 살인사건. 그 사건의 범인이 또다시 일으킨 연쇄살인사건인지 아닌지 말이다.

“이봐요, 에드릭.”

그들보다 먼저 사건 현장에 출동한 NYPD 형사를 부른 FBI 요원이 지시를 내린다.

“현장 반경 1킬로미터 내에…….”

“CCTV와 살인에 쓰인 흉기와 범인의 옷가지가 있는지 찾으라고요? 예예, 알겠습니다. FBI가 까라면 까야죠.”

종혁은 날을 세우는 NYPD 형사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기에 씁쓸히 웃었다.

한국으로 치면 지방서 형사인 자신이 먼저 접수한 사건에 슬그머니 광수대가 나타나더니 사건을 뺏은 격.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최, 빌리! 피해자 신원 나왔어.”

종혁은 다른 FBI 요원이 들고 오는 증거물 봉투 속 지갑을 보며 눈을 빛냈다.

일단 탐문 조사 전 잠시 FBI 뉴욕 지국에 들른 그들은 입에 햄버거를 물고 있는 종혁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진짜 그 입은 쉬질 않네.”

“이 덩치 유지하려면 열심히 먹어야죠.”

“……내가 아는 몸 좋은 사람들은 다 프로틴 쉐이커나 닭가슴살 씹던데.”

“그렇게 불균형하게 먹으면 늙어서 고생합니다.”

기본적으로 골다공증에 중풍 등 영양 불균형과 스트레스로 온갖 병마에 시달리게 된다.

“그, 그래?”

“뭐든지 적당한 게 좋은 겁니다.”

체지방량이 적다고 마냥 좋은 게 아니다. 체지방도 적당히 있어야 좋은 몸이 된다.

“그렇구나. 아무튼 오늘 고마웠어. 역시 수사기법을 창시한 사람은 달라도 다르구나?”

“하하, 뭘요.”

“슈퍼맨?”

“아, 보스.”

종혁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돌아서는 캘리를 따라 그녀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커피?”

“커피 좋죠.”

햄버거에 커피도 썩 별미다.

그녀가 따라 준 커피로 햄버거를 모두 씹어 삼킨 종혁은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듯 시선을 보냈다.

툭!

캘리가 서류 뭉치를 내려놓았다. 지난 일주일간 보셀리 피에트로에게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자료였다.

록 건설을 시작으로 모든 사업체에 세무 조사가 들어간 보셀리 피에트로.

한두 개도 아니고 모든 사업체가 동시에 세무 조사를 받는다?

우연이로 치부하기에는 어려운 감이 있었다.

캘리는 이게 누군가가 보셀리 피에트로를 말려 죽이려는 악의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난 그런 악의를 가진 사람을 알고 있죠.”

“아, 그런가요?”

쪼르륵!

다 마신 커피를 리필한 종혁은 ‘누군데요?’라는 듯 그녀를 응시했다.

“후우. 최.”

“뭘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전 아닙니다. 실론티 홀딩스도 제 소유가 아니고요. 그 정도로 부자였다면 제가 경찰을 했을까요?”

맞는 말이다.

“그리고 작은 의혹만 있어도 받아야 하는 게 세무 조사 아닌가요?”

이것도 맞는 말.

“…….”

“커피 잘 마셨습니다.”

따뜻한 커피를 주욱 들이켠 종혁은 몸을 돌렸고, 가라앉은 눈으로 그런 그를 응시하던 캘리는 입술을 달싹였다.

“슈퍼맨, 당신의 정의는 뭐죠?”

“백 명의 범인을 잡더라도 단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마라.”

‘그리고 개새끼는 지옥에 처박아라.’

이를 위해 몸과 영혼이 부서진다 하더라도 종혁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정론이네요.”

“이 글귀를 마음에 품지 않으면 이 짓 못하죠.”

“최.”

“예?”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예산이 한정된 수사기관으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짓을 해 버리는 멋진 사람.

‘의심하고 있네.’

솔직히 의심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이번엔 꼭지가 완전히 돌아 버려서 좀 무리를 했으니까.

그러나 법에 저촉될 짓은 단 하나도 하지 않았으니 상관없다.

2001년 닷컴 버블 때 제대로 털어먹기 위해 월 스트리트에 만든 수많은 투자 회사 중 하나인 실론티 홀딩스와 권&박 홀딩스의 관계를 알려면 CIA가 전담팀을 만들어 족히 10년은 파야 알 수 있을 테니 들킬 위험도 없다.

피식 웃은 종혁은 사무실을 빠져나갔고, 남겨진 캘리는 다 식어 버린 커피를 홀짝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책상 서랍을 연 캘리는 한국에서 종혁이 해결한 사건을 살피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초대형 사건엔 언제나 공교롭게 겹쳤던 행운들.

“……그래도 아니겠지.”

정말 이 모든 것의 배후에 종혁이 있다면, 그가 말한 것처럼 경찰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럼 정말 신의 은총이 함께하는 행운아인 건가?”

눈을 가늘게 뜨던 그녀는 다시 보셀리 피에트로의 현재 상황을 기록한 자료를 보곤 입술을 비틀었다.

“이놈도 골치가 아프겠군.”

산하 패밀리 중 두 개가 날아가고, 빛의 세상 속에 있는 사업체들에 제동이 걸렸다.

그것도 모자라 강력한 라이벌, 아니 그를 짓누를 강자들이 등장했다. 마약을 제외한 돈줄이 마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제 남은 건 이 끔찍한 악몽에 초조해진 보셀리 피에트로가 실수를 하는 걸 기다리는 것뿐.

그걸 생각하니 수사가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은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다.

그리고…….

“꼴좋네.”

그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감미로운 클래식 선율이 울리는 레스토랑의 룸.

달그락!

마지막 한 조각의 스테이크를 입에 넣은 노인이 피처럼 붉은 와인으로 입안을 씻어 내며 오랜 침묵을 깬다.

“정말 겨우 무마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시장님.”

보셀리 피에트로는 감사와 사과의 뜻을 담아 고개를 숙였고, 시장은 그런 그를 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다 제이미 골더나 줄리아 에덴, 윌리엄 홀튼은 오래전부터 이곳 뉴욕의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애써 오며 막대한 세금을 납부했던 데다가 그 인맥도 대단해서 시장인 그조차 쉬운 상대가 아닌 인물들.

그런 그들과 척을 질 각오를 하고 세무 조사에서 드러난 보셀리 피에트로의 죄를 축소시켰다.

‘처음부터 이놈과 얽히지만 않았어도……!’

시장 선거에서 막대한 후원금을 낸 것도 모자라, 적들의 약점을 캐 오고 학교나 사회복지재단을 세우며 그 공을 모두 시장에게 돌림으로써 지지율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한 보셀리 피에트로.

훗날 그가 마피아인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땐 이미 깊게 얽혀 버린 뒤였다.

‘쯧!’

“하지만 과징금과 영업 정지는 피하지 못할 겁니다.”

최소 4천만 달러.

이 정도의 벌금을 내놓지 않으면 당장 교도소에 갈 만큼 보셀리 피에트로의 탈세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거기다 너무도 비위생적이었던 마그마 클럽과 말이 많았던 록 에이전시는 한 달 정도 영업 정지를 당해 줘야 했다.

그런 시장의 말에 보셀리 피에트로는 이를 악물었다.

“……성실히 납부하겠습니다.”

“그래야 할 겁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건 감사의 뜻으로 준비한 제 작은 성의입니다.”

보셀리 피에트로는 그에게 코인 라커의 키 하나를 내밀었고, 키를 받아 든 시장은 그제야 흡족히 웃으며 안부를 물었다.

“요새 사업은 좀 어떻습니까?”

“하하. 걱정해 주시는 덕분에…….”

퍼억!

“빌어먹을!”

차에 올라탄 보셀리 피에트로는 차창을 치며 분통을 터트렸다.

4천만 달러면 그가 여태껏 탈세한 것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

마약을 몇 킬로그램 팔아야, 여자를 몇 명을 팔아야 4천만 달러를 만들 수 있는지 알고 그딴 소리를 지껄인 걸까.

클럽이 한 달간 영업 정지를 당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그딴 소리를 하는 걸까.

처먹인 돈값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교도소에 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연놈들은 어떻게 됐어!”

이번 일로 본 손해가 너무 막심하다.

그중 가장 큰 건 아무래도 클럽을 한 달간 폐쇄하면서 발생할 손해다.

마그마 클럽은 단순히 술과 음악만 파는 곳이 아닌, 선박 회사를 통해 밀반입한 마약과 모델 에이전시를 통해 수급한 여자들을 파는 것이야말로 진짜 주된 사업이었다.

마그마 클럽이 영업 중지를 당하면, 마약 사업과 성매매 사업까지 중지를 당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이렇게 물을 먹었는데 가만히 있어야겠는가. 명색이 마피아인데 말이다.

최소한 경고는 해 줘야 했다. 그래야 다른 이들에게 얕보이지 않는다.

마음 같아선 그 늙은 몸뚱이들에 총탄을 처박아 주고 싶지만, 그들이 가진 인맥이 너무 대단해서 그럴 수는 없었다.

“…….”

“또 왜!”

“PMC가 경호원으로 붙었습니다.”

PMC(Private Military Company: 민간군사기업).

“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 전부에게 경호원과 방탄차가 붙었습니다.”

“푸핫……!”

놈들은 정말 작정하고 자신에게 싸움을 건 거다.

‘그것도 네 명이 전부. 왜지?’

그가 알기로 윌리엄 홀튼을 비롯한 네 명은 서로 그리 친분이 깊지가 않다. 그런데 네 명이 동시에 싸움을 건 것도 모자라 보복을 대비하고 있다.

보셀리 피에트로는 이 점에서 어떤 거대한 악의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네 명이 갑자기 정의의 사도가 된 건 아닐 테고……. 누구지?’

누군가 이들 4명의 뒤에 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보셀리 피에트로는 그렇게 느꼈다.

방금 전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과 달리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은 그.

“실론티 홀딩스에서 그 넷에게 투자를 담당한 놈이 누군지 알아봐.”

“예, 알겠습니다.”

“사업체들 현황은?”

“일단 다독이긴 했지만…….”

보셀리 피에트로는 말을 줄이는 부하의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말해.”

“다른 곳은 아직 괜찮지만, 록 모델스쿨에서 이탈자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직 올던 에이전시&스쿨이 개관을 할 때까지 사흘이나 남았음에도 거의 절반 가까이의 연습생들이 이탈했다. 올던 스쿨의 등록비가 한 학기에 겨우 200달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탈한 절반에 그들 마그마 록이 노리던 여성들 전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핫!”

그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숨을 골랐다.

“후우. 오늘 계속 못난 모습을 보이는군. 제이미 골더의 클럽이 오늘 오픈이던가?”

“예. 오늘 맨하탄 지점이 오픈을 한다고 초대장을 발송해 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가.”

속이 뒤집어지지만 그래도 가야 한다.

제이미 골더가 어떤 클럽을 만들었는지, 오는 손님이 누군지 알아야 대비책을 세울 테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그렇게 보셀리 피에트로를 태운 차는 제이미 골더의 클럽으로 향했다.

그리고…….

-Welcome to Paradise-!

“으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

보셀리 피에트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 * *

어느새 세상이 까맣게 물든 11월 말의 뉴욕.

“어그으!”

기지개를 켜던 종혁이 옆을 보곤 피식 웃는다.

“어으…….”

“살려 줘……. 퇴근하고 싶어…….”

누가 미국 공무원은 칼퇴라고 했던가.

다른 공무원들은 어쩔지 모르지만, 수사기관에게 정시 퇴근이란 없는 단어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분명 담당하는 사건은 없는데 바쁜 건 모두 모든 팀을 지원하고 조언을 아끼지 말라는 캘리 그레이스의 명령 때문이었다.

‘이게 날 잘 써먹는 방법이긴 하지만…….’

“하. 사건 맡고 싶다.”

캘리의 사무실을 째려본 종혁은 탕비실로 향해 커피를 따랐다.

“흐음.”

커피의 고소한 향기가 잠시 무거워진 머리를 가볍게 한다.

저벅저벅!

“아, 최! 고마워. 정말 고마워!”

“흐흐. 아까도 인사했잖아요.”

“그래도 고마워서 그렇지.”

센트럴파크에서 피해자를 난도질한 범인이 오늘 낮에 잡혔다.

범인은 피해자의 전 여자친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피해자는 합격을 하자마자 그동안 헌신적으로 내조했던 여자친구를 버렸고, 버림을 받은 여자친구는 좌절해 마약을 복용하다가 결국 약에 취해 살인을 저지른 거다.

다만 우발적이 아닌 계획적 살인.

범인은 피해자를 센트럴파크로 불러낸 후 숨어 있다가 등 뒤에서 칼을 찔러 피해자를 제압. 피해자가 쓰러지자 그 위에 올라타서 피해자의 목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비스듬히 찔렀다.

종혁이 제기했던 가능성이 정확히 들어맞은 것이다.

“뭘요. 동료끼리 당연한 일이지.”

“그래서 오늘 한잔 사고 싶은데 어때?”

“저야…….”

지이잉!

문자를 확인한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죄송한데 오늘은 안 되겠네요. 가야 할 곳이 있거든요.”

“가야 할 곳?”

“예. 꼭 봐야 할 구경거리가 있거든요.”

보셀리 피에트로가 제이미 골더의 클럽에 들어갔다고 한다. 지상낙원을 준비했으니 꼭 와 달라는 자신만만한 초대장을 보낸 클럽에 말이다.

종혁은 보셀리 피에트로의 일그러진 얼굴이란 구경거리를 상상하며 실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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